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클래식 공연을 자주 간다. 작년에 팬텀싱어3를 통해 결성된 팀 <라포엠>의 열성팬이 되면서 부터다. 그 이전에도 가벼운 <마티네콘서트>는 가끔 가곤 했지만 라포엠의 팬이 되고 특히나 카운터테너 최성훈님의 팬이 되면서부턴 클래식 공연을 다닐 일이 많아졌다.그래서 내겐 좀 더 클래식에 가까워지는 공부가 필요했고 마침, 이 책과 만났다. 얼마전 여자경님이 지휘하셨던 평화콘서트를 봤다. 대중매체등을 통해 여자경님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분이 지휘하시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여성지휘자가 굉장히 드물어 낯설긴 했지만, 오케스트라를 끌고 가시는 카리스마는 진짜 너무 멋졌다. 내게 강렬함을 남긴 그분이 전하는 클래식이야기는 어떨까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은 굉장히 편하고 쉽게 독자에게 다가간다.

 

저자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써 더 많은 분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음악은 일상에 늘 함께 하지만 특히나 지치고 힘들때 더 절실해지기에 저자는 그런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음악을 책 속에 담아놓았다고 전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뉘어져있는데, 책의 시작마다 큐알코드를 통해 내용과 관련된 음악들을 들을수 있게 묶어놓았다. 큐알코드로 유튜브에 들어가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악의 배경이나 작곡가의 뒷 얘기, 음악사를 읽으니 음악이 더 잘 이해되고 귀에 쏙쏙 들어왔다. 지금 우리에겐 생상스의 대표작으로 남은 <동물의 사육제>에 얽힌 아이러니한 이야기, 하이든의 센스가 돋보이는 <천둥과 번개 폴카>, 베르디의 기구한 삶과 그안에서 탄생한 오페라, 살았을때 앙숙이었던 바그너와 멘덴스존의 결혼음악이 이젠 한 쌍의 결혼음악이 되어버린 이야기, 슈만과 베토벤,리스트등 음악가의 사랑이야기와 거기서 탄생한 음악들등 다양한 음악과 음악가의 뒷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게 담겨있다.

 

이 책을 읽노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글 쓰는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속에 녹여놓는다고 한다. 음악가도 똑같았다. 사랑을 할땐 그 감정그대로 아름다운 사랑이 담긴 음악을 작곡했고, 철도를 좋아했는 작곡가는 증기기관차의 발차소리를 교향곡 속에 집어넣었다. 아이들과 음악동화를 보고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듣기 쉬운 음악을 만들고, 애묘인인 작곡가는 고양이를 위해 자장가를 작곡했다. 음악가도 글쓰는 작가와 똑같이 자신의 삶을 작품속에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음악가가 더 인간적이고 가깝게 느껴진다.  이 책은 클래식의 뒷 이야기뿐 아니라 클래식을 잘 모르는 분들도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들을수 있게 음악을 분류해놓았다. 예를 들어 산책할때, 마음의 평화가 필요할때, 숙면이 필요할때 등으로 분류해놓아서 클알못도 클래식에 더 쉽게 다가가게 한다.

 

음악이라는 황홀한 언어는 철자를 배우지 않아도, 문법을 알지 못해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손과 호흡으로 연주하며 모두를 하나로 통하게 해줍니다.정말이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도 작가의 손을 떠나면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클래식도 어렵다 생각하지 말고 그저 내 귀에 들리는대로 느끼는대로 받아들이는 게 정답일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살았던 배경이나 작가에 대해 알고 나면 책이 더 쉽게 이해가 되듯, 음악도 그 뒷 얘기나 작곡가에 대해 미리 알고 듣는다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

​

모네는 진정한 인상주의의 시작이었다. <인상주의>의 '인상'이란 단어가 그의 전시회를 보고 한 저널리스트가 모네의 <인상, 해돋이>을 보고 "진정 '인상'밖에 없는, 그림의 기초도 되어있지 않았다"라는 혹평 글에서 나왔으니 말이다. 이렇듯 인상주의의 시작도 모네였고, 장수한 덕에 그 끝도 모네였다.

