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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인터뷰] 당신의 집은 몇 개입니까?

‘집’처럼 사적인 공간이 또 있을까. 집은 머무는 사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거울로,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과 특징, 나아가 삶의 방식까지도 알 수 있다. 집은 머무는 이가 삶을 이어가는 터전이자, 그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집에 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발을 들여놓는 쉽지 않은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연재 저자는 구경꾼의 시선으로 낯선 곳을 여행하는 데 머물지 않고 ‘낯선 집’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집을. 여행하다>는 그녀가 전 세계를 돌며 탐험한 집의 기록이며, 또 한 명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 일상을 함께한 사람 여행 책이다. 돈의 가치, 부의 계급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바라본 집은 하나의 소우주였으며 훨씬 내밀한 삶의 이야기였다.

낯선 이의 집에서 먹고, 자고, 놀며 전세계 곳곳에 집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그녀는 “그저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열어준 문 너머로 발을 디딜 용기를 가졌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누군가 문을 열고 자신의 집에 기꺼이 나를 들여보내준다는 것. 그것은 타인의 삶에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가슴 벅찬 일임에 틀림 없다. 언젠가 당신의 삶을 여행할 누군가를 위해 문을 열어두라고 말하는 그녀. 80억 개의 집을 가진 집 여행가 전연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집을. 여행하다>는 작가가 거쳐온 수많은 친구들의 집을 소개한 책인데요. 어떤 계기로 집을 여행하게 되었나요?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일한 지 3년이 되면 1년 동안 꼭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일한 지 3년이 지나고 이탈리아 소도시 페루지아로 상주여행을 떠나버렸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연극을 하고 사진전도 열고 그림도 그리며 지냈어요.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나중에 이 친구들이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고 나니 문득 궁금하더라고요.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고요. 그때부터 친구들이 살고 있는 도시들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 됐어요. 그러다가 한 다리 건너 친구의 친구 집을 가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하면서 점점 낯선 사람들의 집에도 가게 됐죠.

Q 이탈리아 상주여행 경험도 특이해요. 휴식 차원이었다면 몇 달로도 충분했을 텐데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탈리아 상주여행은 원래부터 꿈꿔온 여행이에요. 저는 대학교를 졸업 하기 전부터 일을했기 때문에 그 여행은 일에 지친 나 자신에게 주는 일종의 약속이고 보상이었죠. 그냥 떠돌아다니면서 관광 명소만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라 그곳에서 현지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상주여행을 택했고 그곳의 언어를 배웠어요.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간 대학에서 연극단의 광고를 보고 연극을 시작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죠.

Q 표지에 실은 다양한 문 사진은 실제 작가가 여행했던 집의 문인가요? 책에 소개된 집은 총 13곳인데 표지에 실린 문의 개수는 훨씬 많네요.

많은 분들이 제가 다닌 집들의 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아쉽게도 이건 디자이너가 갖고 있던 이미지 소스를 이용해서 만든 거예요. 표지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문을 3D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공간을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표지에서 2D로 문을 표현했지만 그 문을 넘어서 다른 공간으로 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3D의 느낌으로 이 문들을 받아들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Q 친한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편한 일은 아니에요. 심지어 낯선 사람들의 집에 머물면서 어색하다거나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았나요.

물론 저도 처음에 집 여행을 시작하면서 ‘집주인에게 불편을 끼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어요. 친구의 제안에 한 번 타인의 집에 머물러 보니 그 경험이 굉장히 소중했어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에게 문을 열어주고 마음을 열어준 거잖아요. 그걸 깨달은 뒤로는 다른 사람의 집에 간다는 것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즐겁고 감사했어요. 그리고 처음부터 완전히 타인의 집을 여행한 것이 아니라 친구의 집, 친구의 친구의 집을 여행하면서 점차적으로 타인의 집에도 간 것이기 때문에 딱히 불편했던 경험은 없었어요.

Q ‘집 여행’의 시작을 이야기 안 할 수 없네요. 첫 번째 집 여행에 대해서 설명해준다면요.

