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입한 한 카페에서 이 책을 가지고 온라인 북클럽을 한다고 했다. 이미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사로 유명한 분이시고, 책 제목도 한 번은 읽어 보고 싶은 제목인데다가, 한동안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던 책이라 관심이 갔다. 게다가 얼마 전 지인이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는 이야기도 들어 이번 온라인 북클럽 통해서 읽어보자 싶었다.
270쪽의 에세이 책. 평소 혼자 읽었더라면 한참의 시간이 걸렸겠지만 북클럽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으며 인증샷도 찍어 올리고, 읽은 내용에 대해 서로 질문도 댓글로 질문도 해보고, 다른 사람은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작성된 댓글도 읽고, 발제해주신 분의 질문에 답도 하면서 읽다 보니 금세 다 읽게 되었다.
책을
처음 읽으면서 1장 내용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책을 덮으면서도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안 그래도 작년에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내 글쓰기 실력에 대한 한계를 많이 느꼈는데, 책을 읽고 읽은 것을 누군가와 토론하고 글을 써내는 과정 전반에 대해 촘촘한 밀도의 논리적인 언어로 빵빵 터지는 유머까지 곁들여 깔끔하게 글을 쓰신 분의 책에 대한 서평을 어찌 쓸 수 있을까 두렵기만 했다. (게다가 서평의 위험함에 대해서 본문에 언급하셨다. p154 모든 코멘트와 비평이 그렇듯이, 그 서평은 서평 대상이 된 책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만큼이나 그 서평을 한 사람에 대해 무엇인가 의미심장한 것을 말해준다. 서평은 서평 대상이 된 책뿐 아니라 서평자 자신의 지력, 매력, 멍청함, 편견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좋은 기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고, 배울 점과 느낀 점이 많았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기에 이 책에 대한 후기를 남겨 본다.
첫 번째로 첫 장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점은 언어를 적확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p20 의사소통을 하다가 그만 미쳐버리지 않으려면 소통 중에 사용되는 유사어 간의 차이를 판별해야 한다.
p50 모호한 말은 종종 권력자의 무기다. 얼버무린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는 것은 청자의 몫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중략)권력을 쥔 정치인이나 예술가와는 달리, 논술문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명료한 표현을 통해 공적으로 설득하려고 해야 한다. 논술문에서 모호한 표현을 자제하는 훈련은 민주주의의 덕목 함양과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비단 논술문을 작성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할 줄 모르면서, 다양성이 넘치는 혹은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p54)하며 언어 뜻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맥락에 알맞게 활용하는 것이 곧 그 사회의 수준도 가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로 느낀 점은 모든 공부의 기초인 책을 읽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말하고 글을 쓰기 위한 그 일련의 과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자발성, 흥미, 몰입과 같은 정서적인 것이 더해진다면 더없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도 중요한데, 양질의 단백질 섭취, 운동, 이런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체력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3학년 체육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자율학습을 시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부분은 사회 전체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는 저자처럼 매력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사회적인 거리두기’를 잘 하며 독서에, 글쓰기에 빠질 수 있는 나의 오롯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p 140 책을 읽는다고 꼭 자신에게 몰입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독서는 사회로부터 도망치는 데도 유용하지만,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데도 쓸모가 있다. 책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을 떠나 책 내용으로 들어가야 한다.(중략) 책은 사회와 자아의 중간에 있다.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독서에 몰입할 수도 있고, 자아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책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 책의 내용은 언어로 되어 있고, 언어는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며, 그 언어를 통해 사람들을 의사소통을 한다. 사회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책을 읽다가 거꾸로 소통을 위한 언어가 풍부해지는 역설이 독서 행위에 있다.
어느 독서 이론서에서도 이토록 독서행위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 놓은 책이 없을 것 같다. 청소년 시절 헌책방 다니며, 두툼한 고전을 찾아 읽는 것이 취미였고, 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 중이라 요즘 같은 시대에도 별달리 일상의 변화가 없다고 한 인터뷰 내용만 봐도 어릴 적부터 얼마나 많은 책을 섭렵하고 통찰력을 키워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논술문이나 논문(연구 저널)에 한해서 써 놓았지만 글쓰기 전반에 대해서도 확장시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와 닿았다.
p60 학생들에게 거듭 제목을 붙이라고 역설하는 것은 제목을 붙이는 것도 지적인 훈련의 일분이기 때문이다. 제목을 붙이는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이 쓴 글의 내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제목 붙이기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 그리고 ‘대표’ 혹은 ‘재현(represetation)’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볼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p202~203 논술문의 1차 목표는 유의하여 비문(非文)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논술문의 기본이라고 할 만한 이러한 사안에서 오류가 반복되면, 논술문 전체에 대해 신뢰가 떨어지게 된다. 부실하게 쌓아 올린 가건물에는 들어가 보고 싶지도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중략)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해상도도 높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논술문은 이미 충분히 좋은 문체를 가진 것이 아닐까.
네 번째,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공부를 제대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살면서 대학원 생활 2년간을 정말 내 생애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간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진정으로 공부에 매진했던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현재 내 환경조건이 썩 좋지는 않지만 한껏 동기부여는 되어 있으니까.
저자의 인터뷰 말처럼 내가 대학 때 학점 잘 주는 수업 말고 좋은 강의를 골라 듣는 감각도 있었고, 좋은 수업이란 정보량도 상당해야 하지만 정보를 꿰뚫는 안목, 시야, 관점도 가진 사람이었다면 내 삶이 조금 달라졌을까? 그런 감각을 중고등 시절에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그런 면에서 중고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평소에 쓰던 언어 행위들에 대해 점검을 하게 된다. 물론 하루아침에 잘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상태로는 안되겠다’는 각성은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책을 덮는 순간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나온 책들과 곧 내놓을 예정이라는 서평에 관한 책도 꼭 읽고 싶다. 인터뷰에서 하셨던 말처럼 ‘현재 한국어로 통용되는 글 다수에 깊은 빡침이 있고, 그 분노가 다른 글을 쓰게 만드는 에너지(p260)’라고 하셨는데 계속해서 좋은 책들을 내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