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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원제 : Noi buon chien tra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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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비극적인 전쟁의 역사, 그리고 애달픈 첫사랑!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대표작 『전쟁의 슬픔』. 전쟁과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이 소설은 베트남 문학 최초로 16개국 언어로 출간되었으며, 2011년 베트남에서 읽히고 있는 모든 책을 대상으로 한 ‘가장 좋은 책 상’을 수상했다. 전쟁에 대한 미화나 과장 없이, 전쟁이 어린 연인들의 청춘과 사랑을 어떻게 미궁에 빠뜨렸는지를 냉정하면서도 격정적으로 풀어냈다. 전쟁 이후 첫 건기, 전사자 유해발굴단의 일원으로 부대원들이 전멸당한 전선으로 이동하는 끼엔. 그는 살아남은 열 명의 전사 중 한 명이다. 패배가 낳은 혼령과 귀신을 마주하자 끼엔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전투와 전투에 희생된 전우들, 그리고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이 찾아드는데….

출판사 서평

전쟁에 관한 모든 소설을 뛰어넘는 전쟁소설,
그리고 전쟁보다 아픈 사랑 이야기…

전쟁과 첫사랑, 가장 비극적인 충돌의 역사가 그려진다!

베트남전쟁 종전 37주년.
베트남에서 「전쟁의 슬픔」을 뛰어 넘는 소설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발행 연도과 관계없이 2011년에 가장 좋은 책으로 꼽힌 명불허전,
베트남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바오 닌의 대표작 「전쟁의 슬픔」

해외 언론 서평 및 추천사
고전이라는 말이 흔히 남용되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설명할 말이 그것 말고는 없다.
《뉴 스테이츠맨 앤 소사이어티》

금세기의 위대한 전쟁소설『서부전선이상없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나『서부전선이상 없다』와는 달리 이 소설에는 전쟁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글을 쓴다는 것, 잃어버린 젊음, 그리고 아름답고도 애달픈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디펜던트》

작가 바오 닌과 더불어 베트남은 비로소 전쟁의 악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르몽드》

전쟁소설이자 사랑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치가들의 이데올로기적 수사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뉴욕뉴스데이》

『전쟁의슬픔』은 베트남전쟁에 관한 모든 미국 소설을 뛰어넘는다.
《뉴요커》

전쟁의 현실은 인성을 비인간화하는 광기어린 공격성이자 살해와 방자한 잔인성을 향한 부자연스러운 갈증을 창조하는 일이다. 베트남전의 고통은 서양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되었다. 이 작품이 나올 때까지 몇몇 선전용 영화를 제외하면 북베트남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코노미스트》

‘전쟁만이 아는 슬픔’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냈다. 기나긴 전쟁 기간 내내 끝없이 불안하고 불편한 잠을 자는 한 인간의 영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_김남일 소설가

작가 바오 닌은 전쟁에 대한 어떤 미화나 과장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안타깝고, 끔찍하고, 잔인하며 아주 가끔 따듯했던 전쟁이 어린 연인들의 청춘과 사랑을 어떻게 미궁에 빠뜨렸는지를 냉정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_방현석 소설가

작가의 말에서
내게 전쟁은 인생에서 접한 가장 커다란 비극이었습니다. 전쟁은 내게 결코 바래지 않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날이 더욱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끈질긴 고통 중 한 가지는 이런 것입니다. 나와 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났던 이들이 본래는 서로를 존중하고 애정을 나누고 친구로 사귈 수 있는 존재들이건만 서로를 죽이려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베트남, 한국, 미국의 수십만 젊은이들이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이 서로를 죽이면서 흐르는 핏물로 강물을 만들었습니다. 어찌 이렇게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부조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_6쪽

베트남의 대작가이자 나의 스승인 낌 런은 내게 이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자네처럼 전쟁을 겪은 작가는 말이야, 전쟁 속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잔인한 폭력과 끔찍한 적개심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네. 물론 전쟁에 대해서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적개심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해. 왜냐하면 전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곧 사랑과 인도적인 성품과 관용에 대해 쓰는 것이고, 전쟁에 관한 글은 곧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말이야.”_8쪽

