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통 소설의 힘과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전민식 작가의 <9일의 묘>!

 

1979년 10월, 대통령이 암살된 후 장례가 치러지는 9일 동안
정권을 둘러싸고 제각각 왕위의 오르려는 자들의 치열하게 대결하는 욕망이
'묘터'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조상의 묘를 잘 쓰면 후손이 잘 된다, 왕좌에 오를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미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비어있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왕의 묘터' '전설의 묘터'를 찾아
사람을 죽이는 일은 물론 다른 사람의 묘자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파헤친 뒤
조상의 묘를 몰래 암장하는가 하면, 더 좋은 묘자리를 찾아 조상의 묘를 이리저리 옮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풍수사 중범과 지관 도학이 있다.
마치 태풍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잎사귀처럼 단지 살고 싶었던 그들.
군인들의 시대, 군인이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가 되버리고, 그에 걸맞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그 시절을 몸으로 직접 겪진 않았지만 역사 속에서 분명히 존재했던 한 시대이기에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와닿아 씁쓸했다.

 

이야기 구성도 좋았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잘 전달된 듯 싶다 
다만 문장에 있어선 자연 묘사를 패턴처럼 반복하며 등장인물의 내면을 투영하고자 했던 게 좀 지루했다.
간만에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다. 일독 추천!

 K-픽션의 12번째 작품은 작품마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넉살 좋은 입담과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이기호 작가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작가가 과연 착하다는 개념을 어떻게 전복시켰을지 기대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의 마지막 장에서

그리고 지금 여기에, 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지에 대해서.

라고 매듭짓고 있다.

돈을 떼먹힌 권순찬은 떼먹은 사채업자의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다.
그를 동정하는 재건축 아파트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선한 의도가 권순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아파트 사람들의 감정 변화와 권순찬에 대한 적개심.
정작 사채업자는 나타나지도 않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좀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보며
안타깝다가 화를 냈다가 이해했다가 흘려버리고 잊어버리곤 했던 자신을 떠올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래서인지 '적'이라는 개념과 그 '적'에게 화를 내는 일에 관해 작가가 너무 한 단면만을 보여준건 아닐까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사회는 평면적이지 않고 때문에 이상과 달리 적을 제대로 아는 일만으론 거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K-픽션은 단편소설 한 편과 작가 노트, 그리고 작품에 대한 평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읽기전엔 구성이 알차구나~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작품이나 작가 노트까지만 들어가고 평론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에 대한 평론도 아니고, 단편소설 한 편만 가지고 평론하자니 그저 장수 늘리기에 다름아니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한국문학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소설은 작품으로 평가받으면 된다. 괜히 구구절절 상품 포장식 평론이 껴서 찬물 끼얹진 말아줬음 좋겠다는
나름의 생각.
 

 

우선 K-FICTION 시리즈가 있는지 몰랐던 터라
요번에 이러한 시리즈가 있다는 걸 알고 꽤 반가웠다.
시리즈 전체를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욕심이 들었다.

K-POP이나 K-DRAMA에 이어 한국 소설이 또다른 한류 문화로 자리매김할 날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까.
물론 신경숙으로 표면화된 문단의 여러 치부들을 생각해보면
살아있는 동안 이뤄질 것 같진 않은 꿈같은 얘기일테지만 말이다.

한국 문학은 오랫동안 단편에 치중하면서 한국 단편소설 특유의 미학을 만들어왔다.
때문에 K-픽션으로 단편소설 시리즈가 선정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리라.

K픽션 11번째 작품은 요즘 문단에서 핫하게 주목받는 신진작가 이장욱의 올드 맨 리버다.
미국에 입양된 알렉스가 부모를 찾기 위해(그러나 핏줄에 끌려서, 뭐 이런 건 아니고
왜 자신을 버렸는지 묻기 위해서란다)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입양했던 부모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되짚어보는데.

가령 히스 레저의 문신에 관한 이야기.

내 팔에 있는 문신 'old man river'는 그저 노래가 아니라 몇 가지 뜻이 있다.
(...)내 사람은 그 강을 따라 노를 저어 내려가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나는 내 길을 가고 있고 삶은 막 속도를 높이려한다. 아마도 나는 속도를 늦추고
삶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서사가 중심인 소설은 아닌지라 굵직한 사건은 없다. 
그저 조곤조곤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강물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모호하게 삶처럼 흐른다.

아마도 소설적 배경이 다소 영향을 주었겠지만(설정에 관한 한 작가는 영악하다)
그래도 이 시리즈가 k 픽션이라고 생각해봤을 때 외국 소설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뒷 부분의 평론가들의 찬사는 아주 많이 어색하다.

더불어 k-픽션이란 어떤 이야기의 얼개를 가져야 할까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