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산에 오를 때 양쪽 허벅지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것이 좋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소나무의 은은한 향기도 좋고, 무더운 여름 온몸을 흠뻑 적시는 나의 끈적한 땀이 좋다. 오가며 만나는 다람쥐, 청솔모들과 이름모르는 산새들이 반갑고 어쩌다 마주치는 시원한 계곡물이 또한 반갑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상에 올라 내가 사는 곳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순간이 좋다. 그래서 난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이 싫다. 가을 단풍철이 되면 개미떼 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이 두렵고, 산길에 버려진 인간의 소비의 흔적을 보는 것이 싫다. 그리고 하산을 마칠 무렵에 밀려드는 성취감에 간간히 섞여있는 허무감이 무섭다. 그래서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한다.
모든일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등산에 비유해 보았다. 난 사실 등산을 매우 좋아한다.

아버지가 다른 형제 상민과 영교의 6박7일 간의 촐라체 등반 여정은 한편의 극적인 등산 다큐를 보는 것 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솔직하게 말해서 난 촐라체를 산악소설로서 흥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었다. 내가 산에 관심이 많고 언젠가는 히말라야에 꼭 한 번 가보고 싶기에......하지만 처음 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책을 읽는 평소와는 달리 책의 맨 앞머리에 있는 작가의 말을 가장 나중에 읽고는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씨줄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날줄과 차분하게 얽혀가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소설을 읽으면서 놓쳤던 것이지만 작가의 말을 통해 그 의미를 돼새기는 것도 그렇게 부끄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가 놓쳤던 날줄은 존재와 실존, 시간, 꿈이었다. 존재나 실존 그리고 시간과 같은 난해한 철학적 관념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많이 느끼고 공감했던 것은 꿈이었다. 제대와 함께 세상에 나온 나의 부푼꿈들은 어느덧 하나, 둘 씩 힘없이 쪼그라들고 있다. 현실의 논리에 그리고 나의 의지와 열정의 소멸과 안일한 생활에 그렇게 허망하게도 쪼그라들었다. 이제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벌써부터 이렇게 쉽게 꿈을 포기해도 되는가 하는 자책이 쏟아진다.

상민과 영교 그리고 상민이 정선배라 부르는 사나이......그들은 현지인들조차 발걸음을 돌리는 한겨울 히말라야의 품으로 들어갔다. 산에 오르는 것은 정말 고독한 일인데 한겨울 히말라야로 들어가는 것은 절대고독의 정적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절대고독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간 이유는 현실에서 얽혀있던 실타래들을 과감하게 끊고 오기 위한 것이었다. 상민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아버지를 버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 그리고 헤어지게 된 아내와의 인연과 절친했던 하지만 지금은 히말라야의 품에 잠든 선배의 기억들을 영교는 빚쟁이들의 독촉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고독한 순간에 자신이 뻗친 손길을 잡아주지 않았던 형에 대한 원망을 그리고 정선배는 자신의 평탄한 삶에 갑자기 등장한 아들과 그 아들의 돌연한 출가에 대한 황망함이라는 아주 복잡하게 엉켜버린 실타래들을 안고 온 것이다. 
6박7일간 죽음과의 처절한 대면에서 그들은 각기 가져온 실타래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상민과 영교는 촐라체의 험준한 빙벽과 크래바스, 그리고 혹독한 비박속에서 정선배는 정적에 무섭게 휘감겨있는 베이스캠프에서........
촐라체라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어온 상민과 영교는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절단하고, 다리 조차 절게 될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정선배는 홀연 출가하여 떠나버린 아들을 찾아 절에 갔지만 결국에는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죽음, 고독과 치열하게 대면했던 그들의 모습은 적어도 겉으로는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각자의 생활로 돌아와 일상의 삶에서 다시 꿈을 갖게된 그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은 얽힌 실타래를 끊어버린 것이 아니라 처절한 죽음과 고독의 대면속에서 그것들을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풀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지금 마음속에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한덩이 갖고 있는 느낌이다. 현실과 추상적인 꿈의 괴리가 이루어낸 아주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나는 상민과 영교 그리고 정선배와 같이 히말라야로 가서 그 실타래를 풀 수는 없지만 내 마음속의 촐라체를 피켈과 아이젠을 끼운 등산화를 신고 열심히 넘어 보면서 풀어볼 생각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일은 아마도 사랑하는 것이지 않을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사랑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부모자식 사이, 형제사이, 친구사이, 사제사이, 연인사이, 그리고 이웃사이의 사랑 등등......그중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설레는 사랑이 연인사이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난 아직 연인이라고 불릴만한 사이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지만 숱한 간접경험과 짝사랑 등으로 내린 결론이기에 아주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은 조금 그 정도가 덜해졌지만 한때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졌던 소재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사랑, 즉 소위 말하는 불륜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엄밀하게 말하면 불륜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다만 한가지 다른 점은 그 사랑의 방향이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는 여인을 향한 연정에 몸살을 앓았던 베르테르를 생각하니 안타까움에 내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다. 생각해보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약 60억명의 인구중 여자와 남자의 비율은 거의 1:1에 가깝다. 그리고 아무리 연령대를 고려하더라도 짝이 될 수 있는 이성의 수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간과 공간의 한계로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만나볼 수는 없지만. 사실 아주 한적한 시골만 아니라면 집주변 혹은 번화가만 나가보더라도 정말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 동네에서 20년 이상 살고있는 나도 거리를 나설때마다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정말 그 많은 사람중 자신의 인연은 단 한사람이라니......새삼 사람들이 서로 만나 사랑하는 일이 신기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마 수많은 이들이 지금 이시각에도 사랑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고민하고 또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어려운 것이다. 죽음으로 끝난 베르테르의 사랑은 수많은 가슴아픈 사랑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사랑 중에서도 베르테르만의 사랑이기에 고귀하고 또 특별한 것이다. 베르테르의 죽음은 너무도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그의 인연은 로테였던 것을. 베르테르의 사랑의 화살을 잘못 쏜 큐피트를 원망할 수밖에 없겠다.

