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번지점프를 하다>와 <혈의 누>를 통해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연출력을 어느정도 인정받은 김대승 감독의 2006년 작품인 이 [가을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제목에서도 눈치 챘겠지만 재난영화는 아니다.
그런 연유로 꽤나 공들였다는 미니어쳐 붕괴장면에서의 어색한 동선에 대해서는 일단 관대해져 보기로 했다.
계절이 들어간 제목의 <봄날은 간다>에서 풋풋했던 유지태가 이제 꽤나 다양한 캐릭터들로 필모를 채워 둔 상태이고(그 중 <뚝방전설>에서의 악역 캐릭터는 압권이었다), 김지수는 <여자,정혜> 이후 영화배우로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상태여서(뭐 개인적인 평가에서도 흥행에서도 이 후 출연작들은 카메오 성격이 강했던 <박수칠 때 떠나라>를 제외하고는 작품안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이 강했다만... <로망스>의 캐릭터 자체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취향이었으며, 김지수에게 잘 어울리는 배역이었다) 캐스팅은 적절했던 듯하다. 김지수의 부친으로 출연한 최종원씨의 무게감도 좋았다.
<고>의 명대사를 잠깐 빌려보자면... 이 영화는 '사랑이야기'이다.
사고 이전의 젊은 연인의 사랑 이야기, 사고 이후 떠난 사람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그리고 떠난 사람이 연결해준 새로운 인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여행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보면... 애틋한 그리움의 로드무비 계열로 분류해도 될려나. 등장인물들의 엇갈림이나 소품들이 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 10개월동안의 촬영기간동안 정말 촬영장소 헌팅에 제대로 공을 들인 게 느껴지는 멋진 자연경관은 괜히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점이 있다.
세월이 지나도 유지태는 풋풋하고, 두 여자 주인공의 청순하고 단아한 매력도 돋보이고... 깔끔하게 표현된 등장인물들간의 감정묘사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도, 안타깝게 놓쳐 버린, 잃어버린 사랑도... 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통해 치유받을 수 있다는 희망... 그런데 왜 나는 가벼운 배낭 하나 메고 떠날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하는 걸까.
2006년작 [가을로] 이후 7년의 시간이 다시 흐르고, 김대승 감독은 작년 [후궁:제왕의 첩]으로 화제를 모았었다.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에 [혈의 누]를 거쳐 [가을로]를 연출했었는데, 다음 작품은 다시 [번지...]나 [가을로]를 잇는 멜로물이었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희망사항이다.
김지수는 영화 밖의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에 데미지를 입고, 2011년 이윤기 감독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 모습을 보인 후 영화 출연은 없다. 엄지원은 이 작품 이후로 주장르가 코미디가 되어 버렸다.
이 작품은 두 여배우에게는 이미지 변화 바로 직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