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서 중 하나라는 말을 들을 땐 ’뭐,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기서라는 것에 삼국지, 수호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나자 ’아니, 그 정도의 책이란 말이야?’라는 호기심이 느껴졌다. 사실 이 호기심은 ’설마 그럴 리가 있나?’라는 의심에 가까왔고, 이런 의구심은 ’요재지이’라는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왠지 경망스러운 느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책을 펼쳐 들고 나서 느껴지는 것은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의 집합이라는 것. 그러면서 ’이런 분산된 짧은 글들 속에 어떻게 깊은 사고가 숨겨져 있겠는가, 어떤 철학이 배어 있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의구심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이런 의구심을 품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면서 무슨 여우가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지, 남녀의 관계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이뤄지고, 어찌 이렇게도 독특한 이성관을 가지고 있는지, 과연 공자와 유학을 숭상하는 과거의 중국이 과연 이 정도로 문란했는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게 혀를 차면서도, 어느 순간 순식간에 이 책의 묘한 매력에 빠져있는 나를 느낀 것은 거의 불가사의에 가까운 경험.
왜 그런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 찬찬히 돌아보면, 내 입장에선 크게 두가지 이유를 찾아보게 된다.
첫째, 이야기 전개가 굉장히 빠르고, 권선징악이라는 불멸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어 거부감이 적다는 것이다.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호흡이 길지 않기 때문에, 다소 재미없고 무미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의 재미없음에 젖어 불만을 표하기보다는, 곧 이어지는 또다른 이야기에 금세 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재미없다고 말할 부분은 적고, 귀신과의 싸움 등 작은 재미를 느낄 여지가 많다. 그리고, 다소 기괴한 전개라 하더라도 결국은 권선징악의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불쾌감이나 어색함만 남는 경우는 없다.
둘째, 등장하는 인물, 사건들의 연결이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읽는 재미가 크다는 것이다. 굉장히 잘 만든 영화를 보는 것처럼, 등장하는 인물, 사건들은 하나도 헛되이 등장하는 법이 없고 결국은 이야기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종국에 이르러 반드시 이야기의 소소한 고리라도 완성하도록 짜여져 있다. 짧은 이야기인 탓에 더더욱 걸러지고 정제된 면도 있겠지만, 이 정도의 플롯을 매번 구성한다는 것은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의 능력 면에서 대단하다 생각되어 감탄이 절로 나고, 과거의 사람이라 하여 반드시 능력을 -현세보다 못할 것이라- 경시해선 안 되겠다는 당연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이렇듯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또 한가지 경탄스러운 것은 역자의 능력이다. 한문소설일진대, 이를 이토록 맛깔나는 한글말로 번역하여 마치 애초에 한글로 쓰여진 글인양 어색함이 없게 하고, 고사와 관련되는 용어는 일부러 한자말을 사용하고 뒤이어 풍부한 역주로써 해설해주는 것은 ’만약 이렇게 해 주지 않았다면 이 책의 재미는 반감되고 말았을 것’이란 아슬아슬함까지 느끼게 하면서 역자의 능력과 센스에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간혹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있어 아쉽지만, 글을 읽는 흐름을 끊을 정도는 아니다.)

끝으로, 처음에 가졌던 의문 즉, ’이런 짧은 글의 모음에서 과연 중국인의 정서나 세계관에 대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관되게 그들의 정서와 세계관을 요약한 대목은 없지만, 이어지는 수많은 단편의 연결 속에서 그 속을 관통하는 그들의 의식,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언행, 행동양식을 보면서, 내게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중국인 특유의 어떤 정서, 자연관의 느낌이 분명히 있다라고.
대의명분을 중시하고, 또 한편으로 풍류와 남녀흥취를 강조하면서도, 권선징악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충실하고 싶은 어떤 정서가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아온 ’유학’의 정서와 가치지향에 가깝기에 친숙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남녀간의 호방한 애정관과 사물의 정령들이 벌이는 복잡미묘한 음모와 배신을 보면서는 전에 없던 낯설음을 느끼게 되어, 마치 따뜻한 찐빵의 고물과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는 것처럼 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자 낯설고 설레이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읽어내려 가게 된다. 
이에, 전에 없던 새로운 읽기의 즐거움을 주는 묘한 책이라고 하겠다.



기서, 묘한, 매력, 기괴

과거의 불가사의를 현대인이 완전히 풀지 못하고, 과거의 조형물 중에서 현대 기술이 복원하지 못하는 것이 존재하듯, 연주 역시 그와 같은 영역에 속하는 듯 하다.
좀 심하게 말하면 연주자들은 진화의 영역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과거의 연주자가 현재의 연주자보다 못했다고 말할 수 없고,
현재의 연주자들이 늘 과거의 연주자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연주가 기록으로 남겨져 있기만 하다면, 그들은 시대와 무관하게 늘 최고의 연주를 위해 현재진행형으로 경쟁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게 딥퍼플이 돋보이는 것은 내가 시대를 통틀어 그들이 가장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지금도 어느 클럽에서 그들보다 뛰어난 연주실력을 가진 연주자가 조용히 시대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님 그저 그렇게 시대를 못 만나고 스러져 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 모두를 알지는 못한다.
다만, 나는 하드락이 가장 절정에 이르러 있었고, 그 시대 젊음의 정서와 어울려 가장 열정적이고 폭넓은 지지기반을 가진 가운데, 진정한 음악성과 연주실력만으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자 맨몸으로 경쟁하던 그 뜨거운 시기에서, 가장 돋보였던 그들과 그들의 경쟁자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싶다.

이 DVD는 리메이크나 회고공연이 아닌, 바로 그 당시 그들의 연주를 담고 있다.
-당시에 특히 밴드들이 자신들의 음악실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심지어 정규앨범에까지 담곤 했던 즉흥연주를 포함한- 연주실력과 단조로우면서도 끊임없이 변주되는 인상적인 리듬과 가락에 담긴 음악성.
팬들을 의식한 의도적인 몸짓이나 무대 매너는 없지만, 음악과 자신의 연주에 빠져드는 그들의 무아지경의 몰입 자체가 인상적인 무대매너가 되는, 당시 최고의 하드락 밴드의 연주다.

딥퍼플의 연주는 -지금부터 수십년 전이라고 말해야 하는- 시대와 무관하게 내가 본 최고의 경지에 있다고 생각된다. 주로 보이스와 기타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하드락의 경쟁력이었으니까.
하드락 밴드를 대중적 루트로 만나기가 어려워진 지금과 같은 시기에, 열정이 담긴 연주를 즐기기에는 오히려 이들과 같은 과거의 하드락밴드가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음악가들은 시대에 따라 수준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딥퍼플과 당시의 경쟁자들을 믿고 있다.)

다만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당시의 방송 수준이다.
(방송수준은 연주실력과 달리 나날이 진화하는 듯 하다.)
흑백 화면과 다양하지 않은 카메라각도로 그들을 봐야 하는 것은 아쉽다.
그러나, 음악을 즐기는 음향감은 앰프가 받쳐주기에 부족함이 없고, 그들의 고객배려란 화려한 무대매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 빠져드는 집중에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영상자료도 내게는 곧 적응이 되는 수준으로 만족할 만 하다.
더구나, 관객과 바로 얼굴을 대하는 소형콘서트장의 느낌을 주는 점,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공연장분위기와 관객의 복식, 분위기 등이 즐거운 낯설음을 준다.
흔치 않은 화면으로 그들을 만나는 느낌이라 시간이 지날 수록 내게는 오히려 더 친근감을 주는, 의미있는 DVD이다.



딥퍼플, 라이브, 현장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