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얼마가 갖고 계십니까?

“그것은 정원에 잡초가 몇 포기나 있느냐는 질문과 같이 엉뚱하고 대답 불가능하다”

저자는 이렇게 답하면서 대략 3만 권 정도 보유하고 있으며 그것도 짐작만 할 뿐 정확히 세어보지는 못하고 셀 수도 없다고 말한다.

웬만한 서점만큼 책을 소장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문득 우리집에 책이 몇 권이나 있는지 세어보게 될 것 같다.

 

일본 장서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책의 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소개되어 있는 장서가들 중 이노우에 히사시는 무려 13만원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2만권에서 3만권에 이르는 책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흔하다고 할 정도이다.

 

이렇듯 보유한 책이 한계를 넘다 보니 그로 인한 웃지 못할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잘 곳도 없을 만큼 책더미가 집안 가득이 쓰레기처럼 쌓여 있는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과 책이 너무 많아서 2층집 바닥이 무너져 내린 사건, 책의 무게 때문에 집이 기울어져 다른 집으로 쫓겨난 이야기와 더 이상 보관할 장소가 없어 대여용 대형 컨테이너를 두 채나 빌려서 책을 보관하고 있는 사람, 책이 너무 많아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 나오는 집과 같은 1,2층을 관통하는 집을 지어 책을 위한 집에서 사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연들이 줄을 잇는다.

 

저자는 이러한 장서의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방안도 소개하고 있다.

책을 모으는 대신 필요할 때마다 도서관을 적절히 이용하는 방법과 전자서적을 이용하는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장서의 괴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보유한 장서를 모두 저렴한 가격을 매겨 ‘1인 헌책 시장’을 열어 벼룩시장 같이 일반인들에게 판매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1만 권이 넘는 보유 장서를 판매했으며 몇몇 장서가들 역시 이런 형태로 장서를 처분하기도 했다.

 

지혜롭게 책을 관리하며 독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서는 얼마나 되어야 할까?

저자는 5백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지식도 수집도 질이지 양이 아니다’는 장정일의 추천의 말이 지금도 책을 사서 읽고 모으고 있는 나를 뜨끔하게 만든다.

독서를 위한 책들이 어느 날 수집가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독서환경은 어떤 것일까?

“명창정궤(明窓淨几)”

중국 송나라 구양수가 이야기했던 서재의 모습이다

밝은 창문이 있는 깨끗한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고 그걸 읽으며 또 글을 쓰는 모습.

 

책을 한 권 모을 때 마다 욕심도 한 가지씩 쌓여갈 터, 한 권씩 버리고 버려서 마침내 명창정궤에 단 한 권의 책이 남는 날에야 비로소 책으로 이루고자 했던 궁극의 길을 찾게 될 터인데....

 

이 책에서 “장서의 괴로움”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이 사실,

책을 아름답게 정리해 놓고 그것들에 빙 둘러싸여 쌓여 살고 싶은 수많은 독서인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던 행복한 꿈을 이룩한 자의 자랑과 자부심에 다름 아니다.

 

장서가, 독서가, 장서의괴로움, 명창정궤

  흔히 강화도 시인이라 부르는 함민복 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2003년 나온 시인의 첫 산문집을 저자의 이름이 많이 알려지고 그의 작품도 함께 여러 미디어를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 후 다시 펴냈지만 저자의 글이 가진 진실성이 개정판을 내게 할 정도로 장수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의 산문에는 시인 특유의 섬세한 손길과 깊은 감성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평생 닦아온 시적인 감성이 산문에서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여리는 소리가 나 나가 보면 수십, 수백 마리 기러기가 하늘에 글자를 쓰며 날아간다. 살아우는 글자.”(천둥소리. 19p)

“꼬리를 흔들며 오는데 흔들리는 꼬리 때문에 자빠질 것 같은, 봄과 잘 어우러지는 앙증맞은 뜀박질이다.(가족사진. 38p)

"그림자가 외출해 다른 그림자를 만나는 것도 쑥스러운지 그늘에 살며 제 그림자도 만들지 않는다.“(가족사진. 39p)

"달이 밀어준 물을 태양이 바싹 말린 물의 사리, 물의 뼈, 바닷물의 정신, 소금. 죽음처럼 썩지 않는.“(소금. 196p)

 

  시인에게 있어서 가난과 슬픔 등은 어쩔 수 없는 자양분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형제들은 사업이 실패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시골 어머님이 기거할 월세 보증금 이백만원도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찌든 가난을 견뎌며 전전해야 했던 절절한 고백을 들으면서 저자가 왜 “눈물은 왜 짠가”라는 제목을 뽑았는지 이해하게 된다.