집 여행의 첫 경험은 이탈리아에서 만난 연극 극단의 동료 죠반나의 집이었어요. 연극단을 통해서 처음으로 이탈리아라는 또 다른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굉장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죠반나는 그곳에서 만난 친구예요. 페루지아 대학의 고고학과 교수이고 저보다 열 다섯 살이나 많지만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이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연구활동도 하느라 정말 바쁜데도 매주 2번씩 꼭 연극단을 찾아서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는 대단한 친구예요. 그런데 어느 날 죠반나가 친구들과 근처 도시로 여행을 가는데 저에게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묻더라고요. 여행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새벽에 출발해야 했는데 저는 당시 차가 없었기 때문에 난감했죠. 그때 죠반나가 말했어요. “우리 집에서 자고 같이 가자”라고요. 너무 자연스럽게요(웃음). 그렇게 처음으로 낯선 이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됐죠. 유학생이었던 저는 그때 정말 작은 다락방에서 지냈었는데, 죠반나의 집에 가니까 정말 집다운 집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게다가 죠반나는 커다란 2인용 침대를 저에게 선뜻 내어주고 본인은 다락으로 쓰는 방에서 잤어요. 그때 느낀 포근함과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때의 기억이 너무 따뜻해서 집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Q 책 속에서는 집주인들 모두 너무나 자연스럽게 낯선 이의 존재를 받아들이는데요. 혹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었나요?

감사하게도 없었어요. 자기 집 문을 열어준 사람은 이미 저에게 마음의 문도 열어준 셈이니까요. 다만 문화의 차이 때문에 어려웠던 경험은 있어요. 아프리카 모로코에 살던 친구의 집에 갔었는데, 그 친구는 수천 년이 된 동굴 집에서 생활하는 친구였어요. 방이라고 할만한 공간이 따로 없고 불도 들어오지 않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죠. 상황이 많이 열악하기도 했고, 그 친구와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그때는 약간 어려웠어요.

Q 집을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공간이 있다면.

예전에는 누군가의 집에 가면 서가를 먼저 봤어요.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지 보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집 여행을 계속하면서 서가 대신 주방을 보게 됐어요. 여행을 하면서 함께 요리하고, 그 음식을 한 식탁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갖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주방을 가지고 있고 그 주방에서 어떤 요리를 하는지까지 보고 있어요.

Q 본업으로 돌아가서 건축가의 눈으로 봤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집을 고르자면.

아무래도 같은 건축가였던 야곱의 집이 기억에 남아요. 굉장히 커다란 공동주택의 최상층에 살고 있었는데요. 거의 2층을 합친 높이만큼 천장이 높았어요. 그걸 리모델링해서 중층으로 만들었더라고요. 중층에 부부의 침대 2개와 아이들의 침대 4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건축가가 아닌 여행자의 눈으로 봤을 때는 책에 실리진 않았지만 플라비에의 집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플라비에는 프랑스에서 만난 친구인데요. 유럽은 크리스마스나 연말이면 2주동안 거의 대부분이 휴가를 내요.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설에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는 게 보통이죠. 그래서 연말이 다가오면 외국인들은 텅텅 비어있는 도시에 쓸쓸히 남게 돼요. 그런데 플라비에가 그 해의 크리스마스를 자기집에서 같이 보내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가족끼리 보내는 휴일인데도 저를 초대해준 거죠. 덕분에 저는 낯선 땅에서 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참 특별한 기억이에요.

Q 책에 소개된 집들은 다 유럽인데요, 다른 지역에서 집 여행을 한 경험은 없나요?

아시아권에서도 친구 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긴 해요. 재미있는 건 한국에서도 그게 가능하더라는 거죠. 한옥문화원에서 진행된 워크샵에서 만난 분이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본인이 직접 지은 한옥에 놀러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상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 이런 게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나라마다 각각의 성향이 집이나 사람들에게서 드러나긴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남부 유럽 친구들은 ‘그냥 마음대로 써’라고 말할 정도로 개방적인 반면에 북부 유럽 친구들은 조심스럽고 개인적인 성향이 있는 편이죠.

Q 반대로 본인의 집에 다른 사람을 초대한 경험은 없나요?

