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한티재를 오르내린 사람들의 이야기...

겁이나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빤란구이 들의 시신을 매장해 주고 제사까지 지내 주었던 향교골 자부래미 박 서방, 낯선 마을 고지기로 살면서도 아이들로 하여금 이야기속으로 풍덩 빠지게 하고, 그렇게 희망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이석, 어린 나이에 민며느리로 팔려가 온갖 구박을 다 받았지만 끝내 달수를 다시 만나 그나마 행복한 삶을 살았던 귀돌이, 바람병(문둥병)에 걸려 평생을 회한속에 몸무림치다 죽어간 분옥이, 그 분옥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끝내 자신도 문둥병에 걸려 떠돌아다니게 된 동준이...

슬픈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계속 된다.  한티재 하늘 3권이 나온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슬픈이야기가 나오겠지.

나이가 먹으니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빠진다. 예전엔 슬픔속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가벼운 이야기에 진저리를 치며 인생이 이리 무거운데 문학이 삶이 이리 가벼울수 있냐고 했지만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보단 그저 웃고 떠들고 즐거운 이야기만 듣고 싶기도 하다. 하나 내가 외면한다고 현실이 달라지는건 아니겠지. 마음 답답하고 속상하지만 우리 이웃의 슬픈 한티재 이야기처럼 현실을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

권정생 선생님이 살아계시다면 나같은 나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수 있는 더 많은 이야기를 쓰실텐데 안타깝다.

한티재를 간적이 있다. 대구 팔공산 근처 한티재가 있는데 대구에선 제일 높은곳이라 그곳에 올라가면 대구가 한눈에 다 보인다. 드라이브 코스로 데이트코스로만 생각하던 한티재 고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슬픈 사람들이 있었다니 마음이 짠했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너무 슬프다. 때론 너무 슬퍼서 외면하고 싶어진다. 왜 이렇게 사는걸까.... 사람 사는게 이렇게밖에 안되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이게 무슨 꼴인가...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연민이 때론 미움이 되어 뭐 이런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 이렇게밖에 못살지... 그런 모진 생각마저 들때가 있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기독교적 희생정신이 바탕이 되는것 같다. 비록 현세에선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그 현실을 잘 이겨내고 때론 희생하며 지나면 하늘에서 그 고통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 내지는 예수가 그러했던것처럼 내가 죄인이다 내가 죄값을 치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듯한 주인공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난 자체가 죄는 아닐진데 왜이리 세상살이가 힘겹기만 한건지... 왜 안되는 사람은 끝까지 안되기만 하는건지... 그 고통과 희생의 보답을 현세에서 받으면 안될까?

힌티재 고개를 올랏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안좋다. 그사람들 지금은 다 행복해졌을까? 아픔이 많은 세상살이를 보며 덩달아 마음이 아프다.

인생의 반려자... 보통 결혼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옷깃을 스친 인연만해도 엄청나다는 불가의 말처럼 결혼을 하게되는 사람들의 인연은 어떤것일까...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인연으로 만나 사랑하여 서로의 반려가 될까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 책은 보통의 로맨스소설을 읽으며 가지는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선남선녀가 나와 서로 옥신각신하며 사랑을 키우는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종일관 어둡고 진지하다. 로맨스소설이 진지하면 안된다는건 아니지만 나의 기대치와 많이 달아 어리둥절해 하며 읽었다.

주인공 은수는 어려서 오빠와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부모의 반대로 동거하던 애인은 동생을 성폭행한다. 이런 사실을 결혼 며칠전에야 알게된 주인공은 자살을 시도하고... 이쯤되니 뭔가 시니컬한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무작정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남자 주인공을 만나 원나잇스탠드를 보내게 되는데 그것때문에 임신을 하게된다. 그런 과거의 아픔이 현재의 상처가 사람을 믿지못하고 사랑을 믿지못하게 만들었구나... 과거의 상처에 힘들어하는 은수 묵묵한 기다림과 변한없는 애정으로 돌봐주는 또 한사람의 이야기...

내가 기대했던 달콤한 로맨스는 아니었지만 반려에 대해 다른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배려하는 것에 생각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