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월가를 배경으로 오직 돈이 인생 최고의 가치라 믿는 사람들이 허상을 만들고 허상을 쫓으며 탐욕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주인공 조던은 어린 시절부터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증권 브로커가 된 조던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일에만 전념한다. 이런 조던의 모습에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역시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개츠비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개츠비는 오직 데이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려했다는 점에서 연민이 느껴지는 반면, 조던은 오직 부자가 되는 것이 인생 목표로 술과 마약과 여자에 빠져 탐욕스러운 삶을 산다는 점에서 도무지 정이가지 않는 캐릭터이다.(특히 여자에겐!) 그러나 조던이 처음부터 그렇게 탐욕스럽고 몰염치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월가에 처음 입문했을 당시 조던은 고객이 돈을 벌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자신도 돈을 벌고자 했던 순둥이였다. 그러나 그는 인생일대의 스승을 만남으로써 인생에 큰 전환기를 맞는다. 월가에 출근한 첫 날 조던은 그의 사수 마크 한나에게서 월가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마크는 조던에게 월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고객의 돈을 내 주머니로 옮겨오는 일만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며 덧붙여 마약, 술, 여자가 제정신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 후 조던은 마크의 가르침대로 ‘내 주머니를 불리는 일’에만 전념했다. 이런 조던의 모습을 보며 인생에 있어서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곰>에서 주인공 아이작은 오랜 시간 노예로 살아온 샘 파더스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샘과 함께 사냥을 다니며 소년 아이작은 겸손과 용기를 배우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배우며 성장한다. 그 후 소년에서 성인이 된 아이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로부터 물려받은 땅(재산)을 포기한다. 아이작은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 없듯이(노예제도와 관련해서 돈으로 사람을 사고파는 일이 정당할 수 없듯) 사람이 땅을 소유할 수 없다고 믿었고 애초에 사람에게 그런 권한은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을 때, 용기 내어 자신의 의견을 말함으로써(상속을 포기한다고) 자신이 오랜 시간 품어온 가치를 지켜냈다. 반면에 마크를 만난 후 조던은 이기심과 몰염치로 가득한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아이작은 샘이 ‘곰’을 만나는 법에 대해 가르쳐 준 순간을, 조던은 마크가 ‘월가’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 가르쳐 준 순간을 ‘붙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이작과 조던을 생각하며 나를 지금의 나로 성장하게 해준 스승은 누구였는지를 되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둔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 수업에서 담임선생님은 갈지(之)자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그림을 그리며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앞만 보며 달려가기 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며 되도록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천천히 목표를 향해 전진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 것을 보니 그 때가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로 나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전념하기 보다는 여러 가지에 흥미와 관심을 두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을 즐겼다. 덕분에 나는 빠르게 성공하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목표한 바를 이뤄냈으며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빨리 달려가기보다 천천히 걸어가는 것의 매력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식 전 마지막 수업의 기억을 붙잡고 살아간다.

 

아이작은 숲에서, 샘에게서 사냥하는 법에 대해 배우며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배우며 성장했다. 그것은 겸손과 용기였다. 또한 샘은 그들이 오랜 세월 쫓아온 곰 올드벤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아이작에겐 샘이, 샘에겐 올드벤(곰)이 스승이었다. 이처럼 삶을 살아가다보면 앞으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결정적 만남의 순간을 한번쯤 경험하게 된다. 인생에서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다산의 제자들이 모두 황상과 같은 길을 걸어가진 않았듯이, 아무리 뛰어난 스승을 만난다 해도 어떤 가르침을 받고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당신은 어떤 만남의 순간을 붙잡고 살아가나요?

1. 나에겐 작은 꿈이 있다. 30대에는 꼭 유럽여행을 가는 것이 그 꿈이다. 원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 꿈이었으나, 부모님의 원조 없이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현실 앞에 꿈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유럽여행 하나만을 목표로 알바를 열심히 하던 친구들이 마침내 유럽여행을 떠나고, 여행후기를 들려줄 때면 그냥 눈 딱 감고 나도 갈걸 그랬나 하는 짙은 후회가 밀려왔다. 친구들의 여행기를 들으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면세점 쇼핑도 아니고, 파리지앵이 작업을 걸어오더라는 이야기도 아닌 바로 ‘공연관람’이었다. 국제학생증 덕분에 학생할인을 받아서 5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코앞에서 브로드웨이의 오페라의 유령과 라이언 킹을 봤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본 고장에서 즐긴 오페라 관람 등이 가장 부러웠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해외여행을 간다면 마음껏 공연을 관람하고 오겠노라고 다짐했다. 이런 나에게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은 좋은 자극제이자 교본이 되어주었다.