학기 중 신문에서 장영희라는 분의 부고 소식을 보았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 만큼은 아니었지만 내가 처음들어본 인물의 부고 소식이 그렇게 커다랗게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주의를 끌었다. 그때 기사를 읽고 새롭게 알게된 것은 장영희라는 분은 평생을 걸을 수 없었고, 영문과 교수였으며, 암으로 사망했다는 것, 이것 세가지가 전부였다. 그날 동기 중 한 친구가 장영희 교수의 부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쓰신 장영희 교수를 모르냐고 나에게 물어왔었다. 비록 독서에 관심을 붙이고 독서를 취미로 삼기 시작한지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문학만큼은 작품을 다 읽어보진 못하더라도 작가의 이름만큼은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던 나에게 ’장영희’라는 이름은 우주의 어느 소행성 이름 만큼이나 낯설었다. 그렇게 ’장영희’라는 이름과 그녀가 쓴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의 제목은 언젠가는 꼭 한 번쯤 먹어보고 싶은 아이스크림 이름을 외우듯이 내 기억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학기중에는 이리저리 정신없이 살다보니 그 이름을 떠올릴 틈이 없었지만 방학이 시작되고 동네 도서관에서 그 이름을 기억했고 그리고 책을 빌려보게 되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는 장영희 교수가 읽었던 책들을 삶의 경험과 연계하여 그 책들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에세이들이 담겨 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오해와 편견,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와 제자들과의 추억, 미국 유학생활, 암투병생활 등 장영희라는 사람이 어떤 삶의 경로를 택하여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는  장영희의 문학 리스트라고 봐도 무방할만큼 정말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어 넘처나는 출판의 홍수 속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문학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본질적인 주제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부모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사제간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 등등.......
사랑은 희망, 마음, 꿈과 같은 다른 아름다운 언어들을 포함하는 아름다운 말의 대표이다. 사랑을 하면 희망을 품을 수 있고, 사랑은 마음의 울림을 동반하는 것이고, 사랑은 또한 꿈을 꿀 수 있게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고결한 마음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중 가장 숭고한 행위이다.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던 것의 그녀가 겪은 인고의 시간들과 그념의 눈물나는 노력에 이유가 있지만 그녀가 인고 시간들을 살아낼 수 있었던 보다 근본적인 원동력은 가정교사, 부모님, 친구들과 같은 주변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이었다. 아마 장영희 교수도 신체적 장애와 함께한 눈물나는 세월들에 많은 이의 사랑이 녹아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사랑을 다룬 작품들을 많이 소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노력하고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영희 교수도 많은 이들의 노력과 마음을 받고 힘을 얻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면에서 보면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단순한 문학 에세이를 넘어선 장영희라는 사람이 세상에 보내는 감사의 메세지이지 않을까?
 끝으로 장영희 교수가 소개한 작품중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을 돌아보며 이제는 고인이 되신 장영희 교수께 좋은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인생에 있어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