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잠들어 고요한, 별들만이 어둠을 밝히는 깊은 밤 소년의 어깨에 길 잃은 별 하나가 고이 잠들어 있다.

아름답다. 대자연의 밤 풍경도 순수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도 시리게 아름답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소설 속 소년처럼 나와는 다른 사람을 혼자서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소년과 소녀가 있는 그곳으로 지금 당장에라도 사랑하는 그와 떠나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대자연에서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나무도 돌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 그리고 누구나의 짝사랑도 이뤄 줄 것 같다.

오고 가는 이 적고 인적 드문 곳에서 목동의 유일한 낙은 양식을 가지고 오는 아이와 아주머니로부터 주인집 아가씨의 소식을 듣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스무 살 짝사랑하던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던 일이 생각났다. 부끄러운 듯 찡긋하는 미소와 함께^^

평소에는 짜증 나는 고지서들로 가득했던 그래서 자주 그곳을 찾을 일이 없었던 우편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하며 설？？던 기억이 있다. 집배원 아저씨를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얼마나 반가워했는지도.

목동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목동의 모습도 스무 살 그때의 나의 모습도 왠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순수와 맑음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럴 것이다.

어른들의 사랑이 순수하지 못할 법은 없지만 그것은 커피 속 프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커피 속에는 우유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지만 우유 맛이 난다. 우유 맛을 내는 화학물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사랑에선 진짜가 아닌 진짜를 흉내 낸 인공감미료의 냄새가 난다. 

소설 ’별’을 읽은 후 영화 ’키다리 아저씨’가 보고 싶어졌다. 새벽에 이 소설을 읽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눈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이 되고 오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장님은 자신의 큰아들은 목사이고 가족 모두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니 믿고 일해도 좋을 거라 했다. 나 또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나쁘지 않은 인상이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 모든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가게로 몸이 불편한 한 상인이 들어왔고 사장님과 잠깐의 이야기가 갑자기 몸싸움으로 번졌다. 이유인즉슨 물건을 팔기 위해 가게로 들어오려는 아저씨와 이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사장님 사이의 실랑이 때문이었다. 누구나를 포용하고 따뜻하게 감쌀 수 있을 것 같았던 목사님의 어머니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녀의 예상 밖의 행동을 보며 한 사람의 인성을 넘어서 종교라는 것에도 적잖은 실망과 회의를 느꼈던 적이 있다. 소설 속 마틴을 차례로 방문한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 그리고 자세와 너무 상반되는 그녀가 톨스토이의 이야기와 함께 10년만에 떠올랐다.

전지전능한 절대적 존재로서의 신을 믿지 않는다. 물론 그때의 실망감 때문만은 아니다. 종교를 가진 믿음이 있는 누구나가 신의 뜻을 그대로 행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면서 왜 내가 일러 주는 것은 행하지 않느냐

그러나 신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마틴이 몸소 보여주었듯 깨달음을 주는 모든 존재가 곧 신이기 때문이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가 전한 복음서 제25장)

마틴은 성경을 늘 곁에 두었고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신의 뜻을 실천하려 노력했다. 곧 이것은 그의 일상이 되었고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의 행동에 배어나게 되었다.

길의 눈을 치우던 이를 불러 따뜻한 차를 대접하기도 하고 우는 아이를 업은 궁색한 차림을 한 여성에게 돈과 음식을 주기도 했다. 사과를 훔치던 아이에게 용서와 깨달음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아무 대가 없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사과 한 개 때문에 이 아이를 때려야 한다면 죄 많은 우리는 도대체 어떤 벌을 받아야 하나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어딘가, 사랑이 필요한 누군가 있는 그곳 그때가 신이 우리 곁으로 가장 가까이에 와 있는 시간과 장소라는 것을 모습을 달리하여 마틴을 방문하는 그를 통해 깨닫고 느끼게 한다.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하며 인정이 있는 자는 행복할지니 마틴의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평범한 언어로 비범하게 노래하는 그의 시를 열심히도 다이어리에 옮겼던 적이 있다. 새벽에 라디오를 들으며 읽는 류시화 시인의 시가 좋았고 새벽의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이 둘은 많이 닮아 있었고 참 잘 어울렸다. 시인이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고 예쁘게 표현되는 그의 단어가 좋았다.

요 며칠 새벽까지 일을 하며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었다. 그리고 정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이 시집도 꺼내 보았다.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난 변하지 않았다. 변함없는 시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몇 년 전과 같이 일은 바쁘고 누군가를 혼자서 좋아하고 세상 살기는 여전히 녹녹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다이어리에 적어 놓았던 그 시가 쉼표가 되어 그리고 또 도돌이표가 되어 오늘도 오래 전 그때와 같은 곳에 머물게 했다.

별에 못을 박다

어렸을 때 나는 /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별들이 못구멍이라면 /그건 누군가 /아픔을 걸었던 자리겠지

사람들은 현재의 감정상태에 따라 사물을 현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슬플 때는 새가 운다 표현하고 기쁠 때는 새가 노래한다고 한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나에게도 마냥 아름다운 별이었으면, 더이상 아픔을 걸었던 못 구멍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소금

소금이 /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시탁 위에서 /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오래전 그때처럼 또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더이상 그의 시를 읽으며 눈물 흘리는 나 자신에 당황하지는 않는다.

그의 시어는 예쁘고 아름답지만, 눈물과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처럼 낯가림이 심하고 첫사랑 앓이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눈물짓게 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