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파크도서 북&

[속시원한인터뷰] 5등급 여고생은 왜 부모를 살해했을까

제 37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펀치>는 일명 ‘살인 조감도’를 계획하고 있는 한 여고생의 이야기다. 살해의 대상은 바로 자신의 부모. 친부모를 살해하기 위해 조감도를 세우고 40대 계약직 공무원을 조종하는 여고생의 모습은 번뜩이면서도 섬뜩하다.

2002년 영화 ‘버스, 정류장’을 통해 여고생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그렸던 이재찬 작가는 <펀치>를 통해서 또 다른 여고생의 시선을 전한다. “19세 소녀를 내세워 완전범죄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과 선이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 그 사이의 애매한 지점에 독자를 두고 싶었다”는 작가는 오로지 여고생의 눈으로 세상의 모순을 전한다.

성적부터 외모, 인생 자체를 등급으로 판단하는 사회에서 스스로 “나는 5등급이다”라고 외치는 19세 소녀, 인영. 엄마의 정신적 억압, 학교와 종교의 변태적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인’을 선택한 그녀는 사회에 대체 어떤 펀치를 날리고 싶었을까. ‘펀치’가 내포하는 사회의 비극과 내면을 10문 10답으로 전한다.

Q 올해 자음과 모음의 네오픽션상과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을 모두 수상했네요. 오래 전부터 소설가를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네. 저에게는 늘 ‘시나리오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어요. 200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에서 ‘버스, 정류장’이 당선됐고 2002년 영화로도 개봉됐거든요. 흥행은 크게 되지 않았지만 개봉 영화의 작가라는 것만으로 계속 ‘시나리오 작가’라는 명칭이 따라붙더라고요.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일은 했지만 결국 제가 쓰고 싶었던 건 소설이었어요. 조금 식상한 이야기지만 이번 수상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어요. 지금껏 살아왔던 앞의 시간은 모두 잊어버릴만큼요. 올해 두 개의 상을 수상하면서 독자들과 만날 기회를 얻었고 네오픽션 수상작도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라 개인적으로는 기쁘기 그지 없어요.

Q 고3 여고생이 부모를 살해한다는 내용이 조금은 충격적인데요, 어떻게 이런 스토리를 기획하게 된 것인가요.

형이 집을 구하러 갔다가 주변 시세보다 훨씬 싼 집을 보게 되었어요. 좋은 조건이라 계약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죠. 그 집에서 살던 대학생 아들이 자신의 친어머니를 죽인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한 동안 저도 모를 싸늘함이 온 몸을 감쌌어요. 먼 얘기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생각해보면 기성세대와의 갈등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문제잖아요. 저도 아버지와 그랬고, 성장을 하면서 부모를 미워해본 적은 누구나 있으니까요. 물론 ‘존속살해’가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렇고 이런 주제는 소설 안에서 오래 전부터 다뤄져 왔어요. 개인적으로는 현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작픔으로라도 한 번은 풀고 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사회문제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Q 치밀하게 살인 계획을 세우고 제 3자를 조종하는 ‘인영’의 캐릭터 자체가 어린 여자애여서 더 자극성이 높은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소설을 기획 중이라니까 친구가 “나 같으면 남학생으로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생각이 조금 달랐어요. 왠지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남학생이 살인을 저지르는 건 단순해 보였거든요. 영화 ‘버스, 정류장’도 여고생의 시점으로 흘러가잖아요. 계획된 건 아니었지만 여고생의 관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긴 해요. 열아홉이라는 나이는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나름대로는 ‘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이거든요. 그래서 ‘고3 여학생’을 설정하게 되었고 인영의 눈으로 사회를 보게 됐어요.

Q <오이디푸스 왕>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두 작품과 달리 어조나 분위기가 ‘존속살해’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쾌하고 가벼워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혼란스러움이죠. 소포클래스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은 심각하고 묵직하잖아요. 그런데 전 심각한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저는 독자들이 인영이라는 인물에 동의했으면 좋겠다고 바랐어요. 인영을 이해하고 그녀를 둘러싼 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인영의 행동반경을 주시하면서 여고생의 경쾌함은 그대로 살려두려고 했죠. 만약 독자들이 ‘어, 내가 왜 인영의 계획을 동의하고 있지?’ ‘인영의 살인계획이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혼란스러움을 느꼈다면 제 소설은 성공한 거라고 봐요. 가벼운 문장이 실어 나르는 진지하고 묵직한 주제의식에 더 주목해주셨으면 좋겠어요.

