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1. 살다 / 삶

허연 / 타자기    강정/돋보기    박형준/가로등    성동혁 /산소통

박철 /공   김성철/가방   이정록/이름.   전동균/ 찌    유병록/간판

장석남/저울    김태형/휴대전화

 

 

2, 보다 /시선

 

함기석/구두   전영관/냉장고    조영석/ 야구공       정영호 / 성냥

고운기/재떨이   윤성학/신문    주원익/사전    유강희/술병

함성호/치마

 

 

3.열다/세계

이원/이어폰   윤성택/ 편지     이현승/창       권혁웅/지도

여태천/연필      정해종/카메라     김경주/크리스마스실

조연호/침대     김해준/석유풍로     김안/사전

 

 

4.쌓다/축적

이승희/국수    서효인/도시락    박성우/가위    문태준/지게

김성규/조약돌    김남극/낫    유용주/위생장갑

이윤학/간드레      안상학/ 진공관엠프     박찬세/정화수

함민복/시계

 

5.원하다/욕망

황인찬/엘리베이터     이우성/의자    김언/담배    조동범/자동차

박후기/먹물     황규관/자전거      이이체/잔     오은/우산

박상수/카세트테이프    신철규/계단

 

 

 

	치자꽃향기가 좋아 코를 댔더니 그 큰 꽃송이가 툭 떨어지다 귀한 꽃 다친게 미안해서 손바닥 모아 꽃송일 감추었더니 합장 인산 줄 알았던가? 보는 이마다 합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 간다 어허, 여기선 치자꽃이 부처일세!   -김진경, <부처> 전문-       사물은 인간의 언어감옥에 갇힌 수인(囚人)드이다. 무죄이기 때문에 유죄가 언도된 종신형 수형자들이다. 시인은 말로써 사물의 유폐와 고독을 누설하는 자이고 , 말의 침묵을 통해 사물의 전생과 후생을 예감하는 자이다. 구두는 지금 내 눈앞에 놓여 있다. <있다>라는 영토내에 찰나적 존재로 <지금 -여기>에 있다.   P 63 구두/함기석 -       *이원( : 1968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   1992년 <세계의 문학>가을호에 시<시간과 비닐봉지>외 3편발표로 등단.   시집<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때,>  <야후!의 강물에 천개의 달이 뜬다.>  <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등이 있음. 현대시학작품상, 현대시작품상 수상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위해서이다' 라고 말한 건 앙리 케르티에 브레송이다. '일상 속에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결정적인 순간이 어디에나 있다. 이 세상에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 순간은 없다'라고도 덧붙혔다. P144  -정해종/카메라-

 

 

 

 

 

< 목차>

 

* 책머리에 : 카페라테 혹은 에스프레소?

 

1. 신은 누구를 원하는가?

  -괴테의 <파우스트> 1부 : '자기 체념'에 대하여

 

2. 악마마저 이겨낸 남자

- 괴테의 <파우스트>2부 : '자기 실현'에 대하여

 

3. 질풍노도를 잠재우는 법

- 헤르만헤세의 <데미안. :'성장'에 관하여

 

4. 관계의 미학

-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 : '만남'의 의미

 

5. 사랑과 질투의 함수관계

 - 세읷피어의 <오셀로> :'질투'에  관하여

 

6. 가족에 관한 냉혹한 진실

-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 '가정'의 의미

 

7. 참을 수 없는 일상과의 결별

- 사르트르의 <구토> : '일상'에 대하여

 

8. 텅 빈 무대의 대본 없는 배우, 인간

- 사뮈엘 베케트이 <고도를 기다리며> : '권태'의 의미

 

9.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 '반항'의 의미

 

10. 그 섬은 어디에 있을까?

