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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영화 (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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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활달한 서사, 아픔을 가로지르는 입담
우리 시대 가장 믿음직한 작가 공선옥, 12년 만의 신작 소설집


아픔을 가로지르는 생생한 입담으로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을 보듬어온 작가 공선옥이 [명랑한 밤길] 이후 12년 만에 신작 소설집 [은주의 영화]를 선보인다. 표제작인 중편소설 [은주의 영화]를 비롯,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발표한 작품 8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은 약자의 아픔을 농익은 필치로 풀어내는 솜씨가 여전하거니와 옛 가족이 해체되며 느끼는 불안과, 폭력의 시대가 여성에게 남긴 상처,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고독을 공선옥 특유의 활달한 서사로 들려준다.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28년, 우리 시대의 모순을 정면으로 돌파해온 작가는 여전히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야만의 시대가 남긴 상처, 그 속에서 침묵을 깨고 피어난 이야기는 공선옥 소설의 활력을 다시금 증명해낼 것이다.

이 소설들이 지금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 가닿아서 그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까. 말을 걸 수나 있을까? 혹은 누가 이 소설들에 말을 걸어오기나 할까? 소설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의미가 있기는 할까? 나는 혹시 노래를 익혀 '밤무대 가수'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는 것이 '존재 의의'로서는 좀더 윗길이지 않았을까? 소설이 세상에서 그리 유용한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는 해도 어쨌거나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앞으로 사는 동안은 소설을 쓰면서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소설'로밖에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출판사 서평

내 영화는 그 오랜 침묵의 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야기였고 울음이었고 끝내 노래가 된 낮은 목소리


표제작 [은주의 영화]는 영화감독이 꿈인 취업준비생 은주가 카메라 한대로 이모의 이야기를 촬영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광주에서 대구탕집을 하는 이모는 5·18 때 어떤 장면을 본 이후로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카메라를 통해 그런 이모의 이야기를 무심히 듣던 은주는 어느새 카메라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카메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가 숨을 쉰다. 카메라가 큰 숨으로 나를 빨아들인다.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카메라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카메라 속에서 카메라를 찾는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카메라 속에서는 카메라가 필요 없다는 것을. 카메라 속에서는 내가 카메라이고 카메라가 이모다. 나는 이제 이모가 되었다.
(/ p.83)

은주가 되어버린 카메라 앞에서 이모는 남성의 폭력에 무방비하게 놓였던 아픈 과거를 털어놓는다. 카메라는 마치 영매처럼 죽은 사람까지 불러들이는데, 종내에는 이모와 은주가 얽힌 한 소년의 비극적인 죽음이 떠오르고 그 소년의 죽음이 1989년 실제 있었던 조선대 학생 이철규의 의문사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침묵함으로써 감춰두었던 각자의 상처는 영매가 되어버린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가 되고 한바탕 울음이 된다.
폭력의 시대에서 학대받은 여성은 [어머니가 병원에 간 동안] [읍내의 개]에도 등장한다. [어머니가 병원에 간 동안]의 '언니'는 남의집살이, 버스 차장,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번 돈으로 집에 소를 사주지만 소는 병들어 죽고 결국 언니도 병들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엄마와 언니가 병원에 있느라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아직 어린 '나'는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다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고 허공을 향해 엄마를 불러보지만 응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읍내의 개]에는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가려는 '나'가 읍내 차부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을 라디오 뉴스를 통해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공선옥은 '작가의 말'에서 "내가 스무살을 향해 가던 무렵 세상에는 '큰 개' '작은 개'들이 곳곳에서 '발광'을 했다"라고 그 시대를 떠올린다.
[순수한 사람]은 착취당하는 어머니의 삶이 세대가 지나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땅도 집도 소도 전부 자식들에게 내어주느라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어머니는 "느그 어매 젖은 진작에 보타져불고 수중에 일전 한닢이 없다"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목청을 돋워 노래를 부른다. 그런 어머니의 딸인 '나'는 중학생 아들의 요구로 이혼한 남편을 향해 양육비 청구 소송을 시작해 내키지 않는 재판을 이어가는 중이다.
옛 가족이 허물어진 뒤에 오는 외로움과 불안을 서늘하게 그려낸 [염소 가족]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나의 염소 가족들은 언제쯤 한마리도 빠짐없이 모일 수 있을까"라는 말로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사라진 염소처럼 뿔뿔이 흩어져버린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아스라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한편 소설은 쓰지 못한 채 강연으로 먹고사는 '행사작가'로 전락한 소설가 K의 이야기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바깥에서 지켜보는 여성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사는 일의 서러움을 그려낸 [설운 사나이]도 잊지 못할 감동을 준다.
다섯살 아이의 납치 계획을 세우는 퇴임교수 '윤'의 고요한 일상을 그린 [오후 다섯시의 흰 달]은 아내와 아들이 사고로 죽고 하나 남은 딸마저 독립을 해 집을 나가면서 혼자 남게 된 '윤'이 우연히 알게 된 다섯살 아이를 통해 묘한 생기를 찾게 되는 과정이 스산하게 그려진다. 낮도 밤도 아닌 시간인 오후 다섯시는 그 끝에 고요한 밤이 올지 불안한 밤이 올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경계에 있는 애매한 시간이다. 어쩌면 작가는 그 시간 뒤에 '흰 달'을 둠으로써 희미하게나마 비치는 빛의 자리를 남겨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된 슬픔은 더는 슬픔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은주의 카메라 앞에서 말 못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다 풀어놓은 이모는 밤새 내린 비로 말개진 봄날 아침, 날아가는 노랑나비를 쫓는다. 이제는 다음 세대인 은주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다. 긴 침묵의 끝에서부터 시작될 그 이야기는 비로소 '은주의 영화'가 되어 흰 달빛처럼 독자들 곁을 오래도록 비출 것이다.
언제나 우리 곁 가장 아픈 자리를 써온 작가 공선옥, 우리를 대신해 울어주고 노래해주는 그의 소설이 있는 한 곧 다가올 밤이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목차