​

모네는 풍족한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학교보다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탓에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고 고모의 도움을 받아 그림 공부를 하게 된다. 모네는 처음 만난 스승인 '부당'의 영향으로 야외에서 자연을 직접 보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자신의 눈에 비치는 대로 재빠르게 그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 미술계에선 전혀 인정받을 수 없는 그림이었다. 모네는 당시 살롱에 작품을 출품시킬 수 없었던 피사로, 드가, 르누아르, 세잔 등과 함께 '무명 예술가들'의 첫 전시회를 열게 된다. 그들은 모네의 <인상, 해돋이>덕분에 인상 주의자로 분류되면서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아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음에도, 자신들의 미술 세계를 꾸준히 성장시켜간다. 하지만, 결국 모네는 그의 작품세계를 알아본 화상 뒤랑뒤엘덕분에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고 말년엔 채 그림이 완성되기도 전에 팔리는 등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 책은 모네가 파리에서 화가의 삶을 시작하고 사랑하는 카미유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아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아르장퇴유, 생활고에 시달리고 결국 카미유가 세상을 떠나는 고통 속에 살았던 베퇴유, 말년에 명성을 얻어 일본식 정원을 꾸미며 수련을 그리면서 말년을 보냈던 지베르니로 옮겨가며 모네의 삶을 따라간다. 저자의 쉽고도 편안한 글 덕분에 모네에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모네는 대상 자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상 사이에 있는 것'을 그린다고 했다. 다시 말해 루앙 대성당이라는 대상이 아니라, 루앙 대성당과 자신 사이에 있는 공기, 바람, 안개, 온도, 습도, 시간 그리고 빛 등의 요소들을 그리고자 했다.202쪽



 

너무나 낯선 이름 '하란사'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녀가 여자란 것도 독립운동가였던 사실도 전혀 모른 채 그저 덕혜옹주를 쓴 권비영작가의 책이어서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다 읽고나니 그녀의 삶이 내 머리를 쿵하고 내리친다. 내가 그 당시 그녀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면 난 과연 그녀처럼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열 일곱나이. 그녀는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에게 등이 떠밀려 오래전 상처한 인천별감 하상기에게 시집을 갔다. 며느리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정도로 남편은 나이가 많았지만, 그녀에겐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등 떠밀려 한 결혼이긴 했지만 남편은 그녀를 애지중지 아끼고 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는 자상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무료하게 지내지말고 선교사들이 영어를 가르쳐주는 이화학당에 다닐것을 권한다.그곳은 그녀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다른 궤도로 들어서게 된다.

 

 

하란사를 검색하면 '조선인 최초의 자비 유학생'이라고 뜬다.그녀는 이화학당에서 만족하지 않고 1년간의 일본 유학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남편은 기꺼이 그녀의 유학비용을 대며 응원해주었고, 타국생활을 하는 그녀를 위해 미국에 들러 같이 시간을 보내줄 정도로 그녀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결국 그녀는 조선인 최초로 문학학사가 되어 귀국한다. 귀국 후엔 모교인 이화학당에 들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무서운 호랑이사감이 되어 여성의 교육에 힘쓴다. 그리고 미국 유학당시 만났던 의친왕과의 인연은 그녀가 독립운동에 발을 들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화학당에서 선생님이 지어준 낸시라는 이름에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붙인 하낸시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 마음대로 한자어로 고쳐 <하란사>로 만들어 버릴 만큼 그녀는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삶이 자상한 부자 남편 덕에 이루어진 결과고 보면 그녀가 하상기와 혼인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땠을까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얼마든지 안일하게 살수 있었던 하란사.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누린 혜택을 여성의 교육에 쏟아 부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을 하다 독살당하게 된다. 내가 과연 그녀처럼 얼마든지 편하게 살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난 과연 그녀처럼 나를 희생하며 살수 있을까... 그녀의 삶이 위대하게 와 닿을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내 목숨을 바쳐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으므로 나는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오. 그리하여 하잘것없으되, 더없이 귀한 생명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 존재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오. 7쪽

 

나라를 빼앗기고 백성의 고통을 눈 앞에서 마주해야 하는 의친왕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녀가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한편 하란사와는 대조적으로, 밑바닥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은 이들의 독립운동은 책을 읽는 내내 숙연해지게 만들었다. 독립운동은 결코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이들....그들 모두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 안위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