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지 기자 출신의 작가가 쉽게 풀어쓴 정도전 평전이다.
역사의식이 왜곡되면서 조선은 얼마나 많이 우리에게 잊혀졌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유럽 근대의 계몽사상가들의 이름과 주장은 줄줄이 외우면서도 조선을 세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하면서 문득 놀랐다. 나는 대학에서 소위 한국사를 전공했는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정도전에 대해 내가 뭘 알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이 봉건체제 하에서 철저하게 백성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반면, 동아시아는 일찍부터 민심은 천심이라는 인식 하에 백성이 곧 섬겨야 할 대상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뭐, 이 이념이 실제로 얼마나 정확하게 실현되었는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겠지만.)

중국 고사 <창랑가>는 "창해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러우면 말을 씻는다'고 했다. 그때그때 세속에 따라 살면 되지 청렴과 결의를 지나치게 가조하는 것은 현명한 처신이 아니라는 뜻이란다. 비슷한 말로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고사도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정도전은 탁류에는 발끝도 담그지 않겠다는 결기로 세상을 살았단다. 그렇다고 도덕군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적인 부정이나 축재는 정도전을 죽인 일파가 아무리 노력해도 흠결을 찾기 어려웠으나,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적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은 서슴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지배층이 왜 존재하는지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일찌기 생산대중들이 자신들이 해결하기 위한 문제를 맡기기 위해서 지배층을 만들고 먹이고 입혔으니, 지배층은 그들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빚지고 있는 만큼 봉사해야 한다는 신념을 내세웠다. 흥, 유럽의 사회계약론보다 훨씬 앞서고도 선진 주장일 뿐 아니라, 그 속에는 그들과는 다른 계약 뿐 아니라, 백성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도 있다.
<경제문감>에는 "남의 음식을 먹는 자는 남을 책임져야 하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남의 음식과 옷을 얻는 자가 바로 선비이고 관료이고, 지배자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선출직들이 이런 생각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면, 한 겨울에 철거민이 옥상에서 불에 타 생을 달리하지는 않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문득 가슴을 친다.....

여전히 불편한 Roald Dahl의 유머가 걸리는 책이다.
처음에는 대체 제목이 무슨 뜻인지, 참 많이도 궁금했던 책이기도 하다. 우리말로는 <아북거, 아북거>로 번역이 되어 있던가? 우리말로도 이해가 안 갔던 제목.

꽃 가꾸기를 좋아하는 소심한 독신남(? 글의 느낌으로 보면 순수한 우리말로 홀아비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Mr. Hoppy가 있다. 이 양반이 사는 작은 아파트 아래층에는 과부인 Mrs. Sliver가 산다. Mr. Hoppy가 사랑하는 여인. 이 여인은 Alfie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기르는데, 이 거북이가 잘 자라지 않는 것이 걱정이다.

어느날 Mr. Hoppy는 거북이를 크게 하는 비밀의 주문을 안다고 하고. 그 주문이 바로 tortoise를 거꾸로 뒤집은 책 제목이다. 물론 그런 엉터리 주문을 외운다고 거북이가 자랄리 없다. Mr. Hoppy는 수 없이 많은 거북이를 사와서 세심하게 크기를 재고, 순서대로 Mrs. Sliver의 거북이를 바꿔치기 한다.

Roald Dahl 책 답지 않게 크게 나쁜 사람도 없고, 그다지 잔인하지도 않지만, 읽는 느낌은 개운치 않다. 사랑을 이루는 과정이 악의는 없다고 해도,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 영 찜찜하다. 물론 그 거짓말로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도(글쎄, 만약 진실을 알았다면 Mrs. Sliver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간과 Pet 사이의 관계는 그것이 겉모습만 비슷한 아무 것으로나 바꿔치워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거짓 위에 지어진 사랑은 여전히 불편하다.

제목부터 마음을 싸하게 만드는 책이다. <문 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었던 조선시대 마이너리티들의 전. 다른 역사책 속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거지나 협객, 또는 의녀, 그런가하면 그저 특이한 성정을 가진 듯한 기이한 일화로만 소개되었던 각종 예인들의 전이 펼쳐진다. <전>자체는 작가 최기숙의 작품이 아니고, 그 시대 사람들이 적어 넣은 것을 작가가 다시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읽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었다.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러 외눈이 되었다던 화가 최북.....  돈과 권위로 그를 억누르며 그림을 대놓으라고 겁박하는 고관대작. 하지만 그림은 누군가가 돈을 준다고 해서 아무때나 뚝딱뚝딱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돈을 들이밀며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빨리 내놓으라는 협박은 그림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의 야만일 뿐. 최북은 자신의 눈을 찌른다. 밖으로 향할 수 없는 분노가 안으로 되돌려지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스스로 육체에 새긴다....

왜 그전에는 최북의 일화를 읽으며 그저 성질도 어지간한 화가로만 생각을 했을까? 작가의 해석은 애잔하면서도 서늘하다. 새로운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눈과 국문과 출신다운 정갈한 문장이 마음에 든다. 비슷하게 조선의 마이너리티를 해석하는 책도 역사학자가 쓰면 훨씬 건조해지고(시대상황과의 결합은 더 뛰어날지도 모르겠다만), 국문학자가 쓰면 애상이 커진다....

김명국 전에 나오는 지옥의 이야기도 울림이 크다. "지옥에 갈 사람은 지옥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아니라 지옥을 창조한 자, 그것을 빌미삼아 면죄부를 팔려는 자.....승려들이 그 그림을 베껴 전할 때 아무리 벗겨도 벗겨지지 않는 수치의 그림자를 넋처럼 옮겨 적는다..."

마음이 번다한 날, 문밖을 나서도 갈 곳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날, 아껴두었던 향내 고운 차를 마시듯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