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하고 있는 아들의 과학교과서를 들여다보았다. 초등학생 때보다 어려운 개념들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아들의 과학시험범위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서 읽어 보았다. 지구과학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교과서에 있는 개념설명은 기본적인 내용으로 간단하게 되어 있었다. 간단한 교과서 설명에 덧붙여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기 쉽도록 개념어 상상사전을 사서 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교과서에는 “광물”에 대해서 “지각을 이루는 암석의 기본 알갱이로 자연에서 만들어진 고체를 광물이라고 한다.”라고 간단히 나와 있다. 그런데 개념어 상상사전에는 "광물"이라는 단어 옆에 한자와 영어를 표기하고 있다. 쇳돌鑛 물질物. mineral 그 다음 줄에는 쇳돌물질이라고 풀어 쓰고 보충설명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 “금, 철, 구리 등과 같이 땅이나 물속에서 천연으로 나는 돌이나 쇠붙이를 광물이라고 해. 생수병에 쓰여 있는 mineral water라는 단어를 본 적이 있지? 이 때 minerald은 바로 천영 광물이라는 뜻이야. 광물은 대표적인 무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광물들이 모여서 암석들을 이루게 되는 거야”

학교에서 과학 선생님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것 같지 않나?

광물 다음에 나오는 것은 조암광물이라는 개념어이다.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생소한 단어이다. 중1인 아이들은 얼마나 생소할까. 상상사전에는 한자가 나와 있어 생소한 개념어가 만들어진 경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딱딱한 교과서에 는 내용도 재미있는 말로 보충설명 해주고 있어서 과학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현직 과학교사 4명이 모여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과학 공부 할 때 옆에 두고 보면 좋은 참고서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보거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처를 더 많이 주고받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에 있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의 원수도 가족을 죽인 원수나 나에게 경제적인 피해를 입힌 사람을 제외한다면 가족이 될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왜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상처받는지 그 해답이 알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 정신분석학 박사가 쓴 책이니만큼 전문 심리학용어가 문장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간 중간에 어려운 심리학용어를 설명해 놓고 있긴 하지만 어려운 문장은 두세 번씩 읽으면서 이해를 하였다.

정신분석학 박사인 저자 조안 래커는 연인과 부부를 대상으로 상담하는 심리치료사 이기도 하다. 그녀가 치료한 내담자들의 실례를 들어 그녀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조안 래커는 상담을 통해 사랑한다고 하는 연인과 부부가 왜 상처를 주고받는지, 왜 상처받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연구했다.

사람들에게는 V-spot이라는 감정적으로 가장 상처받기 쉬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 브이스폿을 자극받으면 생애초기에 겪은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경험이 되살아나 현실검증 능력, 인식능력, 판단력을 상실한다고 한다. 그래서 현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해서 받아들여 근거 없는 두려움, 분노, 공격성, 수치심, 죄책감등에 사로잡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브이스폿을 자극하는 공격자들도 보통 가까운 사이 이거나 중요한 사이 즉 연인, 부모, 자녀, 친척, 상사가 주로 많다고 한다.

저자는 브이스폿을 자극하는 가해자들로 자기애성, 경계성, 수동공격성, 강박성, 분열성 5가지로 성격유형을 구분하고, 이들에게 이성적으로 끌려서 이들을 떠나지 않고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배우자들(조장자)의 유형을 짝을 지었다. 조안 래커의 내담자들의 예를 들면 자기자신밖에 모르는 거창하고 과장된 자아감의 소유자인 자기애성이 강한 남편과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거나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사는 자존감이 낮고 자아감이 결여된 경계성 아내가 처음에는 서로에게 끌려서 결혼하지만 같이 살면서 서로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서로 상처를 주면서 불행한 상황을 반복하고 상담을 받기에 이르는 것이다.

감정적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브이스폿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조안래커는 주장했다. 브이스폿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면 자신이 왜 특정한 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큰 상처를 받는지 알아낼 수 있고 감정적 자극에 휘둘리지 않으며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조안래커는 다양한 심리학 이론 중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론, 하트만의 자아심리학, 클라인의 대상관계론을 도움 받았고 이 책에서는 자아심리학의 관점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자아 및 자아의 기능장애가 있어 보이는 브이스폿이라는 이론적 틀과 자아심리학이 특히 중요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조안래커의 이론이 허무맹랑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의 감정적 취약점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면 조안래커는 그 방법을 알려 준다.