- 최인훈의 <광장> : '유토피아'에 대하여

 

11. 당신들의 유토피아, 우리들의 디스토피아

- 이청준의 < 당신들의 천국> : '디스토피아'에 대하여

 

12.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 올더스 헉슬리의  < 멋진 신세계> : '인간공학'에 관하여

 

13. 빅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

- 조지오웰의 < 1984년> : '사회공학'에 관하여

 

14. 나를 찾는 시간여행, 회상

 -마르셀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회상'의 의미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세상에는 돈 후안( Don Juan)이나 네로 (Nero)처럼 이러한 원초적 단계에서 삶을 다 써버리는 사람들도 간혹 있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고, 사람들은 언젠가는 무절젤한 욕망으로 허덕이는 '지하실 속의 삶'에 절망을 느끼게 된다지요. 그럼으로써 '도덕적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내면으로부터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소리'를 듣게 되며, "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아니라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지요.< 파우스트>에서 그레트헨도 이런 단계에 도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파우스트에게 종교에 대해서, 세례에 대해서, 그리고 신에 대해서 불으며, 메피스토펠레스를 멀리하고 싶다고 하지요.  ...P 31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뉘우침과 죄의식이라는 실존의 처절한 절망감 속에서만 '무한한 자기 체념'을 할 수 있게 되며, 그제야 비로소 신을 발견하고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적어도 키르케고르에게는 , 신을 믿는다는 말의 '진정한'의미이지요, 그리고 바로 이러한 믿음, 오직 이러한 믿음을 통해서만 '자신마저도 용납할 수 없는 자기'를 신에게 용납받는 구원에 이른다는 겁니다. 그레트헨은 그렇게 해서 구원받았습니다. ! 그런데 파우스트도 그럴까요?   '무한한 자기 체념은 신앙앞에 전제되는 최후의 단계이다.' - 키르케고르 -  P 32     " 파우스트의 죄는 무엇인가? 안식을 모르는 영혼이다. 파우스트의 구원은 무엇인가? 역시 안식을 모르는 영혼이다."라는 에리히 헬러(Erich Heller)의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그렇다면 "누구든 줄곧 노력하여 애쓰는 이를 / 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라는 시구 속에 파우스트의 구원에 대한 열쇠가 숨겨져 있다는 괴테의 말이 지닌 뜻은 다름이 아닙니다. 누구든 자기실현을 위해 줄곧 노력하며 애쓰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알고 보면, 바로 이것이 독일 낭만주의의 궁극적인 이상이자 긍정적 목표였습니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자기실현이란 단순한 자아의 완성이 아니라 신적인 것을 닮아가는 것이며 진리의 구현이자 구원의 길이었지요.    P 46   정리하자면 , 괴테의 <파우스트>는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전혀 다른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 그레트헨이 갔던 무한한 자기 체념을 통한 '종교적 구원의 길'과 2부에서 파우스트가 보여준 무차별한 자기실현을 통한 '인간적 구원의 길'이 그것이지요. 전자에 비해 후자가 '세속적'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말입니다. 자 !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메피스토렐레스에게 대답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무한한 자기 체념'을 할 것인가? 아니면 ' 무차별한 자기실현'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시죠. 대답은 오직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 있지요.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그대는 무엇을 하였는가? -  F.니체 - P.52     싱클레어는 꿈에서 본 새의 그림을 그려서 데미안에게 보내지요.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자신의 책갈피 속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라고 쓰인 데미안의 답장을 발견합니다. 아브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인 신'이지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함께 소유하고 지배하는 신입니다. 이것은 데미안이 어느 세계에 속하든 다른 반쪽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함께 죄의식에 시달려야 하는 편협한 반쪽만 세계에서 벗어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충만한 세계로 나아갈 것을 싱클레어에게 요구한 것이지요.     헤세는 융보다는 프로이트를 더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적어도 <데미안.은 융의 분석심리학이 드리운 그늘 아래에서 쓰인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헤세가 창조한 인류의 이상인 에바 부인을 분석해보면 다분히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인간상임을 알 수 있지요. 그녀는 모성적이며 ㅗㅇ시에 부성적인 존재입니다. 융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내면에 있는 여성 원형인 아니마(anima)와 남성 원형인 아니무스(animus)가 통합을 이룬 존재이지요. 융의 < 원형과 무의식>에의하면 정신의 성숙은 원형들의 통합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남성의 경우 자신의 여성적 원형인 아니마와 , 여성의 경우 자신의 남성적 원형인 아니무스를 의식화 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거지요. 이렇게 통합된 정신을 그는 '자기(the self)' 라 불렀는데 , 분석심리학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이 ' 자기'의 실현으로 이루어지는 '개성화'에 있습니다. 헤세가 말하는 '자기 실현'과 융이 말하는 '개성화'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지요.   