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독서 습관이 다르겠지만 나는 다섯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다.

분야가 다른 책 다섯 권을 꺼내 놓고 한 챕터씩 돌아가면서 읽는 식이다.

딱히 읽는 양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고 그냥 한 권을 읽다가 무료해 지면 또 다른 책을 펼쳐 읽고, 그러다가 또 다른 책 이런 식이다.

 

그렇게 정신 없이 펼쳐 놓고 읽는 나를 보고 고등학생 딸내미는 그런다.

그렇게 이 책 저 책 읽다 보면 헷갈리지 않아? 내용도 이 책 저 책이 짬뽕이 되어 머리에서 정리도 잘 안될 것 같은데?

그런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머리에는 작은 서랍이 여러 칸 있어서 읽는 책마다 각기 다른 서랍 안에 내용이 저장되기 때문에 책을 읽다가 다른 책을 읽어도 그 내용은 자기 제목이 속한 서랍 안에 저장되기 때문에 헷갈릴 염려가 없다, 고.

 

뇌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독서 경험이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 여부를 떠나 내 독서 생활에 도움을 줄 것 같기도 하고.

딸 아이 말처럼 이것 저것 섞어 읽으면 책의 내용도 함께 섞여버리고 만다면 이렇게 읽는 독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테니까.

 

다섯 권을 읽을 때는 보통 분야와 난이도를 달리해서 읽는다.

철학, 사회, 경제, 소설, 시집 각 한 권씩 해서 다섯 권을 동시에 읽는다고 가정 할 때 조금 읽기 어려운 책 몇 권과 쉽게 읽히는 책을 함께 읽는다.

그래야 조금 어려운 책을 읽다가 지치면 쉽게 읽히는 책을 보면서 머리를 식힐 수 있으니까.

책 읽는 머리를 책으로 식히는 것이 조금 엉뚱한 발상이긴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꽤 유용하한 방법이다.

그래서 소설이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한 책을 꼭 함께 읽는다.

 

다섯 권의 책 중 한 권을 다 읽으면 또 비슷한 종류를 다시 한 권을 꺼내고 또 소설을 다 읽으면 다른 소설을 꺼내서 다시 읽는 식이다.

 

처음에는 한 권을 읽기 시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다른 책을 다시 읽는 방식이었는데 읽고 싶은 책이 너무도 많기도 하고 또 한 권의 책을 읽다가 지루해 지면 쉬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까워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책을 펼쳐들면서 이런 방식의 독서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섯 권의 책을 돌려 읽는 것이 나에게 제일 잘 맞다는 것을 어느 시점인가 느끼게 되어 지금은 다섯 권으로 돌려 읽기를 계속하고 있다.

다른 독서 고수들도 그러한 방식으로 읽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내가 깨달은 책읽기의 한 방법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었다 싶어 내심 흐뭇하게 느꼈던 적도 있다.

 

다섯 권의 책을 돌려 읽는 독서의 가장 큰 단점은 책값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책을 빌려 읽지 못하고 사서, 읽고, 모으는 사람이고 보니 더더욱 그렇다.

독서라는 것이 가속도의 법칙과 거의 비슷해서 어느 정도 읽다 보면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속도가 상당히 빨라지게 마련이다.

또한 읽을 책이 다 떨어져 가면 괜히 불안하고 마음이 놓이질 않으니 딱하기만 하다.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을 다 사지는 못하고 인터넷 서점의 카트에 담아놓는 아이쇼핑만 하게 되고 그 카트에 들어 있는 책들을 보며 대리만족할 때도 많다.

 

그러다가 가끔 보너스를 받는 달이면 큰마음 먹고 눈 딱 감고 수십 권을 골라 결재한다.

며칠 뒤 배달되어 온 책을 책장에 쌓아놓고 바라보면서 소파에 다리 쭉 뻗고 새 책을 한권 펼쳐들면 세상에서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없다.

