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한 잔의 커피를 내리고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를 대며 책을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지난 며칠을 만회(?!)하고자 늦은 밤에 커피 한 잔과 책을 준비하게 된 것이었다. 빨리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그랬던 것인지, 드립을 너무 성의 없이 했던 모양이다. 커피가 맛이 없게만 느껴져 한모금만 마시고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본연의 목적인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다시 손이 가서 마신 조금 전의 그 커피는 좀 전과는 전혀 다른 맛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커피의 맛이 그날의 느낌이나 그 순간순간의 분위기에 많이 좌우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확연히-그것도 그 짧은 시간에 말이다-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늦은 밤, 맛없던 커피마저 아주 향긋하고 맛있는 커피로 만드는 그런 힘을 가진 책이 바로 이해인 수녀님의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였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는 이제는 고인이 되신 박완서님의 편지로 대신한 서문으로 시작된다. 책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울컥 뭔가가 솟아오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는 글을 시작으로 수녀님의 -감히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예쁘고 정말 깨끗한 글 하나하나에 금세 마음은 진정되고 밝아진다. 물론 그 역시도 같은 감정으로만 계속 가지는 않는다. 전체 6장으로 이루어져있는 이 책은, 일상 속에서 얻게 되는 다양한 이야기들부터, 우정에 대한 이야기, 수도원의 일상, 다양한 이들을 위한 기도일기, 묵상일기,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과 인연을 맺었던 많은 이들에 대한 추모의 글들을 담은 이야기들이 차례대로 담겨있다. 그 속에서 감사, 행복, 격려, 위로 등의 다양한 축복들을 만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만나기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그 사람과 관련된 또 다른 어떤 것들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감사, 격려, 위로, 희망, 축복 그리고 사랑을 떠올리게 되는 사람이 있다.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나에게는 이해인 수녀님이 그랬다. 아무것 없이도 ‘이.해.인’이라는 세글자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단어들로는 전혀 표현되지 않을 따뜻함으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숨차게 바쁜 것인지?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성급함으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P34

 

 그저 이 책이 따뜻하고, 감성적인 느낌만을 전해줬다면 그냥 한 번의 위안으로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수녀님의 예쁜 글들은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동안의 내 삶은 어떠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 계속해서 뭔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괜스레 짜증만 내고 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행동은 그렇게 되지 않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내 삶을 생각하고 계획하게 만든다. 일상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감사, 행복의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느낌을, 나를 감싸고 있던 분위기를 바꾸어 커피의 맛을 다르게 느끼게 했듯이, 나를 조금씩 바꾸어가게끔 하는 것이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라는 단 한 줄의 책 제목으로도 충분히 많은 생각들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 책 속의 글들을 하나씩 마음에 새기다보면 그 이상의 생각과 삶을 안겨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어떤 커피보다도 진하고 기분 좋은, 그리고 깊은 향-어쩌면 감히 커피의 향을 이 책과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이 나는 책,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이다.

꽃이지고나면잎이보이듯이, 이해인, 샘터

 많은 이들에게 현실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돈’이라는 대답이 결코 낮은 순위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돈’을 상위에 랭킹 시킨 이들을 향해서, 진정으로 우리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돈은 그저 더 높은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등의 이야기를 아무리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분명 돈은 교환의 매개, 결제의 수단 등 이라는 사실인데, 왜 그런 사실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런 것이기에?! 어쩌면 은연중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돈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만 보다 구체적인 뭔가를 잡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껏 ‘돈’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경제’만을 떠올린다. 경제학의 고유 영역에서 논의 되어야 하는 것이 화폐이고, 그것의 작동 원리까지도 순전히 경제학 내에서만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 『돈의 본성』에서는 말한다. 화폐의 본성은 사회적 관계에 있고, 그 이해를 위해서는 화폐의 생산부터 시작해 분배, 그리고 다양한 세력 간의 갈등과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 정치적 과정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이다. 시장과 상품 교환이 화폐를 만든 것이 아니라 화폐가 시장 및 상품 교환을 만들어 낸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사회, 인류, 역사 등을 다양하고도 폭넓은 시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최근의 케인스주의자, 통화주의자들의 주장과 생각들까지 아우르면서 새로운 발상, 아니 어쩌면 원래 ‘당연’하게 받아들어야 할 생각들을 들려준다.

 ‘화폐는 무엇인가?!’ 또는 ‘돈의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화폐는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듯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그 대답이 시작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 그 이전의 세상. 즉 인간 세상의 발전 과정과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논의는 분명 우리의 삶과 연계되어 결코 배제하지 못하는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의 현실에서 한동안 그 논의가 멈춰있었다. 그 끊어졌던 화폐에 관한 사회과학적 연구를 다시 쟁점화 시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제프리 잉햄의 『돈의 본성』은 그 가치가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또한 옮긴이는 제프리 잉햄의 이 책을 90년대 중반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과학에서 오래도록 망각되어 온 화폐에 대한 총제적인 사회과학적 접근을 부활시키는 데에 주력하여 내놓은 여러 연구들의 체계적인 총화라고 할 수 있는 성과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백 년 만에 나온 획기적인 연구라면서 말이다.