작품의 줄거리
전쟁 이후 첫 건기, 주인공 끼엔은 전사자 유해발군단의 일원으로 부대원들이 전멸당한 전선으로 이동 중이다. 살아남은 단 열 명의 전사 중 한 명인 끼엔은 그 지역이 익숙하다. 그 패배가 낳은 수많은 혼령과 귀신을 마주하자 끼엔의 마음속으로 바로 작년까지 이어졌던 수많은 전투와 전투에 희생된 전우들, 그리고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이 찾아온다….
끼엔은 열일곱 살 나이에 이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라면 끼엔처럼 전쟁에 나서지 않은 젊은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첫사랑은 어쩌란 말인가…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대지를 할퀴며 인간의 영혼을 상처를 입혔다. 끼엔에게는 그의 첫사랑 프엉만이 마음속에 유일한 실체다. 처절한 전쟁은 아군과 적군, 군인과 민간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구분 없이 너무나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끼엔의 영혼은 전쟁 속에서 메말라 간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종전.
지옥보다 끔찍한 전장을 경험한 끼엔에게 종전은 전쟁보다 실감나지 않는 현실이다. 그리고 더욱 믿기지 않는 첫사랑 프엉과의 재회!
하지만 전쟁은 프엉과의 추억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변화시키고,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방황하는 끼엔이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일! 끼엔은 자신이 기적처럼 살아남은 전장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살벌한 전쟁터, 조금 전까지 밥을 같이 먹던 전우가 총에 맞아 죽고, 어젯밤에 어머니와 애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친구가 방금 포탄에 맞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현장에서 역지사지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놔두고 가면 아군의 인명 피해가 계속 발생할 게 분명하기에 마을 주민들에게 무시무시한 보복을 가하는 것 역시 당연한 전략입니다.
그럼에도 바오 닌은 전쟁이 몰고 온 당연한 살육, 희생자들을 영웅시하고 신격화하는 시절 동안 무명무실 무감하게 사라져 간 모든 것들에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1994년『전쟁의 슬픔』판금 조치 당시의 심정을 물으니 바오 닌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관심 없었다. 그건 그들의 일이니까.’개런티 옵션을 포기하고 할리우드와 결별을 선언할 때도‘관심 없다. 이젠 너희들의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바오 닌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평화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_341~342쪽

발문│방현석(소설가), 바오 닌과 『전쟁의 슬픔』에서
바오 닌은 끼엔이 프엉과 함께 성장했던 하노이의 공동 주택을 떠나 전쟁터로 갔다가 돌아오는 여정을 따라 서사를 펼쳐 나간다. 그러나 이 어린 연인이 걸어야 했던 아픈 사랑의 여정은 이 소설 속에서 실낱처럼 가늘고 희미하다. 더구나 이 여린 사랑의 서사는 자주 피에 잠기고 화약 연기에 덮여 밀림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곤 한다.
사랑은 짧고 전쟁은 길었다.
이 소설의 모든 페이지는 전장의 피비린내로 가득하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독자를 아프게 만드는 것은 그 피비린내가 아니다. 이 소설은 어떤 이념도 집단도 증오하지 않는다. 옹호하지도 않는다. 광포한 살육의 나날을 견디는 힘은 이념도 집단도 아니다. 더없이 거칠고 한없이 허망한 전쟁도 끝내 무너뜨리지 못한 것은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랑과, 사랑할 나이에 전쟁을 해야만 했던 끼엔의 전쟁 비망록이다. 사랑과 이별하고 전쟁을 하며 보낸 10년은 사랑이 아니었던가.
바람처럼 흩어져 버린 10년, 그러나‘한평생보다도 긴’10년이『전쟁의 슬픔』이다. 프엉을 오해하여, 울며불며 자신을 찾아다닌 그녀를 뒤로하고 끼엔은 홀로 전쟁터로 걸어 들어갔다. 그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이 소설은 바로 그 전쟁터의 끔찍한 맨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작가 바오 닌은 전쟁에 대한 어떤 미화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살을 떨며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안타깝고 끔찍하고 잔인하며, 아주 가끔 따듯했던 전쟁이 어린 연인의 청춘과 사랑을 어떻게 미궁에 빠뜨렸는지를 냉정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누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 쓰러져야 한다. 그것이 전쟁이라고 바오 닌은 말한다.
베트남전쟁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바오 닌과 그의 소설『전쟁의 슬픔』이다. 이 유산은 베트남전쟁이 남긴 유산 중에서 인류에게 가장 오래 남을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프엉과 끼엔의 인생에서는 그때가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그때는 소년기와 결별하는 시기였고, 어찌 되었든 그들은 행복하고, 평온하고, 맑고 순수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단숨에 지나갔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군 수송 열차에 몸을 실을 시간이 다가왔던 것이다. _174쪽