Q 인영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모래의 남자’는 어떤 인물인가요?

‘모래의 남자’는 그저 40대 계약직 공무원일 뿐이에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지만 명백한 지향점은 없죠. 그 나이 또래의 어른들은 모두 그런 것 같아요. 자기 뜻대로 살아가지도 못하고 새로운 꿈을 꾸긴 힘든. 책에 아베코보의 <모래의 여자>가 언급되는 부분이 있는데, ‘모래의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흘러내리는 모래에 집이 파묻혀버리지 않도록 매일매일 삽질을 해야 하는 모래의 여자 같죠.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스스로 구현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그에 비해 인영은 모든 걸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잖아요. 그게 비록 살인일지라도요. 그래서 둘 사이에 서 주도권이 늘 인영에게 있는 거예요. 

Q 살인을 저지르는 여고생 인영보다 모래의 남자, 인영의 부모 등 어른들이 더 나쁘게 그려져 있어요. 어떤 점 때문인가요?

교회에 헌신적이며 딸의 인생을 마음대로 끌어가고자 다그치는 엄마,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을 위해 법조문을 연구하고 세 치 혀를 놀리는 아버지, 학생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여기는 선생님. 전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다고 봐요. 하나 명백한 건 오직 ‘내가 자본주의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뿐이죠. 어른들도 나름대로 지향점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하다못해 가족이 화목하게 살아야 되겠다던가 하는 모색이 있으면 좋을텐데 그것도 없고요. 어른들이 기계적으로 밀려서 내가 왜 사는지 모르고 살아남기에만 급급한데 그걸 보고 아이들이 뭘 배우겠어요. 전 어른들의 그 생각들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살해를 당하면서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인영의 엄마를 통해 말하고자 한 바도 있었을 것 같아요.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소설 안에서 끊이지 않는데요.

전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방해하는 게 억압된 종교라 생각해요. 분명 행복해지기 위해 종교를 믿는데, 그 종교로 인해 불행해지는 모순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외치면서 인영의 엄마가 이웃을 저주하는 모습이나 딸의 인생을 가두려는 모습 같은 거요. 물론 모든 종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종교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도 말하고 싶었어요.

Q 소설 <펀치>가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한 개인이 사회에게 날리는 펀치죠. 개인이 사회에게 펀치를 날린다는 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미비한 파워잖아요. 개인에게는 인생을 걸만한 일이었지만 사회로서는 그냥 하나의 사건,사고일뿐일거고요.. 그런데 전 제 소설로 인해 누군가 ‘뜨끔’ 했으면 좋겠어요. 평범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문제예요. 악은 누구에게나 있고 우리 모두 겪었던 심리니까요. 결국 보통 사람의 입장과 감정을 사회에 전달하는 게 소설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해요. 이걸 세상이 어떻게 받아줄지 조금 걱정도 했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Q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신문을 통해 여러 문제에 관심이 생겨요. 어릴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높아서 도서관에서 2~3시간 서서 신문만 볼 정도예요. 우리나라처럼 신문이 많은 이슈를 제공하고 있는 사회도 없는 것 같아요. 평온한 나라가 아니어서 그런가(웃음). 요즘 관심있게 생각하는 주제는 폭력성이에요. 남성의 폭력성은 익숙한데 여성의 폭력성은 좀 의외잖아요. 그런데 여성의 폭력성이 남성보다 더 잔인한 면도 많아요. 꼭 주먹으로 때려야만 폭력인가요. 언어로도 상황으로도 충분히 발휘될 수 있죠. 여성들이 각자의 처해진 환경에서 발휘하는 여러 폭력성에 대한 사건과 주제도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가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 3년 전부터 빠져있어요. 고전작품만 내내 읽다가 뒤늦게 빠져버렸죠. 영화도 스릴러, 추리 장르로 많이 보고 있고요. 네오픽션상 받은 작품도 추리소설이에요.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당분간은 추리소설을 주로 쓸 것 같아요. 이번 작품도 그렇고 제 소설이 대부분 날카롭고 가끔 섬뜩하기도 하지만 너무 감정이입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감정적으로는 인물들과 거리를 두는 편이거든요. 독자들이 이야기 속에 담긴 주제를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인터파크도서 북&

