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RR 마틴 옹의 얼음과 불의 노래 제4부 까마귀의 향연이다.
은행나무 출판사가 전면 개역을 시작해서 최근 제5부 드래곤과의 춤까지 완성했다. (작가 조지 RR 마틴이 제6부 집필을 끝냈다고 밝혔으니 조만간 번역출간도 기대해본다.) 내심 진작 이렇게 처음부터 했어야지 싶다가도 그래 이제라도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책값이 상당히 비싸다.
타르가르옌 왕가가 몰락하고 치른 다섯왕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선다. 그리고 웨스테로스 대륙에는 새로운 권력이 자리를 잡는다.
얼음과 불의 노래는 늘 그랬듯 끝이 없는 역사의 서사를 보는 것만 같다. 로마 혹은 몽골이 대륙을 넘나들며 세를 불렸던 시기가 생각나면서도 한편으론 피와 살이 뒤엉킨 시기를 간접적으로만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판타지는 단지 상상이 아니다. 인간이 지나온 역사 이면을 들추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작 레트로토피아에서 레트로토피아는 레트로와 유토피아를 합친 단어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노스탤지어로의 회귀를 비판하는 저자의 뜻이 담긴 개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사회는 자유를 얻음으로써, 울타리를 걷어찼다. 그에 따라 온갖 문제에 직면했다. 자유를 얻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산더미다. 민주주의의 위기, 양극화, 인종-종교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바란 미래였는가.
이럴수록 사회는 위축되고 마는데, 소확행이라든지 아주 사소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각자 행복에 머문다. 하지만 불평등과 모순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 박탈감은 끊임없이 우리 목을 조르는 기폭제가 될 것이며, 두려움은 커져갈 것이다.
노학자는 기본소득 개념에 방점을 찍었다. 이것이 과연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 나라는 재난지원금을 뿌리고 황급히 경제 악순환을 막으려 고군분투중이다. 어쩌면 저자의 혜안은 이러한 사태가 앞으로도 더 있을 것이란 전망을 바탕으로 했는지도 모른다.
얇지만 쉽지 않은 책이다. 곱씹어볼 대목도 많다.  

 

어슐리 르 귄의 후기 단편집이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온후해지고 세상을 향한 시선에 따스함이 묻어난다고 느꼈다. 르 귄은 차이를 우선 발견해 드러내고 다시 메우는 과정을 통해서 고정관념을 낯설게 하는 데 이야기를 집중 쏟아낸다. 살아간다는 것은 본디 알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객체들과의 협력과 조화에 달렸다. 그러므로 가끔 무의식적인 편견과 오해는 불가피할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삶은 지속된다. 어슐러 르 귄은 이런 뻔한 말을 판타지와 SF를 오가며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레 사랑을 말한다. 낯섦은 경험이 되고, 교훈이 되어 개인으로서의 우리를 되돌아 보게 한다. 어슐러 르 귄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아직도 제대로 읽히지 않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