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20세기 초, 숫자상으로 한 세기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는 온통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잠깐 밋밋하게 배우고 마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아주 참혹한 전쟁이다. 이 전쟁이 끝나고 그야말로 확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프랑스의 한 문인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7편 중 첫 권이 새 번역본(김희영 옮김)으로 출간되었다. 여기서 전7편이라 함은 총 3천 페이지, 권당 400~5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하(大河)소설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난 1998년 국일미디어의 완역본(김창석 옮김)은 전7편 11권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되니 일단 분량면에서 책 한 권 진득하게 읽기 힘든 현대인이 이 책을 선뜻 집어들 수 없게 한다. 정작 문제는 내용과 형식, 문체, 이 작품을 둘러싼 논의들에 있다. 굉장히 어렵게 돌려서 얘기한 셈인데, 쉽게 얘기하자.

 

먼저, 내용면에서 이 작품의 줄거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게 좀 애매해진다. 이렇게(간략하게 한 줄로 가령 “작가지망생의 고뇌”라든가) 얘기해도 맞고, 저렇게(엄청 장황하게 구구절절) 얘기해도 맞고. 무엇보다 줄거리를 안다고 해서 작품읽기가 그렇게 수월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건 프루스트의 글 쓰는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는데, ‘의식의 흐름’기법이라고 해서 미리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 의거하여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 주인공 ‘나’의 의식이 노니는 대로 문장이란 건 반드시 적당한 시점에 명료한 마침표를 찍어주어야 한다는 걸 잊은 듯 하나의 문장을 오래도록 붙잡고 늘어진다. 그럴수록 작품 속 ‘나’와 독자의 의식은 묘연해진다.

 

이쯤 1권의 시작을 알리는 게 좋겠다.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왔다. 때로는 촛불이 꺼지자마자 눈이 빨리 감겨 ‘잠이 드는구나.’라고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그러다 삼십여 분이 지나면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잠이 깨곤 했다.” (*오랜 시간 불면에 시달리며 잃어버렸던 시간을 풍요롭고 창조적인 시간으로 바꾸는 것, 바로 이것이 작품의 주제다.)

 

19세기 말, 평생 따로 일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프루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아니 작가가 되고 싶어 하기 이전에 프루스트 9세 무렵, 천식 발작이 먼저일는지 모른다. 어느 한 사람의 신체적 결함은 그 자신이 본래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삶을 꾸려가기도 하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철학적이고 무한한 의미를 지닌 주제를 찾으려고만 하면, 금세 내 머리는 작동하기를 멈추고 내 주의력 앞에는 허공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내게 재능이 없거나, 뭔가 뇌에 병이 생겨 재능이 가로막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아버지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299쪽)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의 야유, 스스로 절감하는 문학적 재능부재로 인한 실망이 이 작품의 배경에 짙게 깔려 있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 코르크를 바른 방에 틀어박힌 채 집필에만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긁적이는 첫 구절이 바로 저 위의 “일찍 잠자리에 들어 왔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잠자리키스를 그렇게 갈구하던 침대공간으로 들어가 그 당시 콩브레에서의 ‘나’의 침대공간을 떠올린 것이다. 어른이 된 ‘나(독자)’가 작품에서 어리광쟁이 마마보이 ‘나’와 마주치니(1권 83쪽까지) 이거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건지 어리둥절해진다. 마치 ‘내가 이런 유치한 얘기나 듣자고 계속해서 이걸 봐야겠냐는 듯.’ 세간에 잘 알려진 마들렌 이야기는 이제 나올 참이다. 그리고 끓는 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나’에게 건네주었던 레오니 아주머니와 콩브레 주변 두 산책길 - 메제글리즈 쪽(스완네 집 쪽)과 게르망트 쪽. 산사 꽃 향기 짙게 풍기는 첫사랑 질베르트, 음악가 뱅퇴유의 쓸쓸한 죽음,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전7편의 중요한 가지들을 쓱쓱 스케치한 이 첫 권은 화자의 회상공간 현관 문턱에 해당된다. 자서전은 아님에도 자서전적 요소를 아니 생각할 수 없으며, 화자의 의식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19세기에서 20세기를 넘나드는 온갖 실존인물과 허구적 요소가 마구 넘실거리면서 19세기 전후 유럽의 역사와 다양한 문화ㆍ예술분야(회화, 음악, 건축, 신화, 문학, 고전극 따위), 철학, 심지어 민감한 정치적 사안까지 욕심껏 끌어안기 때문에 이미 국내외 수많은 석박사 학위자들이 프루스트와 이 작품을 주제로 논문을 써냈으며, 쓰고 있다고 알고 있다. 주의할 점은 여기에 휘말리면 이 작품과 나만의 관계를 제대로 일구어낼 수 없다. 프루스트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독립된 존재로 그 자신의 두 발로 바로 섰을 때 비로소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해갈 수 있었듯 우리가 이 작품 한 번 만나보자고 코르크를 바른 방에서 칩거할 수만은 없지만, 되도록이면 주변 잡음을 제거하고 온전히 이 작품하고만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렇게 해서 이 작품은 상상ㆍ허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알고 있는 ‘소설’이라는 문학 양식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머리가 꽤 찼다고 자부하는 지적인 독자들의 이성과 감성을 힘차게 펌프질해줄 것이다. 특히 이성을 맹신하던 시대가 종말을 고한지 한참 되었건만, 감성이 지나치게 외적인 요소들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 시대에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내면 깊은 감성의 영역을 이성(과학)이라는 베이킹파우더로 잘 버무려서 한 인간의 자아가 얼마나 깊고 풍성해질 수 있는지를...

