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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화에 묻다 : 다르게 보기의 젠더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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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인영
  • 출판사 : 삼인
  • 발행 : 2021년 05월 15일
  • 쪽수 : 367
  • ISBN : 978896436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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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여성, 영화에 묻다』는 〈그 여자는 어디에 있는가〉, 〈모성 탐구 생활〉, 〈오빠들의 여성/영화〉를 수록하고 있는 책이다.

출판사 서평

여성의 눈으로 들여다본 영화세상,
새로운 상상력을 간절히 기다린다


『여성, 영화에 묻다 - 다르게 보기의 젠더 정치학』은 영화를 오래 연구해온 저자의 글 17편(서론과 에필로그는 포함하지 않은 숫자)을 묶은 책이다. 그 규모와 내용의 깊이에서 학술 논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글들이지만, 통상적인 논문의 틀과 문체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자유로움을 간직한 점을 눈여겨보면 영화 평론-에세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글들이 모여 있다. 이 글들은 각기 다른 영화 텍스트를 다룬 독립적인 글들이면서 서로 강한 결속력을 지니고 서로에게 또렷한 메아리를 전한다. “남성 중심적인 지식 체계”(5쪽)를 벗어나 여성의 눈으로, 여성으로서의 삶의 경험과 지식과 감각에 바탕을 두고 영화세상을 들여다본다는 저자의 의도가 일관되게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 그 까닭일 것이다.
여성의 시선으로 영화에 접근할 때 저자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영화, 특히 한국 영화 속에서 여성 인물이 아예 부재하거나 서사의 도중에 홀연 사라지는 현상이다. 여성의 부재와 관련하여 저자는 ‘벡델 테스트’라는 기준을 참조한다. 영화에 이름을 갖는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하는지, 그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 대화의 주제가 남성에 관한 것이 아닌지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저자는 예컨대 2017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0위권에 든 영화들 중에 이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국 영화산업에서 여성이 어느 정도로 배제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여성 배제의 현실은 영화 속에서 여성들이 필연적인 맥락 없이 사라지는 현상으로도 나타난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예를 들어 봉준호의 영화 〈괴물〉과 〈기생충〉에서 주인공의 딸들이 갑자기 죽음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그는 납득하지 못한다. 또 이창동의 〈버닝〉에서 초반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던 여성 인물이 두 남자 인물에게 서사의 전개를 내맡겨두고 돌연 텍스트에서 사라지는 것을 수긍하기 어려워한다. 여성을 배제하거나 주변화하고 여성의 목소리와 형상화의 자격을 박탈해온 사회적·영화적 관습에 영화 창작자들이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복종한 결과가 아닌가, 저자는 묻고 있는 것이다.
여성 배제의 영화적 관습 중에 특별히 오랜 연원을 자랑하는 것은 ‘성녀 대 창녀’, ‘좋은 모성 대 나쁜 모성’이라는 이분법이다. 저자가 보기에, 실재하는 여성들의 삶의 다채로운 양태와 차이에 유의하지 않은 채 남성의 기준에 따라 손쉽게 여성의 삶을 도식화하며 저 이항대립의 뒷항에 속한다고 분류된 여성들에게 영화 속에서 (부당한) 응징을 가하는 전통은 오늘에도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예컨대 이창동의 〈박하사탕〉에서 여성 주인공 순임(문소리)은 ‘순수함’의 화신, 즉 성녀에 가깝게 그려진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구체적인 삶의 결과 실감을 상실한 납작한 인물로 나타나는 영화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반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에 등장하는 여자 킬러는 ‘좋은 엄마’이자 신실한 아내의 남편을 유혹했다는 이유로 플롯의 큰 줄기와 무관하게, 다시 말해 뜬금없이, 나체를 드러낸 채 총에 맞아 죽는 응징을 당한다. 정지우의 〈4등〉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수영 특기생으로 만들기 위해 아들이 코치에게 매를 맞는 것마저 감수하는 엄마는 정작 폭력의 가해자인 코치보다 더 나쁜 존재로 부각되며 그로 인해 관객의 비난을 한몸에 받기에 이른다.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혁신적인 영화 기법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키는 미국 영화 〈서치〉의 경우 ‘나쁜 모성’이라는 간편하고도 진부한 기준을 서사적 반전의 계기로 삼음으로써 제풀에 구태의연한 상상력의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다고 저자는 본다.
