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김정운의 강연은 늘 즐겁다. 툭툭 던지는 엉뚱하고도 기발한 이야기에 빠져들다보면 강연은 금새 끝나버린다. 한때 TV만 틀면 자주 보이던 그가 요즘 뜸했다. 알고보니 그 사이 일본에 가서 미술전공을 마치고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선 잠시 머문 여수에 푹 빠져서 미역창고를 사들여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공간'인 자신의 '슈필라움'을 만들어 그곳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색도 한 결과물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놓고 있다. 거기에 한 없이 여유로운 여수의 사진까지 더해져 독자의 마음뿐 아니라 눈까지 즐겁게 한다.

 

 

 

 

타인이 나와는 '다른 생각',경우에 따라서는 '틀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진정한 신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25쪽-
우스개소리가 양념처럼 들어가  있어, 읽는 동안 여러번 킥킥 거리긴 했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면서 만날수 밖에 없는 타인과의 다양한 관계를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풀어간다.

 

'공연한 불안'에 대처하는 내 나름의 해결책은 걱정거리의 내용운 노트에 구체적으로 적는 일이다. 제목을 붙여 적다보면 걱정거리는 '개념화'된다. 내 걱정거리는 대부분은 아무 '쓸데없는 것'임을 바로 깨닫게 된다. 아주 기초적인 셀프 '인지치료'다. -81쪽-

 

'우리 인생이 자주 꼬이는 이유는 '질투'와 '열등감'때문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질투가 외부를 향한다면 열등감은 내부를 향해 있다.'  (...)  '열등감은 외부로 투사하여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적'은 또 다른 '적'을 부르기 때문이다.'(...) 내면의 뿌리깊은 질투와 열등감이 '정의'로는 정당화의 겉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내 마음'의 문제는 쏙 빼놓고 사회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94-99쪽-

더 중요한 자유가 있다. '시선의 자유'다. 이건 한국 사내들에게 매우 절박한 자유다. 평생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기 때문이다.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것처럼 치명적인  것은 없다. -211쪽-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내 남편 또한 이 프로그램을 넋을 놓고 본다. 내가 보기에도 거의 똑같은 타입의 사람들, 똑같은 생활방식인데도 왜 저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싶었다. 저자는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에 대한 동경을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수긍이 간다. 그리고 나 또한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의 잣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돌아보았다. 순간 남편들이 한없이 가여워졌다.

 

 

 

 

 

저자의 말대로 우린 '느닷없는 생명연장'이라는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각자 용감하게'말이다. 그동안 참 치열하게 살아온 삶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세월을 더 살아야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나'위주가 아닌, 나와의 관계속에 있는 이들을 의식하고 좀 더 관대하게 살아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오니까 말이다. 관계를 돌아보고 너그러움을 갖는 태도는 결국엔 나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한 다양한 생각들을 제시한다. 웃음코드를 곳곳에 박아놓아 킥킥 거리며 읽게 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심리학자의 예리한 생각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속물답게 '교환가치'로 집을 생각하는 나 또한 나 만의 '슈필라움'을 가질 꿈도 못 꾼다. 하지만, 느닷없이 얻은 생명연장 그 어느 때인가 가능한 날도 오지 않을까 꿈꿔본다. 온전히 나 만의 놀이를 즐길수 있는 공간...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10년이 훨씬 지난 영화지만 영화 <노트북>은 지금도 정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다. 깊은 감동으로 폭풍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영화 <노트북>은 사실은 '니컬러스 스파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로맨스소설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그의 19번째 소설이 바로 이 책 <나를 봐>다. 기대했던 대로 아름다운 로맨스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며 책속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거센 비바람이 퍼붓던 날, 격투기 시합을 마친 '콜린'은 도로에서 비를 맞으며 펑크난 바퀴와 씨름하고 있던 '마리아'를 사심없이 도와준다. 하지만 콜린의 상처난 얼굴에 두려움을 느낀 마리아는 도움을 받는 그 순간이 한없이 공포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마리아는 동생'세레나'로 인해 다시 '콜린'을 만나게 되고, 지나치리만치 솔찍하고 잘 생긴 '콜린'에게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반듯하게 자라고 변호사인 '마리아'와 달리 분노조절을 하지못해 구치소를 들락거리며 경찰에게 요주의인물로 찍힌 남자'콜린'. 둘은 너무나 다름에도 불구하고 만남을 거듭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에게 의문의 장미꽃 한다발이 배달되어오고 누군가 마리아를 지켜보며 그녀를 위협하고 있음을 알게 된 '콜린'은 자신이 집행유예기간임도 잊은 채 무작정 스토커를 찾아 나서는데...

