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에 빛이 된 여인

 

볼 수 없고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던, 그야말로 어둠속에 홀로 갇혀 있던 소녀가 있었다.

정상인으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장애로 인한 시련을 이겨내고, 삶에 대한 열정과 배움에 대한 끝없는 의욕으로 운명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상징으로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있는 헬렌 켈러이다.

 

 

전기 작가로 유명한 지은이 도로시 허먼은 이 평전을 쓰기 위해 4년 동안이나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니 그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들을 풍부하게 담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얇은 두께에 위인전에서 보았던 헬렌 켈러와 그녀의 선생님인 설리번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볼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결혼을 하고 싶어요.”라고 고백한 것처럼 그녀는 평범한 여성이 갖을 수 있는 욕망을 이루지 못한 채, 앤 설리번에 기대어 자기처럼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다.

설리번이 그녀의 선생님을 맡게 된 것은 스무 살 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게다가 장애아는 물론 정상아도 가르쳐 본적도 없었으며 바이러스로 눈병을 앓아 반쯤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고 한다. 어렵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투철한 사명감으로 선생님이 된 것이 아니라 가난에 찌들어 돈을 벌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로 그녀의 선생님이 되었지만 그녀의 헌신이 있었기에 분명 헬렌 켈러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오랫동안 온종일 헬렌에게 글을 써 주고 읽어준 탓에 천천히 시력을 잃어 갔으며 끝없는 책임감이 애니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헬렌 켈러가 꽉 막힌 어둠 속에서 벗어난 놀라운 일은 또 다른 여성이 자기 삶을 통째로 희생한 데서 얻어진 열매다. (P225)

둘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둘의 관계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돈벌이를 위해 겉모습을 가꾸고 강연을 해야 했던 현실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가득한 빛 속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았고, 고요 속에서 천상의 교향곡을 들었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내 존재의 본질이 아님을 기쁘게 확인했다. 내 영원한 정신 어디에도 장애가 있지 않았다.”(P215)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 수 없었던 그녀는 중년에 이르러는 미국 시각 장애인 협회의 국내 및 국제 고문이 되어 남은 삶을 바칠 일을 찾았으며 노년까지 지구를 아홉 바퀴나 돌며 39개국의 나라를 찾았다고 하는데, 그 중 우리나라도 들를 뻔 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노년과 죽음을 즐겁게 맞이했다고 한다.

 

 

앞을 볼 수 없는 나는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를 알려 줄 수 있다. 아니 볼 수 있는 크나큰 선물을 받은 이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할 수 있다. 내일이면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처럼 보라. 내일이면 듣지 못하게 되는 사람처럼 들으라, 음악 같은 목소리들을, 새의 지저귐을,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을. 내일이면 촉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따뜻하게 만지라.... (P444)

 

이 평전에 담긴 그녀의 일생에 관한 기록과 이야기를 통해 확실히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성인으로 그려진 모습 말고 한 여자로서의 너무나도 인간적이면서 참된 모습까지 새롭게 알 수 있었고, 불만만 가득했던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알 수 있었던 그야말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헬렌켈러, 도로시허먼, 미다스북스, 북뉴스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전쟁을 직접 겪은 이들의 고통과 아픔은 언제쯤 끝날 수 있는 걸까?

책의 제목과 표지의 글들만을 보고 나는 어릴 적에 만났었던 안네를 다시 만나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은신처에서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진으로 본 안네의 예쁜 눈과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녀는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이 책은 내 예상과는 달리 그로부터 60년이 지나서야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극소수의 생존자 중에 하나인 아이, 베르테 메이메르의 살기위해 고된 시련을 겪어야만 했던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녀는 안네 프랑크의 이웃집에 살았고, 수용소에서는 같은 막사에서 지냈다고 한다. 책에서도 이따금씩 안네와의 추억 이야기를 짤막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현재는 네덜란드의 음식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교회에서 유대인 수용소의 모습을 담은 흑백으로 된 비디오 영상 같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책에서 나온 다큐멘터리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보는 동안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그 잔혹함과 비인간적임에 너무 무섭고 놀라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고 그 충격이 한동안 나를 괴롭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속에서 그 상황을 겪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 대부분이 죽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면 그 충격은 도무지 얼마나 클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살아남은 그녀는 그 사실이 행복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가 그리웠다. 동생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에 어린 그녀는 가슴을 짓누르는 책임감이 얼마나 컸을까? 수용소 안에서 고아가 된 그녀는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 사이를 누비고 다녀야만 했고 무감정 상태에 빠진다. 전쟁이 끝나고 그녀와 동생은 고아원에서 생활을 하게 되고 이따금 친척들이 찾아오지만 아무도 그녀를 책임지지는 않는다. 뼈아픈 기억들로 그녀는 평생 정신적 외상과 공포증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기차는 두려움, 슬픔 그리고 죽음은 연결되어 있었기에 공황발작을 일으키게 했다. 과호흡 증후군으로 종종 의식을 잃는다. 심리요법을 마치고 그녀는 모든 세월동안 전쟁은 끝났지만 생존에만 급급했기에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으로 인해 첫 번째 결혼이 실패로 돌아가고 지금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두 번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수용소의 여파로 발가락 하나는 절단해야했고 거기서 얻은 알레르기로 수많은 질병에 시달리며 약을 달고 살아야 했다. 수용소에서 지낸 사람들은 평생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걸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한다고 한다.