[속시원한인터뷰] 불사의 시대, 당신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일 당장 불사(不死)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어떨까. 김동영 작가의 신작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는 2014년 불사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이다. 사랑니 속 줄기세포를 추출해 이식수술을 받으면 자신이 원하는 나이의 외모로 평생을 살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의학은 점점 발전해 평균수명 120세를 훌쩍 넘겼다. 소설 속 화자 역시 줄기세포를 이식 받아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여든일곱 살 노인이다. 그는 매일 카페 조용한 창가 자리에 앉아 오래 전에 들었던 노래를 찾아 듣고, 함께 울고 웃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옛 추억을 글로 새긴다.

본명보다 ‘생선’이라는 닉네임으로도 유명한 김동영 작가는 노인의 글 속에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가와 문학가들의 이름을 넣어 지나가버린 한 시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어떤 상황에서도 눈을 감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서 ‘생선’이라는 닉네임을 스스로에게 붙인 그는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에 관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실제로 ‘내가 나이가 든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썼다는 이 글은 작가가 훗날 쓰게 될지도 모를 회고록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이 큰 이슈인 지금, 불사의 열매를 손에 쥐고도 죽지 못해 사는 이 남자에게 삶과 죽음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 모순적인 삶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김동영 작가에게서 직접 들어보자.

Q 첫 번째 장편소설인데 처음 도전한 소설작업은 어땠나요.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 모두 본의 아니게 여행 에세이가 됐는데 저는 항상 에세이보다도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관련 분야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죠. 좋아하는 글을 필사하면서 문장의 구조를 배웠고, 짤막하게 습작 형식으로 꾸준히 써온 것이 소설의 바탕이 되었어요.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는 단편으로 쓰다가 장편이 된 케이스예요. 쓰다 보니 이게 짧게 끝날 내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앞뒤로 점점 살을 붙이다가 보니 어느새 장편이 됐어요.

Q 소설을 쓰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고 했는데요. 책을 출간한 지금도 그런 느낌이 드나요?

평소에도 저는 에세이보다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인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참 많이 좌절해요. ‘내가 정말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요. 에세이는 리얼리티지만 소설은 논리가 필요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있어야 해요. 그런 게 버거웠던 거죠. 장편소설을 쓰면서는 캐릭터가 가지는 생명력에 놀랐어요. 어떤 작가가 “소설의 배경을 만들어놓고 캐릭터를 그 속에 풀어두면 그 안에서 그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고 이야기한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저는 주인공들의 궤적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죠. 그 경험이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Q 지난 에세이 집필 당시 어머니가 암투병 중이었다고 알고 있어요. 때문인지 두 권의 책에는 외로움과 슬픔이 묻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글을 쓸 때는 당시의 작가의 감정과 상황이 배어있게 마련인데 이번 작품을 쓰면서는 어땠나요.

이전 에세이 두 편이 우울하긴 했지만 분명 그 속에 따뜻함도 있었어요. 두 책 모두 어머니께 드리는 선물 같은 책이었거든요. 활활 타오르는 무언가는 없어도 최소한 사람의 온기 정도는 느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는 오히려 감정을 최대한 눌러 담았어요. 너무 거창하지 않게 그냥 흘러가듯이 썼고 극적인 부분도 일부러 배제했죠. 글을 쓰면서 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을 했어요.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고 있고요. 어쩔 수 없이 그런 정서가 글에서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한데, 후회는 없어요. 그걸 피하려고 몸을 사리다 보면 감정이 다 꺼져 버리거든요. 글을 쓰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 없이 저를 다 던져 넣었어요.

Q 소설은 불사(不死)의 시대를 맞이한 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다룹니다.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가 있다면.

