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는 엄마 몰래 돈을 훔쳤습니다. 파란  만원짜리 한장을요. 사고 싶었던 문구세트도 사고 평소 먹고 싶었던 떡볶이도 먹고, 그토록 원하던 뽑기(달고나)도 10개나 먹고, 선애에게 달고나를 사주며 인심까지 썼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양심이라는 녀석이 스멀댑니다. 엄마나 언니가 지나가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고, 평소 좋아하던 오빠를 돈을 빼앗는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도둑이 제발이 저린 게지요. 주머니에 가득한 잔돈들, 이제는 그 돈이 짐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갈 곳은 집 밖에 없는 것을. 깜깜했던 자기네 집에 전등이 환하게 밝혀집니다. 구석구석 전등이란 전등은 하나도 빠짐없이 켜지네요.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하던 은지는 용기를 내어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남은 돈을 내밀지요. 엄마는 야단을 치는 대신 은지를 안아줍니다. 초2 둘째아이는 이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라고 하는군요. 엄마의 사랑이 느껴진대요. 엄마가 야단치지 않았어도 은지는 이미 충분히 벌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주머니 속 잔돈의 무게가 몇 백배나 늘어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으니까요. 

  또 가족이란 내가 잘못을 했을 때에도 나를 받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은지는 모든 마음의 짐을 털어내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엄마 몰래 돈을 가져가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지요. 때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금방 갖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떳떳하게 엄마 얼굴을 쳐다볼 수 있는 양심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을테니까요.



엄마몰래, 조성자, 김준영, 좋은책어린이, 은지

  가족의 사랑을 주제로 담은 책을 고르다가 발견하게 된 책이다. 명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사랑으로 뭉쳐지고 질서가 잡힌 대가족이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실려있다. 또 부모의 가르침은 아이들에게 올곧게 전달되고, 아이들은 서로를 도우며,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해 나간다.

  1906년에 발표된 작품이니 작품의 배경은 지금과 비교해서 낯설기만 하다. 음악교사인 아버지 패플링씨, 자상한 어머니, 그리고 올망졸망 일곱남매의 이야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 이 들 가족의 유일한 흠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외삼촌이 일곱남매 중 하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려 했던 계획을 포기한 것도 아이들이 예의바르게 잘 양육되었고, 질서가 잡혀 있으며,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에 대한 유대감이 강한 때문이었다. 오히려 외삼촌의 아이들을 패플링씨 집으로 보내 검소하면서도 단란한 가정의 본을 배우게 하겠다고 한다.

  어린이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어린아이들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돈을 중요시하는 요즘 시대에 가족의 진정한 의미란 어려울 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어려워도 함께 있으면서 힘이 되는 그런 존재임을 알게 한다. 물론 그 시대의 올바른 가정관과 지금의 가정관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가족의 의미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초등학생이 읽기에 적합하도록 명작을 다시 엮은 책이라 사건 하나하나가 너무 간단하게 기술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이야기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는 빠르지만 책 속에 푹 빠져들게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가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아그네사자퍼, 사랑의가족, 패플링, 중앙출판사, JDM

  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 작가가 유령의 존재가 실존했음을 믿어의심치 않는 정황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도 작가는 한걸음 떨어져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나 기록을 인용하면서 마치 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에 몰두하며 흥미를 일으키는 요소이다. 또 사건이 이루어지는 오페라 하우스라는 배경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라는 점과 실존 건물이라는 점도 이 책이 실화에 바탕을 둔 소설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작가는 전지전능한 시점을 버리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제 3자의 입장으로 한 걸음 물러남으로써 픽션에 리얼리티를 불어넣는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곤 하는데 ’유령’이라는 소재와 ’사랑’이라는 소재는 아마도 영원히 범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글감이 아닐까. 또한 오페라 하우스라는 예술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포와 사랑, 스릴러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와 관심 덩어리이다. 

에릭
  유령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그는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천재성과 크리스틴 다에에 대한 사랑은 눈물겹지만 잔인하여 살인도 마다 않는 그에게 과연 얼만큼이나 동정심을 가질 수 있을까. 흉측스러운 그의 외모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성이 결여된 악마의 모습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에릭을 동정하지만 나에게는 그의 측은한 사랑조차도 악마의 저주받은 사랑쯤으로 여겨진다. 그의 추악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가 착한 심성을 지녔더라면 크리스틴 다에는 라울과 에릭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끝내 에릭을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에릭에게는 ’음악천사’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천재적인 음악성이 있었고, 에릭의 모습을 보기전 크리스틴 다에 역시 그 목소리를 음악천사라 믿으며 에릭에게 교습을 받았던 것이다. 그 결과 다에는 프리마돈나가 될 수 있었다. 

크리스틴 다에
  에릭을 무서워하지만 그에게 일종의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라울로 하여금 질투심을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에릭이 아닌 라울을 사랑했던 다에는, 오페라 하우스 안에서 라울과 ’약혼놀이’를 하며, 에릭에 대한 동정심에도 불구하고(또한 다에는 에릭에 대한 공포심도 가지고 있었다) 라울과 함께 에릭을 피해 도망가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에릭은 조용히 그림자처럼 이 모든 계획을 엿들었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에릭에 대한 동정심으로 크리스틴 다에는 에릭을 위한 마지막 무대를 포기하지 않고 무대위에서 노래를 부르다, 그만 에릭에게 납치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페르시안이라는 갑자기 나타난! 도우미와 함께 라울은 그의 연인을 구하기 위해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세계로 잠입하게 된다.

페르시안
 에릭에 대한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일찌기 에릭의 목숨을 구해 준 적이 있는, 에릭에게는 생명의 은인인 사람이다. 그는 에릭의 과거와 라울과 함께 지하세계로 잠입해서 벌어진 사건들을 기록으로 남겨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진실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다. 또 에릭이 오페라 하우스에 살면서 갖가지 좋지 못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예의주시하면서 에릭을 연구하고, 크리스틴 다에를 구하기 위해 에릭이 설치한 비밀문을 작동시켜 라울과 함께 크리스틴 다에를 구하러 간다. 그러면서 에릭이 만든 고문실에 갇히는 비운을 겪지만 참을성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뜨거운 사막의 고통을 이겨낸다. 그러나 페르시안이나 라울 두 사람 다 크리스틴 다에를 구하지 못했으며, 오페라 하우스에 모인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죽이려는 계획을 갖고 있던 에릭을 저지시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페르시안과 라울을 구하고 오페라 하우스 안에 있는 수천명의 목숨을 구한 것은 바로 크리스틴 다에였다.

  크리스틴 다에에 대한 삐뚤어진 사랑으로 수많은 목숨과 함께 자기의 인생을 끝내려했던 에릭은, 크리스틴 다에게 보여준 단 한 번의 진실한 사랑에 마음을 열고 악마가 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선행을 실행한다. 라울과 크리스틴 다에의 사랑을 인정하고 두 사람을 풀어준 것이다. 물론 다에와 라울은 실종됐다. 먼 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아마도 에릭이 죽은 자와 같은 흉측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성장했더라면 그는 악마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업적들을 남기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전도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의 외모보다는 심성이 중요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려는 본능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쓸쓸히 죽어갔다. 크리스틴 다에와의 추억이 깃든 금반지를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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