그녀가 겪었던 끔찍한 굶주림과 할머니들이 만들어주신 달콤한 간식에 대한 추억은 남은 평생 동안 먹거리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기에 음식 평론가라는 지금의 그녀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쟁이 터져도 끄떡없을 정도의 음식을 쌓아두는 것도 음식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치지 못하는 슬픈 일로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얽힌 진실을 발견하고 그 감정들이 자리를 찾게 하기 위해 그 기억들을 캐내야만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 책을 통해 그녀가 편안해졌기를 바래본다. 나는 그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희망할 뿐이다.

굿바이, 안네, 베르테메이메르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이 주는 설레임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유난히 여행을 좋아하는 신랑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 지가 14년째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전국 곳곳에 웬만큼 유명한 곳은 거의 다 돌아다닌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게 돌아다니고도 주말이 되거나 공휴일이 하루라도 생기게 되면 또 어딘가가 가고 싶어진다. 여행은 중독이다. 자꾸 자꾸 떠나고 싶어지니 말이다.

 

저자인 이종원님의 대한민국 숨겨진 여행지 100을 만났다.

아직 가보지 못한 숨겨진 보석 같은 여행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여행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고, 100곳으로 떠나는 이야기 여행에 즐거운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각 지역별로 소설보다 재미있는 구석구석 이야기 여행 100곳을 소개하고 있다.

여행지의 멋진 풍경을 담은 사진과 함께 여행지의 소개와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게 또는 애틋하게 느껴졌다. 여행 가이드에서는 추천시기, 교통편, 일정, 주소, 전화, 웹사이트, 2인비용을 여행정보로는 여행 팁, 가는 길, 맛 집, 잠자리, 주변 볼거리 정보를 친절하게 담고 있어 유익하게 느껴졌다. 가본 곳도 있었는데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울, 경기도 지역 여행지 중에서도 못 가본 곳이 있어서 부담 없이 주말을 이용해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전철패스 한 번만 끊으면 갈 수 있는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은 꼭 이번 가을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흥에 관곡지 연꽃 산책로도 가보고 싶다.

 

북한강 강변을 끼고 있는 화천 산소길에서 자전거 하이킹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운이 좋으면 수달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기대해봐야 겠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인 봉평 꽃기행도 가봐야겠다. 전에 지나듯이 한번 들러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게 아쉽다. 물론 착착 감기는 메밀국수도 먹고 와야겠다.

 

 

최고의 단풍 여행지인 방태산자연휴양림의 오솔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올 해는 꼭 자연 휴양림에 위치한 숲속 통나무집으로의 여행도 계획해 봐야겠다.

 

 

술을 너무 좋아하는 신랑과 세왕주조에 체험여행을 가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고, 사계절이 꽃 세상인 의성에 작약밭에는 꼭 꼭 가보고 싶다.

 

 

 

먹을 게 너무 많아 행복했던 제주에서 먹었던 성게 미역국과 전복죽의 맛은 잊혀지지가 않는데 다음번 제주여행에서는 회의 달인들이 추천하는 따치회도 한 번 먹어봐야겠다.

마음이 벌써부터 바빠지는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절로 행복하다.

 

 

저자는 굳이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고, 주변에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지가 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떠나려는 의지와 감동을 느낄 줄 아는 열린 마음가짐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것저것 계획만 하느라 시간만 보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일단 떠나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만 있기에 너무 화창한 이 계절과 날씨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드는 요즈음이니 말이다.

대한민국숨겨진여행지100, 이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