행사작가
순수한 사람
오후 다섯시의 흰 달
은주의 영화
염소 가족
설운 사나이
어머니가 병원에 간 동안
읍내의 개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본문중에서

나는 저런 길모퉁이에서 파란 제복을 입고 호각을 불고 있었는데, 단발머리 나풀거리며 길을 건너오던 너희 엄마가 내 옆을 지나가더라. 예뻐서 호각 소리를 더 크게 냈다. 너희 엄마가 한번 더 돌아볼까봐, 가슴을 졸였지. 정말로 돌아보더라. 숨이 멎을 뻔했지. 거의 영화였다, 영화였어.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거의 영화였다, 영화였어, 했던 순간이 내 영화의 시작이었다.
('은주의 영화' 중에서/ pp.74~75)

오랫동안, 철규는 카메라 밖을 뚫을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 침묵이 너무 단단해서, 뭐라고 말을 붙여볼 수조차 없는 그런 침묵이었다. 오랜 침묵의 뒤에 소년 철규는 카메라 저편으로 사라졌다. 내 영화가 소년 철규의 그 오랜 침묵의 끝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은주의 영화' 중에서/ p.135)

이런저런 생각들이 간단없이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이 애가 잘 살고 있는지,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제 남편하고도 상관없는, 그러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는 깊은 곳, 제 몸속 어딘가, 저만이 알고 있는 우물 같은 장소에 웅크린 딱딱한 것, 그것을 굳이 슬픔이라거나 그늘이라고 하면 좀 민망해질 수도 있을, 그런 것이 딸에게도 있을 것이다, 왜 없겠는가, 사람의 자식인데......
('염소 가족' 중에서/ p.153)

나의 염소 가족들은 언제쯤 한마리도 빠짐없이 모일 수 있을까. 한마리도 빠짐없이 다 함께 모여서 어느 햇빛 가득한 봄날이거나 햇빛이 만들어낸 그늘이 싱그러운 여름날의 언덕에서 향긋한 식사를 즐길 수 있을까.
('염소 가족' 중에서/ p.162)

붉은 조명등이 번쩍이는 밤하늘로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왜 저렇게 음악을 크게 트냐는 영애의 질문에 지나가는 누군가 말했다.
"서러운 사람들 더 서럽게 할라고 처 발광을 해대는 거 아닙니까." (...) "사는 기 이케 서룹다."
('설운 사나이' 중에서/ pp.185~186)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4.12.28~
출생지 전남 곡성
출간도서 58종
판매수 28,368권

소설가.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중편소설 [씨앗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으로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명랑한 밤길], [멋진 한세상], 장편소설로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 [수수밭으로 오세요], [꽃 같은 시절], [유랑가족],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영란], [붉은 포대기],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행복한 만찬], [공선옥, 마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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