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금
박 범신/한계레 출판/367쪽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아니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힘겹게 학업을 해야만 했던 우리 세대의 이야기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고생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고 자식만큼은 어떻게든 공부를 시켰다. 자신은 먹고, 입고, 하고 싶은 것을 다 버리고 오로지 자식이 공부 잘하여 성공하기만을 바랬다. 개천에서 용 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바램처럼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 이야기는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였고 야망을 버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소금은 그런 아버지들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셋째 딸 시우의 스무살 생일에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 한번도 그런적이 없던 아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실종 신고를 하고 회사와 경찰을 통해 들은 아버지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너무 청천 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췌장암에 걸려 있고, 회사 공금까지 유용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상상 못한 아버지의 상황. 언제나 가족들을 위하여 묵묵히 일해 온 아버지이기에 쑥맥이라는 소리를 아내에게 듣기도 했던 아버지이지만, 가정에선 언제나 가족들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해주기만 하던 아버지의 실종에 가족들은 안타까움보다 분노로 일관한다. 실종 수사를 하던 열흘뒤쯤 아버지의 통장에서 꽤 많은 돈이 한꺼번에 인출되었지만 아버지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중 아내는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던중 교통사고를 당하여 갑자기 사망하면서 가정은 풍비박산되어 뿔뿔히 흩어진다.
오직 셋째 아들 선명우에게 미래를 걸고 자신과 가족들 모두를 희생시키는 또 다른 아버지는 염전에서 일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온몸으로 대파질하는 아버지가 안쓰러운 중학교 1학년 아들은 방학을 맞아 아버지를 도우려 염전을 찾아 100리 길을 걸어 갔지만 대파 자루로 두둘겨 맞고는 바로 뒤돌아 와야 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 오는 도중에 피로와 허기에 지쳐서 쓰러지고 2살위인 세희에게 발견되어 간호를 받고 원기를 찾지만 예기치 않은 세희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하여 원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다니면서 세희 누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어느날 냉동 젓갈창고에 둘이 갇히게 되어 밤을 새우면서 헤어지게 된다.
선명우는 대학을 가서야 다시 세희를 찾았고 그녀는 재봉틀 몇대를 두고 봉재공장일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둘이는 자주 만나면서 사랑을 하게 되지만 대학 후배인 부잣집 딸 혜란이의 적극적인 공세에 밀려 딱 한번의 잠자리를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세희와 단둘이 밤새우고 돌아온 자취집 앞에서 기다리는 혜란이를 만난다. 밤새 기다린 혜란은 그가 보는 앞에서 사온 선물을 다 찢어 버리고 화를 내며 가 버린다. 그리고 새해 첫날 세희를 만나러 작업장에 찾아갔는데 조금 뒤 작업장에 혜란이가 오빠와 같이 나타나서 혜란이가 집을 나오고 임신한 상태라고 말한다. 결국 그들은 혜란 집안의 반대로 결혼은 안하고 방을 얻어 동거 생활을 하게 된다. 물론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드디어 대학 졸업 하루 전날. 큰형이 찾아와서 자기의 취직 부탁과 취직 할 동안의 생활을 책임지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혜란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히면서 결국 형에게 여인숙을 잡아 주면서, 다음날 올라올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는 순간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졸업식에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러 강경 집으로 갔지만 염전에서 새벽부터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일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먼 발치서 보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순간 아버지가 염전에 쓰러지는 것을 보게 되지만 그냥 서울로 돌아오고 만다. 다음날 졸업식장에서 부친 사망이라는 전보를 받고 아버지의 사망을 알게 되지만 자기가 갔던 일을 이야기 하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해 보지만 수입이 적어 아내의 소비생활을 맞추기 힘들었던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지원하여 나가서 5년 동안 고생을 하고 돌아 오지만 아내가 보여준 것은 마이너스 통장뿐이었다. 그가 외국에서 고생을 하는 동안에도 아내와 딸들은 부유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아무 소리없이 다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여 상무까지 승진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늦은 승진이었다. 모든것을 속으로 감내하며 오직 아내와 아이들을 위하여 일만 하던 그가 어느 날 검진을 받아보니 췌장암이었다. 그것도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소견을 듣지만 가족에게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지내던 어느 눈내리는 날. 미끄러운 언덕길을 조심조심 오르다가 문득 쳐다본 집 창가에 비친 셋째딸의 모습을 보고는 아침에 생일 선물로 주문해 놓은 카메라 생각이 나서 언덕길을 뒤돌아 내려 가다가 눈길에 꼼짝 못하는 트럭을 발견한다.
