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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때이다. 그변하는 사회는 공등학문 또는 고등교육의 세계를 뿌리채 흔들고 있다. 학문[교육]의 목적이나 목표, 내용이나 방법은 물론, 그 존재 의의까지도 고심하게 만든다. 이런 사태는 전통 대학과 현재 대학의 간극(間隙)으로 인해 빚어진 현상이다. 대한민국에서의 고등교육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할 때이다. 이전과 동일한 방식의 ‘교육-연구-봉사’가 이 시대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그것은 시대정신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은 전통 고등학문의 의의를 다시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전에 이루어진 고등학문의 본질을 분명하게 알아야, 그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어떤 사안이건, 한계를 인식할 때, 그것을 극복하는 창조가 가능하다! 이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행위이다. 온고이지신 가운데서도 이전의 한계, 전통을 탐구하는 작업은 온고(溫故)에 해당한다. 온고 가운데, 동양의 전통 고등학문을 다루는 『대학』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여기에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조그마한 실마리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대학』은 주자(朱子)에 의해 『대학장구』로 저술된 이후, 20세기 이전까지 동아시아 고등학문의 핵심을 이루었던 경전이다. 주지하다시피, 3강령(三綱領)과 8조목(八條目)이라는 학문의 원리와 실천과정이 내용의 대강이다. 3강령은 ‘명명덕(明明德)-신민(新民; 親民)-지어지선(止於至善)’이고, 8조목은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천하(平天下)’이 다. 3강령은 고등학문을 이수한 사회 지도급 인사, 그들에게 삶의 기본 원리를 제공하였고, 8조목은 그 과정과 실천의 방식으로 유학적 질서를 유지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그것은 개인의 수양 공부인 수신에서 인류 사회 전체의 운용에 참여하는 평천하에 이르기까지, 고등학문의 실천강령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대학』의 성격을 ‘국가 정치 및 세계 정치에 관한 유학의 학설을 가장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술한 한 편의 정치 논설’로 규정하였다. 그야말로 최고의 학문, 고등교육으로서 위상을 확고하게 부여했던 것이다. 고등학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 그 처음을 저자는 『대학』에서 열고자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 작업을 하였다. 이 시대 고등교육에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머리말| 6
제1장. 고등교육이 학문성을 담보해야 하는 이유| 13
1. 대학, 고등교육기관의 사명| 15
2. 전통 대학, 그 고등학문의 근원| 22
제2장. 『대학』, 고등학문의 지위 부여| 33
1. 『대학장구』 서문의 기여| 35
2. 유학적 인간관과 고등학문의 존재 이유| 39
3. 고등학문의 마당과 학습의 과정| 49
4. 고등학문의 원칙과 방식| 64
5. 고등학문의 흥망과 표준| 70
6. 전통 고등학문의 특징 | 76
제3장. 고등학문의 기본원리; 3강령| 85
1. 제1원리 ‘명명덕(明明德)’; 자기성찰과 개혁의 명증성| 87
2. 제2원리 ‘신민(新民)’; 타자 배려와 협력의 혁신성| 99
3. 제3원리 ‘지어지선(止於至善)’; 최고선의 일상화와 학문의 지속성| 107
4. ‘3강령’의 유기체적 맥락| 118
제4장. 고등학문의 실천 구조; 8조목| 125
1. 대상의 파악과 장악; 격물(格物)-치지(致知)| 127
2. 자기 의지와 정체성 확립; 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 145
3. 공동체의 질서와 평안;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 157
4. 8조목의 실천과 유기체적 특성| 167
1) 개인 확립의 인격화; 격물-수신| 167
2) 공동체 지속의 사회화; 제가-평천하| 178
3) 8조목의 유기체| 184
제5장. 현대 고등학문에 주는 시사| 191
참고문헌| 202

『대학』은 어떤 경전보다도 인생의 여정과 관련하여 정제된 양식을 갖추고 있다. 짜임새와 체계를 다질 대로 다진 경전, 이른바 학문의 캐논(Canon)이다.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에서 강조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용어를 원용한다면, 『대학』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또는 ‘삶의, 삶에 의한, 삶을 위한’, 나아가 ‘사회의, 사회에 의한, 사회를 위한’ 학문처럼 느껴진다. 전통 고등교육기관에서 학문의 바탕은 이런 정신을 진지하면서도 간절하게 불어 넣었다.
동아시아 사회, 특히,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 베트남에서 유학(儒學, Confucianism)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으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서구의 근대 학문이 도입되면서, 그 실제적 영향력이 감소된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동아시아인들의 무의식이나 행위양식에 잠재되어 있기도 하고, 소수의 학자들에 의해 학문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23-24 쪽

인간은 누구나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사람마다 기질이 고르지 않아 욕망을 추구하게 되었고, 끊임없이 미끄러져 가는 욕망으로 인해 착한 본성이 희미해졌다. 따라서 인간의 착한 본성, 품부한 그대로의 본래 모습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구비한 착한 ‘도덕성의 회복’이다. 다시 말하면, 본연의 성품[本然之性]은 지극히 착한 것이지만, 기질의 성품[氣質之性]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특히, 개인적 욕망이나 욕심에 이끌려 본성을 흐리게 될 때, 인간은 나쁜 일을 저지르며 악의 구렁텅이로 전락할 수 있다. 때문에 본연지성을 회복하여 그것을 지속하고 발휘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고등학문이 요청하는, 인간의 자기 구제장치이다. ‘처음의 본성으로 돌아가라!’는 ‘복기초(復其初), 즉 복기성(復其性)’의 정신을 살리는 작업이다. 유학에서 학문, 고등교육은, 적어도 주자 성리학의 범주에서는,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47~48쪽

정자의 견해로 미루어 볼 때, 어릴 때부터 본격적으로 학교라는 제도를 만들어 공부하도록 하는 근본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현대의 시선에서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면, 아이가 엉뚱한 길로 빠져, 비행청소년이 되지 않도록 ‘예방(豫防)’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삶의 예방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소학’공부의 핵심내용이었다.
58쪽

전통적으로 성현들은 경전을 만들어 제시한 만큼, 온전한 인간사회에 대한 열정과 희구, 그리고 100%를 능가하는 학문적 노력으로 일관되게 살았다. 『예기』의 표현처럼, “군자는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길, 도를 향해 전진한다. 그 학문의 과정에서 중도에 쓰러질지라도, 몸이 늙어가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세월의 부족함도 모른다. 날마다 열심히 학문에 임하며 부지런하기만 하다. 그런 작업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진행된다.” 그것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도승이나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려는 맹세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해 나가는 신부나 수녀들 같은, 고고한 성직자를 연상케 한다. 유학의 성현들이 고등학문의 과정에서 내딛는 첫걸음이 다름 아닌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
129~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