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를 안지 10년째 되어 가는 것 같다.

처음 아이를 낳고 재봉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된 사람이다.

조이님이야 나를 알거나 말거나

오랜시간 살짝 멀어지나거 살짝 뜨거워지거나 할 때마다 그녀를 보곤했다.

소소한 개인적인 생활의 냄새가 느껴지는 그녀의 블로그는 언제나 그녀의 바느질처럼 정갈하다.

웹페이지에 폰트 하나를 써도 저작권료를 내고 쓰며

그런척 하는 옷을 싫어하는 그녀의 옷들은 그녀와 꼭 닮았다.

그런 그녀가 5년만에 내놓은 책이 <내 아이의 옷장>이다.

그녀가 책갈피를 통해 보여주는 옷들의 상당수가 실제 내 아이의 옷장에 걸려있었던 옷들이라 (대개 작아져서 어디론가 새주인을 만나러 가버렸지만) 마치 내 아이의 어린 날을 담아놓은 앨범을 보는 느낌이라 어쩐지 더 정겹다.

 

만든 사람의 공과 패턴의 질을 생각하면 절대 비싼 가격이 아니지만 살림하는 초보 주부로서 적잖이 부담을 느끼면서도 하나 하나 심혈을 기울여 골랐던 패턴들을 이렇게 책 한 권에 담아 한번에 받을 수 있다니 아가 엄마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책 안에 들어있는 실물패턴만 해도 책값의 열배는 될 가격이다.

 

조이를 만난지 10년만에 이젠 아이가 자라서 이 사이즈의 옷들은 입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지난 10년의 추억을 담듯 한 권 내 책장에 꽂아 놓는다.

표지의 아줌마는 어린 시절 만화영화로 만났던 호호아줌마를 닮았다.

우리나라와는 조금 달리 푸근한 인상의 호호아줌마가 일본 문화에서는 아주 익숙한 캐릭터인 모양이다.

제목이 <워거즐튼무아>.

뭐라고??

워거즐 튼무아!!

 

아줌마가 심은 씨앗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여하튼 기대된다는 내용의 표지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줌마가 살고 있는 나라의 왕자님이 아이답게 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줌마의 지혜로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마법의 주문처럼 등장하는 워거즐튼무아는 아줌마가 쓴 표지판을 거꾸로 읽어서 나온 이름이다.

우리도 이따름 식당 같은 곳에서 메뉴판을 볼 때 느끼곤 하는 혼동인데 세로쓰기를 가로로 읽을 때의 혼란스러움 같은 것이다.

 

칼라떡오

국   볶

수면이뎅

 

뭐 이런 종류의 메뉴판을 얼핏보면서 칼라떡오?? 하고 잠깐 생각하는 느낌...

 

그런 느낌을 살려서 만든 동화인데

일본 문화는 기본적으로 세로쓰기 문화이기 때문에 그림처럼 써놓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만

번역하면서 우리에게 맞게 바꾸지 못한 것 같아 좀 안타깝다. 

글을 반대방향으로 쓰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어색하다.

세로로 쓰고 가로로 읽을 때는 워거즐튼무아처럼 재미있고 신비로운 주문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런 모양인데

아이들이 읽으면서 아줌마가 글씨를 반대방향으로 쓰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만 제외하면 정말 즐겁고 키득키득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이야기책이다.

 

아이가 자신이 왕자가 아니라는 것을 엄청 다행으로 여기면서 읽었다.

 

 

작가 김중혁은 말도 잘하고 글도 잘쓰고 다양한 인생경력을 가졌다지.

표지에 있는 슬라이드 퍼즐의 그림도 작가 김중혁이 그렸다지.

한겨레21에 만화 <애스트럴보이?>(제목이 가물거리는데 일부러 만화를 다 찾아서 봤으면서 지금 헷갈리는 제목을 검색해서 찾아볼만큼 정성스럽지 않은 이 마음은 뭐지??)를 연재하기도 했고 현재 웹툰을 연재하고 있으며 소설도 가끔 쓰고 에세이도 가끔 쓰는 정말 재미있는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데 학번은 나랑 같다니 갑자기 애정이 가네.

<뭐라도 되겠지>의 표지에 있는 사람은 작가 김중혁 자신이고 머라도 되겟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김중혁 자신이라네.

낙천적인 그 자신을 표현하는 좋은 말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김중혁이 발까지 넓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최선을 다하는 참 좋은 사람이더군.

그래도 작가 김중혁이 <뭐라도 되겠지>에 전부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에 나와서 이야기하네. 작가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장이라는 것을 그의 말을 통해 알았네.

거짓말을 하고 싶어 소설가가 되었다는 말도 있더군.

하지만 거짓말을 덜 하는 척 하는 에세이를 쓰는 김중혁보다 진짜 거짓말같은 거짓말을 줄줄이 늘어놓는 수다쟁이 소설가 김중혁의 글이 더 좋네. 난 진짜 거짓말이라고 티를 팍팍 내는 그의 소설들이 진짜 좋네.

매뉴얼을 풀어내듯 이야기는 그의 상상력이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