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동양의 한국에서 1950년대 미국의 추리소설을 읽어서일까요? 이 책과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어떤 느낌이 오지 않았습니다. 재미로만 따지면 미키 스필레인이 창조한 마초 탐정 <마이크 해머>시리즈 보다도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장르 든 그 장르에 충실한 작품을 좋아하는 편인데 분명 하드보일드 소설이지만 상당히 시니컬하고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추악한 면을 잘 묘사한 이 작품이 생각보다 맘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그냥 머리 식힐려고 하드보일드 탐정이 나온 작품을 골랐는데 생각보다 명작 분위기로 다가오니 머리가 아펐다고나 할까요?

 

사실 이 작품은 명작입니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해낸 탐정 <필립 말로>는 <마이크 해머>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멋진 남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거칠고 여자에게는 나쁜 남자지만 때로는 섬세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옳고 그른 것은 확실히 바로잡는 마초남의 전형적인 스타일입니다. 얼마나 고집쟁이인지 때로는 답답함이 느껴질 지경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전형적인 스토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50년대 미국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들이 속속 들어납니다. 게다가 지금이면 상당히 문제가 되었을 법한 인종차별적인 발언들도 서슴치 않고 등장합니다. 스토리는 의외로 간단한 것 같은데 소설 중후반으로 가면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는 보기드물게도 상당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사건이 끝났나 싶었지만 아직 책 두께가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 힌트라면 힌트겠네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소 지루하기도 합니다. 스토리 전개가 그리 빠르지 않고, 하드보일드 치고는 액션신이 많이 약합니다. 도리어 심리묘사와 대화에 상당부분 치중하고 있다보니 긴 대사와 묘사를 읽는 과정이 다소 늘어지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소설 구성 자체가 깔끔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은 것 같은 묘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소설이 나왔을 당시 동시대 백인 미국인들은 이 책을 참 많이 사랑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시대 그 들이었다면 저 역시도 그랬겠죠. 미국 또한 한 때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고, 정의보다는 힘이 우선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미국 미생들은 <필립 말로>의 활약상을 책으로 읽으며 자기 자신을 투영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돈은 없지만 쿨하게 살며, 정의를 추구하고 뭇 여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남자. 그게 하드보일드가 먹히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레이먼드챈들러, 필립말로, 하드보일드, 멕시코, 캘리포니아

'전쟁'은 정말 참혹한 것입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전쟁터로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아무 죄도 없이 공습으로 죽어나가는 무고한 시민들...전쟁은 정말 끔찍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나라도 3년 동안 끔찍한 전쟁을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이 있습니다. 전쟁이란 단어는 인류에게는 이상한 마력을 가진 단어 입니다. 전쟁에는 늘상 승자의 영웅담 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 들이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전쟁의 끔찍함을 이야기 하기 전에 전쟁의 결과에 따라 승전의 자랑스러움과 패전의 치욕을 먼저 생각합니다. 전쟁 뒤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죽음과 고통은 외면되어 버리기 일수 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늘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특히 인류가 벌인 전쟁 중 가장 규모가 컸던 2개의 전쟁을 우리는 세계대전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은 말 그대로 유럽에서부터 미국, 아시아, 호주, 아프리카에까지 전쟁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던 진정한 의미의 세계대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쟁의 규모가 다른 전쟁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컸고, 수천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읽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수많은 자료(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때는 영상기술도 어느정도 발전되어 있을 때라 영상자료도 많이 있습니다)를 통해 책자, 다큐멘터리, 영화, 소설 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책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이 책은 굉장히 분석적으로 2차 세계대전을 접근한 다는 것입니다.

 

즉 이 책의 키포인트는 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바꾼 '12가지의 중요한 흐름'입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역사책이면서도 역사를 그냥 그대로 설명하기 보다는 어찌보면 역사에 기록된 승자와 패자를 뒤바꿀 수도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되집어 보면서, 수많은 IF를 우리에게 던집니다. '만약 이렇게 했다면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죠.