그때 트럭 기사가 차좀 밀어 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미안하다며 다시 걸어 가는 순간 트럭이 미끄러지면서 기사가 차에 부딫히면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 순간 트럭에 실려있는 소금을 보면서 차에 받혀 떨어진 사람이 아버지로 보인다.
미친듯이 기사를 싣고 병원으로 달려가서 보호자가 되어 3일을 보낸다. 그 트럭에는 함열댁이라는 여인과 두 여자애가 함께 타고 있었지만 모두가 트럭에서 생활하는 이상한 가족이었다. 두 아이다 함열댁이 주워 기른 아이로 함열댁 역시 가출해서 지내던중 기사를 만나 트럭 생활을 함께 하는 사이였다. 수술 후 기사는 턱부위 아래가 마비되어 혼자서는 움직 일 수도 없는 불구가 되고, 그도 정신은 차렸지만 그는 가정으로 돌아 가기를 포기한체 트럭 뒷자리에 기사(김승민)를 누인체 함열댁과 두 아이를 데리고 전국을 떠돌아 다니면서 장사를 한다. 그는 김승민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온 몸을 씻기고 소독하며 정성을 다하면서 지낸 어느날 함열댁이 벌써 6개월이 넘었다고 말하기에 생각해보니 자신은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췌장암 환자였는데 어느새 병세가 없어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함열댁과 두 아이와 김승민을 위한 새로운 생활에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몇 년의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그는 세희 누나를 찾지만 세희 누나는 고향에서 죽은 뒤였다. 그래서 그는 강경의 옥녀봉 자락의 세희가 살던곳에 집을 짓고 김승민으로 살면서 염전에 나가 일을 한다. 염전일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가족들에 대한 생각을 하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해 한다.
아버지를 찾아 나선 시우는 우연히 10살 많은 소설가를 만나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고, 소설가는 시우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던 중 김승민으로 살고 있는 시우 아버지 선명우를 만난다. 하지만 소설가는 선명우씨의 지나온 생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또 다른 삶에 대한 방해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시우에게는 아버지를 찾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우는 아버지 선명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소설가의 이야기속에서 알게 되지만 모른척하며 이 소설은 마무리를 한다.
이 책은 아내와 자식의 빨대로 사는 아버지의 모습과 방랑하면서 자기 생활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소금의 맛은 달고 시고 쓰고 짜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도 소금과 같이 달고 시고 쓰고 짠 맛이 담겨 있다는 걸 느끼는 책이다..
젓갈 냉동 창고에서 처음 접했던 세희누나의 젓가슴은 평생의 사랑으로 남아 있는 단맛이요,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은 쓴맛일거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 생활과 결혼 생활은 시고 짠맛 이지만, 트럭 생활은 또 다른 단맛이요, 추억은 신맛이며, 그리움은 짠맛이리라…
강경의 염전을 무대로 벌어지는 염부의 이야기는 박범신 작가의 고향 논산과 가까운 곳이며 작가가 살아 온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우리곁의 이야기이다.
나 역시 선명우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결코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틀에 박힌 생활을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기도 한다.
우리 몸에 없어도 안되고 많아도 안되는게 소금이듯,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욕심부리지 말고 무엇이든지 적당하게 만족하며 사는 세상이면 좋겠다.
박범신,
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