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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인터뷰] 한량 음악가 티어라이너의 여행 멜로디

자칭 한량 음악가 티어라이너.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그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를 여행하고 책을 펴냈다. 2009년 떠난 여행인데 책을 내는 데는 꼭 3년이 걸렸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책 출간을 미뤘고, 글이 써지지 않으면 하루 종일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보며 지냈다. 말 끝마다 ‘느릿느릿’ ‘한량’ ‘게으르게’ ‘무심하게’라는 단어을 내뱉는 그다.

하지만 <느린 청춘, 문득 떠남>은 결코 느리지도 게으르지도 않다. 골목길에서도 많은 장면을 담았고, 길 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기타를 내려놓고 떠난 여행길에서도 멋진 선율을 만들어 여덟 곡의 음악을 책 안에 실기도 했다. 책의 음악감독이 되고 싶었던 그의 바람이 담긴 작품이다. OST가 담긴 자신의 첫 책, 그리고 8년 만에 2집 앨범을 낸 며칠 뒤 홍대에서 티어라이너를 만났다. “음악이 싫어서 떠난 여행이었다”고 무심히 내뱉는 그에게서 여행, 일상, 그리고 음악에 대한 그의 진지하지만 조금은 삐딱한 시선을 들어보자.

<느린 청춘, 문득 떠남>의 원고는 3년 전에 완성되었다. 2009년에 드라마 ‘트리플’ 음악 작업을 끝내고 두 달간 떠난 여행이었다. 책이 나오기까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냐는 질문에 그는 “게을러서”라고 말한다. 1집 앨범이 나온 지 8년만에 정규 2집이 나온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그는 즐기지 못하고 여유롭지 못하면 뭐든 하지 않는 성격이라 언제나 결과물도 드문 뮤지션이다.

“다녀와서 책은 바로 쓰기 시작했는데 게을러서 많이 놀았죠. 첫 책이라서 많이 몰랐던 것도 있었고요. 책이 대개 300페이지 정도 되잖아요. 그래서 저도 원고 300장은 써야 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이건 장편소설 3권 분량이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글을 빼고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원체 ‘느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에요.”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커피프린스 1호점’ 작업이 끝나고 이윤정 PD와 함께 진행한 드라마 ‘트리플’. 연거푸 드라마를 끝내고 그가 든 생각은 ‘여행을 가고 싶다’였다. 휴식 때문도 아니고 방황도 아닌 여행의 이유는 ‘책’에서 나왔다.

“책의 음악감독을 하고 싶었어요. 소설이든 시든 수필이든 제가 좋아하는 책의 음악감독을 해보자. 이게 출발점이었죠. 드라마 감독과 음악 이야기를 나누듯, 작가분과 작품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책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내가 책을 쓰면 내 음악과 더 잘 맞지 않을까.’ 사실 OST 작업은 제 기피대상이거든요. 한번 하면 10년이 늙는 기분이라(웃음). 그런데 책 OST 작업은 하고 싶더라고요.”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그이지만, 그에게 드라마 OST 작업은 언젠가부터 부침으로 다가왔다. 드라마 편집본을 받아 어울리는 음악을 맞춰보고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내 음악이 아닌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넣는 일도 많아지기도 했다. ‘내 음악이 잘리고 남의 음악이 오케이 되는’ 상황이 재미가 없었고, 흥미를 잃으니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직업적인 매력 또한 감소됐다.

그런 그가 기타 없이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글과 함께 음악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뭘까.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뮤지션의 속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느린 청춘, 문득 떠남>에는 그렇게 여덟 곡의 OST가 QR코드로 숨겨져 있다.

“만약 제가 작업한 드라마 OST에 외국 음악이 많았다면, 사실 그건 뮤지션으로 부끄러운 일이에요. 제 음악이 잘리고 외국 음악이 들어간 거니까요. 그런데 책은 제 노래를 마음껏 넣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책은 여행에세이지만 OST를 할 생각이 없었다면 쓰지 않았을 거예요. 음악을 할 수 있었기에 쓰게 되었고, 그 생각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죠.”

그래서일까. 티어라이너는 두 달간의 여행에서 ‘멜로디’를 얻었다고 말했다. 작은 배낭에 노트북과 옷가지만 들고 떠난 여행이라 흔한 기념품 하나 없이 돌아왔지만 얻은 것이 있다면 음악이라고.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해요. 드라마 음악 작업은 하기 싫었는데 왜 책 음악 작업은 하고 싶었을까. 아마 전 제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여행에서 한 생각이 멜로디가 되고 책이 된 걸 보면요.”

