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 살고 싶다면, 그 전에 미리 세 번의 반전을 생각하라. 그리고 나서 거짓의 이면에서 진실을 봐야하며, 다시 그 진실의 이면에서 거짓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비크람 찬드라, 신성한 게임

 

정말 사람이 사는 방법은 참 여러가지인 것 같다. 우리나라, 미국, 인도 서로 비슷한듯하면서도 다른 삶의 모습들. '슬럼독밀리어네어'에서 우리와 많이 다르지만 또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 작가는 그의 새로운 작품 '6인의 용의자'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사람들의 삶을 들려준다.

 

인도 내무 장관의 아들이자 재벌 총수가 파티에서 살해되고, 현장에서 6인의 용의자가 체포된다. 간디의 영혼이 빙의된 부패한 전직 수석 차관, 하위 카스트 출신의 휴대폰 좀도둑, 소안다만제도 최후의 부족인 옹게족의 청년, 인도 최고의 섹시 여배우,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를 자칭하는 얼뜨기 미국인, 그리고 마피아 출신의 인도 내무 장관인 피해자의 아버지. -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여기서 살해된 비키 라이, 내무장관의 아들은 그야말로 못된 놈이다. 노숙자를 깔아뭉개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돈으로 풀려나와 뻔뻔스럽게 축하파티를 연다. 그리고 그 축하파티에서 그는 살해당한다. 사건은 단순하고, 또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은 사건의 '어떻게' 가 아닌 '왜'에 초점을 맞춘다. 도대체 누가? 왜? 그를 살해했을까. (물론 그는 어떻게 봐도 살해당해도 마땅한 놈이었다.)

 

이 책은 6명의 용의자 한 명, 한 명의 동기와 그 파티에 오게된 계기 등을 찬찬히 살펴본다. 여의치 않게 그들의 삶을 조금 더 깊숙히 들여다보게 된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단순한 추리소설이라기엔 이 책은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지만, 전작 슬럼독밀리어네어처럼 흥미롭고 끝을 보지 않으면 못 참을듯한 그런 이야기들을.

 

6인의 용의자들 중에는 정말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사람도 있고, 살해당한 비키 라이처럼 정말 나쁜 놈도 있는데, 그들의 삶은 누구하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풀려나간다. 읽으면서 '이런 기막힌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앞서 '세 번의 반전을  생각하라'는 인용구처럼 이 책 역시 우리를 여러가지 방향으로 인도하고, 재미있는 수수께끼들을 그 길에 풀어놓아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격정적인 사건과 읽다보면 무릎을 치게 되는 소소한 수수께끼들 때문에 600쪽이나 되는 이 책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최근에 인도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영화 '세 얼간이' 그리고 미루고 미루었던 이 책 '6인의 용의자'까지 인도 문화를 접할 기회가 다른 때보다 많았다. 그런데 3시간에 가까운 영화시간도, 600쪽이 넘는 책장도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나라와 문화지만, 어느덧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이렇게 다른 나라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구나 라고 느끼면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아주 재미있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망설임 없이 권해주고 싶은 그런 소설이었다. (슬럼독밀리어네어도 마찬가지였지만)

6인의용의자, 비카스스와루프

피터는 때때로 그런 조나단을 조롱했지만, 그는 언젠가 아버지에게 한 약속, 감탄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그 약속을 평생 동안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P.82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정도로 꽤 오래전에 옆에 앉아있던 후배가 마크레비에 꽂혀서 그의 책을 모두 사들인 후 다 읽고 나에게도 빌려주었다. 그 친구 덕분에 나 역시 마르크레비의 책들을 접할 기회를 가졌고, 오래전 영화로 보았던 Just like heaven의 원작 '천국같은' , '그대를 다시 만나기', '행복한 프랑스 책방'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읽었다. 그러다 다시 시들해져서 책 읽기를 미루다가 이 책 '다음 생에'를 다 읽었다. 몇달동안 빌린 책을 드디어 돌려줄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생에'는 러시아의 한 화가에 빠진 조나단이라는 감정가와 그의 친구인 경매사 피터가 화가의 마지막 그림을 찾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 화가의 마지막 작품의 첫 경매장에서 사라졌으며 그 뒤로 본 사람이 없는데, 그런 그의 마지막 그림과 함께 5작품이 런던에서 발견된다. 이를 감정하고 경매하기 위해 조나단과 그의 친구는 런던으로 날라가고, 거기서 그림의 주인이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 이미 결혼할 사람이 있지만 조나단은 그녀에게 빠져들고... 화가의 마지막 작품의 비밀을 풀기위해 노력하던 그들은 놀라운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마르크레비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프랑스의 작가 기욤뮈소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는데, 이번 책은 기욤뮈소의 책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스테리가 좀 더 가미되어서일까. 약간 신비롭지만, 과거든 현재든 뭔가 비밀이 얽혀져 있고,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은 상당히 짜릿하다. 이번 책 역시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 되고 안되고의 여부를 떠나서 숨겨져 있던 비밀이 상당히 흥미로워서 뒤로 갈수록 읽는데 속도가 붙고 궁금증이 커졌다.

