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책은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책을 읽지 않은 채 책 표지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다.
시리즈 전체를 책장에 한 줄로 늘어놓고 자랑하고 싶은 기분이랄까.
책을 수집하는 기분을 제대로 만끽하게 해 주는, 그림과 내용도 부담스럽지 않은
디자인이 너무 예쁜 위인(?) 시리즈다.
(함께 받은 엽서와 탁상 달력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이 미술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이종출판사에서 나와 왠지 안심되는 기분이랄까.
다만 표지의 얼굴들 표정은 좀 다양했으면 좋겠다)

사실 제인 오스틴을 읽을 땐 내용이 조금 빈약하지 않은가 아쉬움이 들었는데
버지니아 울프 편은 더욱 꽉 찬 내용들이 잘 요약 발췌되어 정리돼 있었다.

번역도 깔끔했고 니나 코스포드의 일러스트는 글의 느낌을 더욱 배가시켜 책읽는 즐거움을 한껏 고조시켰다.
이 책만으론 작가에 대해 대략적으로밖에 알 수 없긴 하지만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기엔 괜찮을 것 같았다.
아쉬운 것은 책이 예쁜만큼 작가의 삶을 기술할 때 예쁘게만 표현하려 들지 말고
그닥 녹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는(혹은 암시하는) 한 단락만 더 있었어도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왜냐하면 처한 환경이나 작가의 지병과도 같은 우울증 같은 것에 대해 배경설명 없이 너무 간략하게 처리해버리면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가 책을 봤을 때 작가에 대해 오해할 여지가 남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종류의 책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너무 깊이 들어간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책에 대한 관심의 또다른 표현이니까.

 

장편소설<호모 도미난스>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장강명 작가에겐 이야기꾼으로서의 힘이 있달까.
이번에 읽은 단편에서도 작가가 이야기를 꾸려가는 힘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알바생 자르기>는 제목부터 만만치 않은 주제의식을 예고한다.
갑질의 횡포나 비정규직 문제 고조와 관련되어 사회적 분위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소재인 만큼
제목 자체부터 갈등이 전반에 깔려있어
소설에 대해 이러저러한 것들을 짐작하고 기대하며 읽게 되기 때문이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작가는 열심히 고민한 것 같다.
소설은 별다른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재미있었고 긴장감이 넘쳐 흘렀다.
갑으로 설정된 화자, 미화되지 않은 을, 그리고 갑의 또다른 갑까지.

다만 첫문장은 좀 거슬렸다.
주제가 예민한만큼 첫문장이 내포하는 분위기가 소설 전체를 장악하는 만큼
자칫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오도하는 문장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첫 문장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굳이 따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놓고 봤을 때 첫문장은 정말 많이 아쉬웠다.
소설 자체가 충분히 괜찮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나저러나 K 픽션 시리즈는 볼 때마다 뿌듯한 느낌.
다만 작가의 노트는 어떻게 안될까 몰라.
볼때마다 작품에서 좋았던 느낌이나 작가에 대해 품고있던 환상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아무리 외국인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작품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작품으로서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 대한 작가의 지나치게 친절한 우리나라 현상황에 대한 구구절절 후기는
읽는 내내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 ㅋ
외국에는 이런 문제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작가는 보편적 정서, 세계적 정서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가 싶어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라.

여하튼 작품 아주 재밌게 잘 읽었다.

1943년 발표된 르네 바르자벨의 <대재난>
70년이 지난 2015년에 읽는데도 책을 읽는 내내 압도적인 느낌에 사로잡혀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동안 봐왔던 SF문학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동안 생각해왔던 SF문학은 이런 것이다라는 안일한 생각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정말 놀라운 책이다. 이를테면 SF 문학의 진수랄까.

르네 바르자벨은 작품 속에서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닌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 욕망의 진보를 구현해놓았다.
가령, 영생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범죄와 연결시켜놓은 부분을 보자.
무덤은 사라졌다. 산 사람들은 그들의 거주지 안에서 죽은 사람들(귀신이 아니다)과 함께 산다.
냉동 기술 및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한쪽 공간에서 공존하며 가장 좋은 모습으로 보존돼 자식과 손주들에게 잊히지 않는다.
그들은 부모의 모습,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늘 만날 수 있다.
살인자들에겐 잊히는 형벌을 부과한다. 이를테면 죽은 후 냉동되는 것이 아니라 용해되는 것이다.
때문에 형체가 사라진 그들은 영원히 잊혀지고, 범죄율은 필연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 
눈에 보이는 한 잊히지 않는다는 단순한 명제의 시각화를 통해 죽음을 극복했달까.

그러나 이 놀라운 문명은 어느 날 불현듯 전기가 사라짐으로써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전기가 사라진 문명의 참혹함,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하고 누려왔던 만큼
도구가 사라진 인간의 연약한 신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작중인물 프랑수아의 말대로, 자연이 모든 걸 제자리로 돌리는 것처럼,
이제 원시시대로 돌아가 직접 손과 발, 몸을 사용하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전기가 사라짐으로 시작된 대재난은 낯설지 않다. 만약 바로 지금 전기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겪게 될 대재난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라 더욱 섬뜩하게 와닿는 현재적인 문학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왜 그의 작품들이 '예지 문학'이고, 작가가 '예언자'로 불리우는지
자연 느끼게된다.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상에 다름아니니까.

즐거운 책읽기였다. 일독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