<느린 청춘, 문득 떠남>에서 여행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독자들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여행에세이에 여행 정보가 없는 것에 대해 티어라이너는 이렇게 말한다. "그 동안 읽은 수많은 여행에세이들은 늘 저를 떠나게 만들었지만 어떠한 정보를 준 적은 없다"고.

“제가 직접 책을 쓰기 전까지는 대체 왜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세이를 쓰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어요. 독자들이 책을 통해 얻고 싶은 건 여행지에 대한 정보이지 작가의 생각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정작 가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검색어 하나면 여행 전문 서적부터 블로그까지 다 나오는 세상에서, 여행에세이의 가치는 ‘작가의 감정’이더라고요. 제가 가고 싶던 그 도시에서 어떤 이가 느꼈던 감정을 공유해보는 것. 당장 갈 수 없다면 그 곳의 역사보다는 ‘가보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일잖아요. 저도 그랬고."

티어라이너는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세 나라를 여행했다. 그저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었을 뿐, 여행지와 일정은 계획하지 않고 떠났다. 두 달의 시간 동안 포르투갈에 2주, 모로코에 2주, 한 달은 스페인에 머물렀다.

“여행은 일탈이잖아요.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상과는 다른 이상을 꿈꾸게 하는 것 같아요. 여행 자체가 즐겁다기보다는 여행이 주는 이미지가 좋은 거죠. 한 예로 겨울바다가 주는 이미지는 정말 로맨틱하고 좋은데 막상 가면 추워서 얼른 집에 가고 싶잖아요(웃음). 저도 그냥 떠나고 싶었을 뿐 세세한 계획은 하지 않았어요.”

세 나라 중 그에게 가장 잘 맞는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햇살은 타지 않을 만큼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하면서도 구수했다. 예정대로라면 모르코로 떠났어야 했으나 그는 포르투갈에 빠져 하루를 더 묵었다. 걷다가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미소 짓기도 하면서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포르투갈에서 두 개의 곡을 완성했어요. 모로코의 쉐프샤우엔도 좋았고요. 그래서 모로코 부분에서 유일하게 음악이 삽입된 도시가 쉐프샤우엔이에요. 왜 좋았는지 딱히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 도시의 취향과 분위기가 저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느낌이 좋은 곳에서 음악 작업을 하다 보니 크게 어렵지도 않았어요. 어떤 도시에서 악상이 떠오르면 만들고, 안 떠오르면 말고. 도시의 분위기를 담았다기보다 그 당시 제 감정을 담은 음악들이라서 도시의 풍경과는 매칭이 안될지도 몰라요.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때의 여정을 따라 다시 걸어보면 어떨까... 설레이죠."

 
책에 미처 실지 못한 사하라 사막 풍경

두 달간의 여행경비는 오직 234만원. 책 곳곳에는 저렴한 여행경비 때문에 불편을 겪는 그의 다양한 모습들이 등장한다.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고 비스킷을 오물거리기도 하고, 무료 조식이 제공되는 호스텔을 고르기도 했다. 즐기자고 여행하는데, 먹고 자는 것에 인색했던 당시를 돌이켜 보면 자신이 어리석게 생각되지만 이 또한 여행에 임하는 자세였다고 말한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기본적인 경비을 아껴 미술관, 박물관, 축구경기를 관람했다.

“어떻게든 환전한 비용으로만 승부를 보겠다고 결심하고 떠났어요. 여행에 돈이 제약이 된다는 것이 슬플 때도 있었지만 이왕 같은 돈이라면 역사 유물을 보거나 문화를 경험하는 데 더 투자하고 싶었거든요. 여행을 다니기 전에는 미술관을 이렇게 많이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많은 여행객들이 보물섬 같은 미술관을 외면하고 관광책자에 적힌 뻔한 여행지만을 찾는 것이 안타까워요. 그리고 FC서울 시즌티켓을 살 수 있는 돈으로 스페인 프로축구리그의 한 경기를 봤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러고 싶었나 봐요."

저자는 이번 여행이 처음에는 귀찮은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글에 음악을 담고 싶었지만 막상 책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니 여행이 ‘일’로 다가온 것이다. 그의 발언은 책상 머리맡에서 여행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는 부러움일지도 모른다.

