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을 끝내고 3권을 다시 읽기 시작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저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에는 급기야 와이프와 싸웠다. 경기도지사로 A후보를 뽑겠다는 나와, A만은 안 된다는 와이프. 왜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을 뽑겠냐는거다. 그깟 정치적 신념이 자신보다 중요하냐는 논리다. 이번 선거를 보니, 경상남도지사의 선거결과가 내 눈에 띄었다.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이 안 되고 그렇다고 민주당후보도 낙선이요. 무소속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생각을 해 보니, 그 지역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싫기는 한데, 민주당을 더 싫어 하기에 무소속을 뽑은 것이 아닌가 하다.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결과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내가 그 동안 접한 조선시대나 근현대사의 역사서를 읽은 바에 의하면, 지금의 지역감정은 이미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려면 백 년은 더 잡아야 한다.

나는 비록 서울 출신이지만 전라도 사투리를 보면 정겹다.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전라도 출신 지인들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인데, 다들 세파에 시달리는 입장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사람살 냄새가 난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정'이 넘치는 곳은 전라도가 아닌가 하다. 비록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풍요로운 농토가 있었음에 다른 지방과는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었을게다.

외서댁은 드디어 염상구와의 관계가 들통난다. 그 소문의 진원지는 바로 염상구. 그는 이제 사실 계엄사령관에 의해 찍혔다.

조정래 작가의 손을 거친 인물들은 친일파이건 빨갱이이건 못 된 지주이건 순응하는 소작농이건, 그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아마도 작가가 이물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왜 그 인물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각각의 개인적 성장배경까지고 꿰차고 그려나가기 때문일게다.

생각해 보니 나무에 관한 책을 꽤 보게된다. 사진이 많이 들어 갈 수 밖에 없어 책값이 상대적으로 비싼데도 불구하고.

오래된 나무는 무언가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돌기 마련이고, 그러하기에 사람들이 이에 의지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또한 달리 생각하면 섬뜩할 때도 있다, 잡귀신이 많이 붙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인간은 누구나 100살 전후로 죽기에 신은 공평하다고 본다. 하지만 나무는 1000년 이상도 살아낸다. 강진 병영면에 있는 은행나무는 하멜표류기에 언급된 나무라고 한다. 살아있는 타임머신이란 생각에 더욱 신령스럽다. 예전 유학생활, 동양인이 거의 살지 않는 미국의 어느 지방에서 지나가는 개도 나를 신기한듯 뚫어져라 쳐다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그 나무가 하멜을 보고 얼마나 신기해 했을까. 그 때의 충격으로 이리 오래 산 것일까? 예전에는 강진에 여행가면 다산초당을 갔다. 최근엔 백련사를 갔었고, 이제 하멜이 봤던, 아니 하멜을 봤던, 그 은행나무를 보러 가게 될 듯 하다.

산사에 있는 오래된 나무에는 잡귀신 중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한 많은 중생들이 붙어있지 않을까? 금년 5월에 갔던 용문사의 1100년된 은행나무 밑동에 꽃을 피며 자리 잡았던 금낭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무언가 사연이 있음직한 그 금낭화.

책을 쭉 읽어 보니 사실 그 얘기가 그 얘기다. 한결같이 지팡이를 꽂았더니 거기서 나무가 자랐고, 한결같이 효자송이며 그 지역이 배출한 걸죽한 인물이 심거나 그 지역을 각종 전란으로부터 보호했던 인물을 기리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다. 한결같이 지금의 성장환경은 좋지가 않아 수술한 자국이 보이며 한결같이 안타깝다. 그런데도 이 책을 보는 이유는? 잠시 현실을 떠나 그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고,  잠시 현실을 떠나 걸죽한 입담의 그 지역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이다.

잠시 신령스러운 거목 이야기에 귀기울일 생각은 없으신지. 뭐 듣거나 말거나 그 나무는 그곳에 앞으로도 수 백년 있을테지만...

 

표지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진이 있다. 박대식 앵커이다. 74년 KBS에 입사한 그는 80년 언론통폐합 때, 도망치듯 대만으로 유학길을 떠났고, 그것이 계속 인연이 되어 홍콩특파원을 하다가 북경특파원 등을 거쳐 다시 국내 KBS로 돌아와서 근무했고, 지금은 무슨일을 하고 계신진 모르겠다.

어느 한 분야에서건 1만 시간을 집중해서 하거나 10년을 한 분야에 종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에서는 경험해 볼 수 없는 소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숨어 있는 책들’이라는 신촌의 헌책방에서 4천원에 사서 바로 읽어 버렸다. 커피 한잔 마시는 값으로 오랜동안 중국통 기자로 근무한 저자의 글을 통해, 1990년대 홍콩의 중국반환, 황장엽 망명, 김일성 사망, 등소평 사망 등, 중대한 변혁을 겪은 중국의 상황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유주의라는 두 개의 서로 어울리지 않는 체제의 중국.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조만간 중국에서는 제2의 천안문 사태와 같은 사회변혁을 겪고 곧 정치사회적 안정을 찾으면, 즉 두 개의 모순된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면,  지금의 미국 중심의 세계는 중국 중심의 세계가 된다는 예측을 나도 믿었었다.

하지만, 여러 민족들을 융화시킨 청나라 초 상황에 관한 책을 읽고, 또한 내가 직접 북경에 가서 느끼게 된 사실은 나의 이러한 생각을 바꾸어 버렸다. 중국은 이해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나라다. 그래서 처음엔 중국시장 진출이 러시를 이루다가 다 말아먹고 귀국들 하지 않나. 나의 조심스런 생각으로는, 중국은 계속 이런 정치와 경제의 모순된 체제를 유지 할 듯 하다. 물론 다른 나라라면 불가능한 얘기이다. 중국이니깐 가능하다. 사회 곳곳에서 모순을 안고 있는 듯해 보이지만 이를 ’중국식 합리주의’로 신기하게 헤쳐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같은 석사과정을 밝았던 그 여학생이 또 생각났다. ’천안문사태’ 하면 떠오르는 그 여학생. 평소에 그녀 특유의 무표정으로 각인된 인상. 하지만 어느 날인가 천안문 사태때 바로 앞에서 죽어간 친구 얘기를 할 때, 울먹였던, 그래서 더욱 놀랐던 기억. 무슨 대학의 누구였는지 여기서 밝히고, 누군가 이 글을 중국어로 해석하고, 이를 중국공안에서 알게 되면 그녀는 사형이다. 이것이 현재 중국 정치 체제이다.

내가 지금 나이에 기자가 될 일은 없겠지만, 철저한 기자정신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같게 해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