“혹시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라서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던 이야기가 있어?”

“내가 너무 의기소침해할까 봐 지적하지 않았던 나의 성격상의 결함은 없어?”

“혹시 내가 특정한 상황에 처하면 평소와 달리 이상할 정도로 화를 내거나 부끄러워하지는 않아?”

이렇게 주변사람에게 물어보라.

조선후기 1860년대부터 고려인들은 연해주로 농사지을 땅을 찾아서 이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150년의 유라시아 고려인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보인다. 저자는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이 정착하기까지 겪었던 약소민족의 서러움과 차별을 밝혀주고 있다. 그야말로 통한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일제의 조선침략 후 연해주는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지만 러시아와 일본의 탄압으로 항일운동이 저지당하고 러시아로 귀화하지 않으면 추방당하기 시작했다. 1910년대에 러시아로 귀화한 고려인들보다 귀화하지 못한 고려인들이 훨씬 많았고 귀화하지 못한 고려인들은 많은 차별을 받았다.

러시아 내부의 혁명과 같은 정치변화에 따라 연해주의 고려인사회에도 정치분화가 일어났고 계급이 대립되기도 하였다. 귀화인과 비 귀화인 사이의 이질화였다. 저자는 당시 고려인 사회의 정치적인 문제도 자세히 밝혀주고 있다.

러시아에 소비에트시대가 도래하였다. 고려인들도 농촌소비에트 조직에 앞장서며 토지를 소유하고자 하였으나 차별 당하였다. 부유한 백인농민의 토지를 빼앗아 가난한 황색인종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인종차별을 받았다. 고려인들은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는 소작을 계속했던 것이다. 농장집단화를 추진하면서 고려인 재산을 몰수하고 국경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고려인을 이주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집단화과정에서 고려인집단농장과 러시아인 집단농장에 부과되는 공출도 달라서 고려인과 러시아인 집단농장과 충돌이 많았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그래도 1923년부터 1933년까지 10년간은 고려인은 토지문제와 국적문제가 해결되어 당당한 소련공민이 되었고 고려인 민족구역이 지정되어 자치를 할 수 있게 된 점도 밝히고 있다.

1936년 일본은 소련을 일본 최고의 적으로 칭하였다. 소련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소련은 고려인을 적대시하며 정치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소련에 충성을 다짐하던 고려인들을 일본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어 처형하는 것이 강제이주의 시발점이었다.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주된 이유는 일본첩자 침투방지라고 내걸었지만 실은 고려인을 추방하려는 구실에 불과했다. 아무 죄도 없는 고려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와 인접한 변방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추방되었다. 저자는 1992년에 발견된 고려인강제이주 비밀명령서의 원문을 책에 공개하며 소련의 비인도적 면을 고발하고 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연해주를 떠나게 된 고려인들은 가축을 태우던 화물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갔다. 왜 떠나는지 건의를 하면 무조건 즉결심판으로 사형을 당했던 고려인들의 아픔이 느껴졌다. 비위생적 곳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못 견딘 어린이와 노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강제이주 희생자는 16,500명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벼농사를 짓지 않았던 중앙아시아에 벼농사를 보급한 것이 우리 고려인이었다. 뛰어난 농업기술과 부지런함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삶을 살았다. 타슈켄트에서 일하던 한 노인은 짐승같은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소련이 붕괴되고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이 독립하기 전까지 고려인들은 높은 교육열과 농업기술,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지고 소련사회에 적응하며 살았다.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차별은 있었지만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살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소련 붕괴 후 1990년대 초 소련의 지배를 받던 중아아시아에 여러 독립국들이 생성되었다. 각 나라의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공용어로 쓰던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의 주인이 아니어서 또 한 번 차별을 받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견디어 냈다고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유라시아 고려인에 대한 조사를 10년이 넘도록 한 후 이와 같은 방대한 저술을 한 저자의 열정이 잘 드러난 책이다.

현재 50만이 넘는 고려인들이 연해주, 중앙아시아. 러시아 남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고려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민족과 연고가 없던 지역에까지 우리의 경제, 문화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과 고려인들이 함께 손을 잡고 21세기를 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 저자의 노고가 헛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