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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지은 시들만 손수 뽑아서(自選) 엮은 시집을 우리말로 옮기고 상세하게 주석 해설한 책이다. 도
산잡영이라는 말은 도산(서당)에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시로 읊는다 는 뜻이다. 퇴계 이황 선생
이 평생 동안 지은 시는 지금 남아 있는 것만 하여도 거의 3,000수에 가깝다. 이렇게 많은 시들 가운
데서 그 서당 안팎의 모습을 읊었던 시 40제(題), 92수(首)만 뽑아서 자필로 정리하여 둔 이 책은, 퇴계
선생이 도산의 퇴계[토계; 兎溪]라는 마을에서 지은 시만 모은 자선 시집인《퇴계잡영》과 함께《계산
잡영溪山雜詠》이라는 이름으로 묶은 책의 절반 부분이다.
퇴계 선생은 57세 때부터 지금의 도산서원 자리에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은 서당을 짓기 시작하여 61
세에 완성한 후 제자들을 교육하고 자신의 연구에 전념하였다. 당시에 지은 건물이 완락재玩樂齋와
암서헌巖栖軒이다. 이 책은 퇴계 선생이 57세에 지은〈서당을 고쳐 지을 땅을 도산 남쪽에서 얻다〉
라는 시(2수)로 시작이 된다. 선생이 계상서당(溪上書堂; 약칭 溪堂)이라는, 제자들을 가르칠 장소를 52
세 때부터 퇴계에 마련하여, 이 도산서당이 완성된 뒤에도, 함께 계속해서 유지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
진 사실이다. 이 책은 퇴계 선생이 66세에 쓴〈도산으로 매화를 찾다〉,〈매화가 답하다〉2수로 끝을
맺는다.
57세부터 66세까지 약 10년 동안 퇴계는 한두 번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을 받아서 서울에 가기도 하
고, 또 가는 도중에 사직을 하고 돌아오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도산에 머물면서 학문 연구와 제자들을
교육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퇴계잡영》은 퇴계라는 마을에 은퇴하여 사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도산잡영》은 도산서당이라는 서당에서 연구와 강학講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퇴계가 유학자로
서 표면적으로는 불교와 노장老莊을 배격하고 있지만, 시에서 쓴 전고典故를 보면《장자》나 신선들
에 관련된 이야기를 수 없이 인용하고 있다. 이퇴계를 근엄한 철학자로만 아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책에 실린 시를 읽으면 이퇴계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퇴계 선생은 학문에 있어서 긴
수작(緊酬酌, 철학 같은 어려운 학문)과 한수작(閒酬酌, 시문예술 같은 취미활동)을 모두 강조했고, 예
로부터 시작詩作의 교과서로 인정받아온〈고문진보古文眞寶〉를 200번 이상 읽고 암송하는 등 그 자
신의 시작 향상을 위해 힘썼다. 따라서 주변의 사소한 사물까지 깊이 있게 바라보고, 담백하고 절제된
언어로 은근하게 돌려 말하는 여백의 미학, 한시의 매력을 한껏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대유학자大儒學
者의 관조적 삶의 태도는 성공지향적인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속도전에 휩쓸린 각박
한 삶에 감동과 여유를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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