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는 제가 일미에 입문한 이래로 최대의 발견이라 여길만큼 좋아라하는 작가입니다.
가독성이 좋아 쉽게 읽을 수 있는데다 날렵한 스토리텔링과 예상치 못한 반전 등 굳이 미스터리팬이 아니더라도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글쓰기를 하는 작가입니다. 여기에 다작을 하면서도 매번 일정수준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기본은 한다'라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간혹가다 아니다 싶은 작품도 있었지만, 그런 작품들은 작가의 초기 작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작가로서의 관록이 붙은 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경험상 '품질 보증'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품질 보증'이 이 작품으로 인해 깨져버렸습니다.
오컬트와 미스터리의 결합을 소재로한 단편집인데 분명 히가시노 게이고의 냄새는 납니다. 앞서 언급했던 특유의 문체와 반전말이죠. 다만 '날렵함'은 사라지고 '안일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작가의 기존 스타일을 그저 답습할뿐이고 각 작품마다 반전도 그저 그랬습니다. 물론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좋아해서 너무 많이 읽다보니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볼때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2000년도에 출간되었다는게 갸우뚱해질정도더군요. 오히려 90년도에 출간되었던 단편집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 훨씬 좋았습니다. 오컬트라는 특이한 소재를 미스터리와 결합시켜 다뤘음에도 그리 감흥이 크지 않더군요. 한마디로 그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값, 그리고 초기작이 아닌 2000년도 작품이었다는 점에서봤을땐 더 근사한 작품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실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아프지만 별두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