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동이 있었던 시대를 꼽으라면 19세기라 하겠다.
특히 한, 중, 일 동양 3국은 그 동안 자신들만의 중화 사상에서 벗어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격랑으로 요동하던 세상으로 던져졌다.
이러한 19세기를 여는 서기 1800년...
조선에는 너무나 큰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바로 기울어져 가는 조선후기를 비추던 햇빛같은 개혁군주 정조가
불과 오십의 나이로 승하했던 것이다.
이후 조선은 오랜 세도정치로 모든 국력이 소진되고,
고종 즉위 후 대원군 집권으로 잠시 회복될 듯 하다가
일찍 탈아입구(脫亞入歐)로 노선을 바꿔 매진하여
국력 신장에 성공한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된다.
박시백 대하역사만화 <조선왕조실록> 열 여섯 번째
책의 주인공이 바로 정조대왕이다.
영조로부터 이어지던 탕평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세력 간의 적절한 견제로 왕권을 강화시켰고,
누구도 당할 수 없을 만큼 학식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학문 연구와 정책 보좌를 위한 규장각을 강화하여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같은 서얼 출신의 인재들을 활용하였다.
특히 대왕께서 총애하던 다산 정약용은
수원성 건축에 당시의 최신기술인 거중기를 동원하였다.
또한 신해통공(辛亥通共)을 통해 시전상인들의 특권을 폐지함으로써
자유 경쟁을 통한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가히 조선시대 판 르네상스라고 불린 만한 시대였다.
그러나 만일 정조가 좀 더 오래 용상을 지켰다고 조선의 운명이 달라졌을까?
이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대왕이 뛰어난 성군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소망은 세종대왕 때와 같이
유교적 왕도주의가 구현되는 나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정조 본인이 송시열 못지 않은 정통 주자학 학자라는 점,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박지원 류의 문체를 저속하다 하여
금지시킨 문체반정 등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리고 당시에 들어왔던 천주교에 대한 대처로
유교 경전을 충분히 알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시종일관 고수했던 보수성이 짙은 인물이었다.
그 전 후에 비해 비교적 나라와 백성들의 삶이
안정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조의 치세가 길어졌다고 하여
거친 변화의 격랑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점이 대왕의 업적을 깎아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정조대왕 또한 그 시대의 인물일 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