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49재가 조용히 비와 함께 지나갔다. 아마도 49일 동안의 많은 사람의 눈물과 소망으로 그는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떠나던 날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사람 냄새 나는 대통령의 부고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잃은 상실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무지보다 더한 무관심 속에서 그를 보내버린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퇴임 후 고향인 봉화마을로 돌아왔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예쁜 그림과 큼지막한 활자로 간단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 어린아이들과 찍은 사진 속 천진난만한 사람노무현은 그를 더욱 그립게 만든다. 그의 에세이집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어린이판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는 한학을 공부하신 아버지와 법대를 다니는 형님의 영향으로 어렸을적부터 똘똘하고 시국에 밝은 아이였다. 그러나 신화나 위인전에서처럼 과장되어 있지 않았다. 똑똑한 아이이지만 아이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혹은 가난하기 때문에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실수도 담고 있으며 반성의 말들도 덧붙이고 있다.
고시준비를 하던 시절, 그의 반려자 양숙씨와의 연애담, 인권변호사 시절, 정치가로서의 생활, 16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이 무모한 도전이고 눈에 보이는 실패였다. 그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미친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듯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비록 미완성의 상태로 지고 말았지만 그의 뜻을 담은 수천만개의 씨앗을 남겼다.
케네디가 TV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면, 인터넷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최초의 인물이 노무현이다란 진중권교수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인터넷을 통한 상호 소통의 힘과 중요성을 알려준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이 더욱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극한의 고독과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크게 느끼고 있었고 그가 비극적인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시간도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벌레로 변한 오빠의 방문을 닫아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한 여동생처럼 그와의 소통의 문을 무관심으로 닫아버린 죄책감 때문일것이다.
임기 중에 그만큼 역경의 굴곡이 많던 대통령도 그리고 그것으로 부터 도망치거나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대통령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가 떠나고 소통의 단절을 느끼는 지금 그것이 얼마나 큰 용기이며 큰 신념이었는지 또한 그가 얼마나 솔직한 사람이었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그가 성공한 대통령인가를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퇴임 후 그가 고향 사람들에게 환영받으며 돌아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 그 근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왕들의 이름은 죽은 후에 업적에 맞추어 결정된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헌법 제1조 1항이 그저 허울뿐인 죽은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실질적인 것임을 알게 해 준, 우리와 가장 가까웠던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동안 그를 잊고 지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것은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무의식이 먼저 반응하여 눈물과 웃음,분노와 아픔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기억은 소실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랑받고 사랑한 가장 순수한 기억은 뇌의 제일 깊은 곳에 담아져 영원히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가 이곳에서 만들어 준 추억의 기억들은 서서히 희미해져 가겠지만 그가 남긴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주인의식은 영원히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