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에 국사공부를 하면서 광개토태왕을 배울 때 느꼈던 점은 우리나라 역사상 드문 정복왕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의 오천년 역사 중에서 다른 민족이나 나라를 침략해서 정복한 왕은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유일한 것 같다. 대부분의 왕들은 재위하는 동안 방어위주의 정치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광개토태왕이 정복왕으로 유명하다는 것 외에는 광개토태왕에 대해 더 이상 아는 내용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번에 역사의 아침에서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책을 처음 본 순간 책의 두툼함은 광개토태왕의 업적이 많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이라는 편안해 보이는 제목이 책의 두께와 상관없이 책을 펴는데 별 부담은 없었다. 그러나 읽어나가면서 저자의 연구에 대한 열의를 느끼게 되었고 사료를 근거로 한 연구 성과와 선학들의 연구 성과를 함께 비교하면서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바르게 역사를 이해하도록 돕고 있음을 알았다. 저자의 연구 성과를 따라 읽어 내려가면서 편안하게 책을 읽던 내 마음에 약간의 부담을 주기도 하였다.

가장 먼저 책에서 등장하는 것은 광개토대왕의 비문에 대한 연구이다. 가장 먼저 비문연구를 시작한 일본학계를 비롯하여 국내학자들. 북한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을 함께 실었고 저자가 연구한 관점에 대해서도 밝혀 놓았다. 이와 같이 광개토태왕 비문에 대한 연구 성과와 앞으로 비문연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제시하면서 이 책의 내용이 광개토태왕의 비문연구와 국내외 사료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했다.

내가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광개토태왕으로 인해서 고구려는 왕이 다스리는 왕국이 아니라 태왕이 다스리는 제국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광개토대왕이 아니라 광개토태왕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광개토태왕이 등장하기 전 고구려는 단일한 문화에 단일한 정치체제를 갖춘 왕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정복활동으로 백제, 동부여, 신라, 가야, 북연, 숙신 등을 복속시키고 태왕호와 영락 연호를 사용해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자 동방의 패자라는 사실을 사방에 널리 알렸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갔다.

이 책에는 광개토태왕의 정복활동이 중점적으로 쓰여 있지만 광개토태왕이 정복활동을 나가야만 했던 선조왕 때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내용과 태왕의 정복활동을 뒷받침 해주었던 고구려 내부의 안정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도에 대한 내용도 빠짐없이 다루어 주고 있다. 또 태왕의 정복활동과 함께 그 시대 동북아 정세, 한반도 남쪽의 정세까지 살펴주고 있어서 폭넓은 고대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위험한 소설>이라는 책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위험한 소설>이란 17세기 허균이 쓴 <홍길동전>을 가리키는 것이다. <홍길동전>은 나의 고등학생 시절 국어책에 본문이 실릴 정도로 문학사적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17세기에 홍길동전은 위험한 소설일 수 있었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17세기 조선 최고의 천재 허균은 왜 목숨을 걸고 <홍길동전>을 썼는가! 작가 송수경이 <위험한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여기가 있는 듯하다. 송수경 작가는 수집한 자료의 분석위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허균이 홍길동전을 쓰게 된 배경과 이유를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재탄생시키고 있었다. 또 허균이 역모죄로 죽은 것이 모함임을 밝히기 위해 허균의 조카와 외손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 가는 과정은 탐정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그려 놓은 것 같다. 허 균이 문우지정을 나눈 벗들인 전오자, 후오자가 등장하고 아름다운 한 시를 한글로 번역해 놓은 부분을 읽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작가는 허균이 살아생전 매창, 유희경과 교류하며 홍길동전을 쓰게 되는 과정과 허균이 죽은 후 조카와 외손에 의해 허균의 무고함을 밝히는 과정이 교차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어 읽는 나로 하여금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홍길동전이 한 개가 아니고 두개라는 작가의 상상은 이 책의 재미를 더하는 것 같다. 허 균이 쓴 홍길동전이 더 반사회적이라는 설에 아이디어를 얻어 매창과 허 균의 관계를 설정하여  또 다른 홍길동전을 탄생시킨 이야기는 마음아픈 사랑이야기를 읽는 듯 하다.   

