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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인문학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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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용균
  • 출판사 : 경향신문사
  • 발행 : 2018년 05월 21일
  • 쪽수 : 24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8894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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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경향신문에서 오랫동안 야구를 담당해 온 이용균 전문기자가 2007년부터 지면에 연재하면서 큰 인기를 얻어온 야구칼럼 ‘베이스볼 라운지’를 책으로 엮었다. ‘야구의 인문학’이란 부제가 달린 [9](경향신문사 간)는 지난 10년간 연재한 340여 편의 칼럼 중에서 야구의 특별한 의미를 알려주는 글 100여 편을 담은 책이다. 경향신문의 김상민 화백의 일러스트가 곁들여져 읽는 재미를 더하는 이 책은 야구가 그저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를 넘어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뜨거운 현장임을 보여준다. 필자는 날카로운 분석으로 야구팬들이 갈증을 풀어주는가 하면 따뜻한 문체로 야구인과 야구팬들을 위로한다.
야구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야구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인문학 에세이’다. ‘세상의 9들에게 희망을’에서는 야구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164경기 연속 무패 투수’라는 글에서는 공이 아니라 사람이 전해주는 감동과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야구’라는 글 등에서는 야구가 우리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철학적 의미를 함께 담았다. 제1부 ‘9들에게 희망을’, 제2부 ‘어떻게 질 것인가’, 제3부 ‘18.44미터 철학의 공간’, 제4부 ‘야구로 꿈꾸는 세상’으로 나뉘어져 있다. 정교하게 교직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희망과 절망이 어우러진 한 편의 인생 드라마가 탄생하는 순간을 보는 듯하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야구는 9개의 포지션에서 9명이 9이닝 동안 겨루는 종목으로 9들이 모이면 힘이 세지고, 세상의 모든 9들에게 희망을 준다"면서 "2016년 겨울, 광장에 나와서 대한민국을 바꾼 것은 맨 앞의 1,2,3이 아니라 9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를 담아 조금은 독특한 [9]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는 서문에서 "기자가 됐을 때 선배로부터 사회부에서 스트레이트를 써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들었다"면서 "야구를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야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이용군 기자가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 ‘베이스볼 라운지’는 경향신문 독자는 물론 네이버 등 포털에서도 야구팬들이 가장 즐겨 읽는 칼럼이다. 그의 칼럼에는 야구의 승패가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선수들의 뒤에 숨어 있는 피와 땀, 소외된 선수들에 대한 위로가 담겨 있다. 그는 기자로서 뿐 아니라 야구전문 채널에 고정 출연하면서 풍부한 야구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과 선수들까지 훤히 꿰뚫고 있어서 야구인들과 팬들 사이에서 ‘야구 박사’로 통한다.
넥센 히어로스 박병호 선수는 추천사에서 "20년 넘게 누구보다 열심히 야구를 했는데, 내가 모르는 야구가 이용균 기자의 글 속에 있다"면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야구선수가 된 것이 자랑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야구 전문서적은 넘쳐나지만 야구를 통해 우리 사는 세상을 얘기한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한 목마름을 이용균 기자가 말끔하게 씻어준다. [9]를 다 읽고 나면 야구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야구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어느 늦은 5월의 아침이었다. 