P 67   ** 오르텅스 블루의 < 사막>*** 그 사막에서 그는 / 너무도 외로워 /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그대(you)'라고 부르는 2인칭이란 매우 특별한 인칭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원래는 '나'라는 1인칭과 '그', '그녀'또는 '그것'이라는 3인칭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이러한 세계, 곧 나에게 그와 그녀는 3인칭 타자이고, 그와 그녀에게 나 역시 3친칭 타자인 세계에서는 나는 그와 그녀에게 또한 그와 그녀는 나에게 아무 의미와 가치가 없는 존재인것입니다. "만일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곧 타인이다." 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곧바로 떠오르는 세계이지요. 모든 3인칭 대상들은 나에게 파악될뿐 응답하지도 않고 나를 배려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그'는 그리고 '그'에게 '나'는 사실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것이나 같지요. 이런 세계는 '사물들의 세계'이자 '무의미의 세계'인 겁니다. 동시에 인간에게는 지옥이지요. 이 같은 의미에서 유태인 랍비이자 철학자였던 마르틴 부버...는 그의 저명한 저서<나와 너>에서 '나 - 그것'의 관계와 '나 -너'의 관계를 구분한 다음 이렇게 말했지요..  P 85   이아고의 말대로 '독약으로 내장을 쥐어뜯는 것 같은' 괴로움에 빠진것이지요. 이아고는 먼저 오셀로에게 " 오, 장군님, 질투를 주의하소서.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농락하는 초록 눈(green eyes)의 괴물입니다. " 라고 알려준 다음, 계락으로 오셀로의 마음에 그 괴물을 넣어주는데 성공한겁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영어권에서는 'greeen eyes'라고 하면 '질투하는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지요.   P 99     사랑이 싹트자 '늘 무언가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느김' 곧 허전함이 그에게 생겼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쓸쓸함, 이런 허전함은 권지예의 소설 속의 주인공들만이 가진 특별한 감정일까요? 아닙니다. 사실인즉 그것이 우리가 하는 사랑의 본질이지요.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크면 작든 결국에는 쓸쓸하고 허전해진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오래전 플라톤(Platon, B,C. 427 ~347)이 해놓았습니다. 플라톤의 대화록< 향연>에 보면, 사랑의 신 에로스(eros)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생일 축하잔치에서 만난 풍요의 신 포로스(Poros)와 결핍의 신 페니아(Penia)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핍과 풍요사이에서 헤매는 중간자가 되었지요. 에로스는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닮아 진, 선, 미 모든 것에서 가난하고 결핍된 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닮아 언제나 모든 풍요를 그리워하며 그것에 다가가려는 자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풍요를 향한 영원한 동경과 열병적 연모라는 에로스의 본능이 나온 거지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에로스의 이러한 본성을 '탐욕적'(acquisitiv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에로스는 완전하고 철저하게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이자, 결국에는 그와 하나가 되려고 하는 탐욕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에로스는 포로스에게 한없이 다가갈 수는 있지만 포르스와 하나가 될 수 는 없다는 거지요. 곧 사랑으로 상대에게 영원히 다가갈 수만 있을 뿐, 단 한순간도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로스로서의 사랑이 가진 존재론적 구조이자 한계인 거지요. 그래서 우리 사랑이란 깊어질수록 쓸쓸하고, 다가갈수록 허전해지게 마련인 겁니다. 알고보면 질투의 존재론적 자리도 바로 여기에 있는 거지요. 만일 사랑을 통해 완전하고 철저하게 상대를 소유할 수 있다면, 그래서 결국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질투라는 말은 아예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에로스 안에는 이미 질투의 씨앗이 뿌려져 있는 겁니다. P 111   ****소유할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엣 현대인의 소유욕에 의한 신경증적 증상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것을 언어의 변천 과정을 통해 설명하지요.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고대 언어에는 소유를 나타내는 '갖다(have)'라는 동사가 없었답니다. 그러다 언어가 발달함에 따라 점차 소유를 나타내는 말ㄹ과 어법이 생겨났는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언어적 변화가 농경사횡서 산업사회로 변한 지난 2~3세기 동안에 아주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거지요. 그 결과 현대인들은 이제 예컨대 '나는 이가 아프다'라고 하지 않고 '나는 치통을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나아가 '사랑한다', '원한다', '미워한다'와 같은 동사적 표현들을 '사랑을 갖고 있다' '소망을 갖고 있다', '증오를 갖고 있다'와 같이 소유를 나타내는 명사적 표현들로 바꾸어 표현한다는 거지요. 프롬은 통증, 사랑, 소망, 증오처럼 소유할 수 없는 정신적인 대상까지 소유의 대상인것처럼 하나의 물건으로 환원시켜버리는 언어 습관에서 소유에 대한 현대인의 정신병리적 집착을 보았던 겁니다. P 113   **** 신경림 시인의 <사막> 갑자기 나는 사방이 낯설어졌다/ 늘 보던 창이 없고 창에 비치던 낯익은 얼굴이 없다/ 산과 집, 나무와 꽃이 눈에 설고 스치는 얼굴이 하나같이 멀다/ 저잣거리를 걸어도 뜻모를 말만 들려오고 /찻집에 앉아 있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뿐이다/ 한동안 나는 당황하지만 웬일일까 이윽고 눈앞이 환해지니 /귓속도 밝아지면서 / 죽어서나 빠져나갈 황량하고 삭만한 사막에 나를 가두었던 것이 / 눈에 익은 얼굴과 귀에 벤 말들이었던가/ (...)/ 비로소 얻게 되는 이 자유와 해방감 /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 또 다른 사막임을 내 왜 모르랴만"     P 141   일상에 대한 혐오감 ! 바로 이것입니다. 23살의 청년 키르케고르가 파티에서 돌아와 '나 자신을 총으로 쏘고 싶었다"라고 말한 바로 그 기분 말입니다. 왜 여기에 있는지, 왜 먹는지, 왜 사는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사실상 자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거지요. 