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스물일곱 해라는 짧은 생을 살다간,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암호처럼 난해하고 독특한 시들을 남긴 시인.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 인물, 이상. 그는 그의 짧은 삶 속에도 그가 남긴 시들과 같이 난해한 문제를 남겨 놓았다. 1937년, 이상이 살았던 마지막 해, 도쿄에서 보냈던 마지막 6개월의 행적은 그의 탄생 100년을 넘기 지금도 여전이 의문 속에 잠겨 있다.
『이상은 왜?』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이상의 삶에서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는 그 최후의 6개월에 대한 의문을 상상력을 담아 풀어낸 이야기이다.
소설은 도쿄라는 공간에서 이상이 보냈던 1936년 가을에서 1937년 봄까지의 시간과 2009년 가을에서 2010년 봄까지의 시간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전개된다. 이상이 살았던 시기는 시대가 만들어낸 상황 속에서 저마다 비극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재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또 다른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휘말리게 되는 살인 사건이 있고, 그 해결 과정에서 이상의 과거와 만나게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70여년을 뛰어넘는 시간들이 빈번하게 교차되고, 그 각각의 시점은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여러 이야기로 구성된다. 언뜻 산만해 보이는 이러한 구성에 담긴 다양한 요소와 장치들은 전체의 이야기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재미와 함께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소설 속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특한 장치 두 가지가 등장한다. 이상의 시대와 현재의 시점 모두에 등장하는 커피점이 있는 독특한 양식의 건물. 그 커피점에서 판매되는 레몬즙이 들어간 특별한 맛의 커피. 이것들은 건축기사이기도 했던 이상의 이력과 레몬 냄새를 맡고 싶다고 했다는 이상의 마지막 말과 연관되어 소설 속에 등장했다.
이상의 시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젊은 시절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것을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다 이상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하숙집 주인 이시카와 사부로, 백범 일지를 지니고 있어 이상이 읽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옛 애인 금홍의 남편 방지온, 이상의 시를 암호로 사용할 수 있도록 부탁하기 위해 찾아오는 비밀암살단의 단원 까마귀. 이들은 혐의도 그 과정도 밝혀진바 없는, 이상이 도쿄에서 보냈던 생의 마지막 시간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당했던 34일을 추리해 내는데 필요한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이상이 구금 기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일본 경찰. 그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상의 최후의 행적을 추적하는 정문탁을 돕는 가와무라 소조의 할아버지로 설정되어 있다. 가와무라 소조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죽은 한국인 아내의 위패와 함께 이상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던 것, 우연히 살인 사건에 휘말린 이들이 할아버지의 사찰을 피신처로 선택했던 것, 그곳에의 몸싸움으로 영가함이 파손되고 그 속에 숨겨진 과거의 문서들이 나타나는 것. 이러한 현재의 사건들은 그 나름의 사건 해결 과정에서의 추리의 묘미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이상에게로 다가가도록 되어 있어 더욱 흥미진진하고 인상적이다.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를 지내기도 했던 이상. 조선이 식민지가 된 1910년에 태어나 생애 전체를 식민지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이상. 그런 그에게 식민지 현실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저항이나 투쟁 속에서 살지 않았던 그의 생의 마지막이 일본 경찰에 의해 구금당했던 시간들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직전의 행적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며 다양한 추측을 낳는다. 그 중 가장 그럴듯한, 혹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항일투쟁과 연관되었을지 모른다는 추측과 연관된 상상력으로 복원된 이상의 최후의 6개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을 통해 그려지는 그 숨겨진 시간들은 이상의 시처럼 복잡해 보이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다. 작가는 후기에서 마지막까지도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비록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독특한 시들을 남겼던 이상에 대해 더욱 관심이 가고 궁금해질 것이다.
이상,
이상은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