제가 2006년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재미있는 일을 하나 벌였어요. 그때 저는 그렇게 부유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방이 두 개 있는 반지하 집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짐이 굉장히 많았는데 여행을 떠나려고 보니 그것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게 집에서 바자회를 여는 거였어요(웃음). 책이랑 여행 기념품 등을 모두 바자회에 내놓았죠. 제가 그린 그림들은 갤러리처럼 전시해두고 같이 보고요. 학교 친구들, 직장 동료들, 봉사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틀 동안 바자회를 열 테니 아무 때나 오라고 했어요. 우연찮게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바자회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놀았는데 그게 참 재미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꼭 멋진 집을 가지고 있어야만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Q 요즘 사회에서 집은 재산의 척도로 평가되는데요, 집을 여행하면서 작가가 발견한 집의 의미는 어떤 게 있을까요.

여행을 다니면서 저도 생각이 많이 변했어요. 이전에는 집이라는 것이 굉장히 사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집을 단순히 소유의 개념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사실 ‘내 집이 네 집이 되면’ 소유할 필요가 없거든요. 집을 하나 소유하기 위해서는 딱 하나의 집만 누릴 수 있고, 그걸 얻기 위해서 굉장한 노력을 해야 하죠. 하지만 내 집이 네 집이 되고, 네 집이 내 집이 되면 다양한 공간과 그만큼 더 다양한 삶을 누릴 수 있거든요. 내 소유의 집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모으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살 필요가 없는 거죠. 사실 건축가라면 누구나 공간에 대한 욕심이 있을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제는 소유의 개념으로 내 집을 갖고 싶다는 마음은 약해졌어요. 이 여행을 끝내고 나니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집을 소유하지 말고, 집에서 존재하라’고요. 힘들게 집을 어깨에 지고 살지는 말라고요. 어떤 공간을 누리기 위해서 그 공간이 반드시 내 소유일 필요는 없거든요. 그 부분을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Q 전작 <삶을, 춤추다>는 낯선 곳에서 현지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번 신작도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을 여행하는 이야기고요. 이렇게 다른 이의 삶에 직접 뛰어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신의 감각으로 경험하는 것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죠. 내 손발로 직접 느끼고,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는 경험은 정말 중요해요. 간접 경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책이나 다른 매체에서 나온 것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이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은 엄청난 차이예요. 그것들이 내 안에서 소화되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멋진 관광지는 TV나 책, 사진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개개인의 삶은 절대 그렇게 볼 수 없죠. 제가 그들의 삶에 뛰어들어 살아가면서 느낀 것은 정말 한 사람은 하나의 또 다른 세계라는 거예요. 우리가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것들이 한 사람에게도 담겨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세계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느낌으로 여행을 해요.

Q ‘선천적 유목민’이라고 스스로를 칭할 만큼 여행을 즐기는 듯한데, 다음 여행 장소는 결정했나요.

내년쯤에 남미 여행을 갈까 해요.제가 탱고를 추는데요,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탱고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그리고 집 여행을 계속 이어가면서 꾸준히 그 이야기를 모아보고 싶어요. 이 책은 사실 집 여행의 유럽판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남미를 여행하면 집 여행의 남미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건축뿐만 아니라 사진, 연극, 탱고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중 지금 작가가 가장 매료되어있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요즘에는 글쓰기에 가장 매료되어있어요. 글쓰기는 사실 제가 평생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예요. 계속 써나가고 싶어요. 제가 평소에도 경험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인지 지금은 에세이 쓰는 게 정말 좋아요. 언젠가 좀 더 한가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주 가벼운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기도 해요.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 같은 느낌으로 가볍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소설이요.

Q 글을 쓰는 활동은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많은 영향을 주고 있죠. 사람들이 새 건물을 지으면 ‘아이를 낳는다’고 표현해요. 자신의 아이라고 말하는 거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 안의 생각들을 모아서 글을 낳는 거죠.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글을 통해 알 수 있으니까요.

Q 작가가 꿈꾸는 집은 어떤 집인가요?

저는 시간이 담긴 건물을 좋아해요. 그래서 한옥을 고쳐서 살아보고 싶어요.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아주 커다란 식탁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Q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집을 소유하지 말고, 집에서 존재하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하고 싶어요.그리고 내 집의 문을 한 번쯤 열어봤으면 좋겠어요. 서로 받아들여짐의 경험을 하고 나면 세계가 넓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내가 갈 수 있는 곳,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과 세계가 모두 넓어질 테니까요. 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대단할 것 없는 저에게도 누군가 자기 집 문을 열어주었어요. 그리고 저를 정말 귀중한 사람으로 만들어줬죠. 결국 그 사람들이 저를 꽃으로 만들어줬어요. 이 멋진 경험을 여러분도 꼭 한 번 해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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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인터뷰] 그럴 수도 있었던 세계로의 여행

지난 10월 ‘제 5회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은 수상작으로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을 선정했다. 작품을 쓴 박지영 작가는 시상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미 순수문학으로 문단에 등단한 기성작가가 ‘판타지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이번 수상작이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새로운 서사의 한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심사위원들의 동의와 지지가 더 큰 이유였다.

