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문학의 묘미는 이야기가 어떤 틀 안에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면서 변화하는 데 있는게 아닐까 싶다.
누구의 입에서 이야기 되는가, 어떤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만나 노래되고 있는가,
어떤 문화가 더해지거나 빠졌는가. 등속에 따라 이야기가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알파미시>는 우즈베키스탄의 장대한 다스탄, 영웅서사시다.
파질 율다시-오글리라는 구연가에 의해 암송되는 이야기들을 러시아어로 번역, 기록한 뒤
다시 한국어로 번역된 구전 작품이다.
이야기이자 노래이기 때문에 읽을 때 어떤 율동감이 느껴져 막대한 분량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수월하게 읽힌다. 또, 기존의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아 같은 서양의 영웅서사시에 익숙해져있는만큼
중앙아시아 소수민족의 영웅서사시는 새롭고 신선한 기분이다.
물론 영웅서사시하면 떠오르는 기본 골조인 '고난을 겪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비슷하지만
그 사이사이를 메꾸는 맛깔나는 유목민들의 문화와 생활양식, 가치관이 담긴 이야기 색채나
기본적인(아무래도 민족적인?) 정서가 서양의 문화와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다스탄)들은 사실 실제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생성된 인물들이라 하니,
우즈벡인들의 민족적 정서와 용맹, 흥과 한이 더욱 실감나게 녹아든 듯 하다.
문학의 다양성을 만나게 해 준 아시아 클래식, 앞으로 주목해서 봐야 겠다. 

 

베스트셀러보다 좋은 작품을 읽고 싶은 독자라면,
이 소설은 일종의 로망이 될 것 같다.

오 봉 로망, 이 특별한 서점에선 신간 소개도 없고 베스트셀러를 판매하지도 않는다.
이곳에서 파는 소설들은 <좋은소설위원회>의 위원들(저마다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며 살기를 원하는)의 철저한 심사를 거쳐 오로지 작품성으로 인정받고
좋은 소설로 평가받은 작품들 뿐이기 때문이다.
오 봉 로망은 곧 입소문과 함께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고 사람들로 꽉 차게 된다.
갈등은 이 지점에서 생긴다. 현실에 이런 곳이 존재하고 유지되려면 맞닥뜨리게 되고
결국 왜 이런 오 봉 로망같은 곳이 무너질 수밖에 없고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지
이 소설은 다소 우화처럼 이 갈등 지점의 이야기들을 그려보이고 있다.
이런 서점계의 유토피아같은 오 봉 로망을 흠집내려는 상술과 학연 지연같은 것들이 범벅된
기존의 출판 관행, 출판사에서 작가, 문학상과 만들어지는 베스트셀러,
온라인에서 오프라인까지 방해와 위협이 뒤따르고
실제로 신분이 완벽하게 숨겨져있던 좋은소설위원회의 위원들이 하나 둘씩
신체적 공격과 정신적 위협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다들 똑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과연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는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 아니 뭐가 베스트셀러인지 조차 모른다.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는 거의 이러저러한 이익, 관계들이 얽혀 만들어지는 편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에 정보가 부족한 독자들이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에 미혹되어
너도나도 가세해서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작가나 작품을 접할 때 인터넷에서 여러 서평들을 읽어본 뒤
참고해서 구입하는 편이다.
아마도 책을 구입할 때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독자라면
늘 새로운 좋은 작품이나 작가를 만나고 싶은 열망이 있다고 해도 좋지 않을지.
오 봉 로망 같은 곳이 현실에 있다면 얼마나 매혹적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일러스트가 곁들여진 여성 위인 시리즈, life Portrait.
역사상 자신의 삶에서, 열정을 바친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역사적으로 하나의 획은 그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리즈다.
책이 참 러블리하고 가독력이 좋아 앉은 자리에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어렸을 때 열심히 읽었던 작은 글씨의 두툼한 위인 전집을 생각해보면 아예 차원이 다르달까.
내가 어렸을 때 이렇게 예쁜 위인 전집 시리즈가 나왔다면 공부 개념이 아닌
크리에이티브한 느낌으로 책을 읽는 시간이 참 즐거웠을 것 같아 요즘 아이들이 부럽기도하고 
어렸을 때 위인 전집의 빼곡한 글들을 정말 열심히 읽었던 한 사람으로서 아쉽기도 하고.ㅋㅋ 

제인 오스틴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였다.
작가에 대해 아무 배경 지식도 없이 읽는다면 그녀의 작품들은 소위 말하는 로맨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가 능력있고 가문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으로 러브스토리가 완결되는 이야기들에
왜들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시절, 나는 작가가 늘 과대평가되었다고 작가를 폄하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과 그녀의 작품들을 이해하려면 그녀가 작품을 쓰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로맨스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단순히 로맨스물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 같달까.
여자가 글을 쓰고 책을 내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쉽지 않았던 시대에 그녀는 힘겹게 쓰고 출판했다.
그녀의 작품은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앞서 나간 능동적 주체로서의 여자가 쓴 작품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이 짧은 시리즈에는 전혀 닮겨있지 않다.
책은 예쁘다. 하지만 책 속의 위인들, 특히 여자들의 삶은 그렇게 곱고 예쁘게만 포장할 수 없다.
때문에 책이 예쁘기만 해선 정말 곤란하다. 제인 오스틴 같은 경우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야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