단지 일상에 빠져, 하루하루를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살고, 남들이 말하는대로 따라 말하면서 무의미하게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없어도 그만인 남아도는 존재, 곧 '여분의 존재'라는 거지요. 로캉탱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삶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진심으로 나는 삶이란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텅 빈 껍데기일 뿐이라고 대답할 것읻.(...)우리는 자기 자신을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니는 거북한 존재다. 어느 누구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모든 존재가 저마다 혼란한 마음과 불안감을 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스스로를 ' 여분의 존재'라고 느낀다."   P 145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어느 시대이고 그 구성원들은 일정한 관계로 맺어주는 통일의 원리가 필요한데 고대에는 감동이 그 역할을 담당했지만 현대에는 시기(猜忌)가 그일을 한답니다. 시기란 본래 뛰어난 자, 강한 자에 대한 찬양의 부정적 표현으로서, 그가 가진 어떤 것을 자기도 갖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강한자에 대한 무감동과 냉담이 사람들의 시기를 본래의 의미를 잃고 질적 구분을 흐리게 하여 자기가 강한 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를 자기처럼 만들려는 시기, 곧 그가 말하는 '무성격적 시기'로 바꾸어놓았다는 겁니다.   "무성격적 시기는 뛰어난 자를 뛰어난 자로 (적극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또 뛰어난 자를 소극적으로 인정하여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끌어내려서는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사실상 뛰어난 자가 아닌 것이 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아가려는 욕망을 낳는다는 겁니다. 시기심에 의해 사람들은 그의 소유나 생활방식에서 ,나아가 의견이나 신앙에서가지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길 원하게 된다는 거지요. 키르케고르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미리 내다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기는 평범하게 살려는 현대인들의 공통적 욕망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사회적 통합을 마련해준다는겁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동일하고 어느 누구도 자기보다 더 뛰어나지 않다는 생각에 평안을 느끼며, 다른 사람이 이 표준에서 벗어나 뛰어나게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지요. 이러한 수평화가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대중적 삶의 실체인데, 그 결과 대중만이 살아 있고 개인들은 모두 소멸하게 된다는 겁니다.   P 147        ****남아도는 존재들 사르트르는 남들을 따라서 말하고, 남들을 따라서 살며 그 안에서 평안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즐기는 대중적 삶의 본질, 곧 키르케고르가 수평화라고 파악한 그것을 순응주의(le conformisme)라고 불렀습니다. <구토>에 등장하는 카페 소님들, 산보하는 군중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평소에는 카페에 모여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대해 담소하거나 토론을 합니다.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지요. 그럼으로써 그들은 모든 것을 아는 대중의 일원이 되지만 사실인즉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개인이 됩니다.   P 148      " 자신의 힘을 다하여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의미있는 삶을 제외하면 삶에는 의미가 없다."   - 에리히 프롬     모어의 <유토피아>가 사회정의 실현에 목적을 두었다면 , 베이컨의 <신아틀란티스>는 과학기술에 의한 사회진보를 목표로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자가 인간의 욕구를 제한함으로써 인간을 도덕적으로 성숙시켜 자족할 수 있는 이상사회인 아르카디아를 구상하였다면, 후자는 생산을 증대함으로써 인간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는 이상사회, 곧 코케인을 꿈꾼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P 226   이명준의 좌절과 절망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도 밀실과 광장이 하나가 되는 어떤 기적적인 '제3의 길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찾는 일마저 여전히 쉽지 않아 사람들은 흔히 제3의 길을' 스킬라와 카립디스 사이로 난 길'에 비유하지요...P 230     "우리는 계몽되었고, 우리는 무감각해졌다"라면서 계몽주의가 냉소주의를 퍼트렀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P 259     슬로터다이크의 주장에 의하면 , 인간 문화, 곧 모든 휴머니즘문화는  동물로서의 인간을 길들이기 위한 '사육'이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은 일찍이 동물로서의 적응에 실패한 인간이 집을 만들어 가축과 함께 살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거지요. 즉, 동물들을 길들이는 동물의 '가축화'와 동물로서의 인간들을 길들이는 인간의 '인간화'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휴머니즘의 근원이라는 거지요. 슬로터다이크는 자신의 또 다른 스승인 니체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말을 빌려, 인류는 '늑대를 개로 만들고, 인간 자체를 인간에게 최선의 가축으로' 만들어왔다고 주장합니다. ... P259     슬로터다이크의 말처럼 신세계에서 사람들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학적으로 선별(Selektion)되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사육(Zhmung)되지요. 선별과 사육, 이 두가지가 기적적인 신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인데, 소설은 이러한 일이 실행되고 있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 조건반사 양육소'를 소개하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P263