두 살 된 딸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누워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떴을 때 베란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뜻했다. 쌔근쌔근 잠이 든 딸의 얼굴은 평화 그 자체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이 거실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딱, 딱, 타격훈련 타구음만 들리는 조용한 야구장 같다, 고 생각하던 터였다.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그땐 사회부 기자였다.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는 영화에서 그렇듯 언제나 불길하다. 전화를 받았고, 다시 한번 시간이 멈췄다고 생각했다. TV를 틀었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짐을 싸야 했다. 출장이 길어질 것 같았다. 딸의 볼에 입을 맞춘 뒤 회사로 향했다.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후배들과 함께 회사 차량에 올라탔다. 그날의 달력 날짜는 여전히 선명하다. 5월 23일.
봉하에 도착했다. 날씨는 말도 안 되게 맑았고, 말도 안 되게 따뜻했다. 비현실적이었다. 펄럭이는 만장과, 노란 포스트잇과, 절규와 호통과 흐느낌 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 하루가 지났다. 마을 입구에 기다란 줄이 늘어섰고, 그 줄을 뚫고 들어오는 몇몇 이들을 향한 고함을 수첩에 받아 적고 있었다. 1만 명 분의 음식이 오전에 동이 났다고 나중 기사에 적었다. 낮 기온이 30도에 가까웠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문득 고개를 들면, 저 멀리 바위가 보였다. ‘부엉이바위’라 불렸다. 갈비뼈 사이가 찌릿했다. 그때, 나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무엇을 바꿀 수 있기는 한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야구기자가 되고 싶다, 고 말할 때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물었다. "야구를 좋아하면 됐지, 뭣 하러 그 일을 하냐"는 질문은 차라리 나았다. 더 많은 이들이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야구기자가 된 뒤에는 "맨날 야구 공짜로 봐서 좋겠다"는 질문으로 모양을 바꿨다. 한 선배가 그랬다. "기자가 됐으면 사회부에서 스트레이트를 써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기자의 사회적 소명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명제에 반박할 수 없었다. 우물쭈물 답을 못하고 있을 때 "시경을 거쳐, 서초동과 여의도를 출입하면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침만 꿀꺽 삼켰다. 집에 돌아오는 길, 밤의 어둠이 더욱 짙었다. 가로등이 있었지만 앞은 캄캄했다.
오래전 5월의 그날. 저 남쪽의 한 마을에서 부엉이바위를 쳐다볼 때마다 갈비뼈 사이가 찌릿했다. 목덜미가 선뜻했다. 기사는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은 정말 바뀌었을까. 스트레이트는 거꾸로 세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 유리가루처럼 내리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 아래서 생각이 깊어졌다. 작은 답을 생각했고, 손바닥 안에 새기고 주먹을 꼭 쥐었다. 세상을 바꾸는 길이, 적어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니 뱅크스는 ‘미스터 컵스(CUBS)’라고 불렸다. 시카고 컵스에서 선수생활 전부를 보냈다. 항상 웃는 얼굴 때문에 미스터 스마일이라고도 불렸다. 야구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 인종의 벽을 허문 선구자였다면, 뱅크스는 로빈슨의 뒤를 이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흑인 스타플레이어가 됐다. 로빈슨이 이를 악물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냈다면, 뱅크스는 한없이 야구를 사랑하는 미소로 주변의 비난을 무화시킨 인물이었다. 뱅크스는 야구에서 가장 유명한 명언 중 하나인 "오늘 야구하기 좋은 날씨군. 한 경기 더 어때(Let’s play two)"라는 말을 남겼다. 화창한 하늘 아래 펼쳐지는 야구의 맛과 멋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은 없었다. 승부보다 중요한 것은 야구 그 자체다. 뱅크스는 몇 해 전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 2년씩 야구를 해봤으면 좋겠어. 그럼 세상이 더욱 좋아질 거야."