아마추어 작가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반칙처럼 여겨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게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단에 등단했지만 작가로서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기에 스스로의 실력을 의심하며 시험해보고자 선택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

박지영 작가는 “판타지가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현실에서 판타지라는 장르는 나에게도 꿈을 심어주었다”라고 말한다. 어려운 삶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판타지의 힘이 팍팍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지 않겠냐고. “자신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판타지”라고 말하고 있는 그녀에게 판타지 소설의 매력을 들어봤다.
 

Q 신인이 아닌 기성 작가가 판타지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요. 판타지문학상에 응모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운이 좋아 등단했지만 소설가로서의 삶은 간단치 않더라고요. 만약 장편소설로 인정받게 된다면 제 실력을 인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장편소설을 써서 문학상에 응모하기 시작했어요. 우체국에서 이번 작품 원고를 부치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지금 써낼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안 되지만, 한 번만 속아주시면 다음에는 정말로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라고 기도했을 만큼 심신이 지쳐 있었어요.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은 저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첫 장편소설을 개작한 작품인데 이렇게 상을 받게 되었네요.

Q 순수문학으로 등단했던 터라 장르소설 문학상에 응모하면서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작품을 쓰기 전 두 가지만 염두에 뒀어요. 재미있는 소설, 읽는 시간이 가치 있는 소설이요. 저 자신을 어느 경계에 두지 않고 오직 독자에게 ‘읽는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은 작품’을 쓰겠다고 생각하니 장르적 편견이나 경계는 사라지더라고요. 사람들의 귀를 기울이게 하는 건 경쾌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는 소설이 아닐까 해요. 그런 소설이라면 굳이 장르소설과 순수문학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Q 단편의 습작들이 모여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등단작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보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를 먼저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제대로 된 단편도 완성한 게 없으면서 장편을 과연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단편을 쓰기 시작했어요.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 소설 속 주인공이 재활용센터에서 일하잖아요. 그 곳에 식탁을 팔러 온 청소기 수리하는 남자가 등장하고요. 그 남자의 이미지가 좋아서 ‘청소기를 수리하는 남자’에 대해 단편을 썼는데 그게 바로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이에요. 그렇게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의 인물들을 꺼내서 단편을 하나씩 하나씩 습작했는데 나중에는 이 단편을 이어 붙이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개작을 하게 되었고 온전한 장편소설로 완성시킨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단편 습작들의 모음집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Q 소설 속 인물은 ‘그럴 수도 있었던 세계’로 여행을 가게 되는데, ‘그럴 수도 있던 세계’는 어떤 곳인가요.

저는 항상 현재의 삶이 아닌 다른 생이나 삶에 대해 상상을 했어요. 이것은 작가들에게 흔한 모티브이기도 해요. 커트 보네거트의 "인간의 말 중에서 가장 슬픈 것은 ’그럴 수도 있었는데’라는 말이다”라는 문장을 접하고 문득 ‘그럴 수도 있던 세계’는 어떨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럴 수도 있었던 세계’는 자신이 이루지 못하거나 시도하지 못한 모든 세계예요. 시간을 되돌려 모든 것을 이루고 시도한다고 해도 사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럴 수도 있었는데’라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나 혹은 미래의 완결이 될 수도 희망 때문에 살아가는 힘을 얻죠. 그리고 지금 나는 다른 누군가의 그럴 수도 있었던 삶일 수도 있는 거고요. 커트 보네거트는 가장 슬픈 말이라고 했는데 전 좀 다른 생각을 해서 그렇게 슬픈 말은 아니란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Q 전작도 그렇고 이번 작품 또한 제 2의 세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 속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웃음). 지금 현실에서 충실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상상 덕분에  열심히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미련과 후회가 오히려 삶의 희망을 주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요즘은 많은 사람이 온라인상에서의 다른 자아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걸 보고 다른 삶을 꿈꾸는 게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라고 봤어요.