4년 전 어머니가 62세의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올해 3월에 10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고요. 그 밖에도 올해 유독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겪었어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죠.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까지 고민을 하게 됐어요.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과연 인간이 죽지 않고 살아도 괜찮을 만큼 성숙한 존재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소설 속 화자가 87세 노인인데, 그릴 때 할머니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캐릭터 자체는 할머니와 크게 연관이 없지만 노인의 감정을 공감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소설 속 노인이 옛날을 추억하는 디테일한 부분을 쓰면서도 할머니를 많이 떠올렸고요. 할머니가 생전에 자주 하던 행동 중 기억에 남는 게 두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햇살이 드는 소파에 앉아 하루 종일 TV를 보던 모습이에요. 눈과 귀가 어두워져 TV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는데도 할머니는 항상 그 자리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 가지는 낙서하던 모습이에요. 시간이 나는 대로 알 수 없는 낙서를 하시길래 자세히 봤더니 그게 히라가나더라고요. 일제 강점기를 거쳐온 분이니까 당시 배웠던 히라가나를 기억나는 대로 낙서처럼 쓰고 있었던 거죠. 저에게는 그 모습이 자신의 존재 가치나 젊음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정신을 바로잡기 위한 일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이런 할머니의 모습들이 소설 속 노인의 행동을 묘사할 때 녹아 든 것 같아요.

Q ‘50대의 외모로 90살이 되어버린’ 할아버지가 느끼는 혼돈과 내면의 고독감이 담긴 소설입니다. 작가 자신 스스로의 모습을 소설 속에 투영시켰다고 들었는데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내가 나이가 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어머니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모두 독립해서 아버지가 혼자 계시거든요. 원래 늘 에너지가 넘치던 분이었는데, 이제 칠순이 가까운 나이가 되니 아버지의 삶이 고루해 보이더군요. 여행을 참 좋아했던 분인데 요즘에는 계속 집에만 계시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버지처럼 나이가 들면 과연 무엇을 할까’ 상상해봤어요.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난 날을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제 모습이었어요. 그 모습을 떠올리고 나서는 어떤 방식으로 옛날을 추억할 것인지를 상상해봤고요. 그런 식으로 제가 늙었을 때의 모습을 연상해서 캐릭터를 구축했어요. 늙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영생에 가까운 수명을 누리게 된다는 게 소설의 설정이잖아요. 외모는 멀쩡하지만 안은 병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Q 줄기세포를 이식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외모를 멈춰둘 수 있다는 소재 때문에 과학기술이 발달한 아주 먼 미래로 시간을 설정했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실질적인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불과 며칠 후인 2014년이네요.

제가 이 소설을 47번 고쳐 썼는데요, 그 전까지는 시간을 2025년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45번째 고칠 때쯤 2014년으로 대폭 수정했죠. 너무 먼 미래는 현실 감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가 된다고 해서 뭐가 크게 바뀔 것 같지도 않고요. 그래서 2014년으로 시간을 바꿨어요. 내일도 어쨌든 미래니까요. 한 시간 후도 미래고요. 한 시간 후에 누군가 암을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Q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없어요. ‘고양이 눈을 한 소녀’나 ‘J’라고만 나오는데 의도한 바인가요?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고양이 눈을 한 소녀’처럼 독자들이 머리 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만 줄 수 있다면 된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등장인물도 그렇게 많지 않고요.

Q 화자는 젊은 외모를 유지하며 살지만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요, 이런 화자의 모습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을 때의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영생을 얻은 인간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물은 거죠. 제가 지금 36살인데 만약 인류의 수명이 120세까지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거의 3번 더 살아야 하잖아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정말 끔찍하지 않나요? 수많은 일들이 반복될 것이고 그 와중에 몸은 노쇠하는데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소설을 읽고 좀 고민해봤으면 해요.

Q 작가에게 줄기세포 이식을 권한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 같아요?

저는 이식을 받지 않겠어요. 꼭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지금의 모습으로 남고 싶어요. 지금 너무 행복하다거나 재미있지는 않지만 20대는 너무 젊었고, 40대는 좀 애매한 느낌이에요. 만약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30대가 가장 좋을 것 같아요.

Q 화자로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자신이 젊었을 때 좋아했던 것들을 글로 기록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이 때 등장하는 오래된 음악과 예술가들은 실제 작가가 좋아하는 인물인가요?