 분명 『돈의 본성』이라는 이 책은 그 제목에 충실하다. 하지만, ‘돈의 본성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그 끝까지 달려왔지만, 그 끝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돈의 본성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 책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화폐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그럼에도 옮긴이는 새로운 정치경제학을 위해 상품, 화폐, 자본이라는 세 범주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해 방식을 찾는 것에 보다 큰 목적을 두고 대안적 정치경제학의 큰 틀을 한 번 상상해보라는 부탁까지 한다. 아~ 그러니까 더 힘들게만 느껴진다. 뭐, 물론 한 번만-그것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대충대충- 읽어 넘겼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고두고 꺼내 보면서, 화폐에 대한 생각들, 화폐의 수수께끼를 조금씩 풀어나가라는 옮긴이의 또 다른 말은 결코 힘들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생각에 생각을 더해간다면 분명 또 다른 삶, 또 다른 정체경제학의 대안들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돈의본성, 제프리잉햄, 삼천리

 가끔씩, 카페라는 작은 공간 속에 함께 앉아있는 사람들, 앉아 있는 나와 마주보고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주위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저 사람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 저 사람은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저렇게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저 연인들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저렇게 즐겁기만 한 것일까? 등…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보다는, 그를 통해서 나만의 상상을 즐기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르지만 추측해보는, 그래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려보는 즐거움을 소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상상력을 빼앗아가는 이야기를 만났다. 음…;;;;

 

 11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들은 -이 소설의 제목 그대로- 『불완전한 사람들』이다. (뭐,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지 다수이지만 말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은 로마의 영자신문사와 관련된 11명의 인물들이 각각의 이야기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그 각각의 이야기가 또 다른 하나의 큰 이야기로 모아지는 옴니버스 스타일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소 생각하던, 매끄럽게 연결되어 하나로 맞춰지는 평범한 옴니버스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그에 대한 특별한 설명보다는 ‘차례’부터 꼼꼼하게 살펴본다면 이 책의 특징들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처음에는 차례를 보고 이게 뭔가, 싶었다. 그냥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기사의 제목과 각 캐릭터들의 직업 및 이름의 나열이었기에 말이다. 후다닥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다시 제목을 확인했을 때는 조금 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제목과 내용이 무슨 연관이야?, 라는 느낌이 더 심했다. 두 번째 이야기도, 세 번째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다음, 또 그 다음 이야기들을 읽어가면서 작가의 스타일을 조금씩 몸으로 느끼게 되면서부터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단순하게 ‘눈으로’읽기만 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말이다. 생뚱맞은 제목에 전혀 연결되지도 않고, 겉으로는 뭔가 공통점이 있어보이지도 않는데, 어느 샌가 연결되어있었던 것이다. 굳이 ‘차례’를 이용해 이 책을 표현하자면, 생뚱맞음을 통한 교묘하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인간 비틀기라고 해야 할까?!

 

 신문.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글자들이 가득한 공간이지만, 실제로 새로운 이야기라는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형태만 조금씩 바뀌어 새롭다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들, 어쩌면 평범하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신문사라는 새로운 형태로 보다 깔끔하게 탄생시킨 『불완전한 사람들』이 ‘톰 래크먼’만의 신문이라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라서, 인간의 장단점을 이야기함에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순간들을 그만의 스타일로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다. ‘당연히 이렇게 하겠지?!’라는 순간에 ‘저렇게’ 해버리고, ‘그래도 이번에는 이렇게…?!’라는 순간에도 여지없이 ‘저렇게’ 해버린다. 어쩌면 이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다양한 모습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려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어떤 것이든 이 책속의 차례든, 각각의 이야기든, 그 속에 들어있는 교묘한 뭔가가 어렴풋하게라도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이미 ‘톰 래크먼’의 세계에 빠진 것이리라!

 

 아, 내가 앞서 이 이야기가 나의 상상력을 빼앗아 간다고 말했던가?! 그렇다면, 다시 조금 수정해야할 것 같다. 이 이야기들은 나의 상상력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나의 상상력에 보다 구체적으로 살을 붙여주는 것이었다고 말이다. 빈약하기 그지없던 나의 상상력에 이 이야기들은 현실감을 불어넣으며, 제한되어있던 유머감각-물론 쉽사리 구사하기는 힘든-을, 그리고 자칫 무시하며 지나갈 수 있었던 인간애라는 따뜻함-책을 읽는 동안에는 쉽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까지 불어넣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이야기가 쉽게 읽힌다든가, 따뜻하게 다가온다고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느낌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은 인간의 결점에 대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서 인간의 따뜻함을 이야기했으면서 갑자기 또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간 저 깊은 곳에 존재하는 마이너스적인 요소를 꼭꼭 감춰두기보다는 잠시 부끄럽더라도 눈앞에 드러내놓고 이야기한다면, 또 다른 깊은 곳에 존재하던 플러스적인 요소 또한 언젠가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차갑게 느껴진다는 것은 따뜻함을 원한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결국 『불완전한 사람들』은 단순히, 다양한 캐릭터 속에서 이야기되는 우리 삶의 불완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완전이라는 이상을 향해가는 또 다른 삶을 이야기하게끔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어이없고, 한심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냉소적인 태도만을 취하며 이 책을 덮기보다는, 이 이야기들보다 한걸음 더 걸어 나가는 진짜 나라는 인간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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