Q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이라는 제목에 담긴 의미가 궁금합니다.

원래 제목은 ‘그럴 수도 있었는데’, ‘그럴 수도 있을 줄 알았지’였어요. 판타지문학상 수상작이긴 하지만 어느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쓴 작품이라 장르 구분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출판사에서는 제 책을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얘기하더군요(웃음). 그렇다면 처음 생각했던 제목이 장르가 가진 이미지에 비해 약하다고 생각했어요. 독자들의 시선을 조금 더 잡을 수 있는 이름을 고민하다가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로 정하게 됐어요. 제목에서 말하는 ‘그’는 주인공 해리가 자신을 ‘그’로 지칭해 3자로 만든 거예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제 3자의 시선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본 거죠. 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로 볼 수 있잖아요. 우리가 그런 사건을 제3자의 입장에서 단순히 그의 사적인 문제로만 보기 때문에 사회적인 악행들이 반복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월요일은 다른 요일에 비해 조금 더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요일이 있다면 월요일이라고 생각했죠.

Q 일인칭과 삼인칭, 실제와 환상, 기억의 경계를 줄타기하듯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한데 이런 구성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실 속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이야기 속에서 현실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런 모호한 경계가 좋았고 그런 구성방식이 이 소설과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모호한 경계 자체가 미스터리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인간의 삶에 분명한 건 없기 때문에 소설도 그런 전개과정을 그리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사실 그 점에서 소설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실패한 이야기겠죠?(웃음)

Q PD인 해리는 드라마가 표절시비에 휘말리면서 사표를 내고, 그 후 재연프로그램의 무명배우로 살아가며 ‘갑’에서 ‘을’이 됩니다. 소설 안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부분인데 ‘표절’이라는 요소를 가져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가로서 글을 쓰면서 표절에 대해 많이 의식하고 걱정했어요. 남들과 비슷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죠. 아무리 내가 독창적이고 개별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데 노트북을 가지고 혼자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마치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요. 한 공간 안에서 같은 걸 보고 듣고 느낀 사람들이 그 날 써낸 글은 결국 결국 비슷하지 않을까 의문도 들었고요. 현실 안에서 발견한 그런 걱정들이 소설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것 같아요.

Q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것이 무의미하게 된 현대사회를 ‘쇼비즈니스’로 나타냈는데, ‘쇼비즈니스’를 통해 어떤 현실을 말하고 싶었나요?

말 그대로 삶이라는 건 쇼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 책도 ‘판타지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본다면 누가 볼까 싶거든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든 것은 자신을 꾸미려는 허례허식에 속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허위 자체가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 허위 자체가 진실은 아닌지 생각도 들더라고요. 진실과 거짓, 이미지와 실제가 굉장히 쉽게 뒤집히고 혼돈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말하고 싶었어요.

Q 집필할 때 ‘재미’와 ‘가치 있는 시간’을 염두에 둬서 쓴다고 밝혔는데, 이번 작품이 이 두 가지를 만족시켰다고 생각하나요?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판타지문학상’이라는 마케팅을 통해 독자들이 제 작품을 보는 거잖아요. 이런 홍보는 독자들의 손에 책을 쥐어주긴 쉽지만 기대만큼 만족감을 주지 못했을 때 실망할 우려도 굉장히 커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자들이 읽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게 온전히 제 작품의 힘이라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에 앞으로는 장르나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제 작품만으로 인정 받고 싶어요.

Q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판타지”라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글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힘들어요.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글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굉장히 판타지적 일이에요. 저는 제 자신이 글을 쓰면서 먹고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처음 출판사가 계약하자고 제안을 했을 땐, ‘대체 뭘 보고 계약을 하자는 거지?’하는 생각이 컸어요. 그 정도로 제 글에 확신이 없었죠. 하지만 지금 전 결국 글을 쓰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판타지가 현실로 이뤄진 건지 모르겠어요.

Q 판타지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모르는 통제 불가능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점이에요. 모르는 걸 모르는 채로 쓰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쫓아가기도 하는 게 판타지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사실적인 얘기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요.