 

‘지나간 시간은 이미 완전히 지나간 거야. 죽은 거야. 과거 따위.’

 

이 말에 깊게 동감하는 독자가 있다면 프루스트라는 한 인간이 도대체 어떠한 마술을 부려서 죽었다고 생각한 시간을 정말로, 진실하게 되살려냈는지 깊게 침잠하고, 깊게 끌어올리면서 완독을 시도해볼 일이다.

 

한 인간의 삶은 참말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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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년 7월 10일 파리 출생 ~ 1922년 11월 18일 향년 51세

 

  1903년(32세) 11월 26일 아버지(69세) 사망

  1905년(34세) 9월 26일 어머니(56세) 사망

 

1909년(38세, 집필착수) 프티트 마들렌 과자의 경험

 

1	『스완네 집 쪽으로』	1913년(42세) 어렵사리 출간
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약 4년 4개월) 제1차 세계대전 전쟁 경험은 프루스트에게 새로운 고뇌와 성숙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2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공쿠르상 수상	1919년(48세) 출간
3	『게르망트 쪽』	1920년(49세) 출간
애초 집필을 착수할 당시 전3편으로 끝낼 예정이었다고 한다.
4	『소돔과 고모라』	1922년(51세) 출간
『갇힌 여인』을 퇴고하다가 극심한 피로로 호흡 곤란을 일으켜 사망 『스완네 집 쪽으로』출간 이후, 약 10년(1913~1922, 프루스트의 40대)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작품완성에만 몰두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3천 페이지가 넘는 대작을 쓰는 작가라면 10년 이상 한 작품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프루스트와 같이 자기 생의 촛불이 ‘훅’ 꺼지기 전까지 - 특히 생애 마지막 몇 년이 가히 예술이다 - 온몸을 불사르며 쓰는 경우는? 세상에 프루스트 말고 없지 않나 싶다.
5	『갇힌 여인』	1923년(사후) 출간
6	『사라진 알베르틴』(일명 달아난 여인)	1925년(사후) 출간
7	『되찾은 시간』	1927년(사후) 출간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마르셀프루스트, 김희영옮김

연금술사와 함께 떠난 여행

<소울 시크릿>

- 스콧 블룸 지음 / 이솔내 · 류가미 옮김 -

 