네. 실제로 다 존재하는 음악이에요.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 들을 수도 있고요. 제가 쓴 책에는 음악이 많이 들어가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탓이기도 한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음악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하나의 장치가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글의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사진이나 그림을 넣잖아요. 음악도 그런 역할을 하는 거죠. 제가 문장력이 정말 뛰어나서 글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러기엔 좀 부족하니까요. 그런데 사진보다도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게 음악이에요. 우리도 연애하면서 들었던 음악을 나중에 다시 들으면 그 당시의 기억들이 생각나잖아요. 말하자면 책에서 음악이 그런 작용을 하는 거죠. 글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할아버지의 기억을 설명해주고 보태주는 장치라고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Q 표지 그림과 본문 사진 모두 작가의 작품이라고요. 그림은 따로 배운 건가요?

아니요. 단편 소설을 퇴짜 맞은 뒤에 그냥 그리기 시작했어요. 한번도 그림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는데, 정말 그냥 그렸어요. 제가 그림에 조예가 깊진 않았지만 평소에 잭슨 폴락이라는 미국 작가를 좋아했거든요. 독일에 있을 때 <폴락>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잭슨 폴락의 일생을 다루는 영화인데, 그 영화에 폴락의 작업 방식이 나와요. 그걸 보고 따라 그리기 시작했어요. 화방에 가서 페인트랑 붓을 사서 영화에서 폴락이 하는 것처럼 따라서 무작정 그려본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그리다 보니까 얼추 폴락과 비슷한 그림이 그려지는 거예요. 물론 100%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요.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 중에 하나를 골라서 연필로 선을 따고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해서 그림을 그렸어요.

Q 예전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잭 케루악을 꼽았는데, 여전한가요?

잭 케루악 좋죠. 하루키는 요즘 좀 별로예요. 이번 신작을 사다 놓긴 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그런데 사실 하루키는 워낙 오래 전부터 좋아해서 그런지 지금은 식구 같은 느낌이 들어요(웃음).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느낌보다 가족 같은 느낌이 강해서 못 떠나겠더라고요. 저에게 글을 쓰도록 동기를 부여해준 사람이고, 제가 책을 고르는 취향을 알게 해준 사람이니까요.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면서 글을 쓰는 것도 부럽고요.

Q 좋아하는 하루키 글을 필사하면서 문장의 구조를 배웠다고 들었어요. 필사를 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은 예전처럼 책 한 권을 다 필사하진 않고 짧은 문단이나 문장 정도만 해요. 글이 잘 안 풀릴 때나 글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할 때요. 필사를 하면서 배우게 되는 건 아무래도 문장의 구조겠죠. 제가 글을 쓰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필사를 하면 알 수 있어요. 배경 전환이나 시점의 전환 같은 것이 쓰다 보면 느껴져요. 작가가 어디에서 고심했는지가 보이거든요. 그래서 관련 학과에서는 필사를 하라고 권한다고도 들었고요. 시간은 좀 걸리지만 재미있어요. 문장을 하나 하나 새롭게 읽을 수 있거든요.

Q 이전에는 ‘작가’라는 말이 어색하다며 ‘글 쓰는 생선’이라는 말로 자신을 정의했습니다. 소설까지 낸 지금은 ‘작가’라는 호칭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아직도 어색해요(웃음). 아마 이건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이전까지는 소설을 내면 이제 작가라고 불려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훌륭한 글이든 조금 부족한 글이든 일단 책으로 쓰여진 글은 무엇이든 존경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도 아직 작가라는 말은 좀 어색하네요.

Q ‘작가로 평생을 살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목표는 정했나요.

오래도록 누군가의 서가에 꽂혀있는 그런 책을 쓰는 작가요. 책장이 너덜너덜 해지도록 오랫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처음에 여행기를 쓰면서 ‘지금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여행기를 찾아주지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책도 독자도 나이 들기 마련이잖아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감성이 변하고 시대의 코드가 변한다는 것이고요. 그런 면에서 유통기한이 긴 책을 쓰고 싶은 거죠. 한 시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책이요.

Q 준비중인 다음 작품이 있다면 설명해주세요.