“아무 작업도 하지 않는 날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요. 직장인분들에게는 좀 죄송스럽기도 한데 전 매일매일이 노는 날인데 막상 여행을 가서 낯선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번거롭기도 했어요. 책이 아니었으면 음악 작업도 여행도 훨씬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을 했죠. 책 때문에 어딜 가도 메모장부터 꺼내고 여행지의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카메라부터 들이대야 하니 고역이었거든요. 조금 마음을 풀고 모로코쯤 되니까 그 모든 과정도 제 것이 되더라고요. 이번 여행을 통해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최근 8년 만에 2집 정규앨범을 내놓은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에 조금은 실망한 상태라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대중들의 외면 때문에 위축된 상태이지만 결국 그의 일상은 음악일 터. 곧 또 다른 드라마의 음악감독으로 시청자를 만날 계획이라는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저는 악보를 볼 줄 몰라요. 그래서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는 ‘스무 곡만 작곡해보자’가 꿈이었죠. 그러고 나니 제 이름으로 된 앨범 하나 내보는 게 꿈이 됐고. 앨범을 낸 후에는 드라마나 영화 음악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그것도 우연치 않은 기회에 해보게 됐죠. 저는 ‘음악으로 성공’보다는 목표를 세우고 천천히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바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운이 좋아서 꿈이 너무 꿈같지 않게 이뤄졌어요. 그래서 그런지, 꿈에 대한 상실감 또한 커요. 삶이 그래서 모른다고 하는 건가 봐요. 물론 이 모든 일이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아서인지 다음에 어떤 꿈을 꿔야 할지 아직 모르겠어요.”

뮤지션으로서 다음 목표에 생각이 많은 티어라이너에게 책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판타지 같은 공간이다. 앞으로 다양한 책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 미술, 영화 등을 건드려보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친다.

“제가 역사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특히 중세 유럽 역사에 미쳐 있어서 관련 책은 모두 봐요. 이런 소리 하면 미쳤다고들 하는데(웃음) 영화도 1년에 한 1,000편 정도 보는 것 같아요. 영화 한 편을 소개하면서 배경이 되는 역사를 이야기하고 음악을 설명하는 책도 재미있을 것 같아 구상 중이에요.”

이적, 루시드폴, 김석원 등 뮤지션들의 소설 출간은 늘 이슈가 된다. 소설가로서의 꿈은 없는지 물었다.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소설보다는 인문서나 다큐멘터리가 훨씬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정말 소설을 좋아했거든요. 고전소설부터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제 나이 또래의 ‘소설광’이 거쳐야 하는 과정은 모두 밟았죠. 여전히 소설을 읽긴 하지만 인문서를 읽으면서 매력을 많이 잃은 상태예요. 아직 세상에는 제가 알아야 되는 지식이 너무 많은 것 같거든요. 하나를 취하게 되면 하나는 놓아야죠. 그리고 아직은 글로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해요.”

창작의 두려움에 대해 그는 머뭇거리며 "감정의 기복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함께 사시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진 날에도 홀로 차분히 심폐소생술을 했고 가족들을 진정시켰다. 할머니 입관식 때 흘린 눈물이 그에게는 가장 큰 감정 표현이었다고. 모든 면에서 침착한 자신이 어쩌면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게 옳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는 고백한다.

“감정적으로 극을 치달은 적이 없어요. 표현도 서툴죠.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아요. 내면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서툰 제가 음악으로 또는 글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한다는 것이 사실 저와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려고요. 음악보다 훨씬 재미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가 이미 해버려 중언부언이 될지라도 제 생각을 전하고 싶어요.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스스로 깨닫게 되죠."

앞으로도 천천히 오랫동안 글로서 우리와 만날 것 같은 그가 인터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어떤 저급한 낙서도 고귀한 예술도 기록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남기는 것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는 글을 쓰고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요. 새로운 세계, 새로운 경험을 위해 계속 떠날 거예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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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인터뷰] 패배를 향해 돌진하는 검은 밤의 남자들

제 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사이공 나이트>는 베트남의 호찌민에 모여든 한국 사내들의 음모와 배신, 비극적 죽음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이 입을 모아 호평했던 <사이공 나이트>는 "읽는 내내 심사위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한 편의 영화 같은 전개 솜씨에 놀랐고, 이 박진감 넘치는 얘기를 자신의 경험과 현실의 얘기처럼 풀어나간 작가의 이력이 궁금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낸 정민 작가는 흔한 문학청년이 아니었다. 화가의 꿈을 접고 공대에 들어갔고 광고회사, 기획자 등을 전전하며 마케팅, 홍보 등 여러 일을 거친 ‘작가 지망생’으로, 언론사 신춘문예 한 번 응모하지 않고 습작 기간 없이 바로 <사이공 나이트>를 탄생시켰다. 어부가 될 결심을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도중 받은 당선 통보였다.