Q 작품을 통해 ‘후원’의 기쁨을 알게 돼 현재 외국 아이를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였나요.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에서 주인공이 한 아이를 후원하는 내용이 있어요. 소설이 당선되고 나서 오랜만에 책을 다시 읽어봤는데 조금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내 소설의 인물도 이런 행동을 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 하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소한 내 소설 속 인물이 행동하는 것에 대해 글 쓴 본인이 부끄러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후원인데 이런 생각들이 다음 작품의 주제가 됐어요. 차기작으로 사람의 ‘선’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 중이에요. 이전과는 다른 주제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Q 시상식장에서 “사기꾼 같은 작가 되겠다”라는 소감을 말했는데, ‘사기꾼 같은 작가’는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장편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건 ‘최대한 못 쓰자’였어요. 잘 쓰려고 생각하면 계속 부족한 면만 보게 되니까 아예 기준을 낮춰버린 거죠.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했을 때도 잘 쓴 작품이 아니니까 독자들 앞에도 선보일 일이 없다고 스스로 체념했어요. 글을 쓰면서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를 속인 적도 있었는데 독자들에겐 그런 얄팍한 수가 통할 리 없잖아요. 그래서 차라리 독자들을 제대로 속일 수 있는 사기꾼 같은 작가가 될 생각이에요. 부족하게 썼는데 독자들이 책을 읽고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첫 책이 나왔으니 작가로서의 삶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스스로 생각하기엔 등단시기가 빨랐다고 생각하거든요. 조금 더 늦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하고요. 그런데 책을 내지 않았으면 혼자 갖고 있으면서 느낄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요. TV에 나오는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면 ‘왜 연기연습을 TV에서 하냐’는 악플이 올라오잖아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지금은 책을 통해 글 쓰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30년 정도 후에 큰 그림을 통해 봤을 때는 이 모든 과정이 독자들을 책임지기 위한 제 노력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해요. 오랫동안 최대한 많은 작품을 쓰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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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인터뷰] 한 그릇의 음식으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다

화가 날 때 눈물 콧물 쏙 빼는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돌덩이 같았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곤 한다. 사람에게 지치고 세상살이에 고단해질 때면 그 어떤 말보다 한 그릇의 음식이 깊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렇듯 음식이란 화려하든 소박하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쉽고 따스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매일 밤 KBS 라디오 ‘책 읽는 밤’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전하고 있는 위서현 아나운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 그릇의 음식은 생의 모든 감각으로 만나는 세계입니다. 감각을 통해 몸과 마음으로 들어온 음식은 오늘 하루를 든든하게 살게 해주고, 이런 사실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뜨거운 위로 한 그릇>은 위서현 아나운서가 가진 음식의 추억 외에도 일상 속에서 만난 음식으로 맺어진 인연들을 통해 지친 삶이 어떻게 위로받고 치유되며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의욕을 심어준 엄마의 미역국, 못내 서러운 날 친구와 함께 먹었던 비빔국수, 인생의 매운 맛을 알려준 청양고추… 오늘 하루, 마음을 뜨끈하게 해줄 ‘소울푸드’가 필요하다면 위서현 아나운서가 추천하는 ‘위로 한 그릇’을 권한다.

Q 책이 출간되기까지 기다림이 꽤 길었다고 들었습니다. 출간 과정이 궁금합니다.

원고는 1년 전에 다 완성했어요. 23편의 글을 추리는 등 수정 과정도 있었고 보완 작업도 있었어요.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빨리 나오기만을 바랐는데, 한 계절 한 계절 지나면서 달뜬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책이 무르익기를 기다린 것 같아요. 저에게 기다림을 가르쳐 준 책이기도 하고, 완성도 있는 책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기도 해요.

Q <뜨거운 위로 한 그릇>이라는 제목이 계절적인 시기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제목이 여름과는 별로 안 어울리는 제목이기도 해서 출판사도 저도 고민이 많았어요. 인간관계와 마음에 대해 고민했던 날들을 풀어놓은 책이라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게 제 목적이었어요. 톡톡 튀거나 눈에 띄는 제목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밋밋한 제목이기도 하고. 하지만 제 집필 의도를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쌀쌀한 날씨에 출간돼서 더 잘 어우러진 것 같아요.

