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느리게 걸었건만 벌써 안골이 보였다.
그토록 가슴이 뛰었건만 터지지는 않았다.
그토록 할 말이 많았건만 입술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미순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건만 미순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토록 달떴건만 아무 짓도 할 수가 없었다.
- <징검돌> 중 -
<처음 연애>의 표지를 보고 상큼 & 발랄한 연애이야기를 기대했다.
당당한 여학생 앞의 뭔가 흐물한 그 녀석.
지켜보는 친구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키득 키득.
그녀의 당당한 한 마디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거야~"
나의 학창시절에도 이리 당당한 그녀들은 있었을테지만 달라진 세대상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소설이지않을까 생각하고 책장을 열었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첫 단편인 <징검돌>부터 6.25전쟁이 끝난 그 어느즈음부터 시작이다.
그 이후 단편별로 시대는 점점 흘러 현재 그 어느즈음으로 이른다.
변치않는게 있다면 청라면의 아리랑책방과 그 속의 순수한 1318들이다.
지금의 1318들이 가야할 곳은 당연히 학교일테지만
그 당시에는 농민으로 혹은 공장의 노동자로 어린 손들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도 했다.
세상을 다 알기엔 벅찬 그들이지만 순수하고 풋풋하기에 누군가에게 연정도 품고, 고백도 하고,또 아쉽게 헤어지기도 한다.
책속의 1318들의 다양한 모습과 또 다른 나의 1318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소설의 매력은 이런게 아닐까 싶다.
과거에서 거슬러 온 순수한 그,그녀들의 사랑의 마지막에 어렴풋이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게 해주는 것 말이다.
되돌아보면 모든게 추억이고 어려보이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얼마나 진지하고 심각했던지.
피식~ 웃음도 나오고 한편 므흣~ 해지기도 한다.
책속의 누군가와는 닮아있었을 순수했던 나.
순수했기에 막연한 기대가 더 컸던 때.
사랑은 언제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금은 더 순수한 나를 보고, 때론 조금은 더 긍정적인 나를, 때론 조금은 더 우울해지는 나를 보게만드는 것 같다.
사랑에 빠져 나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마지막 단편 <헤어지자, 우리>의 주인공 이름인 '자유'처럼
상대방을 완전히 소유하려들기전에 자유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그리고 나를 인정해주자.
"바보 같은 자식, 그게 사랑이야.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라는 하나가 되는 것!"
-<헤어지자,우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