어니 뱅크스가 오래전 말한 것처럼, 야구는 특별하다. 야구는 다른 구기종목과 점수를 내는 방식이 다르다. 축구에서 득점은 공(ball)을 목표(goal)에 넣음으로써 이뤄진다. 골문 안의 골라인을 공이 통과해야 득점이 기록된다. 농구 역시 공이 림을 통과하면서 골로 기록된다. 상대의 수비를 뚫고 공을 운반해 목표지점에 위치시켜야 승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득점이 매겨지는 방식이다. 북미 프로스포츠 최고 인기종목인 미국프로풋볼(NFL) 역시 던져진 공을 받아 상대 엔드라인 너머까지 옮겨야 터치다운이라 부르는 득점이 인정된다. 득점의 주체가 공이다 보니 이를 플레이하는 선수들이 공에 종속된다. 중요한 건 사람이 아니라 공이다. 농구에서 사이드라인 또는 엔드라인을 벗어나는 공을, 몸을 날려 안으로 들여보내는 움직임은 ‘공을 살리기 위한 파인플레이’로 평가받는다. 축구에서는 공이 선을 벗어나자마자 라인 아웃이 선언된다. 공이 모든 행동의 목표가 된다.
야구는 공이 득점을 결정하지 않는다. 공이 플레이되는 동안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득점이 결정된다. 타자가 주자가 되고, 주자가 1루와 2루, 3루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터치함으로서 득점이 된다. 공이 어디로 향하든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새겨진다. 공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야구는 ‘인본주의(humanism)’다. 득점이 인정되는 마지막 루를 ‘4루’라고 부르지 않고 ‘홈플레이트(home plate)’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가족주의적이기도 하다. 집에 돌아오는 것이 득점을 내는 길이다.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은 가족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야구는 민주적인 동시에 공정하다. 데릭 지터는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터는 "야구를 하기 위해 키가 2m나 돼야 할 필요가 없다. 덩치가 아주 클 필요도 없다. 커도, 작아도, 빨라도, 느려도 야구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격의 기회와 수비의 기회가 공평하게 아홉 번씩 주어진다. 두 팀이 똑같이 갖고 있는 27개의 아웃카운트는 공평한 리소스다. 제아무리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라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처음 출전한 오른쪽 풀백은 한 번의 슈팅 기회도 얻지 못할 수 있지만, 키 작은 9번 타자 우익수로는 적어도 세 번의 타석에 들어설 수 있고, 세 번씩은 방망이를 휘두를 기회가 주어진다. 결과야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기회는 있다. 야구에는 ‘벤치 클리어링’이 존재한다. 싸움이 벌어지면 양 팀 선수들이 우르르 그라운드로 뛰쳐나온다. NBA에서는 벤치 선수가 사이드라인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면 5000달러 벌금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도 싸움은 1대1이 원칙이다. 다함께 몰려와 ‘패싸움’을 벌이는 게 허락되는 종목이 야구다. ‘단체경기’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평한 싸움, 공정한 싸움’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야구경기 중 그라운드에는 공격쪽 선수(만루라 하더라도 4명)보다 수비쪽 선수(9명)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싸움이 벌어져도 적어도 숫자를 맞춰야 한다는 게 야구의 정신이다.
물론 야구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적이다. 공동체주의의 대표적인 학자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강조하는 덕성(virtue)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스포츠다. 야구는 희생(sacrifice)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서 기리는 종목이다. 다른 단체 구기종목에서 볼 수 없는 기록이다. 득점을 도와주는 패스에 기록되는 ‘도움(assist)’은 여러 종목에 존재하지만 ‘희생’을 공식기록으로 남기는 종목은 야구가 유일하다. 자신의 타석, 안타를 칠 수 있는 기회를 희생하고 스스로 아웃을 감수하고 번트를 대서 주자를 진루시키는 행위에 대해 ‘희생번트’를 기록한다. 3루주자의 득점을 위해 외야 멀리 때린 뜬공에 대해서도 ‘희생뜬공’을 기록한다. 아웃을 당했지만 타율에서 손해 보지 않도록 타수에서 빼는 식으로 공식 보상한다. 희생에 대해 야구가 갖고 있는 태도다. 야구가 사회공동체를 위해 공적으로 희생하는 이들 –군인, 경찰, 소방관 등– 에 대해 특별한 경의를 표하는 것 역시 ‘희생’이 야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의 본질을 놀이, 유희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일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행위의 중요한 요소다. 야구는 하위징아가 제기한 ‘호모 루덴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종목이다. 승부를 벌인다는 점에서 다른 단체 구기종목처럼 ‘전쟁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숨 가쁘게 플레이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가 끊어지는 ‘휴지기’가 많다는 점에서 놀이적 요소가 강하다. 따뜻한 햇살 아래 넓은 그라운드를 바라본 채 앉아있는 내야석은 ‘참전’보다 ‘소풍’의 이미지에 더 적합하다. 다른 단체 구기종목이 열리는 경기장을 코트(court, 법정), 필드(field, 전장) 등으로 부르는 것과 달리 야구장이 열리는 곳은 대부분 파크(park, 공원)라 불린다. 야구장은 열광적인 응원이 가능하지만, 한가로운 여유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소풍의 장소다. 무엇보다 다른 종목들이 킥 오프(kick off)를 하고, 점프 볼(jump ball)을 통해 경기 시작을 알릴 때, 야구 심판은 이렇게 외친다.