Q 마음을 전달하는 데 ‘음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 힘든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마음도 많이 채웠고요. 제가 상처를 극복하고 채운 마음을 풀어내고 싶은데 너무 무거운 요소를 가져오면 안될 것 같았죠. 독자들에게 가장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음식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끌어오게 된 거예요. 혼자 카페도 다니고 음식점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러면서 정말 재미있게 쓴 것 같아요. 음식은 누군가의 마음을 열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Q 추천 음식과 함께 저자의 이야기가 자유롭게 소개되는데, 정작 음식점 정보는 최소화했어요.

원고를 쓸 때부터 제가 완전히 배제시켰던 부분이에요. 음식에 관한 정서를 말하는 책이지 음식점 추천 책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 저자가 직접 다니는 곳을 실제적으로 알려주면 가깝게 느껴지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어서 몇 군데 공개했어요. 처음에는 상호이름도 생략했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는데 책 의도를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잘 삽입된 것 같아요. . 

Q 음식은 타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라고 합니다. <뜨거운 위로 한 그릇>을 통해서 위서현 아나운서와 친해진 느낌이에요.

저는 ‘이렇게 해보세요’ ‘이렇게 살아가세요’라고 조언하는 글을 좋아하지 않아요. 상담을 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기노출이 우선시되어야 해요. 제 자신을 밝혀야 편안한 환경이 조성되고 상대방도 마음을 털어놓죠. 제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수록 독자들도 제 글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썼던 것 같아요.

Q 삶을 위로하는 수많은 것 가운데 음식이 주는 위로는 더욱 특별하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그런가요.

가족들과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나누고 평가하면서 미각뿐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오감이 남들보다 발달한 것 같아요. 단순히 맛있는 음식으로 기분을 푼다기보다는 감정 자체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먹는 행위가 본능적인 거잖아요. 글은 읽고 생각을 해야 하고, 음악은 듣고 받아들여야 하는 반면 음식은 바로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에요.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던 제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식을 찾게 되었다고 할까요. 뱃속으로 들어오는 그 뜨끈함이 친구의 어설픈 위로보다 훨씬 든든했어요.

Q 23개의 음식을 고르면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책에 실린 음식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인가요.

제가 힘들었을 때 주변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 마음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 시간을 극복하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마음을 채워준 사람들 덕분에 제가 다시 일어섰더군요. 고마운 사람들에게 어떤 음식으로 마음을 전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골랐어요.

Q 집필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날이 갈수록 욕심이 생긴 부분은 ‘음식 묘사’였어요. ’내가 묘사하는 음식으로 인해 독자들의 감각이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는 아무리 커피가 맛있다고 해도 커피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파리 같은 곳은 사람들이 음식에 대한 감각을 많이 공유한다고 들었어요. 음식도 하나의 예술 분야로 보는 거죠. 이왕 음식으로서 마음을 전하고 깊은 공감을 나누자고 마음을 먹은 이상, 음식에 대한 묘사를 재미있게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Q ‘위로가 되는 음식’의 필수 요소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요즘 방영되는 광고 중에 아이가 집안을 엄청 어지르면서 바쁜 엄마를 위해 참치김밥을 만들어주는 장면이 있어요. 엉망진창이 된 부엌을 보고 화가 나던 엄마는 이내 아이들이 만든 김밥을 보고 미안함에 눈물을 글썽이죠.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맛으로 평가하는데 정말 가치가 있는 음식은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이에요. 음식을 만든 이의 정성과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는 음식이야말로 깊은 맛과 위로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Q 본인에게 힘을 주는 ‘소울푸드’ 한 가지를 꼽자면요. 

‘엄마 밥’이요. 자식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면서 무사를 기원하며 만든 엄마의 음식만큼 따뜻한 게 있을까요. 엄마가 만들어놓은 집밥은 홀로 차려먹어도 정말 든든한 것 같아요. 엄마가 만들어주는 미역국, 된장찌개는 제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주는 음식이에요.

Q 계절별로 대표되는 음식 또한 각각 다른데요, 이 계절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요.

잘 만들어진 핫초코 한 잔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단 음식을 싫어하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개인적으로 초콜릿의 진짜 맛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진하게 만든 핫초코는 단맛보다는 쌉쌀하고 깊은 맛이 나거든요. 마음이 쓸쓸하거나 날씨가 추운 날 먹는 핫초코 한 잔은 분명 따스함이 될 거예요.