영화가 여성 인물을 다루는 데에서 또 하나의 뿌리 깊은 관행은 여성을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 사회적 악의 순전한 피해자이자 희생양으로(만) 묘사하는 것이다. 테일러 셰리든의 〈윈드리버〉, 드니 빌뇌브가 만든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처럼, 여성은 제아무리 FBI 요원일지라도 서툴고 미숙한 탓에 남성들의 혹독한 지도 편달을 거쳐야 비로소 제 몫을 감당하는, 수동적이고 어딘가 모자란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여성을 무력한 존재로 재현하는 이러한 영화적 관습은 성폭행 피해자를 초점에 둔 영화들에서 특히 문제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수진의 〈한공주〉, 이윤기의 〈여자, 정혜〉는 성폭행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운 신선한 시도였지만, 플래시백flashback 기법을 남용하면서 피해자의 고통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데 집중함으로써, 의도와 달리 작중 인물들과 관객에게 새로운 생존과 치유의 가능성을 제시하거나 힘과 권능을 주는(empower) 경험을 선사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여성을 피해자·희생자로 고착하는 이러한 영화적 관행과 관련하여 저자가 가장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은 10대 소녀들을 너무나 쉽게 죽음으로 몰고 가는 한국 영화의 흐름이다. 사회의 어둠과 악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라지만 왜 구태여, 그것도 그토록 자주, 10대 여성이 처참한 희생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영화적 쾌락을 위해 함부로 소비·소모되어도 좋은 존재, 또 그렇게 하기에 가장 ‘쓸모 있는’ 도구로 여겨지기 때문이 아닌가? 이를 따져 묻는 저자의 어조는 비통하고 통렬하다. 더 나아가 그는 어리거나 젊은 여성이 즐비하게 주검으로 등장하는 이런 흐름의 시원始原에 한국 영화사 최고의 걸작 지위를 다투는 영화 〈살인의 추억〉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혹을 제기한다. 저자가 판단하기에 봉준호의 이 영화는 여성들의 죽음을 다루면서도 정작 살해당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전혀 눈길을 돌리지 않은 채 ‘누가 죽였는가’라는 질문에만 매달린 작품이다. 그 점에서 〈살인의 추억〉은, ‘누가 죽었는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삼아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학생을 초점화함으로써 애도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한 이창동의 〈시〉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잘못된 질문의 영화”(73쪽)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저렇듯 사회적 악의 피해자나 희생자가 되지 않고 무사히 생존해 나름의 성취와 성장을 이루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라고 해서 바람직한 여성 서사의 본보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신문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 자리를 급작스럽게 물려받은 뒤 정부와 법원에 맞서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용기 있게 보도한 여성 캐서린 그레이엄의 실화에 기초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 한 소녀가 “잔인한 킬러이자 냉혹한 사냥꾼, 제도적 질서를 교란하는 파괴자”(316쪽)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박찬욱의 〈스토커〉가 그 예다. 두 여성 인물은 가부장 체제의 허가와 승인을 거쳐 가부장제 가문의 승계자가 되는 데 머물 뿐, 자신만의 독자적인 목소리와 가치를 획득하는 지점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에게 영화세상의 이 모든 현실은 여성의 삶과 그 가능성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탐문하고 형상화할 새로운 영화적 상상력의 중요함과 필요성을 갈급하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아직 미흡하지만,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 상업영화 평균 개봉작 76편 중 7.9%에 불과했던 여성 감독의 작품이 2019년 흥행 순위 10위권에만 4편 오른 사실, 또 2020년 실질 개봉작 165편의 여성 참여율 중 감독 38명(21.5%), 제작자 50명(24.0%), 프로듀서 50명(25.6%), 주연 67명(42.1%), 각본가 43명(25.9%), 촬영감독 19명(8.8%) 등으로 모든 직종에서 여성 비중이 상승한 점은, 저자가 보기에, “여성들의 삶의 경험과 감각을 존중하는 상상력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격려를 전하는”(354쪽) 영화들이 그득하게 태어날 새로운 영화세상을 향한 희망의 싹이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며: 〈버닝〉과 〈기생충〉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1부 그 여자는 어디에 있는가
물리적 부재와 상징적 소멸
〈살인의 추억〉,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박하사탕〉, 〈뮌헨〉의 ‘성녀와 창녀’
〈박하사탕〉과 〈봄날은 간다〉 다시 쓰기
총을 든 여자들
〈윈드리버〉,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공동경비구역 JSA〉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낯선 얼굴
〈한공주〉, 〈여자, 정혜〉
소녀들의 죽음
〈동전 모으는 소년〉, 〈마더〉, 〈죄 많은 소녀〉
〈아이 엠 러브〉, 그 여자의 집은 어디인가