“하루는 동네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소설을 읽는데 멀미가 나더라고요. 갑자기 ‘내가 읽었을 때 재미있는 소설을 직접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집필한 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안은 지금, 그의 꿈은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한 작가’로 바뀌었다. “잘 팔리는 소설을 쓰겠다”는 포부를 밝힌 그에게서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Q 제 1회 동해해양문학상 및 제 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 등 올해는 수상복이 참 많은 것 같네요. 소감이 어떠세요.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상이라서, 특별한 소감 같은 것은 없습니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제 일상이 변한 것도 아니고요. 전 그저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웃음).

Q 잡지사, 마케팅, 홍보, 번역까지 여러 일을 거쳤는데 언론사 신춘문예 한 번 응모하지 않을 정도로 창작욕심이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글쎄요. 제가 무엇을 하면 중독성이 있게 하는 편인데요. 일을 쉬면서 바다낚시에 푹 빠져 있다가 산악자전거에도 푹 빠졌다가 하다 보니 나중에 마땅히 할 게 없었어요. 그래서 심심풀이로 소설 비슷한 걸 썼는데 재미가 있었어요. 스토리, 캐릭터, 사건, 사고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즐겼어요. 그렇게 몇 달 하다 보니 2천 매 분량의 장편소설이 나왔죠. 그걸 줄이고 압축해서 <사이공 나이트>가 탄생했습니다. 우연히 세계문학상 공모를 접해서 마감 거의 임박해서 부랴부랴 냈습니다.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무언가를 하게 되는 배경에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Q 별도의 습작 시간 없이 <사이공 나이트>를 쓰기 시작했는데, 소설을 처음 쓰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아주 많았습니다. 소설, 그것도 단편도 아닌 장편소설을 썼는데 이건 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쓰면서 배웠습니다. 인물 설정, 사건 구성, 반전, 감정 전달, 심리 묘사, 풍경 묘사 등등. 거짓말이 아니고 순전히 독학으로 쓰면서 배웠다고나 할까요. 물론 지금도 소설 쓰는 건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재미는 있어요. ‘소설 안에서 노는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인물을 만들고 사건을 구성하고 풍경을 언어로 그려내고. 냄새, 촉각, 시각, 미각, 청각 등 제가 느끼는 모든 것을 ‘언어와 문장’으로 만든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인 작업입니다. 

Q 강원도 바닷가에 거주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곳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아주 단순합니다. 바닷가를 산책하고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또 가끔씩 술도 마시고. 특별한 사건도 없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해요. ‘유배지’에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Q 올해 초 배를 한 척 장만해 어부가 될 궁리도 했다고 들었는데 소설가가 되었으니 이제 그 목표는 접으신 건가요.

일감은 줄어들고 돈은 떨어지고 낡은 배 한 척 장만해 고기나 낚아 돈을 벌어보자고 생각했죠. 동해 어부들이 문어 잡는 배를 ‘문어바리 배’라고 부르는데 2.5t급의 배를 혼자 몰더라고요. 친구한테 소개받은 어느 선장이 저를 보더니 대뜸 ‘한 1년만 고생하면 먹고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후에는 꼭 배를 한 척 장만하고 싶어요(동해에서 계속 산다면요). 배 이름도 정해놓았고, 선장으로 함께 일할 이도 점 찍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부가 된다는 것은 소설가가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고통스럽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Q 사이공이라는 지명은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는 지명입니다. 사용되고 있지 않는 지명을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사이공이 현재는 호찌민으로 불리고 있으나 ‘호찌민 나이트’는 분위기가 좀 그렇죠? ‘사이공’ 하면 뭔가 연상되는 독특한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퇴폐, 환멸, 패배의 악취, 망국, 냉소, 오열, 절규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현지 사람들은 지금도 ‘사이공’을 많이 사용합니다. ‘사이공 맥주’, ‘카페 사이공’, ‘사이공 레스토랑’, ‘사이공 호텔’ 등. 죽은 언어가 아니라 멀쩡하게 살아있는 지명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사이공’은 살아 있고 ‘호찌민’은 죽었죠.

Q 호찌민에 대한 소설을 쓰기 전에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은 어땠나요.

특별한 선입견과 감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세계, 다른 나라의 도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장기 체류를 한 적이 있는데 그곳 풍경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놀았습니다. 혼자서 여행도 다니고 낯선 사람들도 만나고 싸구려 호텔에서 혼자 잠자고 밥 먹고 책을 보면서요.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혼자 놀다 보니 나중에 별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그래서 소설이 나온 것 같아요.