음악 에세이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어떻게 쓸 지는 비밀이고요(웃음). 일단은 그것보다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단편집을 먼저 내고 싶어요. 지금 장편소설과 에세이 두세 개 정도를 계획하고 있어요. 에세이 같은 경우는 어머니에 관한 내용을 쓰게 될 것 같아요. 아마 간병기가 되겠죠.

Q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를 읽는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의도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가끔 일부러 막히는 길로 갈 때가 있어요. 서강대교를 건너서 홍대 쪽으로 관통하는 길인데요. 금요일 밤에 그 길로 들어서면 정말 차가 엄청나게 막히거든요. 그때 도로 위에 멈춰 서있으면 옆으로 예쁜 친구들이 지나가요. 외모가 예쁘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젊음이 아름다워서 예쁘다는 건데요. 그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이 시대도 훅 갈 거라고. 그러니 예쁠 때 실컷 놀다 가라고요.

인터파크도서 북&

[속시원한인터뷰] 10년의 퍼즐을 완성하다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궁극의 아이>. 소설 <궁극의 아이>는 풍부한 볼거리와 국경을 넘나들며 화려하게 펼쳐지는 스토리 전개로 시놉시스만으로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주인공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를 집필한 장용민 작가로 이번 소설은 상상력과 리얼리티를 접목시킨 그의 특징이 또 한번 발휘되는 작품이다. 

 영화, 드라마, 시트콤 등 다방면에서 유명 작가로 활동 중인 그지만, “그 어떤 직업보다도 소설가로 사는 삶이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장용민 작가는 “이번 작품은 자신을 오롯이 소설가로서 살 수 있게 해줬다"며 인터뷰 내내 즐거운 모습을 보였다.

그를 진정한 소설가로 완성시켜 준 <궁극의 아이>는 자본을 이용해 세계를 지배하는 한 가문의 비밀 음모와 주인공의 투쟁을 그린 추리극이다. 치밀한 구성과 탄탄한 스토리와 장대한 스케일로 한 편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신의 달력> 등으로 소설 속 사건의 퍼즐을 맞춰 온 장용민 작가가 이번엔 어떤 퍼즐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Q <신의 달력> 이후 5년만의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쓰게 된 작품인가요.

기존에 없는 복수극을 만들고 싶었어요. 죽은 사람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복수하는 내용을 써봐야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죠. 그러던 중 EBS에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기억에 관한 미국 여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이 얘기를 소설로 가져오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여자 주인공을 과거를 모두 기억하는 캐릭터로 설정한 거예요.

경제학자 쑹홍빙이 쓴 <화폐전쟁>을 보면 유럽에서 은행업으로 잘나가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 세계 금융을 장악하는 과정이 나와요.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들이 어떻게 당시 각국의 정부보다 더 빨리 모든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었는가 하는 부분이에요. 더불어 어떻게 수백여년간 실패 없이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이어올 수 있었는가 하는 점도 의문이죠. <궁극의 아이> 출발도 이 부분에 있어요. 그 배경으로 ‘미래를 기억’하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 ‘궁극의 아이’를 설정, 남자주인공으로 내세운 거죠. 과거를 기억하는 여자와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 흥미로울 것 같았어요.

Q 로스차일드 가문은 소설에도 차용되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로스차일드’는 유대인 가문이에요. 1750년부터 사채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8대, 250여년에 걸쳐 세계 최대의 금융제국을 유지해오고 있는 신화적인 가문이죠. 실제로 그 가문에 대한 음모론이 굉장히 많아요. 미국 대공황과도 관련이 있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요.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연구 보고서나 다큐멘터리 소설 등 자료도 굉장히 많고요. 이번 소설을 쓸 때 이 가문에 대한 조사를 많이 했고, 내용에 담아냈어요.

Q 2011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스토리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스토리를 소설화하면서 어떤 작업을 거쳤나요.

스토리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을 때는 약 50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소설의 핵심만을 담아 제출했었어요. 완전한 작품은 아니었죠. 소설이 결정되고 처음 스토리보다는 상황별로 조금 더 세세한 내용을 추가해 완성도 있게 만들었어요. 사실 전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도 그렇고 <신의 달력>도 그렇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적이 없어요. 그런데 <궁극의 아이>는 신가야와 엘리스의 사랑 이야기가 중요한 부분이라 고민이 많았어요. 둘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사랑에 대한 영화와 소설을 많이 보고 옛날 제 경험도 생각해 보며 글을 썼어요.