  허 균의 조카 앞에 나타나 허 균의 죽음에 얽힌 비밀과 홍길동전의 비밀을 밝히길 원했던 비밀스런 여인의 이야기도 참 슬프다.

작가는 조심스럽게 픽션과 논픽션의 날실과 씨실을 엮어 위험한 소설 이라는 훌륭한 비단 한 필을 짜 놓았다.

역사를 좋아 하는 나는 위험한 소설을 읽고 17세기의 정치상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허 균이 어떤 인물인지 다시 한 번 역사인물사전을 들추어 보았다. 작가 송수경의 상상력과 필력은 참 돋보인다. 나도 허 균이 살던 시대와 허 균이 살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우리 가족들도 독서를 좋아하는데 나는 내 자녀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독서교육을 했는지 생각해본다. 막연하게 공부를 잘 하기 위한 기초를 닦기 위해 책읽기를 강조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조상들의 철학이 담긴 독서교육법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지식인 계급은 사대부들이었다. 사대부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만 했던 이유는 과거제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한 후 정권을 잡으려는 목적에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내심 생각했다. 이 책 제목에 붙은 명문가란 공부를 잘 해서 높은 벼슬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배출된 가문이 명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일부만 맞았을 뿐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명문가의 기준을 책을 많이 읽고 후세인에게 교훈이 될 만한 집안과 사람으로 정했다. 높은 벼슬을 많이 가문이 명문가가 아니란 이야기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벼슬을 하며 정계에 진출하여 정권을 잡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먼저 독서를 하여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이 중요했다. 책읽기는 그들의 삶이었다. 통치의 방법을 얻는 수단으로 독서를 일부 사용했을 뿐이었다.

저자는 독서를 열심히 한 훌륭한 인물들 55분을 소개했다. 사약을 받고 죽음이 목전인데도 자손들에게 독서를 하라고 유언하는 김수항, 이건명.

“인생의 목표를 벼슬에 두지말고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과 바른 행동, 이웃에게 베푸는 데 두라”(197쪽) 라고 말한 윤선도는 역시 명문가의 일원답다.

명종 때의 학자 기대승은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하고,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글을 짓는 것이 순서”(88쪽)라고 했다.

89쪽에서는 “독서의 목적은 출세가 아니고 효도와 우애를 알고 조상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했다. 성리학자의 생각이 담겨 있는 말이라 21세기의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알고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우리들이 정말로 실천해야 할 것을 말한 인물도 있다. 조선말기의 유학자 이경근은

“무릇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려면 먼저 반드시 아버지나 형이 공부를 해야 한다. 그 후에 아이에게 공부할 것과 금지할 것을 말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140쪽)고 말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음 이덕형은 선조 때의 문신이다. 그는 전쟁 중에도 세 아들에게 옛 큰 인물들의 예를 들어 독서와 좋은 생활 자세를 교육했다. 환경의 구애받지 않는 집중력의 필요성과 맑은 마음으로 책상을 정돈해 공부할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 것을 가르쳤다.(164쪽)

율곡 이이는 정독을 권하였고 책 읽은 후에 토론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많은 책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중요한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되풀이해서 읽는 것을 강조한 학자도 있었다.

저자가 마지막에 소개하며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바른 공부를 하면 출세도 따른다는 것. 조선 전기의 학자 김안국이 말했다.

“아들아 명에를 구할 것이냐, 진실을 구할 것이냐. 명예가 아닌 진실을 구하면 가히 이름을 세상에 크게 떨치고 그 향기가 영원해 부모의 명예도 드높아질 것이다. 이게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이다.”(329)

나는 어떻게 내 자녀들에게 독서교육을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