2부 모성 탐구 생활
어디에나 있-다-는 모성
〈가족의 탄생〉, 여자들만의 집
“엄마 나빠!”, 〈4등〉과 가해자-모성
혁신, 혹은 고색창연함 242
〈서치〉, 〈그래비티〉

3부 오빠들의 여성/영화
〈더 포스트〉와 ‘가부장제의 유령’
〈로마〉의 자매애, 무모순적인 판타지?
그 풍경이 나를 울리네, 〈위로공단〉
〈스토커〉는 왜 〈인디아〉가 아닌가?
아버지의 ‘귀가’, 〈바닷마을 다이어리〉

에필로그: ‘여성 서사라는 현실’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그러니 그저 꿈 같은 건 꾸지 않더라도, 혹은 꿈을 이루는 데 처절히 실패하더라도, 이승이라는 개똥밭을 구르며 살아가는 여성, 생생한 호흡과 뜨거운 체온을 느끼게끔 하는 ‘그저 여성’을 보고 싶다는 관객의 꿈, 물리적이든 상징적이든 ‘사라지지 않고’ 스크린에 버티고 선 여성을 꿈꾸는 것은 어쩜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16쪽)

-늘 예민하게 젠더적 감수성이 작동되는 영화 관람은 쓰라린 배제와 박탈의 감각, 분노의 감정 등을 불러오는 타자성의 체험이 되곤 한다. 그리고 여성 관객으로서 영화 관람의 개인사는 치열한 경합과 투쟁의 맥락으로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남성 중심의 시선을 바탕으로 남성적 언어로 서술되는 영화 미학적 학습과 내면화로부터 여성 중심의 영화 보기와 읽기의 맥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종전까지 영화를 이해했던 고정적 패러다임이 해체되며 새로운 보기의 방식으로 대체된다. 거의 혁명적인 이러한 경험을 거치며 영화는 전혀 낯선 얼굴로 다가온다. (36쪽)

-만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새삼 환기시키고 국가적 이슈로 만드는 데 성공한 걸출한 장르 영화 제목이 〈살인의 추억〉이 아니고 다른 이름이었다면. 마지막 스크린을 채우는 클로즈업이 가해자를 뒤쫓던 남성 형사가 아니고 가령 〈시〉에서처럼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피해자-여성이었거나, 애도의 메시지를 발화하고 함의하는 다른 이미지였다면 무언가, 조금쯤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오랜 세월 끝에 비로소 진범이 나타나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던 피해자들의 고통에 다시 한 번 시선이 모일 법도 했지만 여전히 죽이던 남/자, 뒤쫓던 남/자의 클로즈업만 또렷할 뿐 피해자-여성들의 못다 한 삶에 무관심하며, 그 안타까운 부재를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은 조금은 다른 것이 될 수 있었을까. (73쪽)

-나는 지금 당장 영화적 재현의 장에, 특히 한국 영화에 필요한 많은 것들 중에서 시급한 것이, 무엇보다도 10대들에게 삶을 허락하는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들을 살아가게/살아남게 하는 것. “아빠, 나도 같이 살고 싶어!”, 괴물에 잡혀가면서, 괴물 뱃속에서 마지막 숨을 삼키던 순간까지 현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 긴 생머리 소녀와 아정,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죽음들 앞에서 다양한 미사여구와 현란한 수사들은 그만 거두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173쪽)

-헌신적으로 역할에 투신하는 능력 있는 여배우들을 데리고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이미지의 풀은 좁기만 하다. 그래서 이제 다른 얼굴, 다른 엄마, 다른 여성에 대한 흥미롭고 전복적인 영화적 탐구와 모험적 시도를 만나고 싶다는 갈망은 더욱 갈급해진다. “모성애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여성 캐릭터에 어머니라는 키워드를 제외하면 할 이야기가 없나? 그런 생각을 했죠.” 영화 〈미옥〉(이안규, 2017)과 관련한 배우 김혜수의 말에서 그러한 갈망이 충족되지 못한 중견 배우의 깊은 공허가 느껴진다. (209쪽)

-여전히 여성 서사는 영화세상의 중심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인다. 그렇게 서성이는 무리들의 형상이 좀 더 거대해지고 있으며 발소리가 점차 웅장해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지만, ‘현실은 변화하고 있으며 좋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적는 건 그러니 성급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삶의 경험과 감각을 존중하는 상상력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격려를 전하는 ‘여성 서사라는 현실’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음’의 단단함으로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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