1부, 여름의 길Summer’s Path

서른아홉 살에 췌장암으로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던은 소울 메이트 수전과 함께 살고 있다. 몸의 고통에 더해 쌓여가는 청구서들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큰 짐이 된다는 죄책감 때문에 밤잠을 설치던 어느 날, 현실과도 흡사한 꿈에서 조력자 로버트를 만난다. 어차피 이번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냉철하게 판단하여 로버트에게 몸을 주기로 하고 자신은 새로 태어날 여덟 마리의 강아지 중 마지막 녀석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던의 몸을 지닌 로버트와 던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강아지는 수전에게는 자살로 꾸며지도록 협곡에 차를 추락시키고 둘은 (치유)여행을 떠난다.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을 버림으로써 끝이 났다. 수전이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확신해 왔었으나 결국엔 자신이 그녀를 떠났다. 그렇게 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146쪽)

 

2부, 가을을 기다리며Waiting for Autumn

어떤 회사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 사람들에게 치이고 치여서 지칠 대로 지친 몸이지만 다시 예전처럼 순진한 믿음을 회복하고 싶은 사람, 어느덧 대도시의 익명성에 익숙해져버린 사람, 무엇보다도 예전...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도 불구하고 그녀(스콧의 약혼녀 세릴)를 만나지 않던 날, 술 취한 운전사에 의해 한순간에 그녀를 잃고 떨쳐버릴 수 없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 이 모두는 삶의 갈피(방향)를 잡지 못하고 말할 수 없이 불안스럽게 사는 ’스콧’이라는 사람의 모습이다. 요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복사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스콧이 우연히 로버트와 로버트의 검은색 강아지, 의식의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상처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과정이 몹시 흥미롭게 진행된다.

 

   "나는 나쁜 기억들을 샅샅이 뒤져, 그것들을 모두 고쳐 놓았다. 그런 식으로 내 과거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 과거의 역사가 진짜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꿈의 영역에서 나의 과거를 고치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내 자신을 보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그런 작업을 통해서, 내가 실수를 통해서 배워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309쪽)

 

사실, 자본주의가 썩었다고까지 말하는 요즘은 눈에 보이거나 계산이 되거나 뭔가 확실한 이득이 없다면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관심 가지기도 쉽지 않지만 의식의 영역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기도 하다. 작년 겨울, 어떤 모임에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이라는 책을 같이 읽고 혼자서는 어려운 부분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주신다고 해서 참여했다가 식겁한 적이 있다. 뭔지 모르게 얼굴에 욕심과 분노, 화가 덕지덕지 붙은 사람이 "저는 이제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곧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를 연발하면서 우주적 연결을 논하며 누군가 웃기지도 않게 잘난 척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너무나 난감한 시간이었다(아마 이분은 - 좋은 말로 하면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그분 말씀에 따르면 - 이 책에서 설정한 던의 췌장암, 스콧의 죄의식과 같이 대단히 충격적인 행위를 본인의 희생이 따를지라도 어쨌든 던져주어 의식의 확장을 꾀하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아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는 동물이 그나마 잔잔하게 영혼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건 이러한 책을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읽는 내내 몹시 행복했고, 읽고 난 후 기운이 솟아나는 책이다.

 

 

 

소울시크릿, 의식의성장, 연금술사와함께떠난여행

<제국의 황혼>

대한제국 최후의 1년

1909.08-1910.08

-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_언론정보학)·권영민(서울대 교수_한국문학)·이헌창(고려대 교수_경제학)·김기승(순천향대 교수_한국사)·박기주(성신여대 교수_경제학)·전봉관(KAIST 교수_한국문학)·지해범(동북아연구소장) 외 다수 지음 -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8월 29일이 무슨 날이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런 치욕스러운 사실을 번뜩 깨우쳐주게 해주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위에 보다시피 표지에는 구체적인 날짜는 두루뭉술하게 처리하고, 서문에 딱 한 번 8월 29일을 언급하며(언급만 함), 내용은 다양한 전공 교수들이 칼럼 형식으로 총 242편의 글을 실었기 때문에 커다란 역사 줄기를 시간의 흐름순으로 따라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물고기를 잡듯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1909년 8월에서 1910년 8월까지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러저러한 사건에서부터 인물, 생활사, 경제, 경영, 의료, 문학 등 각자 전공이나 관심사에 따라 낚아올릴 수 있다. 물론 구성 자체는 시간의 흐름순이지만 주제가 다양하고 여러 집필진이 쓴 짧은 글의 묶음이므로 전체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_ [경술국치 100년] 8월 29일, 치욕의 그날