 

  가난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국비가 지원되는 공고에 진학해서 적성에 맞지 않는 기계실습을 익혀 겨우 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취직을 했지만 자신이 바라던 글쓰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 직장을 그만두고 만학도로 공부를 하여 작가가 되었지만 시가 밥을 먹여주지 못하고 가족들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홀어머니의 월세방 한 칸도 얻어줄 수 없는 무능력한 현실 앞에 얼마나 자책했을 것인가.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저가가 걸어온 삶의 행로가 내가 걸어왔던 길과 너무도 흡사하였으며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고향이 누구에게나 따뜻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고향에서 살았던 유년은 가난과 상처의 나날들이었다.(느티나무. 90p)

가난에 상처받고 늘 배고픔에 찌들었었던 고향에 관한 추억까지도 어쩜 그리 닮아 있는지.

 

  책 중간에 실린 저자의 시 한 편에서 눈길이 멈췄다.

언젠가 가슴에 너무 와 닿는 시가 있어 밑줄을 그어가며 몇 번인가 되새긴 적이 있었는데 책장 속을 아무리 뒤져 봐도 그 시를 발견할 수 없고 누구의 시인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찾던 그 시를 여기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전략)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 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서둘러 배달을 나갔다/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중략)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시인의 불우했던 날들에 대한 절절한 고백은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애써 감춰두었던 그 아픈 기억을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슬픔도 결국 같은 샘에서 나와 갈라진 계곡의 작은 물줄기와 같은 것 아니겠는가.

강화도시인, 함민복, 눈물은왜짠가, 눈물의의미, 홀어머니

첨단 스마트폰 시대에 아직도 2G폰을 쓰고 있다. 그것도 앞 번호가 016으로.

그렇다 보니 요즘은 이런 전화를 많이 받는다.

/밴드에는 다 올려 놓았는데 밴드를 못보는 전화라서..연락드립니다./

/카톡으로 전부 알려 줬는데 너는 카톡이 안되서 일부러 전화.../

/여보세요? 어? 통화가 되네? 아직도 이런 번호가...신기하다/

덕분에 전화를 받을 때마다 욕 몇 마디를 먼저 먹고 나서 용건을 들어야 되는 곤욕을 치른다.

 

그런데 정작 2G폰을 고수하고 있는 나는 그 불편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필요한 전화 걸고 받고 또 필요한 문자 보내고 받고 하는데 더 이상 무슨 불편이 있는가?

밴드나 카톡 등이 안돼서 연락할 일이 있으면 전화나 문자가 올테고.

 

모임에서도 나의 2G폰은 단연 화제의 1순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린다.

“야!! 제발 좀 스마트폰으로 바꿔라. 면 빠지게 그게 뭐냐? 내 하나 사 줘?”

“제품이 스마트하지 못한데 폰만 스마트하면 뭐하냐고? 그냥 내비 둬라“

“야, 회장. 쟤 이번 기회에 영구제명시켜 버려!”

만나기만 하면 항상 되풀이되는 주된 레파토리의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장점을 구구절절이 알려주면서

몰라서 그렇지 한 번 사용해 보면 왜 이때까지 이 좋은 것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나를 스마트폰의 신세계로 전도하기 위한 마지막까지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은 사업이나 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무실에서와 같이 많은 일을 해결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것이 바로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이다. 시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나의 주된 생활인 독서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독서를 위해 모든 생활을 단순화하고 다른 활동들을 최대로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밥 먹고 회사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는 것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생활 패턴이다.

 

밖에 나갈 때는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책을 펴들고, 집사람에 이끌려 쇼핑을 갈 때에도 쇼핑몰 한적한 곳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여자들에게 넉넉히 쇼핑할 시간을 주는 부수적인 효과가 생긴다.

사람을 기다릴 때는 독서가 지루하지 않게 만들고 늦게 온 사람을 탓하지도 않게 되어 좋다.

시내버스와 전철이 책 읽기에 몰입도가 좋다는 역설적인 사실은 생소하고도 참신한 깨달음이었다.

 

마흔이 넘어서 남들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독서라 다섯 수레-오천 권-를 읽는 것을 목표로 한 달에 열 권 정도를 읽고 있지만 이제 겨우 한 수레를 넘긴 사람으로서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갈 길은 먼 길손의 마음처럼 마음이 조금하고 가는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오죽하면 회사를 몇 년 빨리 그만두고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해 보려는 계획까지 세워봤을까?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쭉 2G폰을 고수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래, 나 2G폰이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2G폰, 남아수독오거서, 카톡, 밴드, 독서의장애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