 

이 책은 중반까지는 기막힌 로맨스를 보여준다. 둘이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중반 이후 스토커의 등장으로 서스펜스를 가미한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덕분에 오랫만에 책 속에 푹 빠지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의 제목은 <SEE ME>다. SEE는 LOOK와 달리 의도가 없는 순수한 시선을 의미한다. 이는 콜린의 시선을 얘기하는거 같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오직 한 사람 '마리아'만을 생각하며 물불을 안 가리는 그의 사랑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싶다. 이것저것 따지기 바쁘고 계산하기 바쁜 세상에서 이런 의도없는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마치 사필귀정처럼 이 책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서스펜스를 기대하시고 이 책을 읽는다면 실망하실거다. 반전이 1도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스펜스조차 로맨스를 위한 장치였을 만큼 너무나 철저한 로맨스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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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처음 시작하고 어떤 책을 읽을지 몰라할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이 독서에세이다. 특히나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내게 엄청난 책의 확장을 가져다 준 책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독서에세이는 독서에 힘이 빠질때 강한 자극제로 작용하기도 해서 새로 출간된 독서에세이는 늘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젠 독서에세이속에 소개된 책들은 이미 읽은 경우가 많아서 새로운 책을 소개받기 보다 내가 읽은 느낌과 비교하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이 책은 1981년생 일본의 소설가가 쓴 독서에세이다.

책은 프랑스문학, 일본 문학, 영국문학, 미국문학의 네개의 파트로 분류해 아주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소개된 문학작품들은 독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만큼 널리 알려진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담고 있다. '여자의 일생', '보바리부인', '목로주점', '오만과 편견','위대한 유산','제인에어','주홍글자','분노의 포도', '위대한 개츠비'등 제목만 봐도 가슴 설레는 작품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너무 다양한 작품들을 담으려 했던 탓인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짧게 쓰려고 했던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한 작품당 할애된 이야기는 불과 2-3쪽에 불과하다. 그래서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품에 대해선 그저 책을 구경하는 느낌만 들 뿐, 작품성이나 내용에 대해선 깊게 다가갈수 없었던 점은 다소 아쉬웠다. 또한 일본작품의 경우는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작품이 거의 없었던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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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독특한 여성캐릭터를 창조한다는 소개답게 저자의 눈길은 온통 여성에게 천착한다. 그리고 나이든 내가 읽기엔 지나치게 가벼운 터치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작가라해도 역시 나이에서 느끼는 깊이의 차이는 어쩔수가 없는 듯 하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표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이 책 표지그림이 내용과 정말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다. 저자가 20년쯤 후에 자신이 쓴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폭풍의 언덕' 을 중학교때 읽었을땐 불쾌하기만 했던 히스클리프를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 이해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아마도 많이 성숙해지고 달라진 생각들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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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책은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건 막연히 두렵기만 한 고전문학에 대한 벽을 허물어준다는 것이다. <보바리부인>의 주인공을 팜므파탈에 비유하는 등, 무겁지 않은 시선으로도 얼마든지 고전문학을 즐길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분명 똑같은 텍스트로 독자에게 읽히지만, 읽는 이는 나이에 따라, 환경에 따라, 너무나 다르게 읽힌다. 그게 책이 주는 최고의 매력이리라. 그렇기에 나와는 맞지 않아 공감이 많이 되지 못한 이 책도 누군가에겐 깊은 공감을 주는 인상깊은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