 

조선일보라는 지면을 빌어 지난 2009년 8월 29일부터 2010년 8월 27일 장장 1년 동안(대한제국 최후의 1년을 조명하는 <제국의 황혼: 100년 전 우리는> 시리즈 - 이 책은 이 칼럼의 묶음임.) 우리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망국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 다시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지 말아야 하며 건강한 나라로 영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 서문 가운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인데, 사실 누구라도 뭐라 말할 건덕지도 없을 정도로 우리의 교육현장이나 가정에서 어른들의 역사의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우리 가족이 먹고살고 보자는 생존의식이나 잘못 말하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게 한몫한 것도 같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혜안을 밝혀주는 통로가 너무 없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이 책도 그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라가 저물어가는 황혼의 시기를 다룬 책이라고 해서 암울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특히 전반부 - 망국의 그림자, 일본의 침탈 전략,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해이, 친일파의 망동, 지식인들의 위기 대응, 언론의 계몽과 투쟁 - 칼럼의 뉘앙스가 개인적으로 썩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책을 읽고 문장 하나하나 꼬집기 내지는 꼬투리잡기는 내가 썩 즐기는 방식이 아닌데 이제 막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초보에게 이런 부분이 책장 넘기기를 게을러지게 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어서다).  

 

    "돌이켜보면 기원 전후의 수 세기간에 걸쳐 일본은 한국을 학습하여 한국 따라잡기에 성공했다. 17세기경부터 일본은 조선을 앞서기 시작하여 이후 양국 간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었다. 한국이 일본을 학습한 것은 1880년부터이며,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고도성장기에 그 격차가 축소되기 시작했다. 21세기 한국은 ’일본 따라잡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65-66쪽)  --일본을 뭘 따라잡자는 건지... 우린 우리대로 가는 거지...

 

   "통감 이토 히로부미에 관해서 코번은 고종과 상반되는 평가를 내렸다. 이토의 정치·외교적 능력을 높이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인품 면에서도 극찬했다. (...) 다른 나라 외교관의 관찰을 액면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침략자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부분에는 더욱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제3자의 눈에 당시의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비쳤는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번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는 영국의 동아시아 정책 수립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대한제국은 ...(이후는 읽기도 암울한 우리나라 비하글)" (168쪽) --주한 영국총영사 헨리 코번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글을 읽고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이재명이 이완용을 살해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강제병합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거사는 한국인들이 병합을 원치 않으며 매국노는 언제든 처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04쪽)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다는 상식(?)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완용 말고도 매국노가 천지라 강제병합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얘기인지...

 

   "대한제국 시기 일본의 근대 문물을 배우러 갔던 유학생들은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일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의 일제감정기 행적은 실망스러웠다. 류승흠은 일제에 적극 협력하여 중추원 참의에까지 올랐다. 민원식은 친일여론 조성에 앞장서 참정권 운동을 벌이다 도쿄에서 양근환 의사에게 처단되었다. 젊은 시절의 순수한 뜻을 오래 지키기 어려움을 이들의 삶에서 새삼 느끼게 된다." (259쪽) --계몽적인 마무리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왜이리 김빠지는 마무리인지.. 이런 안이한 마무리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가 있... 을까?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 우리 민족의 억눌렸던 분노를 한마음으로 표출했던 정말 기념할 만한 삼일절이다. 괜히 힘이 빠져서... 나도 별 마무리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떻게 하면 (국가의 역사든 개인의 역사든)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제국의황혼