 

 

< 목차 >

 

	< 녹번동 / 이해존 > 경향신문 당선작   1 햇살은 오래 전부터 내 몸을 기어다녔다 문 걸어 잠근 며칠, 산이 가까워 지네가 나온다고 집주인이 약을 치고 갔다 씽크대 구멍도 막아 놓았다 네모를 그려 놓은 곳에 약 냄새 진동하는 방문이 있다 타오르는 동심원을 통과하는 차력사처럼 냄새의 불똥을 넘는다 어둠속의 지네 한 마리, 조정 경기처럼 방바닥을 저어간다 오늘은 평일인데 나는 백족百足으로도 밖을 나서지 않는다   2 산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희끗한 뼈마디를 드려낸 절개지, 자귀나무는 뿌리로 낭떠러지를 버틴다 앞발이 잘리고도 언제 다시 발톱을 세울지 몰라 사람들이 그물로 가둬 놓았다 아물지 않는 상처가 곪아가는지 파헤쳐진 흙점에서 벌레가 기어나온다 바람이 신음소리뱉어낼 때마다 마른 피 같은 황토가 쏟아져 내린다 무릎 꺾인 사자처럼 그물 찢으며 포효한다   3. 저마다 지붕을 내다 넌다 한때 담수의 흔적을 기억하는 산 속의 염전, 소금꽃을 피운다 옷가지와 이불이 만장처럼 펄럭이며 한때 이곳이 물바다였음을 알린다 흘러내리지 못한 빗줄기를 받아내는 그릇들,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방 안에 고인 물을 양동이로 퍼낼 때 땀방울이 빗물에 섞였다 오랫동안 산 속에 갇혀 있던 바다가 제 흔적을 짜디짠 결정으로 남긴다 장마 끝 폭염이다 살리나스*처럼 계단을 이룬 집들을 지나 더 올라서면 산봉우리다 계단 끝에 내다 넌 내 몸 위로 햇살이 기어다닌다   * 페루 고산의 계단식 염전       < 간질에 대한 오해  / 이해존 >   이건 병이 아니고 단지 증상일 뿐이라고? 오래된 증상이 그 사람의 모양을 만들기도 하지 떨림의 징후가 감지되는 순간 두드러기처럼 온몸에 퍼져 나가는 뻣뻣함을 봐 떨림은 은유가 아니고 병이라고 나 아닌 누군가 내몸을 붙들고 있는 걸까 죽은 영혼을 몸에 싣는 영매도 이물감에 몸서리치잖아 아무렴, 황홀경 속에 뒤바뀌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야 보, 바로 눈앞 술잔이 용수철 장난감처럼 출렁이잖아 몸 속 기억을 모두 펼쳐봐 그 속에 나 아닌 많은 눈동자가 있다면 그건 이미 잘려진 기억일 거야 뼈마디를 자근자근 재어놓는 술에 취한다면 떨림을 잦아들게 할 수는 있지 한꺼번에 취할 수 있는 알약은 왜 없는 걸까 긴장하지 말라고? 마음보다 병이 저만치 앞서 있어 속수무책이야 봐, 바람도 없는데 이유 없이 머리카락이 흔들리잖아 떨리는 약포지가 놓쳐 버린 프라놀 한 알, 동전처럼 구르다 모서리에 숨어 버렸어 놀란 눈을 뜨고 날 바라보고 있지 공복에 집어삼킨 프라놀과 리보트릴* 동전처럼 짤랑거리며 몸 속 깊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 항진정제의 일종.         < 옆구리   / 이해존 > 옆구리에 방이 있다 방에는 식탁도 꽃병도 빗장도 없다 누구나 휘돌아 나갈 뿐 살이 되지 못하는...