 

역사는 명백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결과가 모든 것을 나타내주는 상황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을 자신있게 던지는 작가의 기법은 상당히 신선하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한 12개의 중요한 흐름은 미드웨이 해전이나 노르망디 상륙작전같이 영화만 좋아해도 누구나 아는 2차 세계대전의 중요한 전투들과 더불어 우리가 잘 몰랐거나 관심갖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정말 중요한 흐름으로 작용했던 것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이 책이 다른 책 보다는 훨씬 현실적으로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분석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압도적인 힘의 적절한 이용" : 공장들의 전투>나 <테헤란 회담><얄타 회담>등과 같은 내용들은 2차 세계대전과 전후 세계질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역사는 도도한 강물과도 같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역시도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지금도 지구는 여기저기서 규모만 다를 뿐이지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끊이지 않겠죠. 이런 역사서적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에 대해 다소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는 점이 다소 놀랍기는 합니다. 전쟁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왜 전쟁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 실제로는 정말 무서운 건데...

 

역사서적의 관점에서는 참 괜찮은 책입니다. 어렵지도 않고 어느정도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 특히 2차 세계대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중요한 흐름을 읽을 기회를 선사함으로써 역사를 보는 안목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세계대전, 독일, 일본, 프랑스, 전쟁

우... <쿠드랴프카의 차례> 어렵습니다. 어떤 평가를 내릴까 하다가 전 좀 박하게 점수를 줬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취향이 맞거나, <빙과>라는 작품부터 차근 차근 읽어서 이 소설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상당한 감정이입이 된 상태라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 같이 아무 사전지식이나 정보도 없이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이 책부터 읽은 사람이 재미를 느끼기에는 다소 낯설지 않나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더군다나 제가 지금까지 읽었던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을 보면 <인사이트 밀>, <덧없는 양들의 축연>, <부러진 용골> 이 세 작품인지라 그리고 세 작품 모두가 다른 평범한 미스테리 소설과는 차별되는 독특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작품인지라 이 소설역시 또 다시 그런 기쁨을 내게 주겠지 하고 성급히 덤볐다가 제대로 한방 먹고 KO 되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이 작품이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추구하는 미스테리 소설의 이상과 다소 맞지가 않다는 것일 뿐입니다.

 

<쿠드랴프카의 차례>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작가가 이런 라이트한 청춘 미스테리물을 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지한 거죠. 게다가 이 고전부 시리즈의 첫 작품인 <빙과>는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기도 하다니 그렇다면 이 시리즈에 쏟는 작가의 정성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는 1편이 데뷔작인 <빙과>, 2편이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3편이 바로 이 <쿠드랴프카의 차례>, 4편이 <멀리 돌아가는 하나>이고, 5편은 아직 국내 미출간작인 <두 사람의 거리측정>이라고 합니다. <빙과>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저는 못봐서 머라 평은 못하겠습니다.

 

<쿠드랴프카의 차례>는 고등학교 축제기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로 문집팔이(자세한 것은 스포일러 이므로 ㅠㅠ) 프로젝트와 축제 기간중 벌어지는 알수없는 사건을 해결하는 고전부 4인방(호타로, 지탄다, 사토시, 마야카)의 활약상이 나와있는 청춘 미스테리물입니다. 사실 미스테리라는 이름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청춘물이라 해도 자연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크게 긴장감 가지고 읽을 필요가 없구요, 그래서 제 취향하고는 안 맞나 봅니다. 뭔가 학원을 배경으로 하는 섬뜩한 추리물을 기대했으니...그게 문제 였습니다.

 

한 가지 도움이 된 것은 이웃나라 일본의 고교생활, 특히 축제문화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축제를 사흘이나 하다니... 일본도 입시지옥일텐데 그래도 할 건 하는군요. 과거 제 고교생활에도 축제는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이름뿐일뿐, 전 교생 중 일부 몇십 명만 참여하고, 2~3시간 공연한 게 다인데...그것도 학업의 연장 선상같은 느낌이 강했던... 참 부럽습니다.

요네자와호노부, 데뷔작, 청춘물, 고전부, 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