Q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작가로서의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당선된 후 한국 콘텐츠진흥원에서 집필할 수 있는 공간을 줬어요. 그곳에서 전담 멘토 매칭, 스토리 컨설팅, 국내외 주요 콘텐츠마켓 등에 참가할 기회를 줘서 작가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어요. 사실 작가로서의 직업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인데도 작가 활동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요. 때문에 방송 작가로 활동도 하고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그랬어요. 하지만 이번 <궁극의 아이>부터는 책의 인세로만 생활할 수 있게 되어 글 쓰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에요. 오롯이 제가 좋아하는 소설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 개인적으로 참 고마운 작품이에요.

Q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가 영화화 되었는데, 이번 작품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스토리가 소개되었다고 들었어요.

출간 후 영화화 제의가 계속 있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건 없어요. 부산국제영화제 외에도 이번에 LA에서 열린 ‘아메리칸 필름마켓 페스티벌’에 <궁극의 아이>를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한국콘텐츠진흥원 참여로 우리나라의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을 소개하는 자리였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5분 동안 10년 전 죽은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죽은 지 10년 후 벌이는 복수, 그리고 그 한가운데 궁극의 아이라는 특별한 존재에 대해 설명했죠. 미국을 배경으로 일어난 일이니까 그런 점을 어필하려고 했어요. 개인적으로 영화화보다는 제 소설이 미국에서도 출간되기를 바라요. 소설이 잘 돼서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Q 미래를 보는 아이를 ‘궁극의 아이’라고 부른 이유가 궁금해요.

배후에서 정부를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인 악마 개구리가 있어요. 미래를 예측하는 아이를 이용하는 악마 개구리들에겐 그들이 정말 중요한 존재죠. 그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악마 개구리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거니까요. 그렇게 소중한 애들이라면 그들이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을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The child’라고 하려고 했지만, 우연히 ‘Ultimate driving machine’이라는 자동차 신문광고 카피문구를 봤어요. Ultimate가 궁극이라는 뜻이잖아요? 그 단어가 굉장히 와 닿더라고요. 그렇게 악마 개구리가 부르는 그들만의 특별한 이름을 ‘궁극의 아이’라고 짓게 됐어요.

Q 작품은 911테러, 14대 달라이 라마,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등 최근의 역사적 사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가져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모든 사건에 ‘배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가야’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미리 알고 그들의 계획을 망가뜨리죠. 전 그림자 정부의 존재를 믿어요. 세상에는 한 집단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가는 일이 많아요. 신교와 구교의 30년 전쟁도, 프랑스대혁명도, 미국의 독립도, 1, 2차 세계대전도, 911테러의 배후에도 그림자 정부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전 소수의 집단이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이득을 취하는 게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불합리한 일에 대해 고발하고 싶었던 거죠. 제 나름대로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을 소설 속에서 처벌하고 싶었어요. 소설을 보면 ‘악마 개구리’들이 결국 죽잖아요. 그런데 그들을 죽이는 대상이 궁극의 아이 ‘가야’인 거죠. 힘없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하고 싶었어요.

Q 소수 집단인 그림자 정부가 어떻게 국가를 조종하는 건가요?

그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이용해요. 정부에 대한 신뢰를 꺾어버림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국가를 조종하는 거죠. 예를 들면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자치구 독립이에요. 만약 한 자치구가 독립하게 되면 나머지 자치구들이 도미노처럼 모두가 독립을 원하게 될 테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자치구 지도자를 암살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자치구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겠죠. 그림자 정부는 자치구 지도자의 암살을 정부가 꾸민 일처럼 만들어서 국민들의 반란을 주도하기도 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돈의 유통에도 관여해 화폐의 가치를 조절,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깨뜨리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그림자 정부는 현재도 국가를 조종하며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고 있어요.

Q 가야와 엘리스의 사랑 또한 작품 속 중요한 사건으로 그려집니다. 두 남녀의 사랑을 5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려낸 구성이 독특합니다.

