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3.17
희망의 인문학을 사려고 했는데

진보집권계획이라는 너무나 노골적인 제목의 책을, 뭘까하며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다 결국 궁금해서 샀다. 예전엔 정치관련 서적을 사면 유통기한이 
빨리 찾아오는 것 같아 빌려 읽었는데 이젠 좀 정치도 공부해야겠다 싶어 
사게 되었다.

어제 사서 절반 이상 읽었다. 오기자의 질문도 독자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긁어줄
적절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또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풀어주는 조국 교수의 명철함도
놀라웠다. 가끔 정치인을 다룬, 혹은 정권에 대한 평가를 담은 책들을 보면 국민의
민의를 이렇게 다르게 읽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여럿인데, 확실히 조국교수의
진단과 평가는 날카로웠다고 생각된다. 과연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의 행보를 주의깊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동안 드는 다른 생각.오기자님, 학벌주의, 학연 없애자고 하면서도 은근히 책에서 같은 동문, 선배, 기수
드러내는 거 아시는지?ㅋㅋ

 나는 '독서'와 '책'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는 편이다. 나의 관심사가 한정되어 있어서 쉽게 다른 영역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타인의 관심사를 통해 나의 관심사를 넓히고자 한다. 그러니 마녀의 독서처방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눈길을 끌어 도움을 받고자 집어든 것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오한 처방이어서 오랜만에 괜찮은 책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읽었다. 

 솔직히 그녀의 처방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이 가난하다 여겨질 때라고 한다면 나는 마음이 따뜻해질법한 책들을 기대하며 그녀의 처방을 기다리다 여지없이 새로운 길로 빠져는 그의 글을 보며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그녀가 읽는 책들은 거의 대부분 나의 관심사와 멀었다. 그래서 읽어보지 못한 책들도 많았고 내가 늘 서가에서 지나쳐가는 부분의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의 독서처방을 처방전만 받은 것에 불과하다. 처방전에 쓰여진 것들을 찾아 읽어보며 그녀의 처방을 한 번 맛봐야 겠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존재를 알고 있어 홈페이지를 몇 번 기웃거린바 있지만 고미숙씨의 열하일기를 제대로 다 읽지 못한 나는 호모 쿵푸스를 통해 처음으로 그를 제대로 직면하게 되었다. 경험에서 우러난 그의 자신감은 때론 울림으로 때론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며 계속 책을 읽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나는 근30여년을 공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공부의 달인은 커녕 공부와는 쉽게 정을 쌓지 못한 1인 중의 하나이다. 저자는 ’공부하지 않는 것은 뭣도 아니야’라 주장하며 일견 극단적 공부옹호론자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공부가 시,공간에 제약을 철저히 거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부귀하면 부귀한대로 공부할 일이요, 빈천하면 빈천한대로 공부할 일이다’는 말처럼 자나깨나 공부를 삶과 일체화하라고 말하는 그는 그럼 공부의 달인인가? 읽어보면 알다시피 이 책은 그의 공부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글이다. 그럼 달인이 되는 방법은, 너무 쉽게 그가 가르쳐준다. 독서를 하라. 아~독서가 어디 그리 쉽게 이루어진단 말인가. 더욱이 쉽게 읽히면 그건 오히려 취미지 독서가 아니라고도 한다.(한편으로 이부분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무엇을 읽어야 하나. 고전을 읽으라 한다. 여기까지는 여타의 독서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이들과 다를바 없다. 그럼 삶과 우주를 담고 있는 고전을 어떻게? 이것은 책을 통해 확인해 봐야 한다. 그리고 직접 실천하게 되면 그 누구도 호모쿵푸스의 명패를 달 수 있다. 
 
중국어로는 공부를 功夫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공부해라고 말하기보다 나는 학습한다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수학공부, 역사공부, 시험공부라는 말을 쓰지 않는가? 공부라는 말을 이렇게 어처구니 없게 쓰다보니 공부의 심오한 뜻을 오해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은 후에야 하게 되었다. 중국의 무술 쿵푸가 정신과 육체의 수련을 의미하는 것처럼 우리의 공부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하며.

공부의 달인이 되는가 기대하며 읽었는데 어떻게 살아야하나 하는 물음의 답을 얻은 것 같다. 과연 나는 호모쿵푸스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배지에서 정약용이 아들에게 ’이제 가문이 망했으니 진실로 네가 공부할 때다.’라고 한 말은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다.  공부란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