 

누구는 이것도 큰 불치의 병이라 그러던데 병 중에서 제일 행복한 병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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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 130편 중에서 ‘열전’ 70편을 완역하여 상, 하권으로 나누어‘백이 열전’에서

‘번.역.등.관 열전’까지 35편을 싣고 있는 첫 번째 권이다.

 

‘열전’ 70편에 실린 내용은,

오제부터 한무제에 이르는 왕조나 군주들의 사적을 연대순으로 실은 ‘본기’에 실리지 않은 왕이나 제후를 위해 일했던 인물들의 전기를 신분을 초월하여 두로 주로 수록하고 있다.

인물들의 대부분은 당시 춘추 전국시대의 많은 왕들이 자신의 영토를 넓혀 패권국이 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던 전국 7웅들을 위하여 일했던 합종과 연횡책을 설파하고 활약했던 여러 유세가들의 행적이 많이 실려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청렴한 관리와 혹리에 대한 기록은 물론 여러 물산을 쌀 때 많이 사놓았다가 비쌀 때 팔아 큰 수익을 얻은 인물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군을 실어 놓은 점이 특이하다.

우리가 그동안 이름이나 고사 정도로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편마다 마지막에는 사마천 자신의 인물 평을 곁들여 놓았다.

이 각 인물평의 행간을 더듬어 보면 사마천이 이 ‘열전’을 기록한 깊은 뜻을 짚어볼 수 있다.

사마천은 이 인물평에서 훌륭한 업적이나 뛰어난 책략을 구사한 인물보다는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의지를 다 펴지 못했지만 자신의 의지를 굳굳하고 일관되게 펼쳐온 인물에게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군주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떳떳하게 주장하다 끝내 치욕적인 궁형을 받는 치욕을 감수하고서도 목숨을 부지하여 “사기”를 편찬하기에 이른 자신의 현실을 그 인물 속에 투영하면서 그 자신의 신념이 옳았음을 간접적으로 항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총 130편으로 이루어진 대작으로 중국 상고시대부터 사마천 자신이 살던 한 무제 때까지의 중국 역사를 다룬 방대한 역사서이다.

 

2년 전 우연히 ‘본기’ 1권을 읽기 시작한 후 전 권 일독에 도전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지금에 이르렀고 ‘열전’ 2권과 ‘세가’를 남겨놓고 있다.

 

얼마 전 어느 단체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독서 감상문을 모집하는 행사의 추천 도서 중에 “사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혼자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사기”란 책의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한 권으로 된 책도 아닌 적어도 다섯 권 이상인 책인데 도대체 그 중에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으라는 것인지 2년 넘게 “사기” 일독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 추천도서의 목록을 작성한 사람은 정작 “사기”의 전체적인 내용과 구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사기” 자체를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 일독에 도전하면서 겪은 황당한 일화 한 가지 더.

사기 ‘표’를 읽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서, 제목이 ‘표’인데 설마 책이 모두 칸칸이 줄로 그어진 표로 구성된 것은 아니겠지? 하는 미심적은 생각이 들었는데 아뿔싸!

책을 받아보았더니 그 두껍고 비싼 책이 모두 칸칸이 줄을 그어 만들어 놓은 그야말로 ‘표’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얼마나 황당한지 정말 “사기”에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사기”는 각 편을 읽으면서 쉽게 이해되거나 재미 삼아 읽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낯선 지명과 인물과 나라들이 얽혀서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루하기를 넘어 질리게 만들기까지 한다.

 

이러한 책은 단시간에 독파하기 보다는 중국 고대사에 대한 책을 함께 읽어가면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읽어가야 할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서라도 반드시 한 번은 일독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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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마치고 책을 한 권 끼고 쇼파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데 집사람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더니 밖에 좀 나갔다 올께 하고는 문을 나선다

어디 가는데?/반찬거리 사러 마트에

같이 갈래요?/싫어

왜요?/내가 없어야 아줌마들 만나면 원 없이 수다수다 떨 수 있잖아

그런가?