"공 갖고 놀아봅시다(play ball)!"

심판의 플레이 볼 선언과 함께 공을 ‘플레이’하는 주체는 공격이 아니라 수비다. 다른 종목들이 공을 가짐으로써 ‘공격권’을 얻는 것과 달리 야구는 수비하는 쪽이 공을 들고 시작한다. 점수를 내는 쪽이 공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막는 쪽이 공에 대한 점유권을 갖는다. 공격과 수비에서 기존 개념의 주체와 객체가 전도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야구의 복잡한 묘미가 발생한다. 공격과 수비의 주체 전도 현상은 미학적 가치의 변화를 함께 가져온다. 축구와 농구가 득점이라는 목표를 향해 공을 컨트롤하는 기술의 층위를 통해 미학적 가치를 발생시킨다면, 야구는 득점을 하려는 공의 움직임을 막는 행위, 수비를 통해 더 많은 미학적 가치가 발생한다. 야구라는 종목에서 선수들이 드러내는 미학 차원에서의 발화는 공격보다 수비에서 더 많이 나온다(하이라이트에서 홈런을 때리는 스윙보다 어려운 공을 잡아 처리하는 수비 장면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공의 소유에 있어 공격과 수비의 전도는 야구에서 해체와 전도, 탈 개념화를 나타내고, 이는 인생과 세상의 비밀을 함께 보여준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은 공격과 수비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공격이 곧 수비이고, 수비가 곧 공격이다. 야구가 때로 인생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비틀림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특별한 야구를 완성시키는 것은 ‘9’다. 야구는 9개의 포지션에서 9명이 9이닝 동안 겨루는 종목이다. 아웃카운트 3개씩이 9번 모여 27개의 아웃카운트로 경기가 끝난다. 시계의 자판, 원을 뜻하는 12와 야구의 9가 결합되면 야구공을 채운 실밥 108개가 완성된다. 야구에서 각 베이스 간의 거리는 90피트다. 9는 가장 안정적인 숫자이기도 하다. 균형을 뜻하는 3이 3개 모여서 9를 이룬다. 안정의 안정을 설명하는 숫자다. 화학에서의 원소주기율표 9는 플루오린이다. 충치를 예방하는 불소의 기본이자, 항우울제의 대표적인 프로작의 주요 원료이기도 하다. 치아를 지켜주고, 우울증을 막는 역할을 한다. 야구는 그 9들이 모여서 이뤄진다. 9번은 한 자릿수 숫자 중 맨 뒤를 차지하고 있는 꼴찌의 숫자지만, 그 9들이 모여서 야구라는 특별한 종목을 통해 삼라만상의 비밀이 어우러지고 풀린다. 9들이 모이면 힘이 세다. 2016년 겨울, 대한민국을 바꾼 것은 맨 앞의 1, 2, 3들이 아니라 광장에 하나둘씩 모인 9들의 힘이었다. 야구는 세상의 모든 9들에게 희망을 주는 특별한 스포츠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야구를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야구의 가치를, 야구라는 종목이 알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10년 넘게 야구를 통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려 했던 오랜 고민의 결과들을 모았다. 시즌 중이면 밤마다 야구장에 있느라 모자란 남편, 부족한 아빠였다. 배려해준 아내 이현경, 두 딸 하주, 시문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맙고, 사랑합니다. "야구가 뭐길래, 야구 좋아하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는 타박을 듣고도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했던 이 땅의 수많은 야구팬들에게, 이 책이 작은 답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마지막으로, 9년 전 그때 봉하에서의 다짐을 다시 떠올리며. 사람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야구.
('저자 서문' 중에서)

추천사

이용균 기자의 칼럼은 홈런처럼 시원한 매력이 있다. 그의 칼럼을 읽다 보면 나도 몰랐던 야구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와 날카로운 분석을 접할 수 있다. 야구는 다 같이 하는 게임이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혼자만의 게임이기도 하다. 나는 이용균 기자가 야구를 통해 우리네 삶의 비밀을 이야기하는 야구장의 인문학자라고 생각한다.
- 정민철 /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20년 넘게 누구보다 열심히 야구를 했다. 내가 모르는 야구가 이용균 기자의 글 속에 있었다. 공 하나가 담장을 넘고, 구장을 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 야구가 사랑이 되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이용균 기자는 야구선수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듬을 줄 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야구선수가 된 것이 자랑스러워진다.
- 박병호 / 넥센 히어로즈 4번타자