Q 호찌민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그 옛날 식민지 거리의 검은 밤을 소설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호찌민 중심부, 즉 사이공 중심지를 가보면 시간이 마구 뒤섞여 있는 느낌이 들어요. 고풍스러운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즐비하고 현대적인 고층빌딩도 그 사이에 있고 또 중국풍의 오래된 건물들도 있죠.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바닥을 기어 다니는 걸인, 텁수룩한 배낭여행객, 고급 슈트를 입은 금융인, 척 보기에도 졸부 티가 나는 사업가, 늘씬한 미녀들이 마구 뒤섞여 있어요. ‘정신분열적이고 정신착란적인 시간과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 그리고 제가 말한 ‘그 옛날 식민지 거리의 검은 밤’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분할 수 없는 ‘현재 진행형의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Q 뒷거리 풍경과 사건의 세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는 듯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생생한데, 어떤 점을 가장 신경써서 집필했나요.

<사이공 나이트>는 소설을 쓴다기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던 작품이에요. 각 장마다 한 컷의 ‘강렬한 이미지’를 그리고자 했어요. 그래서 그런 평이 나왔지 않나 생각합니다.

Q 흡입력과 몰입도가 높은 소설인 만큼 장르적 특징 또한 확실합니다. 미스터리, 느와르 등의 장르적 요소를 삽입하면서 소설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자 했나요.

소설도 일종의 상품이잖아요.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얻어야 하는데 팔리지 않으면 무의미하죠. 대중소설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앞으로 ‘품격 있는’ 대중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아직 좀 거친 문장을 찬찬히 갈고 닦으면 순수소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대중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미스터리, 느와르 등 장르적 요소는 순전히 읽기 편하게, 그리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습니다. 독자를 위한 ‘배려’였다고 할까요?(웃음)

Q 도식, 대수, 순철, 기승 네 사내는 사이공 뒷골목을 헤매며 술과 섹스에 탐닉합니다. 네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도 분명 있었을 텐데요.

네 명의 사내 모두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지요. 소중하고 중차대한 뭔가를 상실했지만 그 사실을 잘 모르는, 모른 척하는 중년의 남자들. 하지만 그들 모두 자신 앞에 놓인 비극적인 운명을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어요. 본능적으로 자신의 죽음도 예감하고 있지요. 죽음과 결정적인 비극 앞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술과 섹스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Q 소설은 쾌락에 빠진 인물들의 욕망,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진실과 거짓을 담았는데 인간에게 있는 어떤 내면에 집중하려고 한 건가요.

등장 인물들이 쾌락에 빠져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쾌락이 일상이 된 사람들이지요. 쾌락이 쾌락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오히려 그들의 쾌락에는 자기 모멸 같은 게 있어요. 쾌락과 고통은 함께 굴러가는 것이니까요. ‘패배’에 맞서는 인물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패배할 것을 예감하고 패배할 것을 익히 알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패배를 향해 돌진하는 남자들. 야심 따위는 벗어 던지고 ‘거대한 패배’에 맞서는 이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Q 작품에서 그려지는 여성들이 대부분 창녀일 정도로 꿈 없이 살아가는 인물이 많은데, 베트남 여성들의 삶에서 발견했던 무언가가 있었던 건가요.

아, 그건 소설 속의 여성일 뿐이에요. 제가 본 베트남 여성들은 강인하고 생활력이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했어요. 여성이 오히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높은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제 소설 속에서도 남자들은 꿈이 없고 무능하고 우유부단해요. 하지만 소설 속의 여성 캐릭터들은 비록 몸을 팔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남자들보다 훨씬 나은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주제는 무엇인지요.

제가 전하고자 했던 주제나 메시지는 확실히 존재하지만 그걸 찾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를 말할 수는 없어요. 독자들에게 맡겨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Q 첫 장편소설인 만큼 아쉬움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사이공 나이트>를 쓸 때는 몰랐던 여러 가지가 지금에서야 조금씩 보입니다. 결점을 더 보완하고 더 밀도 있는 작품을 쓰려고 해요.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사이공 나이트> 2부 작업을 하고 싶어요. <사이공 나이트>의 여주인공 린이 한국에 정착하고, 사이공에서는 대수가 대활약을 펼치는 이야기. 그리고 순철의 아내와 러시아 킬러도 다시 등장시킬 예정이에요. 기승의 죽음에 관한 여러 의문도 명확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Q 차기작으로 동해의 풍경을 언어로 그려낸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지금 두 권을 함께 쓰고 있는데요, 첫 번째 책은 2000년대 초반이 배경이에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시 벤처 열풍이 불었잖아요. 인터넷 비즈니스가 막 시작되는 참이었고요. 말 타고 달려가 먼저 깃발 꽂는 사람이 땅 주인이 됐던 미국 서부 시대에 비유하고 싶어요. 눈먼 돈이 넘쳐났고, 순식간에 갑부가 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고요. 그런 시대는 앞으로 수백 년 이내에는 오기 힘들 것입니다. 그 엄청난 시대의 한복판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되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동해시는 해안선을 따라 길게 조성된 도시입니다. 바닷가에 여러 마을이 있는데요, 마을 이름들이 ‘어달, 가세, 한섬, 용정, 고불개, 감추’ 등이에요. 마을 이름에 분명히 뭔가 뜻이 있을텐데요. 그 뜻을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상상해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중편 <어달 – 탄식함에 이르다, 까마귀와 통하다>가 동해해양문학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아마 책이 나오면 동해시 바닷가 풍경을 책을 통해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이공 나이트>와는 분위기가 아주 많이 다른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풍경화를 보는 듯한 소설’을 쓰고 싶어요.