 

그렇게 현관을 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아내의 높아진 억양이 다시 들려온다.

당신 자전거 어디 뒀어?/거기

거기 어디요?/문 밖 계단 바로 거기지 어디긴 어디야?

없는데?/정말?

 

아내의 말에 밖으로 나가 계단 문을 열고 보았더니 정말 그 자리에 번호키로 묶어 놓은 자전거가 깜쪽같이 없어졌다.

순간,

또 누가 업어갔구먼 하고 중얼거릴 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 다른 주택에 살 때도 두어 번 자전거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지라 그때처럼 또 누가 훔쳐갔거니 하고 무심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그 전에 학원을 간 큰 놈 생각이 문득 나서 현빈이가 타고 간게 아닐까? 하고 아내를 돌아보았더니 넘어지면 코 닿을덴데 무슨 자전거를 타고 가요? 언제 학원 갈 때 자전거 타고 가는거 봤어요?/하긴 그렇지...

 

그냥 잊어버려/누가 가지고 가서 잘 타고 있겠지 뭐/

그렇게라도 말해야 아내의 마음이 조금은 덜 상할 것 같아서.

그런데도 아내는 분을 삭일 수 없는 듯,

아니예요, 관리실에 들렀다 와야 되겠어요. 현관 앞에 CCTV가 있으니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고는 시장 바구니를 끼고 내려간다.

 

아내가 나가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나도 괜히 부아가 치민다.

아내에게는 그냥 누가 업어갔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라고 말했지만,

그동안 타지 않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 번 해 볼까 하고 며칠 전에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바람도 넣고 이것저것 수리도 해서 갖다 놓았더니만 하필이면 이때 그걸 홀라당 업어가 버리다니.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화가 더 치밀어 밖으로 나가 애먼 담배만 빡빡 피워 댄다.

나쁜 놈, 누군지 몰라도 걸리기만 해 봐라/필시 이 주변에 있는 놈일텐데, 이 앞에 있는 학생들일지도 몰라/지나다 보면 한 번은 걸리겠지 내 그냥 두나 봐라/

 

아내에게는 그냥 두라고 했지만 혹시라도 관리실에 들러 CCTV를 확인하면 혹시 단서라도 잡을지 모르겠다는 은근한 기대까지 해 본다.

그런데 시장을 보고 온 아내에게 슬쩍 물어보니 관리실에는 들르지도 않고 그냥 올라왔단다.

왜냐고 물어 봤더니 자기가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는 말에 또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래, 좋은 일 했다 치고 잊어 버리자, 휴- 큰 한 숨 한번.

 

그러다 저녁 아홉시가 넘어도 학원 간 큰 놈이 오지 않아서 아내가 연락을 해 보면서 혹시 자전거 못봤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타고 갔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는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하는 말이,

거 봐 이 사람아 내가 현빈이가 끌고 갔다고 했잖아. 확인도 안해 보고 말야/

글쎄 이때까지 한 번도 학원가면서 자전거 타고 간 일이 없었잖아요?/

근데 왜 타고 갔대?/오늘 학원 마치고 학교에 갈 일이 생겨서 타고 갔다지 뭐예요/

 

자전거를 다시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까 괜히 혼자서 설량한 아파트 주민들과 이 시간까지도 불을 밝히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파트 앞 학교의 착한 학생들을 도둑놈으로 몰아갔던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

평소 혼자서 잘난 척, 마음 넓은 척 하더니 괜히 엉뚱한 사람들을 도둑놈으로 몰아세우고.

 

조금 있으니까 학원 갔던 아들놈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녀왔습니다!/

거실에서 비스듬히 앉아 있던 나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내를 향해 일부러 크게 소리를 친다.

여보! 자전거 도둑놈 왔다!!/

뭔 소리야??/

아들이 영문을 모르고 던지는 한 마디에 우리 부부는 와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자전거도둑,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