Q 이 책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동네에서 잘 아는 언니, 누나 정도로 생각하고 제 책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썼고요. 같은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글이기 때문에 ‘아나운서’가 쓴 글이라는 편견은 버려주셨으면 하는 게 작은 소망이에요. 힘겹던 날에 제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방식과 즐거움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에요. 그 위안으로 제가 이렇게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독자분들도 그랬으면 해요. 지금 만약 힘든 일을 겪고 있거나 위로가 필요한 분이 계시다면 친구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Q 책 출간에 도움을 준 분들도 굉장히 많을 것 같습니다. 출간 후 그 고마움을 가장 먼저 나눈 사람은 누구인가요.

언니와 남편이에요. 언니와는 어렸을 적부터 많은 추억을 공유해서 감각은 물론 식성도 비슷해요. 객관적인 성격이라 중간중간 원고를 보여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아나운서로서 신변잡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싫어서 제 이야기를 많이 안 넣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언니가 오히려 그렇게 하니 작가가 잘 안 보인다는 의견을 줘서 그 후 제 세밀한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훨씬 글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남편의 도움도 있었어요. 아나운서지만 수줍음이 많고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 전작도 그렇고 이번 책에도 제 사진이 들어가는 게 굉장히 꺼려졌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너 자신을 밝게 드러내는 게 독자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데 도움이 될 거다’라는 조언을 해서 표지에 제 사진을 넣게 되었어요. 창피하기도 해서 100번을 고사했던 일인데 신기하죠(웃음).

Q 우연히 접한 심리상담학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여유롭게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방송국은 보람도 있고 재미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사람냄새가 가득한 곳은 아니어서 가끔 외롭기도 해요. 그러던 어느 날 1년짜리 코칭 프로그램이 있어 참여하게 되었어요. 심리상담 교수님들이 와서 교육을 해주셨는데 듣다 보니 관심이 생겨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어요. 저녁뉴스를 하면서 낮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했죠.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는 직업이다 보니 저를 내려놓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게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를 저를 찾아오는 내담자에게 비추면서 상대방의 마음만 바라보니, 제가 없어지는 데도 보람된 거예요. 저와 상담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분들을 보면 “방송 잘했다”라는 칭찬보다 100만 배 기분이 좋았어요. 그 동안 조명을 받고 살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비춰주면서 살고 싶다는 삶의 소명 같은 게 생겼어요.

Q 아나운서 중에서 책을 집필한 분들이 많습니다. 도움을 준 선배나 동료가 있나요.

추천사를 써준 손미나 선배요. 제 롤모델이기도 한 분이세요. 제가 본 선배는 가슴 속에 풀어내고 싶은 게 꽉 차서 글로 풀어내는 작가 같아요. 그것을 위해 미련 없이 방송국을 떠났고 정말 잘 해내고 있잖아요. 실질적으로 글 쓰는 데 도움을 준 선배라기 보다는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분이에요.

Q 손미나 작가처럼 창작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욕심은 있는데 아직 무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진행하는 ‘책 읽는 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 분들을 많이 만나거든요.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창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분들의 사유나 깊이를 제가 감히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은 아닌 것 같고 삶의 경험이 더 쌓였을 때 풀고 싶어요.

Q 아나운서라는 직업 외에 작가라는 직업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글을 통해서 사람들하고 이어질 때가 가장 짜릿한 것 같아요.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책으로 이어지고 공감을 형성하는 건 일상이나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더 깊은 관계라고 생각해요. 저만의 내밀하고 깊은 이야기를 담은 글을 읽고 공감해주신다는 건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에 놓인 것 같아요. 시청자, 청취자는 너무 피상적인데 독자들은 제 글에 대한 공감이 있으니 더 가깝게 느껴져요. 독자들과 더 깊은 인연의 끈으로 이어지고 싶어요.

Q 앞으로 어떤 글로 독자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가요.

계속 마음에 대해 쓰고 싶어요. 이번에는 음식이었고 앞으로 그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관계에 대해 사람에 대해 쓰는 제 글은 달라지지 않을 거에요. 제가 글만큼이나 음악과 미술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음악이 될 수도 있고, 고전문학, 클래식이 그 매개가 될 수 있겠죠.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는데 마음과 관계에 대한 글로 앞으로도 독자들을 찾아 뵐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