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모두의 꿈을 공유하는 시대. 여기 280억 개의 꿈이 드림넷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생하고 짜릿한 꿈의 무대가 당신의 취향을 저격할 거예요. 오늘 밤, 드림캐스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 소설은 꿈을 공유할 수 있는 기계 ‘드림캐스터’가 개발되어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드림넷’에 업로드하고 타인이 그 꿈을 추체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S07, 약 10년 후의 S15, 그리고 지금은 S21. 버전이 업그레이드 되며 드림캐스터의 크기는 더욱 작아지고 배터리 효율은 늘어나고 있으며, 어딘가에선 출시 첫 달 한정으로 월정액 요금이 단돈 3만코인이라는 광고가 흘러나온다. 지후는 생각한다.
‘단돈 3만 코인이라니. 대체 누구 입장에서 ‘단돈’인 걸까.’
언제나 존재하는 빈익빈 부익부였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해 모두에게 공평할 것 같았던 잠을 자는 순간의 ‘꿈’조차 돈 많은 이들이 많은 것을 누리는 시간이 되어버리는 세상.
(p260) 드림캐스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게임을 잘 안 하게 됐다는 건 알지? 가성비에서 상대가 되질 않아. 현실에서 2차 세계대전 배경의 게임을 만들어내려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드림넷은 고작 단 한 명이 게임보다 더 실감 나는 꿈을 만들어서 올리니까.
(P261) 자면서 꾸는 꿈은 현실의 삶을 떼어가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큰 축을 꿈 세계가 차지한 지 오래였다.
이미 사람들에게 SOF 코퍼레이션의 드림캐스터는 익숙한 일상이다. 게임조차 대체할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인공 성지후는 오래전부터 오직 하나의 꿈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수천번 이상 같은 꿈을 캐스팅해오고 있다. 그 꿈에서의 성공을 위해 다른 꿈에서 무언가를 훔치며 ‘꿈 도둑’이라는 악명을 얻고, 뛰어난 자각몽자인 그를 눈여겨본 SOF 몽재진압 3팀 팀장 황수현이 스카우트하게 된다.
이후 성지후가 바라는 꿈에서의 성공을 위해, 그리고 SOF 코퍼레이션 황회장이 밀어붙이는 다중접속 업그레이드의 저지를 위해 기계를 만든 장본인이자 현재는 실종상태인 오재욱 박사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된 거대 음모에 맞서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용 일부, 특히 자각몽자에 대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p75) ‘섬망’이란 일반적으로 환각과 이명에 시달려 현실을 분간하기 어려워지는 증상을 말해. 정신에 균열이 가는 거지.
(p76) 드림넷 속의 어떤 꿈들은 종종 이런 섬망을 유발해. (중략) 특정 꿈을 꾼 사람에게만 발현하는 이상 현상이야. 이런 섬망을 유발하는 원인을 우리는 꿈의 재난 ‘몽재’라고 불러.
(p77) 화재진압반이 불씨를 제압하듯, 우리는 몽재의 불씨를 파악하고 없애는 사람들이야.
-> 늘 그렇듯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부작용이 있기 마련. 꿈을 공유하는 세상에서는 특정 꿈으로 인해 정신적 영향을 받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각몽자들로 구성된 몽재진압반이 존재한다.
(p39) 꿈속에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 자각몽의 기본이다.
-> 꿈을 꾼다는 걸 인지하고 그 안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자각몽자들.
(p58) 꿈의 업로드한 주체인 몽주의 사고방식은 신의 율법이다 마찬가지로 절대적이야.
(p72) 꿈을 꾸고 있는 자의 믿음을 깨부수고, 그들의 욕망을 벗어 날 수 있을 만큼 의지를 키워야 해. 그게 몽재진압반 플레이어의 자격이야.
-> 그들은 절대적인 몽주의 믿음을 이길 만큼의 의지를 키워 몽재를 진압해야한다.
(p41) 익숙한 공간일수록 변형을 가하는 것에 정신력을 크게 소모해야 한다.
(p54) 물론 인체와 비례가 다르면 정신력 소모도 그만큼 빨라. 모래나 벽돌 같은 사물로도 변신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는 지속 시간이 무척 짧고.
(p55) ‘제약’은 자기암시의 일종으로서 자각몽자가 꿈속에서 능력을 통제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였다. 본인의 상상에 명확한 한계를 지정함으로써 꿈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물줄기를 더 날카롭고 파괴적으로 바꾸기 위해 호스 입구를 손으로 누르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했다.
-> 몽재진압반 팀원들의 능력은 다양하다. 트랜스포머, 아머리, 사이코키네시스트, 카펜터. 하지만 자각몽자 역시 천하무적은 아니며 능력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p196) 꿈속의 초능력은 결코 만능이 아니야. 선입견과 편견이 보통 그 제동장치가 되지. 그래, 선입견이 의지라는 손잡이에 녹이 슬게 하는 거야.
(p125)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자연스레 인간의 뇌리에 심어진 법칙이 있고, 그것은 선입견으로 작용한다.
(p207) 꿈속에서 선입견은 늘 불시착을 유도하는 조명탄 같은 것. 반짝반짝 빛나서 따라갔다간 엉뚱한 곳에 가닿을 위험이 있었다.
-> 단, 꿈속에서도 중력이 작용하여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이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꿈속에서도 선입견이 제동장치가 될 수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나오는 하나하나의 몽재 진압 이야기 역시 흥미로워 500페이지가 넘는 굉장히 두꺼웠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꿈을 공유하는 세계에 대한 설정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접하고 생각해보는 재미도 컸던 소설로 SF를 좋아한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주된 소재인 ‘꿈’에 대한 이야기 중 인상깊었던 부분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꿈은 휘발성이다.
꿈속에서 수천 수레의 금괴를 얻게 된 자의 희열도, 절벽에서 어린 딸을 놓쳐버린 자의 절규도 꿈에서 깨고 나면 공평하게 휘발된다. 금괴의 꿈을 꾼 자는 빈 손바닥을 보며 허탈해하고 피붙이를 잃은 꿈을 꾼 자는 새근새근 잠든 딸을 보며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곤 중얼거릴 것이다.
한낱 꿈일 뿐이라고.
하지만 휘발된다는 말속에는 불씨가 내재되어 있다. 휘발되어 사라지기 전까지의 고통과 아픔은 때로 천년을 벼린 비수만큼 날카로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