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놀피 감독의 연출 능력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로맨스와 SF 어느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은데 로맨스 쪽에서 보자면 데이빗(맷 데이먼)과 엘리스(에밀리 블런트)의 계속되는 운명적인 만남과 서로에 대한 감정에 큰 공감대를 가지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SF 쪽에서 보자면, 필립 K.딕이 던진 이야기 자체의 훌륭함만 울림으로 전해질 뿐, 영화적인 재미는 많이 떨어진다. 너무 소설적으로 관객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느낌이었다.

맷 데이먼의 캐릭터 자체가 상원 의원까지는 어떻게 이해해보려 해 보겠지만, 대통령까지 생각하기에는 좀 무딘 느낌이 있어서 이번 작품 속의 야망이 넘치는 젊은 정치인의 캐릭터는 조금 이질감이 느껴지더라. 하긴, 그 야망 자체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데 실패하다 보니, 로맨스 쪽의 절실함도 반감되는 듯 하다.

에밀리 블런트의 엘리스의 엉뚱함은 매혹적이기 보다는 그냥 생뚱맞은 느낌이 강해서, 왜 데이빗이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공감이 힘들었다. 무용 장면은 잘 연출되어서 그 장면에서의 엘리스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운명적인 로맨스로 유혹하기에는 그 힘이 조금 딸리는 느낌이었다.

'문'을 통해서 데이빗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장면은 음악과 함께 뭔가 좀 속도감 있고 경쾌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로 보여질려나 기대해보았지만, 이 또한 너무 짧은 느낌이었고, 강도가 약했던 것 같다.

매력적인 원작이 항상 매력적인 영상으로 재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좋은 배우가 항상 좋은 작품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아쉬운 느낌을 가지고 <컨트롤러>를 보았다.

뭔가 좀 가볍고 기분좋은 그런 영화를 수혈받고 싶은 때가 있다. 요즘들어 종종 본성에 가까운 어둠과 그림자의 영역에서 발을 떼고, 뭔가 포지티브한 기운을 받고 싶어지는데, 그럴 때 선택하게 되는 영화가 바로 <유 어게인> 같은 영화일려나.

일단 출연진이 친숙하다.

왠지 보이쉬한 느낌, 아니 이건 조혜련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사나이다' 정도의 느낌을 전해주곤 했던 7~80년대의 누님들, 제이미 리 커티스와 시고니 위버가 연기력과 친숙한 이미지의 반전으로 어느정도의 재미를 지탱해주고, 거기에 본 적은 없지만 제목은 몇 번 들어봤던 <베로니카 마스>의 히로인 크리스틴 벨, 알고 보니 그녀는 바로 <가쉽 걸>의 가쉽 걸 목소리를 내어 오기도 했더라. 크리스틴 벨의 '유'는 왠지 메간 폭스 느낌이 난다고 했더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필모에는 <트랜스포머>가 올라가 있고, <클로버필드>에도 출연했던 오뎃 유스트만이다.

나름 훈남이었던 남자 출연자는 제임스 월크와 숀 윙이 크리스틴 벨의 오빠(이자 오뎃의 약혼자)와 그의 친구(이자 학창시절 크리스틴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훈남)로 출연하였고, <앨리어스> 시리즈의 제니퍼 가너의 아빠 역으로 기억에 남는 빅터 가버가 출연했고, '더 락' 드웨인 존슨이 언크레딧 카메오 출연으로 잠깐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야기는 어두운 학창시절 나를 괴롭히며 그 당시를 지옥으로, 그 이후를 이 악물고 성공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유'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또, 너냐?"라는 독백을 씹으며 복수심에 불타 올라 이성을 잃게 만드는 시츄에이션이 대를 건너 중첩되는 형식인데, 잘 나갔던 제이미 리 커티스와 그녀로 인해 가장 행복해야 했던 순간을 망쳐야 했던 시고니 위버, 그리고 학창시절 제대로 왕따 한번 당해봤던 크리스틴 벨이 제이미 리 커티스의 딸로, 치어리더로 진따들 좀 괴롭히면서 나름 학창시절 즐겨보았던 오뎃 유스트만이 시고니 위버의 조카. 그런 그녀들이 제이미 리 커티스의 아들과 오뎃 유스트만의 결혼을 앞두고 벌이는 신경전과 헤프닝이 주 내용이다.

간간히 웃으며 늘어진 시간을 여유만만하게 즐기고 있다가 문득 신경쓰게 되는 소재가 '인간은 누구나 한 번 용서받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느냐'인데... 개인적으로는 '받은만큼은 돌려받아야 한다'는 올드보이식 사고라서 ,,, 뭐, 쉽게 용서는 안 될 듯 하다. 이 후 벌어질 상황이 귀찮아서 복수가 흐지부지되어 버릴 수는 있을 것 같다만... -_-;;

메인 캐스팅 외에도 독특한 웨딩 플레너 '조지아'와 오뎃 유스트만의 전 남친으로 결혼 약속이 깨어진 후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울먹이는 표정이 재미있었던 '팀', 틀니와 젊은 남자에게는 일단 들이대고 보는 할머니 버니가 작은 웃음을 틈틈이 전해준다.

007 시리즈의 50주년 기념작이자 23번째 작품이며,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 역을 맡은 3번째 작품이다.

[카지-(인터파크 금칙어 때문에)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가 본드의 연인 베스퍼 린드의 에피소드라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면, 이번 [스카이폴]은 완전히 독립적인 이야기다.

이번작품은 기대 포인트가 상당히 많은데, 몇 가지 정리해보자면,

1) 50주년 기념작이다.

2) 감독이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 [자헤드]를 거쳐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절정의 연출력을 보여준 샘 맨데스다.

3) 주목할만한 본드걸로 지목할만한 여성캐릭터가 없다. 나오미 해리스가 이브 역으로, 베레니스 말로히가 세버린으로 출연하지만 이전 시리즈에 비해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다.

4) M 역의 주디 덴치와 어떤 옷을 걸쳐도 완벽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명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랄프 파인즈와 Q 역의 벤 위쇼까지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5) 영국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아델이 주제곡을 불렀다. 아카데미, 골든글로브에서 주제가상을 받았다.

여러 기대 포인트에 비해 막상 작품은 다소 심심한 느낌이다. 다양한 캐릭터와 볼거리의 향연, MI16 본부가 공격당하는 절대절명의 위기상황, 마천루와 달리는 열차 위에서의 아찔한 격투장면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지만, 연출 욕심이 과했던 탓인지, 아니면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였는지 아쉽게도 다니엘 크레이크의 이전 두 작품보다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여전히 시리즈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