오래된 벽지를 뜯어내면 살내가 났다 벽지를 돌돌 말아 창문을 만든다 그 사이 옆구리는 더 넓고 어두워져 메아리만 키운다 당신에게 건넨 말이 다시 몸 속에 들어와 갇혀요, 탁자 위 메모도 없이 옆구리를 빠져나갔다   치명적인 옆구리의 사내가 있다 바람이 비닐봉지를 부풀리고 소주병을 쓰러뜨린다 무언가 쏟아내지 못한 것들이 쓰려져 옆구리가 된다 바람이 잔가지 쏟아낼 때, 사내가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 옆구리를 뒤져 본다 두툼한 주머니에서 두루마리 길게 풀려 나온다 꼬리처럼 드리우며 걸어간다   처음부터 식탁도 꽃병도 빗장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옹이 진 한 사람이 빠져나가고 한쪽 옆구리로 기울기 시작했다 희디흰 갈비뼈로 빗장을 걸고 옆구리를 베고 눕는다 언제부턴가 자주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고, 구멍난 주머니 속으로 따뜻한 내 살을 만져본다         < 안락한 변화  / 이해존 >   아침마다 뾰족한 구두가 계단에 긁힌다 도심을 꿰뚫어 올릴 듯 도로가 머리 위에서 달린다 내려야 할 곳 지나칠 때면 펼쳐진 책이 글러브처럼 공기를 낚아챈다 다시 회전문을 밀치고 계단을 내려선다 그 사이 폭설이 내렸고 산수유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렸고 구두코에 빗금이 늘어났다 보도블록으로 어둠이 배어든다 불빛 속으로 숨어들고 싶어 여려 얼굴 떠올린다 만나지 않은 사람, 이미 어제의 반듯한 코를 세웠고 나누지 않은 얘기 한쪽 귀만 떼어 갔다 주머니 속 눈알만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향한다 배치를 바꿔볼까, 오랫동안 서 있던 접이식 책상의 무릎을 꺾어 의자 대신 방석으로 놓는다 얼룩진 벽지 위에 피카비아의 카코딜 눈*을 붙여 놓는다 주머니 속 한쪽 눈알을 꺼내 붙여 놓는다 책꽂이와 침대의 위치도 바꿔본다 일테면, 그 사이 폭설도 없었고 산수유나무는 내내 마른가지를 늘어뜨렸고 구두코는 말짱했다 탁상달력은 열두 장을 돌아 처음 그 자리다 나는 다만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고 무언가 저지르고 싶은 일은 아무 일 없어 정말 다행이고   * 커다란 캔버스에 서명, 말장난, 낙서 경구들로 가득차 있고, 눈 한 개가 정신없는 관람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다         < 정글짐  / 이해존>   더 이상 낙서는 벽을 타고 오르지 않아요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위해 도배를 했어요 넝쿨로 뻗어나간 낙서들 덧발라진 벽지 속에서 시들어 가겠죠 안과 밖의 신열에 들떠 낙서 위에 눈물이 맺히기도 하겠죠 쭈글쭈글한 젖가슴에 살이 오르고 엄마는 할머니였다가 다시 엄마가 되었어요 평생 뜯어낼 일 없는 건물이 때론 조립식으로 지어지기도 해요 빼곡히 들어선 아이들 조립식 뼈마디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어요 균열 가지 않는 조립식은 통째로 삭아가요 햇살에 눈 찔린 채 마당을 달리고 문고리도 창턱도 오르기 위한 발판일 뿐이에요 아이들은 제 홀로 