Q 어떤 작가로 독자들에게 각인되고 싶나요.

글쎄요. 이제 겨우 책을 한 권 낸 초보 작가인데요. ‘정민 소설’을 앞으로 차근차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한 작가,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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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인터뷰] 실컷 먹고 자고 놀 수 있어요!

어릴 적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 쓴 ‘짱뚱이’ 시리즈로 150만 어린이의 사랑을 받아 온 오진희 작가. 그녀의 주제는 언제나 명쾌하다. 흙, 숲, 냇가, 먹거리, 강아지, 고양이 등이 등장하는 ‘자연’이다. 그녀의 작품 속 ’자연’은 동무들과 어울려 날마다 새로운 놀이를 찾던 이야기, 부모님과 형제들과 다복하게 보낸 시간들로 정교하게 복원되어 있다.

그런 그녀가 조금은 길었던 휴식기를 끝내고 새로운 방식과 이야기를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화자도 ‘짱뚱이’에서 ‘이모’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녀의 싱싱한 상상력만큼은 그대로다. 억지 꾸밈이 아닌 실제 경험에서 나온 진솔한 상상력.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유쾌하다. 오진희 작가가 처음으로 쓴 그림책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는 그녀의 강화도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놀러오는 조카들과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가장 좋아한다는 채소 비빔밥을 나눠 먹으며, 강화도 속 아이들의 꿈동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등단 후 처음으로 낸 그림책이에요.

네. 좀 특별하죠.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제 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출간하고 싶었는데, 이번 그림책이 하나의 결실이 된 것 같아요. 그림책을 작업하다 보니 텍스트가 위주가 되었던 책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그림과 함께 읽으니 노래처럼 읽혀져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작업할 때마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편이라, 만화기법을 도입해봤어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제 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을 찾아 쓰려고 해요.

Q 김홍모 만화가와의 작업은 어땠나요?

김홍모 만화가를 파트너로 택했던 이유로는 그 분의 이력이 만화와 그림책을 작업했던 경험이 있으셨기 때문이에요. 그림을 그려주시는 분 입장에서 이번 작품은 전통적인 그림책이 아니어서 까다로운 작업일 수도 있었는데요. 결과물을 보니 김홍모 작가의 특유의 그림체와 제 글이 잘 어우러진 것 같아서 매우 만족합니다. 원고를 처음에 받고 나서 김 작가님이 강화도 집에 직접 찾아 왔는데 식사도 같이 하고 술도 먹으면서 친밀감을 많이 쌓았어요.

Q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강화도 집’은 실제 작가의 집입니다. 강화도에서는 생활은 어떤가요?

강화도는 회복의 땅이에요. 뭐든지 잘 자라납니다. 낮은 산에 들은 넓다 보니 답답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강화도를 정말 좋아합니다. 강화도로 내려 온지는  11년 정도 됐는데 직접 농사도 지어요. 이번에는 고구마를 수확해서 150박스 정도 판매도 했어요(웃음). 강화도에 살기 전에도 도시 생활에 적응 못해 도심 근교에서 살았었습니다. 덩치 큰 개를 좋아하는데 키우려고 일부러 마당이 있는 시골로 내려왔어요.

Q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는 조카들과 보낸 시간을 옮긴 책인데, 조카들과의 추억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도시 삶에 찌든 조카들이 너무 안쓰러워보여요. 그래서 조카들이 저희 집에 놀러 오면 무조건 놀게 해요. 아이들에게도 쉼이 필요하잖아요. 아이들이 시골에만 오면 평소에 잘 안 먹었던 것들도 먹고... 그런 모습을 보는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직접 느끼며 ‘모든 아이들에게 이런 쉼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자연과 함께 쉬고 놀고 먹고 하는 시간이요. 자연을 많이 접하지 못하고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자연과 휴식을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

Q 조카들이 놀러 오면 어떤 생활을 하게 하는지, 무엇을 가장 많이 가르쳐주는지 궁금합니다.