목차

9들에게 희망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가 운명이 되는 순간
9의 야구, 10번째 선수
9들에게 희망을
세상을 바꾸는 직구(straigt)
세상을 바꾸는 직구 2
초구의 기본
웃는 힘
박수는 힘이 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있다는 것
역전의 기회
희망의 권리
99번째라도 괜찮아
‘B’들이 만든 15연승
기다림 없는 기적은 없다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다시 시작하는 이들에게
홈런 그 낭만에 대하여
특별한 소수자들의 ML 도전

어떻게 질 것인가
-패배가 만드는 승리의 길


남한산성과 KIA, 그리고 윤석민
잊어야 이길 수 있다
1000패에서 얻은 것
준비의 준비
100번의 패배, 100번의 깨달음
마이너스의 길
김기태의 와신상담
터프가이는 오래 살아남는다
100%보다 강한 80%의 최선
3남자의 승리유예
승리를 부르는 환경미화
내일과 ‘내 일’의 야구
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눈물 젖은 스크램블
야구보다 옳은 일
야구의 기적, 야구의 마법
야구천재 탄생설화
포수의 성장에 꼭 필요한 것

18.44m 철학의 공간
-마운드의 고독은 철학을 만든다


164경기 연속 무패 투수
마이 웨이, 마이 게임
혼신의 풀스윙 삼진
볼카운트 2-1, 무엇을 던지시겠습니까
마운드의 고독이 마무리를 철학자로 만든다
돌아오지 않는 2루주자
크리스마스 선물
Let’s play two
흠 잡을 데 없던 선수
발로 사는 남자
길은 길 속에 있다
그래도 꿈을 꾼다
역사를 쓴 루저들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마흔, 야구를 읽는다
타자를 성장시키는 타자화된 자아
던지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기술이 윤리를 바꾼다

야구로 꿈꾸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야구


식구가 된다는 것
명예로운 한 표 클럽
명예의 전당의 명예
양떼야구의 비밀
차라리 야구였다면
CCTV 올바른 사용법
4월 25일, 기적의 날
메르스, 야구라면
다양성과 올바른 야구
지켜야 할 것은 위치가 아니라 가치
미래를 위한 연대
독점이 아니라 공유
사람 사는 야구, 사람 사는 세상
그때 그 돌아이 야구
설명이 되는 희생
야구는 힘이 세다
29, 심장, 운명
슬기로운 개막생활

본문중에서

두산 김현수는 8년 전인 2005년 야구 청소년대표였다. 그때 인천에서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이 열렸고, 같은 기간 2006시즌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도 함께 실시됐다. 대회기간이라 대표팀 동료와 함께 숙소 생활을 하던 김현수는 대표팀 동기들과 우르르 PC방으로 몰려갔다. 그해 8월 31일 열렸던 신인 드래프트는 김현수의 인생을 결정할 수도 있는 날이었다. "나도 대표선수인데." 내심 욕심도 있었다. 이미 롯데가 상위 라운드에서 자신을 뽑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컴퓨터 화면에 하나씩 이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롯데는 3라운드에서 김현수 대신 덕수정보고의 김문호를 선택했다. 김현수는 6라운드까지 지켜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숙소 방에 누웠다. 같은 방을 쓰던 김문호가 돌아왔다. 김현수는 "문호가 아무 말도 없더라. 지명이 안 됐다는 걸 느꼈다. 문호에게 ‘축하한다’고 해주고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는데, 정말로 천장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 했다.
대표팀 선수 18명 중 딱 2명만 지명 받지 못했다. 그 중 김광현은 2학년이라 지명 대상이 아니었으니 김현수 혼자만 지명을 못 받은 셈이다. 김현수는 "나중에 롯데·LG·두산 등에서 신고선수로 오라고 연락이 오더라"고 했다. 김현수는 두산의 신고선수가 됐다.
그해 드래프트는 9라운드까지 치러졌다. 류현진을 비롯해 삼성 차우찬, 넥센 강정호 등이 당시 2차지명 1순위 선수들이었다. 그 9라운드 지명 안에 김현수는 끼지 못했다. 하지만 김현수는 2007년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가 됐다. 김현수는 "야구도, 인생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SK 정근우도 2000년 청소년대표였다. 추신수·이대호·김태균·정상호·이동현 등 멤버가 쟁쟁했다. 캐나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까지 했다. 하지만 그해 열린 드래프트에서 정근우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정근우는 "나 포함 2~3명 정도가 지명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10년도 채 되지 않아서 정근우는 리그 최고의 2루수가 됐다. 정근우는 "야구실력은 지명 순이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SK에서 맹활약하는 새 얼굴 한동민은 2012년 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85순위에 지명됐다. NC의 중심타자 역할을 하는 신인 권희동도 지난 드래프트에서 9라운드 84순위가 돼서야 지명 받았다. 호쾌한 스윙으로 주목받는 SK 신인 김경근은 권희동보다 3순위 낮은 10라운드 87순위 지명 선수다.
9라운드에 뽑힌다고 그 인생이 9등짜리일 리 없다. 김현수의 말대로 "야구도, 인생도 모르는 것"이고, 정근우의 말대로 "야구실력은 지명 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구는 원래 9명이 9이닝 동안 벌이는 9의 종목이다. 야구의 모든 ‘9’들에게 희망을. 9번째 구단 NC도, 사상 첫 9위에 떨어진 한화도.
[2013. 4. 15]
('9들에게 희망을' 중에서)

