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어린이부터 예순아홉 할머니까지 육십여 명이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목소리에서 이 소설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작가의 말 중-
이 책 속엔 60여명의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이야기가 짧은 소설형식으로 담겨져있다. 세상의 반을 차지하면서도 세상의 반 만큼의 권리는 여성들에게 주어지지 않았었다. 역사속에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그 권리를 찾기위해 노력해왔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속엔 28편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동안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유명인들 관련 미투사건을 보며 우린 두 얼굴을 가지고 살았던 그들의 민낯을 보며 경악했었다. 하지만 유명인이 아닌, 밥벌이현장에서 벌어지는 미투운동은 그저 유명무실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첫 소설로 등장하는 <두 번째 사람>은 읽는 내내 우릴 분노하게 만든다. '그동안 제도, 규범, 상식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19쪽) 그냥 덮고 넘어간 첫번째 누군가로 인해 그녀는 고통받고 있지만, 고통받는 세번째 사람을 만드는 두번째 사람은 결코 되고 싶지 않은 그녀의 몸부림을 보며 우리 모두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책속에 그려진 여성의 모습은 세상을 향한 권리찾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엄마와 딸 사이에 오묘한 갈등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 고부간의 갈등을 겪으며 맞부딪치는 남편과의 갈등, 출산장려운동을 펼치는 사회속에서도 현실속에서의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찾기위한 안간힘, 엄마들에게만 가해지는 학부모참여의무, 그저 한 인간으로 대우받으며 일하고 싶은 몸부림, 가부장적인 남편과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 뿐 아니라, 가난으로 생리때 결석해야 하는 진숙의 이야기와 열세살 은서의 전교회장 출사표등 사회 곳곳에 묻혀져있는 우리 주위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겨져있다.
조남주 작가의 강연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쓰며 '왜 82년생인지', '왜 김지영인지 '부터 시작해서 한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준비과정을 들으며 그녀가 얼마나 철저하고 치밀한 작가인가 알게 되었었다.
그럼에도 작가의 글은 참 무덤덤하다. 아무 감정없이 전하는 그녀의 글속엔 작가의 생각도 감정도 묻어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메마른 글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그 행간에 독자 자신의 이야기를 가득 채우게 만든다. 그동안 숨겨왔고, 참아왔고, 이겨냈다고 생각했던 나의 이야기들을 행간에 채우며 그녀의 글에 몰입하게 한다. 그래서 참 매력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더하기보다 뺄줄 아는 작가의 힘이 이런거구나 싶다.
앞으로도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삼키지 않는, 늘 깨어있는 작가로 있어주길 바라본다.
안 해야 하는 말을 안 하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 삼킨 말,
다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말들을 생각한다.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