끼엔은 처음에 뻐근한 통증 같은 것이 느껴졌고, 마침내 온몸이 떨리며 소름이 돋고 갈비뼈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긴장이 풀리면서 강렬한 욕구가 전신을 휘감았다. 그녀의 몸은 부드럽고 향기로웠으며 타는 듯이 뜨거웠다. 애틋하면서도 맹목적이며 광기에 가득 찬 프엉의 몸이 그의 몸을 꿀꺽 삼켜 버릴 것 같았다.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천둥이 치는 듯한, 고통보다 더한 상태, 마치 가슴 깊은 곳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첫 키스는 아니었지만 호숫가에서 처음으로 깨달은 절절함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불현듯 차갑고 단호한 의지가 끼엔을 흔들어 깨웠다.‘이러면안돼, 이럴수없어….’끼엔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추스르면서 프엉을 꽉 누르고 있던 손을 풀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허망해진 프엉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아찔했던 감각들이 사그라지면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자리 잡았다. 그녀가 옆으로 돌아누워 재빨리 블라우스 단추를 채워 가슴을 가리고는 살며시 일어나 앉았다. _178쪽

글을 써야 한다! 잊기 위해 쓰고 기억하기 위해 써야 한다. 의지하고 구원받기 위해, 견디기 위해, 믿음을 간직하기 위해,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매일같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낯선 무리가 우연히 서로의 인생에 증인이 되듯이 친한 사람들에 대해 글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삶과 영혼 속에서 서로 다른 세상과 상반된 것들에 대해 써야 하고, 태어나 자란 집들과 보금자리와 도시에 대해 써야 한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밤, 길모퉁이 가로등을 지나고 지붕들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운명과 역경이 있는지 알고 있기에 이에 대해 써야 한다. 기나긴 밤거리의 고요 속을 걷는 발소리는 침묵의 울림이자 생각의 발소리처럼 들린다. 번쩍이는 방수천을 덮은 시클로 한 대가 소리 없이 지나갔다. 교통경찰 초소 앞에서 한 쌍의 연인이 포옹하고 있다. 길모퉁이에서 희미하게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하고 어두웠던 거리에 갑자기 전기가 들어오면서 바람이 불어오듯 차례차례 전등이 켜졌다. 메마른 소리를 내며 나뭇잎이 떨어졌다. 비에 젖은 낙엽이었지만 인도 위 여기저기를 휭휭 날아다녔다. 끼엔은 위대한 음악의 침묵 속을 걷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동네의 어두운 밤거리를 거닐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삶을 재촉하며 살았다. 기억해 내려고 안달복달하지 않고 기억도 없고 희망도 없는 서민들의 삶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다.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써야 한다. _198쪽

안개 속에서 날이 밝았다. 끼엔은 몸을 추스르며 프엉이 타고 있는 기차 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생각했다. 잠깐 동안에 겪은 전쟁은 그가 평소에 상상하던 전쟁이 아니었다. 군인으로서 맨 처음 겪고 있는 고통은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를 옥죄었다. 프엉의 품에서 튕겨져 나온 순간부터 끼엔의 삶은 피와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10년 동안 기관총을 들고 언제나 공격의 선봉에 섰을지라도, 승리를 위해 파란 많은 위대한 항전의 수천 리 길을 전우들과 함께 굳건하게 걸었을지라도, 전장의 태풍 속을 뜨거운 열정과 더불어 청춘의 행복에 흠뻑 젖었을지라도, 전쟁의 잔악한 본성 앞에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영혼은 머리를 쳐들 수 없는 죽은 영혼이었을지라도, 시작은 프엉을 지키지 못한 그 순간부터였다. _248쪽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쓰러져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 그러나 끼엔이 살아남은 대신 이 땅에 살아갈 권리가 있는 우수하고, 아름답고, 누구보다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쓰러지고, 갈가리 찢기고, 전쟁의 폭압과 위협 속에 피의 제물이 되고, 어두운 폭력에 고문당하고 능욕 당하다 죽고, 매장되고, 소탕되고, 멸종되었다면 이러한 평안한 삶과 평온한 하늘과 고요한 바다는 얼마나 기괴한 역설인가.
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들여다보고 성찰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유해 발굴을 떠났던 그해에 끼엔은 잊혀 간 흔적을 찾아 울창한 밀림 속을 순례했다. 호아를 떠올리며 악어 호수를 다녔고, 그의 정찰 소대 전우들을 생각하며 고이 혼을 다녔다. 바로 그때부터 전쟁을 슬픔의 빛깔로 받아들이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걸음마다, 날마다, 사건마다 차분하고 침울하게 그의 가슴속에 되살아났다. 슬픔의 빛으로 과거를 비추었다. 그것은 각성의 빛이었고, 그를 구원하는 빛이었다. 회상 속에, 그리고 결코 나아지지 않는 전쟁의 슬픔 속에 깊이 몸을 담그는 것만이 일생의 천직과 더불어 그의 삶을 존재하게 했다. 희생자들을 위한 글쟁이로, 과거를 돌아보고 앞을 얘기하는, 지나간 세월이 낳은 미래의 예언자로 살게 했다. _266쪽

