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이전에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에 관해서는 레너드 카수토의 [하드보일드 센티멘텔리티]로 한번 정리한 적이 있었다. 카수토의 책이 조금 더 장르에 대한 해석과 역사, 그리고 시대를 펼쳐보는 장르적 철학이 담겨져 있다면, 김봉석의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은 다섯개의 분류로 38편의 작품을 소개하는 가이드의 성격이 강하다. 최근작인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이나, 기회가 있으면 늘 주변인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후루카와 히데오의 [벨카,짖고 있는가], 그리고 하드보일드라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 그외에도 많은 흥미로운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의 장점이라면 이미 읽은 책들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다시 한번 즐거웠던 독서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인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작가와 취향의 교차점이 있어서인지 소개하고 있는 작품 중 대부분이 읽어 본, 그리고 괜찮게 생각하고 있던 작품들이어서 좋았다. 아쉬운 점은 일본어권 작품들이 23편이나 되는데다가 비교적 장르팬이 아니더라도 많이 소개된 작품들이어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보석같은 이야기를 소개받는 즐거움은 적다는 점이다. 그런면에서는 카수토의 책이 훌륭하지만,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작품들이 많아서 아쉬움이 컸다.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은 현재 읽고 있는 책이고, 다카노 카즈아키의 [제노사이드]는 인류에 대한 작가의 깊은 성찰을 이야기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풀어가는 점에 감탄하며 읽었었고, 늘 나를 즐겁게 해 주었던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는 얼마전(2013년 2월) 완결편 [문라이트 마일]이 출간되었다. 하세 세이슈의 작품은 [불야성]부터 시작해서, [진혼가]까지 출간되었고, 일본 사회파를 대표하는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북스피어에서 작년부터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장르 작품 중에서도 하드 보일드 성향의 작품들이 꽤나 국내독자들에게도 환영받고 있는 듯 하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에서 소개된 작품 중 적지 않은 작품은 읽으면서 '하드보일드'로 생각하지 않았던 작품들도 많았는데, 특히나 교고쿠 나츠히코의 [우부메의 여름]을 -약해져도 좋다.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장에 분류시켜 놓은 부분이나, -거대한 벽 앞에서도 즐길 수 있다- 장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이 포함된 부분은 공감하긴 힘들었다.

 

 작가는 하드보일드 장르를 사회파 성향의 작품들까지 포함해서 폭넓게 보는 듯 하다. 기존 생각해왔던 하드보일드라면 떠오르는 비정한 세상, 삶에 대한 애정은 모두 말라버린 듯한 메마른 캐릭터, 끈질기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인물들 등의 특징들이 포함되는데, 하드보일드의 매력이라면 무자비한 세상에 벌거벗은 채 내던져진 등장인물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자신을 이입하면서 느끼게 되는 벼랑 끝에서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이랄까.

 

 이미 읽은 책들은 되새겨보며, 읽지 못한 책들은 읽어야 할 책 목록으로 챙겨놓으면서 '하드보일드'를 떠나, 즐거운 가이드로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국내 최고의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은 벌써부터 유럽에서도 극찬받는 보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강원도 아리랑- 을 빼어 놓고 7집을 듣고 있자면, 나윤선의 기기묘묘한 음색은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Same Girl]은 프랑스 음반 판매 차트인 FNAC 재즈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고, 골든디스크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 앨범이 나온지도 어느듯 2년... 얼마전 그녀의 8집 앨범 [Lento] 출시 소식을 들었다. 원 테이크 방식으로 레코딩된 8집은 화려한 선율은 잠깐 풀어놓고 정적인 진행을 보여준다는데, 본격적으로 8집을 듣기 전에 간만에 7집 앨범을 다시 잡아 들었다.

나윤선의 현재 진행형의 바이오그래피를 잠깐 요약하고 넘어가자면,

그녀는 94년 회사를 다니다 노래를 잘 한다는 이유로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에게 발탁되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고, 27살에 프랑스 유학을 결심, 불문과를 졸업하고, 2001년 재즈 가수로 데뷔했다. 스웨덴의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함께 작업한 6집 [부아야주(Voyage)]가 유럽 전역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슈발리에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아리랑 판타지-를 불렀다.

-My Favorite Things-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쥴리 앤드류스가 부른 곡으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부른 곡인데, 나윤선은 비욕(Bjork)스럽게 부른다. 쥴리 앤드류스의 곡이 경쾌한 느낌으로 기억된다면, 간결한 악기 구성에 올라선 나윤선의 목소리는 쓸쓸하게 스치듯 좋은 것들을 간단하게 기억해내면 슬프지 않을 것 같은데, 좋은 것들이 아무래도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My Name is Carnival-
잭슨 C.프랭크라는 포크 가수의 오리지널로 기타소리와 함께 쓸쓸하면서도 힘있게 퍼지는 나윤선의 목소리는 강렬한 임펙트를 가진 걸작 웨스턴무비 한편을 본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Breakfast in Baghdad-
한 때 나윤선의 전매특허이기도 했던 스캣이 돋보이는 곡이다. 바케니우스의 기타 선율과 함께 휩싸이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곡.