소설은 미래를 예측하는 남자 ’신가야’가 사랑하는 모든 과거를 기억하는 여자 ’엘리스’를 지키기 위해 복수하는 이야기도 중요한 스토리예요. 처음엔 5일 동안 남녀가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야기의 구성상 그림자 정부인 악마 개구리 5명을 하루에 한 명씩 죽이기 위해 5일로 정했어요. 5일 동안의 단서가 과거 10년 전 5일 동안의 사건과 배치되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었어요. 하루하루 일상이 단서가 되는 셈이에요.

Q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로 시작했지만 작품은 인간의 추악한 탐욕과 돈에 대한 성찰까지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요.

제가 돈을 많이 벌어보지 못해서 그런지 충분한 돈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 하는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로스차일드 가문도 세계의 1/4에 해당하는 재산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지만 욕심은 끝이 없잖아요.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런 재력이있다면 소외되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텐데 그렇지 않은 현실에 화가 나서 그 사람들의 얘기를 소설로 가져와 악당으로 만들었어요.

Q 집필을 마친 후 작가로서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제 소설은 거의 독자들이 사건의 퍼즐을 맞춰가며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그 동안의 작품에선 사람들 간의 이야기가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추리적 요소 이외에도 인간의 감정과 사랑에 대한 감정적 부분을 많이 고려했어요. 그러고 나니 제가 제대로 표현한 건지 불안감이 들더라고요.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조금 더 잘할걸’ 하는 후회는 남아요.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인물의 감정선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좀 더 내공이 쌓인 것 같아요.

Q 늘 기발한 상상력과 설정으로 독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데, 소재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다큐멘터리를 보면 제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 즐겨봐요. <궁극의 아이>도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런 얘기를 하면 재미있을까 생각해서 쓰게 된 작품이거든요. 그리고 ‘낯설게 마주하기’를 생활화하고 있어요. 같은 물체를 봐도 다른 시선에선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생각하고 노력해요.

Q 소설가가 되기까지 다수의 영화, 드라마, 시트콤 작가를 거쳤습니다. 소설가로 사는 삶은 어떤가요.

저는 그 어떤 직업보다 소설가로 사는 삶이 가장 좋아요. 시나리오, 방송 작가 등 여러가지 일을 해봤지만 다른 직업은 너무 힘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제가 방송작가일 때는 PD의 의견이 반영될 수도 있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쓰기보다는 사람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내용을 써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작가는 하루를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쓸 수 있어요. 심지어 글에 대해 아무도 가타부타 묻지 않죠.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이전 인터뷰에서 “작가에게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과 흡사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가 꿈꾸는 집은 어떤가요?

글쓰기가 집을 짓는 것과 흡사하다고 한 것은 글을 쓰는 과정때문인 것 같아요. 집을 지으려면 설계를 하고 거기에 맞춰 재료를 구해와야 하잖아요. 재료 손질에 얼마나 공을 들이냐에 따라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죠. 집은 그렇게 하나씩 제가 직접 짓는 거에요. 그런 면에서 소설 또한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서 짓고 완성해야 하니 집 짓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제 소설이 어떤 집에 비유되기 보다는 ‘페라리 자동차’에 비유되면 좋겠어요. 페라리 자동차는 누가봐도 예쁘고 훌륭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잖아요? 저도 페라리 자동차처럼 누가봐도 완벽한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에요.

Q 차기작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요.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요?

저는 어떤 틀을 정해두고 쓰는 게 아닌 관심 있는 소재가 있으면 거기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현재 글에 대한 소재는 한 17개 정도 갖고 있어요. 시나리오 작가를 했을 때부터 생각해 온 것들이죠. 현재 쓰고 있는 작품은 내년 초에 완성될 것 같아요. 진시황의 ‘불로초’에 대한 비밀이 담긴 6개의 인형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목은 <불로의 인형>으로 정했어요.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개인적인 탐욕에 대해 그려봤어요.

Q 앞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제목만 들어도 ‘이 책은 장용민이 쓴 소설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저만의 특징이 가득 담긴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다른 작가는 쓸 수 없는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그런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 설정도 그런 노력의 일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