2008년 6월 19일. 우리 히어로즈는 진필중을 방출했다. 진필중은 ‘연습생’이라 불리는 신고선수 신분이어서 웨이버 공시가 아닌 신고선수 등록말소 절차를 거쳤다. 한때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도 리그를 평정했던 마무리투수였지만 옛 추억의 그림자만 남았다. 그리고 이날, 조용히 또 한 명의 투수의 신고선수 등록이 말소됐다.
1992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다. 지난해까지 16년을 뛰었고 234경기에서 1승1세이브2패. 방어율은 4.77이었다. 뛰어난 성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숫자. 하지만 그는 프로야구에서 유일한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무려 164경기 동안 단 한번도 패전을 기록하지 않았다. 태평양과 현대를 거친, 왼손 스페셜리스트였던 김민범이다.
물론 상대한 타자가 많지는 않았다. 통산 234경기에서 상대한 타자는 542명, 피안타수는 128개밖에 되지 않았다. 한번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2.3명의 타자와 대결했다. 통산 피안타수가 경기수보다 적은 투수는 김민범 외에 LG 류택현과 마무리투수 삼성 오승환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렇게 마운드에 오르고도 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능력이다. 김민범은 1999년 9월 26일 수원 한화전에서 7회에 등판했다가 2안타로 2실점해 패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164경기 동안 김민범은 패전을 모르는 남자였다.
김민범은 첫 번째 패배를 기억하고 있었다. "대구였다.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내고 내려왔는데, 문창환이 끝내기 안타를 맞았다"고 말했다. 1994년 9월 11일이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유일한 승리의 기억은 "화려하지 않은 야구인생이었지만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라고 했다. 2000년 6월 15일 SK전이었다. 4-4 동점이던 7회말 한 타자를 잡아낸 뒤 타선의 도움으로 행운의 승리를 따냈다.
패전과 승리를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김민범은 현재 우리 히어로즈 원정기록원이다. 그라운드를 떠나 그라운드 뒤에서 상대 전력을 분석한다. 사실 지난 겨울, 히어로즈 창단 당시 4000만원이던 연봉이 2000만원으로 절반이나 깎였다. 구단이 차라리 직원으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김민범은 고민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
김민범의 강릉고 동기이자 태평양 입단 동기였던 이재주는 KIA에서 올시즌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재주는 이제 정신 차렸나 보다"라며 조금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원치 않는 은퇴는 아쉽지 않을까. 하지만 김민범은 "후회는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천년만년 선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라고 했다. 무패 기록을 더 늘릴 수 있지 않았을까. "어차피 무패 기록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인생에서 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왼손타자 몸쪽을 파고들던 직구보다 더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프로야구 유일의 164경기 연속 무패의 투수. 김민범의 무패 행진은 그래서 지금도 진행 중이다.
[2008. 7. 1]
('164경기 연속 무패 투수' 중에서)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매년 세계 최고 리더 50인을 뽑는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2015년에는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 2016년에는 아마존 CEO 제프 베저스가 1위에 올랐다. 2017년 세계 최고 리더는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주인공은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테오 엡스타인 사장. 엡스타인은 ESPN을 통해 "나는 우리 집 강아지 배변 훈련도 잘 못 시킨다. (세계 최고 리더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7차전 연장 10회초) 벤 조브리스트의 타구가 몇 인치만 빠졌어도 내 자리를 지키는 것조차 힘들었을지 모른다. 우리 팀 최고 리더는 내가 아니라 바로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엡스타인 사장은 ‘저주 탈출 전문가’였다. 2002년 겨울, 보스턴의 단장으로 임명됐다. 겨우 만 28세. 메이저리그 사상 최연소 단장이었다. 2년 뒤 팀을 우승시켰고, 1918년 이후 86년간 이어진 ‘밤비노의 저주’를 깼다. 2012년 보스턴을 떠나 시카고 컵스로 옮겼다. 100년이 넘은 ‘염소의 저주’팀이었다. 5년 동안 팀을 차근차근 성장시켰고, 지난해 가을 월드시리즈 우승과 함께 108년 걸린 저주를 깼다.
