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 일하고 개처럼 버림받은 그리고 사내로 처음 연모의 정을 느낀 여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삼룡이.
안쓰럽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삼룡이 그 자신으로서는 가장 행복한 마지막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은 모조리 타고 벙어리는 색시를 무릎에 뉘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께 사라졌을는지!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이 그의 입 가장자리에 엷게 나타났을 뿐이다.
소설 속에서 삼룡이가 마음에 품은 사람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주인집 아씨다. 굳이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갈등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신분이나 계급같은 장애물이 아니더라도 그 앞에는 사랑을 방해하는 많은 난관들이 있다.
미녀와 야수 속 야수처럼 삼룡이가 마법에서 풀려 왕자님이 되지 않는 한 그에게 그녀는 불가능 그 자체이다. 물론 외모나 장애가 절대 넘지 못할 벽은 아니지만 소설 속 그를 묘사한 부분을 읽다 보면 그 벽이란 것이 그리 쉽게 엄두 낼 높이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 하나가 있으니 키가 본시 크지 못하여 땅딸보로 되었고 고개가 달라붙어 몸뚱이에 대강이를 갖다가 붙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이 크다 머리는 전에 새 꼬랑지 같은 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깎기는 깎았으나 불 밤송이 모양으로 언제든지 푸하고 일어섰다.
우리 삼룡이 혹시 이렇게 생긴 거니?
선과 악의 극적인 대립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가 큰 방법일 것이다.그래서 착한 사람만 등장하는 드라마 드물고 악한 사람만 등장하는 영화 찾아보기 힘들다. 신데렐라에게는 계모가 흥부에게는 놀부가 콩쥐에게는 팥쥐가 있게 마련이다.착하고 우직한 삼룡이에게는 마음 못생긴 주인집 도령이 제격인 것이다.
또한 이야기 속 불행의 중심에도 주인집 도령이 있다. 자격지심으로 아내를 학대하는 그리고 삼룡이를 괴롭히는 그가 없었다면 삼룡이는 감히 그녀를 향한 어떠한 감정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씨를 안쓰럽게 생각하지도 이것이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집에 큰불이 나지도 그 불길 속을 헤치고 들어가 그녀를 구하다 목숨을 잃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오생원의 위선적인 행동과 방관자적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더욱 큰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소설에 한층 더 몰입하게 만든다.
소설의 마지막은 표면적으론 비극이지만 삼룡이의 입장에서는 해피엔딩에 가깝지 않나 싶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태어나 그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권리였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 더 고귀하고 완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저함없이 불길 속으로 들어간 삼룡이의 용기와 사랑의 힘이 대단한 것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