조카들이 오면 전 하루 종일 밥을 해요. 그리고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별거별거 다 하고 같이 놉니다. 따로 가르쳐주는 것은 없고 그냥 잘 쉬고 잘 놀게 해요. 어느 날 <15소년 표류기> 책에 카드를 껴서 줬어요. 우리나라는 사춘기 시기가 무섭잖아요. ‘때로는 파도도 만날 것이고, 때로는 무서운 식인종도 만날 것이고, 때로는 짐승도 만날 텐데 네가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지혜를 발휘해서 똑똑한 지도자도 되고, 또 다른 등장인물처럼 사람을 품어주기도 했으면 좋겠다는’라는 내용을 적어주었어요. 그리고 네가 가장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쓰는 카드, 세상 누구에게도 말 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쓰는 카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카드 등을 만들어서 함께 줬습니다. 그걸 받고는 우리 조카가 자기가 받은 선물 중 최고였다고 정말 좋아했었습니다(웃음).
저는 누군가 세상에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이들이 설사 잘못 된 길로 가더라고 다시 꼭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사람, 그런 이모이고 싶고요.

Q <자연을 먹어요> 시리즈부터 유독 ‘음식’에 관한 책을 많이 썼는데요, 음식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있나요.

음식은 우리 몸 안에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에너지가 있어야 우리는 활동할 수 있고요. 그래서 저는 의식주 중에서 음식(食)을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바쁘면 제대로 안 챙겨먹잖아요. 또 언제부턴가 몸을 중심으로 하는 먹거리가 아니라 입과 눈을 위한 먹거리들로 음식의 기준이 바뀐 것 같아 안타까워요. 먹거리의 기본은 ‘소통’입니다. 내 몸과 자연과의 소통이요. 음식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내가 에너지를 받는 거예요. 이 책을 계기로 음식과 자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작품이 사계절을 따라 흘러가는데 각 계절마다 살리고 싶었던 특징이 있었을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상관없이 아무거나 먹어요. 본래는 사람도 과일도 야채도 다 제철이 있습니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먹을거리도 그렇고. 각 계절마다 살리고 싶었던 특징이라기보다는 ‘제철음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아요. 제철음식을 먹을 수 있는 아이라면 그 아이는 정서적 고향이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음식은 정서와 많이 연결이 돼 있습니다. 굉장히 피곤한 어떤 날, 정성이 들어간 밥상을 받으면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잖아요. 엄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아이와 자연 속에서 제철음식을 먹고 자라는 아이와는 정서적으로 분명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음식은 정서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Q 책에 소개된 음식은 어떤 기준으로 고른 건지, 소개된 음식 중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가장 쉽게 흔히 먹을 수 있으면서도 가장 인공적이지 않는 걸 골랐어요. 제가 사서 먹는 걸 싫어하거든요. 전 제가 한 밥이 가장 맛있어요. 요리를 잘은 못하지만 가끔씩 글을 쓰다 안 풀리면 한밤중에도 요리를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채소 비빔밥인데요, 채소도 철마다 다른 걸 넣고 비벼요. 그렇게 먹으면 같은 채소 비빔밥이라도 맛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정말 좋아해요.

Q 아이들의 먹거리 때문에 고민이 많은 부모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건강한 음식’이 가장 중요해요. 유기농 제철음식이야말로 아이들에게는 가장 좋은 음식이죠. 이렇게 말하면 바쁜 엄마들에게 원성을 들을 것 같은데요. 그래야 농촌도 살고, 도시도 살고, 아이도살아요. 대형마트에 가서 인스턴트만 잔뜩 사서 쟁여 놓고 그러면 안돼요. 엄마가 더 부지런하고 의식적으로 깨어 있어야 아이들이 건강해집니다. 다행히 제 주변에는 좋은 엄마들이 참 많아요. 자녀가 있는 엄마들이 일부러 도시에서 강화로 이사를 옵니다. 그건 삶의 질과 가치를 다르게 합니다. 도시에서 밀려온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가치를 선택해서 스스로 내려온 것이거든요. 시골의 가치를 아는 엄마들이 점점 많아지면 좋겠어요.

Q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는지, 더불어 어른들에게 바라는 점도 이야기해주세요.

엄마들이 이 책을 보고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엄마에게 ‘엄마 우리 이렇게 살아요’ 하고 조르면 좋겠네요(웃음).