칭얼거리다 멎는 법을 배워요 넝쿨로 뻗어나간 그리움 건물을 휘감고 방 안에 어둠이 찾아와요 창문에 맺힌 이파리가 파닥거리며 꿈 속으로 들어가요 밤마다 아이들이 넝쿨을 타고 길끝에 다녀오곤 해요 한 번 흘러나간 길은 왜 돌아오지 않는 건가요, 벽에서 떼어낸 낙서가 아이들 가슴에 치렁치렁 넝쿨을 키워요       < 조명 점술가  / 이해존>   바닥에서 빛이 뻗어 나온다 여인은 바닥조명 위에 합성처럼 앉아 있다 그 주위로 사과궤짝이 놓이고 오래 된 노트가 펼쳐진다 지나는 사람들은 빈 페이지같이 표정이 없다 이따금 여인은 빛의 방석에 앉아 손짓을 한다 그때마다 불빛이 소맷자락의 풀린 올들을 비춘다 손내밀면 깔고 앉은 불빛이 순식간에 솟아올라, 일생을 통과할 것만 같다 사람아, 몸을 입어 마음이 시리구나 빔 속으로 잠깐씩 드러났다 사라지는 세계들, 바닥조명이 오래도록 지상의 점괘를 밝힌다 길흉이 불시착한다   바닥조명이 활주로처럼 놓인 북촌길 따라 걷는다 매일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여인 대신 오늘은 사과궤짝만 손님을 기다린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면 바닥조명에게 자리를 내어줬는지 모른다 바람이 바닥조명 위에 모래알을 쌀알처럼 뿌리고 간다 흩뿌려진 알갱이들, 점점이 괘를 이룬다 은행잎도 한 계절을 다하고 바닥조명 위에 잎맥을 내민다 누군가 밟고 간 발자국을 읽느라 빛기둥이 더 세차게 솟아 오른다 불편한 도시의 손금들이 붐빈다       < 네팔상회 / 정와연>   분절된 말들이 이 골목의 모국어다 춥고 높은 말들이 이 골목의 모국어다 까무잡잡하게 탄 말들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는 골목을 만들고 늙은 소처럼 어슬렁거리는 휴일이 있다 먼 곳의 일을 동경했을까 가끔은 무명지 잘린 송금이 있었다 창문 없는 공장의 몇 달이 고지대의 공기로 가득 찬다 마음이 어둑해지면 찾는 네팔상회 기웃거리는 한국어는 이국의 말 같다 달빗과 향신료가 듬뿍 배인 커리와 아짜르 손에도 엄격한 계급이 있어 왼손은 얼씬도 못하는 밥상 그러나 흐르는 물 속을 따라가 보면 다가가서 슬쩍 씻겨주는 손 그쪽에는 설산을 돌아 나온 강의 기류가 있다 날개를 달고 긴 숫자들이 고산을 넘어간다 몇 개의 봉우리가 창문을 두드린다 질긴 노동이 차가운 맨손에서 목장갑으로 낡아갔다 세상에는 분명 돌아가는 날짜가 있다는 것에 경배, 히말라야 줄기를 잡아끄는 골목의 밤은 왁자찌껄하거나 까무잡잡하다 네팔 말을 몰라 그냥 네팔상회라 부르는 곳 알고 보면 그  집 주인은 네팔 사람이 아니다 돌아갈 날짜가 간절한 사람들은 함부로 부유하는 주소에서 주인으로 지내지 않는다       < 낙과  / 정와연>   낙과를 파는 코너에 길게 줄서 있는 사람들 낙과를 사기 위해 줄이라니 마치 과일나무 밑을 두리번거리듯 수풀을 헤치듯 서 있는 사람들 옛말에 낙식은 공식이라 했는데 어떤 마음이 저리 길어 파치 앞에 기다리고 있나 모두 한번쯤 낙과였던 기억이 있다는 듯 체온이 묻은 낙과를 손으로 받아보았다는 듯 줄을 서 있는 태풍의 끝, 쓱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