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전설 속 마법사와 역사 속 마법사로 파트를 나누어
신화 속 혹은 실제로 존재했던(한번쯤 들어봤던?) 이들에 대한 신비하고도 기이한 이야기를
한때 유행했던 티브이 프로그램 '믿거나 말거나'시리즈처럼 실감나게 전해주고 있다.
(읽다보면 일괄로 마법사로 통칭할 순 없을 것 같고,
15명과 관련된 판타지가 곁들어진 신기한 이야기에 가까운 것 같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출판되긴 했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에
새로운 색깔이 덧칠해지는 느낌(?)이라
이런 판타지 분야에 관심이 있는 성인이라면 처음 읽는 양 흥미롭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 또한 흠 그랬단 말이지~ 이러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
문득 최근 해리포터에 푹 빠진 조카에게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다 읽은 녀석의 반응이 벌써부터 궁금해지니 말이다.
아이들이 퍽 좋아할 것 같은~ 정보와 이야기가 잘 조합된 책이다.

또한 안토니오 텔로라는 스페인 작가는 서양 뿐 아니라 동양 속 이야기까지 아울렀는데
 <반지의 제왕>의 모티프가 소개되어
구전과 문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
역사가 마치 신화처럼 소개되기도 하는 등
묘하게 경계선을 왔다갔다해서
어렵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역사속 마법사들 파트에서 이러저러한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도스토예프스키 말마따나 현실보다 환상적인 것은 없는 것 같으니
참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빨간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얼굴엔 주근깨가 한 가득~한
닮은 듯 다른 사랑스러운 두 명의 여자아이,
하면 보통 누가 연상되는가.

아마 빨간머리 앤과 삐삐 롱스타킹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삐삐 롱스타킹이란 놀라운 캐릭터를 창조한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빨간머리 앤의 열광적인 팬(?)이라고.

이를테면 빨간머리 앤과 삐삐 롱스타킹은 '내가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를 가르쳐준 작품이다.

빨간머리 앤이 중학교 시절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자리잡았다면
삐삐 롱스타킹은 초등학교 시절, 내 우상이었다.
앤이 꿈꾸는 몽상가 타입이라면
삐삐는 몽상을 현실에 옮겨놓는 모험가 타입이었다.

그렇게 '나'라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삐삐를 처음 만난 건 어릴 적 티브이에서였다.

처음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있고 어질러진 뒤죽박죽 별장, 을 봤을 때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그 기이한 산뜻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쓰레기더미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 보물처럼 숨어있던 진귀한 물건들,
이 장면은 어쩌면 내겐 최초의 고정관념 혹은 편견의 파괴와도 같았다.

엄마아빠 없이 원숭이 닐슨 씨와 베란다에서 먹고 자는 말 한마리와 함께 사는 여자아이.
학교도 가지 않아도 되고 금화가 가득 든 가방을 갖고 있는,
힘이 무지무지 쎈 정의의 사도 같은 아이.

엄마는 천사, 아빠는 식인종의 왕이라면서
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한 믿을 수 없이 놀랍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거짓말인 듯 거짓말이 아닌 양 쏟아놓는 삐삐의 네버엔딩 스토리에
토미와 아니카처럼 한없이 빠져들었다.

가만 삐삐에 관해 알고있는 사실들을 모두어봤다.
'자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주 일찍부터 '자유를 찾아 침묵' 이라는 묘비명을 정해둘 만큼
자유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온 나.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던 삐삐를 보며 느꼈던 '환상적인 가벼움'의 즐거움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폐렴에 걸린 딸 아이에게 들려주던 이야기가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가 됐다.
올해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탄생 110주년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오리지널 일러스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작가의 작품을 읽는 일은 늘 설레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도전은 까다로운 내 독서편력을 고려해볼 때 거의 실패를 담보하므로
쉽지 않지만, 때문에 (남들은 잘 모르는)좋은 작품을 우연치않게 만났을 땐
은밀한 즐거움을 먼저 누릴 수 있어 기쁨이 더 배가 된다.
이를테면 이번에 읽게 된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같은 작품!
이런 작품을 만나면 이런 지난한 도전을 계속할 수 있는 새힘을 얻게 된다.
밀도높은 문장의 연속이라 읽기가 쉽진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간결하고 빈틈없는 문장들, 그 문장 속에서 적절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감성과 사색이 담긴 여백의 문장들은 단연 돋보인다.
특히 장 라신에 대한 묘사는 너무 매혹적이라 책을 손에서 놓는 일이 아쉬울 정도.
작품 전체가 장 라신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모두어지고
현재 여자의 이야기(비록 이 작품 자체가 이 여자의 사랑의 상실에서 시작되지만)가 빠졌다면
작품이 더욱 완성되었을 것 같아 영 아쉽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날마다 언어 조각들을 모아 그것으로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고 싶어'하던
여자의 욕망에서 시작됐다.
티투스와 베레니스는 사랑을 버리고 왕위(나라)를 택했다.
"티투스의 단념은 그녀 살갗에 남은 검은 점이다."(p.10)
그러나 아이러닉하게도 티투스는 오래 살지 못했다.
실제 로마의 황제의 이야기다.

장 라신은 이 이야기를 각색해 극장에 올렸고,
여자는 장 라신(사랑의 슬픔을 매우 잘 묘사했던 극작가, 시인)을 그렸다.
여자는 라신 덕분에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가 필요 없었다.'그녀의 지인들은 닳아서 해졌다.'

작품 소개는 여기까지. 한번 읽어보시라.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