Q ‘오진희 작가’ 하면 ‘짱뚱이’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짱뚱이 시리즈>는 150만권 이상이 판매되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짱뚱이 시리즈의 인기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짱뚱이 시리즈>를 처음 쓸 때는 이렇게 인기를 많이 얻게 될 줄 몰랐어요. 짱뚱이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잡지에 10년 동안 연재를 했어요. 원래 동화로 쓰려고 했는데 만화로 의뢰가 왔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요.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뜻하지 않게 다양한 연령층에게 사랑을 받았어요. 사실 그때까지는 작가보다 시민운동가로서의 마인드가 있었는데, <짱뚱이 시리즈>를 쓰다 보니 작가라는 인식이 제 스스로 생기더라고요. 나중에 알게 됐는데 제가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에 ‘아동작가’더라고요. 지금 제가 작품으로 저를 말해주고 있는 거죠. 짱뚱이는 현재 아이들 교육용으로 선생님이 학교에서 활용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학교 도서관에서 비치가 되고요. 감사한 일이에요.

Q 짱뚱이는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작품이 된 케이스라고 들었습니다 ‘짱뚱이’로 불렸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면요?

만화 주인공 짱뚱이와 실제의 짱뚱이는 좀 달라요. 전 말이 없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보통 아이들하고는 좀 달랐던 것이 여자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숲에 굴 파서 들어가기도 하고 전쟁놀이도 하면서 놀 땐 또 그렇게 놀았어요. 엉뚱하기도 하고요. 요즘 엄마들이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냥 자연을 이용해 집을 짓고 문을 만들고 그런 개 전부 창의성 아닌가 싶어요.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상상력이잖아요. 엄마들이 주입식으로 창의성 기르게 한다고 블록 쌓기하고 모빌하고 그런 건 아니라고 봐요. 제가 한 번은 강연을 갔는데 어떤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짱뚱이는 좋겠어요. 물놀이도 공짜죠, 눈썰매도 공짜죠, 산에 가는 것도, 체험학습 하는 것도 공짜죠, 저희는 요 눈썰매 가도 돈 내야죠, 수영장 가도 돈 내야죠, 체험학습 가도 돈 내야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 정말 뭉클했어요. 미안했어요. 또 다른 아이가 “짱뚱이로 돈 많이 벌면 뭐할거냐”고 물어보길래 “아이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놀이공원을 만들겠다”고 말해줬어요.

Q <짱뚱이 시리즈>는 6권으로 완결이 되었는데요, 독자들이 짱뚱이를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짱뚱이 시리즈>는 완결 후 더 이상 낼 생각이 없었는데 최근에 마음이 바뀌었어요. 저만큼 생태나 자연에서 뛰어 놀고 하는 것을 다 담고 있는 작가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몇 년전에 <초원의 집> 동화 시리즈를 쫙 읽었는데 광활한 자연에 대한 설명을 보고 다시 감동을 받았어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작품이 없는 것 같아요. 어른문학은 많이 있는데 아이문학은 많지 않고. 그래서 짱뚱이가 커서까지 장편으로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서 초고 한 권 정도 완성 됐습니다. 그림은 삽화 정도 들어갈 것 같아요.

 Q 강연회를 하면 어린 독자들과 많이 만나게 되는데, 어린이들에게 주로 어떤 말을 하나요.

제가 강연을 하면서 ‘얘들아 박지성이 왜 그렇게 세계적인 선수가 됐을까?’ 하고 물었더니 대부분이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한다 같은 대답들을 했어요.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제가 생각한 정답을 말하더라고요. "평발이요." 저는 박지성이 평발이었기 때문에 그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고 그것으로 인해 꿈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내 꿈을 이루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내 단점이자 악조건이다”라고 말해줬어요. 제가 강연을 가는 장소가 그런 곳이 많아요. 조금 어려운 환경의 시골 학교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그래서 앞에서 말한 그런 얘기를 많이 해주곤 합니다. 시골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시골에서 자라는 것이 그 아이들의 미래에 장점이 된다고 생각해요.제 강연을 듣는 많은 아이들 중에서 한 명이라도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Q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인가요.

<우리 마을에 놀러 오세요>이라는 책인데 강화도 자체를 소재로 한 책입니다. 어떤 조류학자분이 강화도에는 하루에 많이 보면 200종의 새들이 살고 있다는 거예요. 갯벌도 있고 해서 새들이 많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금 글을 다 썼고 그림 작업 중이라 내년 봄쯤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의 계획은 ‘장편 작품 출간’이에요. 긴 호흡을 하면서 푹 숨어서 장편 작업에 몰두하려고요. 환경운동을 했기 때문에 늘 환경운동이 마음에 쓰이더라고요. 제가 작가가 되었던 이유에 답이 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Q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요. 음식은 남기지 말고 조금씩 만들어 먹는 것이 환경운동입니다. 그렇게 시작하시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