 

 

2.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은 가을 시즌으로 시작하여 겨울, 봄, 여름 그리고 여름 축제로 목차가 나뉘어있다. 시즌별로 저자가 관람한 공연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는데 공연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공연장’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 챕터 챕터를 읽을 때마다 저자가 해당 공연장에서 관람했던 프로그램을 찾아서 들었다. 갈증을 달래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파리 살 플레엘’에 대한 챕터를 읽을 때에는 플레엘 피아노 소리를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개선문을 지나면 파리 오케스트라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상주 음악당인 살 플레옐이 있다. 그 옆에는 ‘피아노 플레엘’이라는 피아노 전시관이자 매장이 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 이그나스 플레옐은 자신의 이름을 딴 피아노 제조업체를 만들었고 플레엘 피아노는 쇼팽, 바흐, 베토벤, 라벨 등 많은 연주가와 작곡가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쇼팽은 ‘나만의 고유한 소리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창작력이 충분히 끓어올랐다고 느낄 때가 바로 플레옐의 피아노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플레옐 피아노를 사랑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플레옐 살롱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교우했다. 바로 이 플레옐 살롱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1927년 문을 연 공연장이 ‘살 플레옐’이라고 한다. 만일 이 책을 읽지 못했다면 나는 파리 여행을 가서 프랑스 제일의 보물을 놓치고 왔을지도 모른다.

 

 

3. 이밖에도 책에는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가 2000년 재개관 이후로 ‘명예로운 고립’에서 벗어나 영화 상영관이나 텔레비전과 영상물까지 미디어 분야에 뛰어들면서 적극적으로 현대화를 보색하고 있다는 이야기,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니 홀이 어떻게 전통적인 ‘구두상자 형’공연장이 아닌 지금의 독특한 형태의 공연장이 될 수 있었는지 등 각각의 공연장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특히 <마술 피리>가 초연된 오스트리아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는 모차르트가 타계할 때까지 매일 밤 공연을 관람했다는 이야기는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어줄 미담이다.

 

 

4. <365일 유럽 클래식>기행을 읽으면서 빨리 클래식 기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 편으론 우리나라엔 베를린 필 하모니나 살 플레옐 같이 오랜 시간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역사를 만들어온 공연장이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스트리아와 파리와 런던에서는 시민들의 힘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나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이 부러웠다.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음악과 공연이 있다. 판소리와 마당극 등 우리의 문화를 보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365일 판소리를 관람할 수 있고, 마당극을 관람할 수 있는 공연장이 생겼으면 좋겠다.

 

 

덧,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수많은 공연장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이야기의 깊이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각 공연장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짧다보니 몰입이 되다 말고 끊기는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는 책이 시즌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시즌’의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이 되어있지 않은 부분이 아쉬웠다. 나 같은 초보자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공연에도 시즌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각 시즌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시즌 티켓은 일반 티켓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알 수가 없어 조금 답답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은 날 나는 오랫동안 꺼내지 않은 물감과 붓을 꺼내 표지를 그렸다. 따뜻한 달빛과 화사한 꽃과 함께.>

 

 

 

나에게 신경숙 작가의 이미지는 겨울이다. 처음 작가의 책을 접했던 <깊은 슬픔>속 주인공이 눈 산을 헤치고 걸어가던 장면이 그러하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윤교수의 죽음을 알리던 날이 그러하다. 소설을 읽고 나면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것도 신경숙 작가와 겨울을 나란히 두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작가가 봄을 닮은 명랑하고 상큼한 스물여섯 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낸다고 했을 때 나는 의아함 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그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그녀가 보여주는 유머도 충분히 그녀다울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만난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따뜻한 이야기와 그림이 가득했다. 역시나 그녀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따뜻한 웃음이 묻어났다. 그녀의 손에서 태어나는 모든 생명체에는 상냥함이 담겨있다. 노파를 향한 눈길을 거둘 수 없었던 돌이 갓 지난 아이를 업은 여자가 그러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딸이 그러하다. 하물며 남의 집 담장을 넘으려다 허둥지둥 도망치는 어린 도둑과 애물단지가 된 모과나무에서도 상냥함이 느껴진다. <달에게..>에는 그간 작가가 그녀의 작품에서 조용히 드러냈던 상냥함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이 지닌 무거움이 버거웠던 독자들도 이번 작품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작은 투정에도 마음을 써준 작가의 마음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내게.

당신이라는 존재는 언젠가 내가 읽었던 아픈 책을 같이 읽은 사람이다. 그 사람을 나는 당신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이미 읽은 어떤 책은 앞으로 내가 읽을 것이다. 달에게 먼저 전해진 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가능하면 당신을 한번쯤 환하게 웃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봄날 방을 구하러 다니거나 이력서를 고쳐 쓸 때, 나 혼자구나 생각되거나 뜻밖의 일들이 당신의 마음을 휘저어놓을 때, 무엇보다 나는 왜 이럴까 싶은 자책이나 겨우 여기까지? 인가 싶은 체념이 당신의 한순간에 밀려들 때, 이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달빛처럼 스며들어 당신을 반짝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중

 

 

 

 

 

실제로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이력서를 고쳐 쓸 때, 마음이 어지러울 때, 자괴감으로 한 없이 우울할 때, 달빛처럼 스며들어 금세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때문에 평소 신경숙 작가의 책은 한 번 집으면 끝을 볼 때까지 좀처럼 내려놓기가 어려운 반면 이번 책은 항아리에 숨겨놓은 사탕을 야금야금 꺼내 먹을 때처럼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한 편씩 아껴가며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어쩐지 금세 다시 이 책을 집어 들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