 

-Song of no Regrets-
세르지오 멘데스와 아트 파머도 이 곡을 연주한 걸로 알고 있다.

 

-Enter Sandman-
메탈리카의 명곡을 이렇게도 들을 수 있는 건 보컬리스트 나윤선이라는 뮤지션을 동시대에 만날 수 있는 행운에 보너스까지 받은 기분이랄까. 바케니우스가 나윤선에게 추천한 곡이라고 알고 있다.

 

-Same Girl-
라이브에서 나윤선이 오르골(뮤직박스?)을 돌리면서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곡

 

-La Chanson d'Helene-
필립 새스와 자스민 로이의 괜찮은 앨범 [Rendez Vous in Paris]에서 이 곡의 나레이션은 유명배우 제라르 빠르디유가 했었다. 클로드 소테의 69년작(IMDB에서는 70년작) [즐거운 인생 Les Choses De La Vie]에서 로미 슈나이더가 맡은 역의 이름이 엘렌이다. OST 에서는 미셸 피골리가 나레이션을, 로미 슈나이더가 노래를 불렀다. 영화는 시놉 정도만 알고 있는데, 나윤선의 목소리로 들어면서 아직 못 본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더 높여본다. 뭔가 슬프고 자꾸 어긋나는 그런 안타까움이 드는 아름다운 곡이다. 결국 유튜브를 통해 로미 슈나이더가 부른 버전도 듣게 되었다. 로미 슈나이더는 알랭 들롱과의 약혼과 비운의 사랑, 비극적인 인생의 에피소드로도 기억되는 배우다. 로미 슈나이더와 알랭 들롱의 화양연화도 떠올리면서 연상이 계속 이어지게 만드는 곡. 관심이 생기시는 분들은 구글링해보시면 그들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을 쉽게 찾아보실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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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선의 [Same Girl]을 다시 들으면서 정리해보자니, 자꾸 트랙을 다시 듣고 싶어 되돌리는 일이 많아져서, 한번에 앨범을 들어내기가 힘들었다. 그만큼이나 각각의 곡이 가진 매력이나 개성이 각각 다른 느낌을 가지면서 한 앨범 안에 줄지어 모여있다.

 

나윤선, SameGirl

이종격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여성파이터 지나 카라노.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왜 말로리 케인이 바로 그 지나 카라노라는 걸 몰랐을까. 트레이트 마크인 슈퍼우먼 펀치도 두어번 날리는데 말이다.(카라노는 2009년 사이보그 산토스와의 대전에서 1라운드 TKO 로 패한 이후 은퇴한 걸로 알고 있다. 그 경기에서도 카라노의 슈퍼우먼 펀치는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이제 격투기 계에서 은퇴한 지나 카라노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될 것이라는 서막을 알리는 듯한 영화이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지나의 장점(훈련을 통해 잘 단련된 육체와 매력적이고 인상이 강한 마스크)을 맛보기 정도로 감칠맛나게 보여주면서, 자신의 연출의 장점을 잘 살린, 그러면서도 뭔가 다소 아쉬운 맛을(좋게 말하면 여운의 미학이고 나쁘게 말하면 뭐 누다가 끊긴 듯 찜찜한 기분) 남기며 마무리짓는다.

지나 카라노는 2009년에 [블러드 앤 본]이라는 B급 영하에 잠깐 모습을 보였다만, 앞으로 존 스탁웰의 [인 더 블러드]에 출연하고, [Fast & Furious] 6탄에도 출연한다. 아마 이후에도 헐리우드 액션물의 히로인으로 자주 이름을 보게 될 듯 하다.

지나 카라노의 강인한 인상과 액션 시퀀스 외에도 이 영화에는 건질만한 장면이 많은데, 바르셀로나 씬에서의 우아한 인질구출장면은 데이빗 홈즈의 음악과 함께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장면장면마다 데이빗 홈즈의 드러밍이 돋보이는 음악이 좋았다.

그리고, 지나 카라노를 받쳐주는 배우들 리스트가 소더버그 작품답게 초호화 캐스팅인데, 이완 맥그리거가 그녀의 전 연인이자 보스로, 마이클 더글라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한 때 [증오]의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던 마티유 카소비츠, 채닝 태이텀, 마이클 패스벤더, 아버지로는 빌 팩스턴이 출연했다.

영화 자체로는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작품이었으나, 음악과 조명, 몇몇 장면의 연출은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소더버그는 지나 카라노의 앞으로의 행보에 관객의 흥미를 끌어모으는데는 성공한 듯 생각된다.

여담이다만 이 영화는 지나 카라노의 Shit 으로 시작해서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Shit 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