[포천]이 엡스타인 사장을 세계 최고의 리더로 꼽은 것은 단지 ‘염소의 저주’에서 팀을 탈출시켰다는 성과 때문이 아니다. 엡스타인이 만든 새로운 팀 스타일에 주목했다. 이른바 ‘사람 사는 야구’다. 메이저리그는 새 측정기술의 발달과 함께 ‘데이터 쓰나미’의 한가운데 있다. 투구 회전수, 타구 발사각도와 속도가 세밀하게 분석된다. 선수들은 훈련 때 각종 장비를 찬 채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당한다. 감춰진 ‘효율’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것은 물론 선수들에게 최적의 움직임을 요구한다. 엡스타인 역시 데이터 야구 선구자였다.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를 깬 것은 투구 분석자료의 세밀한 활용 덕분이었다.
그런데 엡스타인은 시카고 컵스로 옮긴 뒤 다른 길을 찾았다. 2012년 첫 스프링캠프, 엡스타인은 구단 전체 워크숍 중 하루 전체를 ‘인성’ 강조에 할애했다. 엡스타인은 "우리는 앞으로 최고의 정신력, 의지를 가진 선수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카우트들은 보고서에 선수의 구속과 파워를 적는 대신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적어야 했다. 동료, 상대팀 선수, 친구, 선생님, 가족의 의견이 그 선수의 야구 관련 기록보다 중요했다. 그 선수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어떤 변화구를 얼마나 잘 던지는 것보다 중요했다.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새로 뽑았고, 트레이드했다. 앤서니 리조, 크리스 브라이언트, 에디슨 러셀 등은 컵스 우승의 주역이 됐다.
쏟아지는 데이터 속에서 무조건적 효율에 집착하는 대신 새로운 가치를 모색했다. 핵심은 바로 사람이었다. 엡스타인은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이를 해결하는 열쇠는 ‘관계’에 있다고 본다. 팀 동료들과의 관계, 우리 조직 전체와의 관계.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 함께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어려운 일을 헤쳐나가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엡스타인은 "우리는 혼자 일하기 싫어하고, 함께하길 원한다. 그게 사람 사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제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 대신, 남을 생각하고 공감할 줄 알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줄 아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게 컵스 성공의 길이었다.
포천이 엡스타인을 세계 최고의 리더로 꼽은 것은 승리가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구속, 점수, 승리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다. 사람 사는 야구가 만들어내는 사람 사는 세상이다.
[2017. 3. 27]
('사람 사는 야구, 사람 사는 세상'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0종
판매수 13,948권

경향신문 야구전문기자
세상의 모든 일은 야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야구 환원론자’다. SERICEO에서 ‘야구멘터리’라는 리더십 강의를 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인생, 야구에서 배우다](2016)를 썼다. [야구멘터리, 위대한 승부](2010, 공저), 2010년부터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를 야구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내고 있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 그는 야구의 재미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 추리소설에도 도전했다. 야구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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