 

무엇보다 마르크레비의 책을 읽다보면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는 것이 참 예쁘게 그려진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습관을 알려면 그가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을 내는 것으로 충분하죠." P.98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켜준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 책은 충분히 알려준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은 사랑 이야기이다...

 

이 책은 가족에 얽힌 비밀, 사랑, 증오, 배신 등등 정말 한 이야기가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읽고 나면 늘 마음이 따뜻해지고, 미소짓게 되는 소설, 그런 소설이다. 마르크레비가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자기 딸에게 읽어줄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언제든 동화같은 소설이 읽고 싶을 때 권해주고 싶다. 

다음생에, 마르크레비

신호등의 녹색 등이 깜빡이며 신호를 보내는 건

건너올 시간이 없으니 기다리라는 의미.

하지만 사람들은 조급해하며 횡단보도로 뛰어들고 만다.

그리고 이내 빨간색으로 바뀐 신호등을 망연히 바라보며

차들이 내달리는 도로 한가운데 갇혀 오도가도 못 한다.

서른의 우리는 모두 그 깜빡이는 녹색 등을 바라보고 서 있다.

 

초조하고,

망설여지고,

나만 뒤쳐진듯해서 빨리 가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으로 비틀거린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재촉하듯 깜빡이는 녹색 등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그 시간은 의외로

그렇게 길지도, 지루하지도, 막막하지도 않다. P.21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이야기했듯이 지금 세상에는 '서른'에 대한 이야기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남들이 이야기하던 청춘이 어느새 20대에서 30대로 옮겨져갔나 싶기도 하다.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다시 또 한번 이 책을 펼쳐든 건 표지가 너무 예뻐서 그리고 서른을 여자의 '청춘'이라고 이야기해줘서 였던 것 같다.

 

저자는 방송작가 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TV 드라마나 시트콤처럼 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그런데 처음 화려한 표지와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을 내용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조금 마음 아프고, 불편해진다.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이건 그냥 청승이고 자기 비하다 싶을 정도 지만 서른즘 여자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이야기들. 그래서 더 와닿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튀어나온다.

 

"남자들은 어려 보이는 여자가 아니라, 그냥 어린 여자를 좋아하죠." (......)

누구에게나 콤플렉스는 있다. 작은 키, 못생긴 얼굴, 변변찮은 직업, 줄어드는 머리숱, 뚱뚱한 몸매, 별 볼일 없는 학벌, 가난한 집안 사정 등등. 그러나 '나이'가 콤플렉스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얼굴이야 성형이라도 한다지만 나이는 어찌한단 말인가. P.218

 

이런 이야기가 가끔 튀어나와 '흐음, 이런 생각, 이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막상 글로 읽으니까 민망한걸'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반면 작가가 이야기해주는 서른의 시간 보내는 법은 나름 멋스러워 따라해보고 싶어진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성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평일 브런치도, 귀찮음을 이기고 나갔다가 발견했다고 알려주는 부암동의 산책도, 따라 가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도 이야기한 중간 중간 불편한 이야기는 그냥 한번의 투덜거림으로 넘겨버리면 될 일이고, 괜찮다 싶은 정보는 알아서 수첩에 적어 챙기면 될 일 같다.

 

이 책은 정말 자잘한 여자들의 수다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들을 때는 재미도 있고 시간도 잘 가는데 막상 뒤돌아서면 남는게 없는 것 같아 왠지 시간을 낭비했다고 자책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 하지만 여자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수다가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하듯이 한없이 지치고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 필요할 때는 제법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 친구의 의견에 모두 동조할 필요는 없다. 내가 좋고, 동의 하는 이야기들만 쏙쏙 마음에 저장해두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썩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여자의청춘,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