목차

작가의 말: 나의 스승 낌 런의 가르침
전쟁의 슬픔
발문: 바오 닌과『전쟁의슬픔』
옮긴이의 말: 의심과 비난, 환영과 찬사
작가 연보

본문중에서

이곳에서는 해 질 녘 나무들이 바람결에 내는 신음 소리가 마치 귀신의 노랫소리와도 같았다. 그리고 숲의 어느 구석도 다른 어떤 구석과 같지 않고, 그 어느 밤도 여느 밤과 같지 않아서 누구도 이곳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방금 지나간 전쟁에 대한 가장 원시적이고도 야만적인 전설들,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하는 허구적인 이야기들도 이 지역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아마도 산이 낳고 숲이 낳았을 것이다. _18쪽

전쟁이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 나는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이 기억에서 저 기억 속으로 떠다녀야 했다. 벌써 몇 년째인가?
멀쩡한 정신으로도 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길 한가운데서 문득 길을 잃고 꿈속을 헤매기도 한다. 그런 날이 결코 적지 않다. 길가에 뒤섞인 악취가 갑자기 썩은 냄새로 변하고, 나는 1972년 섣달 끝 무렵의 어느 날로 돌아가 피비린내 나는 육박전 끝에 시신들이 즐비했던‘고기탕’언덕을 지나고 있다.
보도에서 풍겨 오는 죽음의 냄새가 너무 지독해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황급히 팔을 올려 코를 틀어막는다. 어느 날 밤에는 천장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기도 했다. 그 소리가 등골이 오싹한 무장 헬리콥터의 굉음처럼 들려왔던 것이다. _66쪽

그는 프엉을 잊으려 갖은 노력을 다 했다. 다만 한심한 것은 어찌해도 그녀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었고, 더욱 가련한 것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그녀를 갈망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이 모든 것이 곧 지나갈 것이며, 그의 나이 또래면 사랑마저도, 가슴속 슬픔마저도 세상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번민이나 고통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무의미한 것인지, 공허한 인생 속으로 흩어지는 한 줄기 연기와 같다는 것을 또한 잘 알았다. _94쪽

항 꼬 역에서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거리는 매우 조용했다. 그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집 안은 컴컴했다. 아마도 모두 잠든 듯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 밤 계단으로 올라가는 현관문의 빗장이 걸려 있지 않았다. 마치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쯤 열려 있었다. 역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걸 끼엔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을까! 계단을 올라서는데, 누군가 숨죽이며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에 갑작스레 가슴이 조여 왔다. 누르스름한 불빛 아래 복도가 흐릿하게 빛났다. 그와 아버지가 함께 살았던 집의 문은 옛날의 밤색 그대로였다.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동판도 원래 자리에 붙어 있었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두 손이 점점 떨려 와 끼엔은 몸을 제대로 가누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기쁨의 눈물이 뜨겁게 차올라 흘러내렸다. _107쪽

아마도 당대의 작가들 중에 끼엔처럼 무수한 죽음을 목격하고 수많은 시체를 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작품에는 송장이 넘쳐 났다. 수제 폭탄에 무너진 지하 참호에는 몸에 긁힌 자국 하나 없는 나이 어린 미군병사들이 굴비 두름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 머리를 어깨에 기대고는 긴 세월을 잠들어 있었다. 커 랭 밀림의 가장자리 낮은 풀숲 곳곳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호랑이무늬 복장의 낙하병들이 퉁퉁 부풀어 오른 채로 파리 떼와 구더기, 자신의 살이 썩는 냄새를 태연히 견디며 누워 있었다. 또한 끼엔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B52 폭격기가 밤새 공중을 빙빙 돌고 난 다음 날 새벽 사 터이 강변 코끼리풀 들판으로 팔다리가 투두둑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떠올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흘간의 혈전 후 시체들로 지붕을 인것 같은‘고기탕’언덕을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있다. 지뢰를 밟은 병사가 마치 날개라도 단 듯 나뭇가지 위로 튕겨져 오르는 모습을 보고는 섬칫 몸을 떨기도 했을 것이다.‘끼엔의’죽음은 다양했고, 매우 풍부한 형태와 색채를 띠었으며, 산 사람보다 더 생동감이 있었다. 그는 이제 땅속에 살지 않고, 꿈속에서 소리 높여 삶과 죽음에 대해, 죽음의 순간에 대해, 심지어는 죽음 이후의삶에대해우리에게들려주는병사와도같았다. _116~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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