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자신의 자전적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인 소설이라 할지라도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이야기는 쉽게 써 내려가기 힘들다. 그래서 소설 이곳저곳을 잘 보면 저자의 발자취를 알 수 있고, 이 책처럼 자전적 에세이 혹은 소설을 내 놓는 경우 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촌 까페베네에서 읽고 있는 ’바다의 기별’ 그리고 그의 글을 소화하느라 태워버린 저멀리 보이는 나의 시간의 잔해들 (나는 원래 독후감에 사진을 안 넣는다. 하지만 아이폰4를 사고 나서 그 카메라 화질에 놀란 이후 사진을 많이 안 찍을 수 없게 되었다)
김훈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해 안철수와 비슷한 답변을 한다. 그래서 극우나 극좌인 사람들은 그를 싫어한다. 무엇때문에 그가 이러한 성향을 형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이 이 책에 있다. 그것은 바로 ’난중일기’이다. 젊었을 적 그의 시각으로 본 이순신 장군은 ’열렬한 애국자’도 아니요, ’뛰어난 전략가’도 아니요, ’효심 가득한 아들’도 아닌, ’그 어떤 정치적 성향도 보이지 않고 단순히 절망적인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통과해가는 한 인간’이었다.
20대 초반에 읽은 난중일기는 37년 뒤에 ’칼의 노래’라는 소설로 그의 손가락 마디에서 다시 태어났다 (위드로 소설을 쓴다면 ’손끝에서’이지만 연필로 꾹꾹 눌러 쓴다고하니 ’손마디에서’이다). 그 장편소설이 두 달만에 완성되었다한다. 이는 그가 37년간이나 삭혀온 이순신에 대한 존경과 감동의 양과질이 어마어마 했었다는 반증이다. 어느 정치적 성향에 편중되는 것을 싫어하는 그의 성향이 비로서 이해된다.
이 책을 보면 그가 육필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모든 현악기 중에서 해금은 인간의 육체에 가장 가깝고, 육체의 떨림이 선율 속에 살아 있다. (중략) 해금 연주자는 손아귀로 줄을 쥘 때 소리의 진동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몸의 리듬으로 소리를 통제한다. 그래서 해금에서는 몸의 소리, 몸의 리듬에 가까운 소리가 난다. 해금의 소리는 주물러서 나오는 소리다.’ (p.112)
또한 시간과 공간에 관한 그의 상념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악기는 공간을 차지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시간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연주자의 생명 앞으로 바싹바싹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 그러니까 나의 생명에 가장 가까이 온 미래의 시간, 오직 그 위에서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이죠.’ (p. 158)
얼마전 케이블TV로 스티븐 호킹과 빅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잤다. 공간의 비틀림 현상으로 인한 블랙홀과 루게릭병 선고 받은 후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호킹 박사의 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에 관한 프로그램이다. 그 속에서 호킹 박사는 시간과 공간의 과학적 신비로움을 벗기고자 평생을 보낸다면, 김훈 작가는 시간과 공간이 제공하는 끊임없는 상념에 평생을 보낸다.
그럼 나에게 있어 시간과 공간은 과연 평생 어떠한 존재로 다가 왔고 다가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